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상을 이해하는 것을 멈출 때에야 나는 비로소 그 대상을 보기 시작한다."

《베다》에서 말하듯, "당신이 보는 것이 곧 당신 자신이다."

‘표면surface’이라는 단어와 ‘놀라운 소식surprise’이라는 단어는 어근이 같다.

우리의 눈은 보통 1초에 최소 세 번 움직인다. 하루에는 대략 10만 번 움직이는 셈이다.

"쳐다보지 마세요!" 강사가 소리를 빽 질렀다. "스캔하세요!"

우리는 응시할 때보다 훑어볼 때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무엇이든 제대로 보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그의 저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전부 제시되어 있다.

겨우 20대 때 완성한 이 작품을, 쇼펜하우어는 "한 가지 생각의 산물"이라고 칭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설명하는 데에는 1156페이지가 필요했다.

책의 첫 문장부터 상당히 특별하다. "세계는 내가 만들어낸 생각이다."

우리 모두가 저마다 자기 정신에서 현실을 구성한다는 의미다. 쇼펜하우어의 세계는 그의 생각이고, 우리의 세계는 우리의 생각이다.

쇼펜하우어는 관념론자였다

관념론자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세계 자체가 아니라 정신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믿는 사람을 뜻한다.

물리적 대상은 우리가 그것을 인식할 때에만 존재한다.세계는 내가 만들어낸 생각이다.

우리의 인식 능력 너머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철학자들은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실재에 다양한 이름을 붙였다. 칸트는 이를 예지체noumenon라고 불렀다. 플라톤은 이를 이상적인 형태의 세계라고 불렀다. 인도 철학자들에게 이는 곧 브라만이었다. 이름은 다 다르지만 개념은 동일하다.

칸트와 달리 쇼펜하우어는 실재가 단일하고 통일된 독립체이며, 비록 간접적일지라도 접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의지는 끝없는 노력이다. 만족 없는 욕망이다. 영화 없는 시사회, 절정 없는 섹스다. 의지는 스카치위스키 두 잔으로 충분할 때 세 번째 잔을 주문하게 만든다.

쇼펜하우어는 예술이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술은 우리를 해방시킨다. 예술은 의지라는 끊임없는 분투와 고통으로부터의 일시적 유예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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