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니 우리 중 일부는 아니면 우리 모두는 어떤 감정의 전도와 전파 시간이 한 참 느린 것 같습니다. 좌뇌가 규정하는 타이밍을 놓쳤다고 생각할 만큼 늦은 것 같고, 그것에 우주와 연결된 우뇌는 꼭 그렇지 않다고 반박해줍니다.

어쨌든, 이런 때는 어떤 일을 하든 나도 모르게 감성적인 음악을 틀고 나를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만들며, 지나온 책들을 불러내 봅니다. 이것이 반복되었는지, 식상하게 불렀던 책들은 적절히 가려 내기도 합니다.

2017년 11월 27일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를 기억해봅니다. "데아, 데아. 데아... 부를 필요가 없을 때,..." 이라는 제목으로 쓴 서평입니다.

그 서평은 데아를 부르고 있고, 부를 필요가 없이 지척에 누군가가 있을 때 이름은 무용하다며 시작합니다. 팔백아흔아홉 날에.라는 말과 함께 뉴욕 공항에서 찍은 사진으로 갈무리합니다.

어제는 북플이 내가 5년 전에 소년이 온다의 서평을 썼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누군가 한국 소설을 권해주었고, 나는 한국 소설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소년이 온다'를 읽었습니다. 그렇게 읽다 아직 이승우 작가의 최근작은 샀을 때 조금 읽은 그 페이지에 머물러 있습니다.

나의 감정은 나의 우뇌는 왜 이제야 나에게 귀 기울이니, 왜 그토록 좌뇌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지내다 이제야 나를 찾니라며 말합니다. 그리고는 나를 해가 이미 내려가 버린 어두운 밤하늘로 이끕니다.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다'의 저자는 외부 세계에 대한 아니 모든 것에 대한 감정과 기억과 사유가 신경 회로의 산물이라고 인정합니다. 1조 개가 넘는 신경세포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무형의 감정이라고 믿었던 것이 세포에 아로새겨진 것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참 과학적이라고 비꼬고 싶었지만, 내 몸으로 온전히 새겨서 내 몸의 일부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근사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 몸에 남긴 자국이고 내 몸입니다.

내가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 그것들은 좌뇌의 도움으로 경계를 가지고 나와 분리된 외부 세계의 객체이지만, 실상은 나에게 새겨지고 연결되고 나의 일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와 오래 관계했을 때는 더 많은 세포가 그것을 기억해줄 것입니다. 그 사물을, 그 사람을. 1조 개의 세포들이.


제목이 근사한 드라마로 시작해서 나는 세포 이야기를 하고 있군요.

좌뇌의 마취에서 깨어난 고통은 아픕니다.


천팔백십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