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는 진짜 드물게도,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책벌레였던 그는 서커스를 보러 가는 대신 책을 읽었다. 이런 성향은 마르쿠스를 로마의 다른 학생들과 확연히 다른 소수자로 만들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망각이었다.

《명상록》은 내가 그동안 읽은 그 어떤 책과도 다르다. 사실 책이 아니다. 훈계다. 독촉과 격려 모음집이다. 로마 시대의 냉장고 메모다.

다른 대부분의 철학 교수와는 달리 평범한 사람들이 쓰는 단어를 사용한다. ‘질문’이나 ‘경험’ 같은 단어들. 하지만 제이컵이 단어를 조합하는 방식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카뮈의 자살 문제를 폭신한 새털 이불로 감싼 버전이다. 마르쿠스는 상반된 두 견해 사이를 오가며 홀로 토론을 벌인다.

모든 생각은 이전 생각에 끌려가고 다음 생각을 끌어당긴다.

있다. 생각이 그렇듯이 감정도 결코 느닷없이 나타나지 않는다. 열차처럼 앞에서 감정을 끌어당기는 힘이 늘 존재한다.

모든 위대한 발견과 돌파구는 이 두 마디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궁금하다.

그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 문화는 일반적으로 질문을 경험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2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가능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경험했어요."

"누가 신을 만들었을까?"

편협하고 수상쩍은 지식보다는 폭넓고 솔직한 무지가 더 나았다.

우주학자 칼 세이건은 "모든 질문은 세상을 이해하려는 외침"8이라고 말했다.

외침이다. 소크라테스는 ‘어떻게’라는 질문에 관심이 있었다.

이 세상에 ‘소크라테스의 사상’ 같은 것은 없다. 소크라테스의 사고방식만이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에게는 수단만 있을 뿐, 그 끝은 없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현대 철학자 로버트 솔로몬은 이를 "현명한 훈수질"10이라고 부른다. 마음에 든다.

철학이 질문을 던지는 기술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질문이란 무엇일까?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처음으로 철학을 하늘에서 끌어내려 마을에 정착시켰고, 철학을 사람들의 집 안으로 불러들였다."9

커다란 질문일수록 우리는 정보만 제공하는 답에 관심이 없다.사랑은 뭘까? 악은 왜 존재하는 거지? 이런 질문을 할 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보가 아닌 보다 더 큰 것, 바로 의미다.

질문은 일방향이 아니다. 질문은(최소) 양방향으로 움직인다.

소크라테스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배웠다.

머문다. 호기심이 한 손에 음료를 들고 안락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발을 올려둔 것이 바로 궁금해하는 마음이다.

볼테르가 말했듯,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대답이 아닌 질문을 보는 것이다.

‘궁금하다’는 멋진 단어다. 미소 짓지 않고서 그 단어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궁금하다wonder라는 단어는 ‘경이로운 것, 기적, 놀라움의 대상’이라는 뜻의 고대 영어wundor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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