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한다. 왜냐하면 "스스로 생각해서 해답을 내놓는 것이 100배는 더 가치 있기 때문이다."
‘읽다’를 ‘클릭하다’로 바꾸면 현재 우리가 겪는 고충이 된다. 우리는 데이터를 정보로 착각하고, 정보를 지식으로, 지식을 지혜로 착각한다.
우리는 습관의 폭압에서 벗어나려고 여행을 한다.
기원전 341년에 사모아섬에서 태어난 에피쿠로스는 어린 나이에 철학자가 되었다. 이유는 평범했다. 의문이 많았고, 어른들이 내놓는 답이 무척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쾌락은 의심스럽다. 쾌락은 어두운 곳에, 닫힌 문 뒤에 머문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쾌락을 최고선으로 여겼다.
쾌락을 분석해서 욕망의 분류 체계를 만들었다.
쾌락은 고통의 반대말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를 뜻한다. 에피쿠로스는 향락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평정平靜주의자’6였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규정했다. 우리는 존재의 차원에서,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긍정 정서positive affect의 차원에서 쾌락을 떠올린다. 반면 에피쿠로스는 결핍과 부재의 측면에서 쾌락을 규정했다. 그리스인은 이러한 상태를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산더미처럼 쌓인 고통 맨 위에 사소한 즐거움을 올려놓고는 왜 행복하지 않은지 궁금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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