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레종데트르 (삶의 존재 증명)를 시도한 하루키의 대작.

하필이면 중간고사 때 새로운 게임이나 책, 음악, 놀이를 발견해서 세상에서 가장 수고스러운 사람으로 자기 체면을 걸어 그것들에 빠진 것처럼 두 권을 읽었다.

천근만근 무거운 인간 존재와 무의식에 대한 사유를 다룬 이 책에서 환타지 소설같아 책장은 잘도 넘어가는데, 나는 무슨 메시지를 얻어야하는지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먼저, 표면적으로 잘 드러난 결말로 통독하듯이 그 메시지를 찾았다.


주인공은 현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는 영혼의 죽음을 대단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박사나 조직에 맞서거나 대항하지 않고, 박사의 손녀딸이 자신을 냉동시켜 해결 방법이 있을 때 까지 기다려보자는 것에도 순순히 응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시간을 삶의 정수 (매일을 특별한 날로, 당연한 것을 멋진 것으로 식의)를 조금 발견하며 보낸다.

이방인의 주인공이자 부조리 철학의 대표주자인 뫼르소가 이 책의 주인공이었다면, 자신이 대항해도 상황이 변치 않으니 이 책의 주인공처럼 무덤덤하게 자신의 운명을 수긍하겠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날카로운 행동을 했을 것 같다. 이방인에서처럼 꼭 누군가를 해변에서 쏘아죽이지 않더라도 주인공처럼 착하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에 가깝게, 주인공 자신의 무의식에서 만든 "세계의 끝"에서는 지구 정도는 구할 수 있는 주인공으로 헐리우드 영화에 캐스팅 될 만큼 반전의 결단력 있게 적극적으로 선택해서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무의식속 자신의 그림자를 세계의 끝으로 탈출시켜가면서 말이다.


현실과 무의식 세계에서 주인공이 마주한 상황은 대등하지 않지만 유사한 곤경이다. 자신이 인지하는 현실에서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수긍하고, 무의식에서는 적극적으로 대항하며 이겨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루키는 "인간은 무의식적으로는 두렵고 이겨내기 힘든 것들에 맞서지만, 결국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라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것일까? 소크라테스의 "파이돈" 대화편에 나오는 "철학자" 정도는 되어야 불멸의 영혼을 인식하고 선행과 지혜를 추구할 수 있고, 보통 사람들은 고대 이집트 노예처럼 채찍을 일용할 양식으로 생각하며 끝도 없는 피라미드의 돌들을 만들고 날라야하는 것일까? 하루키가 42킬로 마라톤을 완주할 만큼 체력이 좋아진 1984년 8월부터 이 책을 썼다고하는데, 그는 그 체력의 육체 속에 영혼을 가두어버린 것일까?


방백처럼 질문들을 던졌지만, 연극을 골똘히 보고 있는 관객들은 그저 골똘히 앉아서 보고 있을 뿐이다. 그가 교묘하게 만들어버린 "열린 결말" 속에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책을 고민하면서 더 오래 기억하라고 이런 수법을 쓴 것 같아 얄밉기도 하다. -_-;


나의 의식은 자꾸만 이 책을 열린채 놔두고 책속의 흥미롭고 독립적인 내용들을 레퍼런스로 나중에 써먹고 지금은 메시지 같은 것은 잊어버리라고 종용한다. 심지어 이정도 사유를 했다면 참 잘했어요 스티커를 한장 받을 수도 있다고 갈라진 혀로 재잘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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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의 의식에게 한줄기 희망이 있다. 바로 "이쑤시개" 다.


더 정확하게는, 이 책에서 소개된 어떤 과학자가 생각해낸 "백과사전 막대"이다. 백과사전의 모든 문장을 숫자로 바꾼다. A는 01, B는 02 식으로.

그리고 그 것을 나란히 배열한 후에 맨 앞에 소수점을 찍는다. 그러면 거의 무한소수에 가까운 숫자가 만들어진다. 0.1732000631... 식으로, 그리고 그 이쑤시개의 길이를 "1"로 잡고, 백과사전이 만든 숫자에 해당하는 부분을 점으로 찍는다. 0.5는 이쑤시개의 한 가운데라는 식으로. 그러면 아무리 두꺼운 백과사전이라도 이쑤시개에 간단히 표현된다. 물론 현대 그리고 꽤 먼 미래의 과학에서도 그렇게 초정밀한 점을 찍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포인트는, 이쑤시개는 현실 또는 시간에 해당하고 백과사전은 우리의 생각 또는 영혼에 해당한다. 이쑤시개가 1cm 이든 1km이든 상관 없이 아무리 페이지가 많은 백과사전도 담을 수 있는 것처럼, 1초이든 백만년이든 상관 없이 인간의 생각과 영혼은 영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불사). 슈퍼맨 정도는 되어야 현실에서의 1초를 백년처럼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서 주인공은 박사님의 실험 덕으로 -_-; 현실에서는 멍하게 의식을 잃고 자신의 무의식 세계에 빠져 그렇게 영원히 살게된다.

글이 슈퍼맨을 넘어 "인셉션"으로 치닫고 있다. 이책의 열린 결말보다 더 열어져쳐질 것 같은 이 글을 닫아봐야겠다.


그러면, 도대체 히어로나 준히어로, 히어로의 친구의 친구도 아닌 우리들은 이쑤시개를 사용할 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또는 천운처럼 또는 정말 우연히 2권을 읽을 때,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공간마다 책을 배정하는 버릇이 있다. 집에서는 이책, 사무실에서는 저책, 밥먹을 때는 요책 식으로) 좀전에 거론한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는 사후 영혼의 불멸에 대해서 긴 대화를 한다. 그의 3단을 넘어 9단 논법을 읽다보면 영혼 불멸을 지구는 둥글다 처럼 믿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고결한 철학자들에게만 가능한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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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하루키의 이 책을 통한 메시지는.


인간의 무의식은 어떠한 역경에도 정의롭고 강인하며 또 영원불멸한 것이고,

그 것은 인간의 구성요소이지만 현실의 제한된 공간과 시간에 지배받지 않는다.


라고 꽤나 그럴싸하게 결론 지을 수 있지 않을까? 문이 덜 닫혀서 어디선가 매서운 바람이 계속 불어 들어오는 것 같지만, 나의 의식은 여기서 갈무리를 하라고 한다. :)


마지막으로 책의 민줄들을 덧불여 본다.

"그림자가 다시 내게 달라붙는다고 해도 다시 떼어내질 뿐이다. 그리고 똑같은 일을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p62-63

"난 갈피를 못 잡을 때는 늘 새를 보곤 해." p69

"인간의 행위라는 것이 애당초부터 신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하나부터 열까지 자발적인 것일까." p83

"시간이란 이쑤시개의 길이와도 같은 것이네. 그 안에 채워진 정보의 양과 이쑤시개의 길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네." p131

"인간은 시간을 확대해서 불사에 이르는 게 아니라, 시간을 분해해서 불사에 이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야." p132

"순수한 구덩이" p197

"그러나 그래도 나는 방향타가 흰 보트처럼 반드시 똑같은 자지로 되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은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나 자신은 언제나 거기에 있으며, 내가 되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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