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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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무라카미 하루키 "9년 만의 신작 소설집"

9년 만의


그 말만으로도 이 책을 집어 들지 않을 이유는 전 우주를 뒤져봐도 없을 것이다.

사실, 제목은 (제일 위에 가장 큰 폰트로 또 가장 밝은색으로 쓰여져있었지만)

맨 마지막에 형식적으로 내 눈에 인식되었다.


"여자 없는 남자들"?

일단 사고 보자.





 비판적 책 읽기 보다 더 삐딱하게 봐지는 찬사글이 다행히도 책 뒤편에 없었다.

그저 (고맙게도) 본문을 발췌해서 붙여 놓은 것이다.

그리고 제목 뒤에서 제목 보다 더 제목다운 한 구절이 내 두 눈과 마음을 사로 잡아 버렸다.


그 세계에서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로 불린다. "한없이 차가운 복수형으로"


샤넬 (헤르메스)이나 포르쉐, 애플에서 오랫동안 비밀리에 준비한 (몇 번의 실패로 다시 시작하고 또 시작해서 끝내 모두를 만족시킨)

이 지구상에는 한 번도 없었던

최고가의 신상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다.

9년 만의 신작을

마치 9년 만에 책을 읽으면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는 병을 고친 사람처럼.






여자 없는 남자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 책이라면 정신 없이 읽었다.

책속 곳곳에 투영된 그의 모습을 보며

(따라할 춤과 노래는 없었지만)

또래 보다 정신연령이 1.5배 이상 높고

내가 나이를 훨씬 더 많이 먹게되어도 결코 모를 것 같은 것들을 아는

그런 친구 (꼭 한 명씩은 있는)처럼 그를 동경했다.



책은 


드라이브 마이 카

예스터데이

독립기관

셰에라자드

기노

사랑하는 잠자

(한국어판 특별 수록 섹션으로 변신의 역과 같은 (곤충에서 사람이 된) 시작이다)

여자 없는 남자들


이렇게 7개의 서브 섹션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섹션들이 첫 번째 섹션으로부터의 과거 회상인지,

마지막 섹션을 향해 달려가며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이루어졌는지는

-__-; 아직도 모르겠다 (후자 일듯하지만).


이 모호한 정체의 섹션처럼

이 책은 만약 이름이 조금이라도 덜 알려진 작가가 썼다고하면,

각 섹션의 앞/뒤 부분 상당한 페이지를 집에 놔두고 가운데 페이지들만 출판사에 맡겨 만든 책이라고

비난 받을 수도 있다.

그래도 정체모를 노란 가방이 C자 두개가 겹쳐진 눈 마크가 있어 좋아보이는 것처럼

하루키의 이름은 그 비난을 부끄럽게 만들어준다.



조금 더 고상한 전개와 등장 인물과 결말

(특히, 결말은 수영장 같은 욕조에 보라색 입욕제 단 한 방울을 떨어뜨린 것처럼 흐릿한 결말)을

예상했지만 (동시에 아닐것이라고도 생각했지만),


정부와 정남 그리고 아내와 남편

넷이서 한 자리에 모여

(8시 뉴스에 나올 폭력사태는 전혀 일어날 기미가 없이)

가끔 식사를 해버리는

그런 일본의 (나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미래사회 같은) 약간 오래된 부부 중

특히 낡은 한쪽 날개인 남자들의 이야기다.


시간에 정확히 비례해서

더 나약해지고

더 불안해지고

(술기운이 없어도 드디어 맨정신에) 감성적이기 시작한 (오히려 몽상에 가까운)

낡은 남자들의 이야기다.




가끔은 (그의 책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현란한 칼춤을 정신 없이 보다 코를 살짝 베여도 모를 듯이

하루키의 글춤에 미아 (MIA)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의 소감이나 교훈은?

앞에서 말했듯이

그저 내키는대로 (하지만 작가의 섬세한 계산하에) 원고지 한묶음의 글들을 쏟아서 엮은 것 같이

낡아가는 남자 (그래도 남녀 평등이니 인간이라고 해보자)들의

한 모멘트 (Moment)를 이야기한 책이다.

그저 그 것 뿐이다.

내일부터 무엇을 해야겠다느니

과거의 어떤 행동에 대한 뉘우침

현재 생각하는 것에 대한 재고 따위는 할 필요가 없다.

그저 책을 읽고나면 덮어주고,

나만 가진 것 같은 교양을 비밀리에 손에 넣은 듯한 만족감으로

다음 일상을 재개하면 된다.



세수가 충분하고, 법정에서 술을 핑계로 머리를 조아리는 부.도.덕.자.들을 보기 싫은 정부가

금주령을 내려 오랫동안 맛 보지 못한

술을

하루 종일 서울을 가로지르며 한 데모나

온몸이 땀으로 젖는 아웃도어 운동을 하고

마신것처럼

맛있는 책이다.



할 이야기도 생각할 것도 많겠지만

술맛이 너무 좋을 땐 그 것들을 하지 않는 법이니깐.






이책이 링거처럼 필요한 사람들


9년만에 독서를 하는 사람들

하루키의 책은 모두 읽었는데 또 읽고 싶은 사람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고 감상적이고 싶은 사람들

전생에 칠성장어 였다면 현세에서 어떤 행동 패턴과 사고 방식을 가지는지 궁금한 사람들


그 세계에서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로 불린다. "한없이 차가운 복수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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