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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의 역사 - 체중과 외모, 다이어트를 둘러싼 인류와 역사 이야기
운노 히로시 지음, 서수지 옮김 / 탐나는책 / 2022년 1월
평점 :
다이어트를 왜 하게 되었을까
중세시대까지 여성들에게 다이어트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뭘 제대로 먹을 수나 있어야 다이어트를 논하지 않겠는가. 생명을 유지할 만큼 겨우 먹고 사는 처지에, 그나마 영양가 있는 음식은 남편과 아이에게 주어야 하니, 여성들은 왜소했고 약했다.
그러다 식량생산이 늘면서, 여성들이 제대로 식사하며 영양상태가 좋아지는 근대에 이르러, 다이어트란 개념이 생겨났다. 여성의 키와 체격이 커지고, 구루병에서 벗어나며 뼈도 튼튼해졌다. 코르셋을 벗어던지고, 이제 남녀가 동등하게 평등한 식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힘이 세지고 덩치가 커진 여성들을 보며 두려움을 느낀 남성들에 의해 다이어트가 시작된 것이란 설이 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중류계층 이상의 부유한 이들에게나 해당되겠지만 말이다. 특히 그 당시 유럽에선 단순한 것을 최고로, 장식은 죄악으로 여기는 시대의 유행에 따라, 비만 또한 악으로 보았다.
의류통신판매 등을 통해 기본 사이즈가 정해지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체형을 타인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작고 이동이 가능한 체중계의 보급과 다이어트 광고의 비만에 대한 경멸은, 여성들을 달리게 했고, 강박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원래 19세기 다이어트 서적들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중년의 남성들을 주소비층으로 했으며, 남성은 자신의 의지로 체중을 조절할 수 있지만, 여성들은 스스로 체중을 조절할 수 없다고 믿었다. 살찐 남성은 실컷 마시고 즐기고 파괴하는 힘을 상징하지만, 여성이 살찐 것은 병자이거나 동정의 대상이자 운명으로 여겼다. 그러다 19세기 후반부터 여성들을 위한 다이어트가 등장했다. 실베스터 그레이엄의 통밀권장 다이어트엔 여성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남성들에 의해 위험한 사상으로 낙인찍혔고,(감히 여성이 다이어트를 한다고? 말도 안돼. 여자는 의지가 없다고!) 폭도들에 의해 위험을 겪기도 했다. 또한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음식 소박한 음식으로 돌아가자는 사상은, 다이어트의 주체를 어머니에 두었고 어머니를 자연과 동일시했다, 이런 생각은 결국 여성은 자연으로, 남성은 문명으로 생각하는 차별의식이 담겨 있다.
반면에 다이어트는 건강문제와 맞물려, 여성들에게 수치료를 위한 온천여행이나 혹은 다양한 운동과 무용이나 체조 등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훗날 페미니즘 운동으로 연결되기도 하였다. 또한 단식은 인내와 힘을 의미했고, 단식전문가들을 기인으로 소개하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여성들의 저항운동엔 단식이 있다. (예전 수녀들이 계시를 받았다며 스스로 먹을 것을 거부하는 것 또한, 여성이 자신의 신체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 스스로 절제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페미니즘 관련 시위자들은 감옥에서 단식투쟁을 했고, 간수들은 그들에게 긴 깔대기로 고문에 가까운 급식을 강행했다.)
20세기의 다이어트 중심엔 여성이 있다. 외적 코르셋을 벗었더니, 내적 코르셋이 여성을 조여오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공황이나 전쟁으로, 살찐 것은 이제 비애국주의와 이기주의 까지 내포하게 되었다. 세계공황시기엔 먹을 것이 부족했기에, 이런 상황에 맞춰서인지 자연스런 날씬함이 대세였다. 결국 여성들은 보이지 않는 속옷으로 몸매를 다듬어, 일자리를 얻기 위해 면접자 앞에 나서야 했다. 공황으로 줄어든 일자리에서 좋은 인상을 보여야 했고, 아니면 유리한 결혼을 위해 여성스러움을 드러내야 했기 때문이다.
2차대전 후에는, 식판에서 골고루 영양소가 섞인 음식을 경험한 군인들이 가정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그런 식단을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권했고, 균형있는 식단으로 다이어트하기 등이 유행했다.
1950년대는 강매의 시대, 다이어트와 미용은 여성의 의무였다.
그리고 1960대와 70년대, 트위기가 등장했다.
나오미 울프는 트위기의 출현이 피임약의 출현과 일치한다며, 고정된 성 역할을 거부하고 성차별에 대한 반항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남성들의 소녀 취향을 부추긴다는 비난도 컸다. 실제로 트위기를 닮고 싶어 했던 여성들은 거식증으로 고통받았다.
그 후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며 자연주의 열풍이 불었다. 미용성형과 다이어트 약이 성행했고, “영컬트” 젊음에 대한 숭상이 커져갔다.
거식과 폭식의 시대였고, 비만에 대한 억압은 여성에 대한 억압이었다. 다이어트는 여성들에게 아이언 메이든 이었다. (세상은 왜 여성에게 다들 거울이 되어주지 못해 안달할까. 왕비가 백설공주를 죽이러 가기 전, 백설공주가 가장 아름답다는 그 거울을 박살 내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수많은 식품과 약들이 다이어트란 이름으로 나왔고 엄청난 매출을 올렸다. 명상과 운동을 통해 건강하게 살을 빼자 등 지금도 수많은 광고들이 지면을 채운다.
다이어트 약, 다이어트 커피, 다이어트 식단과 운동, 수술과 부작용, 우울과 대인기피, 거식증과 폭식증, 죽음.
살을 빼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하지만, 살을 빼려다가 우울증과 고통 속에 죽음에 다다르는 이들도 있다. 정말 건강을 위해 살을 빼라는 것일까. 고도 비만보다 오히려 정상체중인 이들이 다이어트에 더 목숨을 거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먹만한 얼굴과 한 줌 허리, 손에 잡히는 발목과 여리한 어깨. 소설에도 만화에도 드라마에도 이들이 모두 주인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니고 드라마의 주인공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의 주인공이다. 얼굴이 큰바위든, 어깨가 떡 벌어졌든 말이다.
세상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다. 루벤스의 풍만한 여인에서 삐쩍 마른 트위기까지 프로크루테스가 원하는 대로 자르고 늘이려 고통받지 말고, 그 침대를 부수는 건 어떨까.
(예전에 남편에게 내가 얼굴이 자꾸 자라는 거 같다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한 말, 얼굴만 키우지 말고 어깨도 키우면 되지. 고맙다 전우여. )
밸러리 스틸에 따르면, 1920년대 이상형은 보이시한 스타일이라기보다 ‘젊음‘이었다. 세계대전으로 패션이 아닌(패션은 전쟁전부터 변하고 있었다) 사회체제와 계급체제가 변했다. 전쟁 전에 부유한 중년 여성이 사회의 정점에 있던 계급체제가 붕괴하며, 젊은 여성이 독립하고 유행과 패션을 선도하는 일명 트렌드 세터.Trend Setter가 되었다. 청춘을 숭배하게 되면서 성숙한 여성, 모성을 상징하는 가슴은 납작해지고, 젊음을 상징하는 길고 쭉 뻗은늘씬한 다리가 클로즈업되었다. 납작한 가슴과 엉덩이가 매력의중심에 놓였다.
가정학과 영양학은 가난한 사람의 부실한 건강과 열악한 환경개선이 아닌 여유 있는 사람의 건강관리 의식을 자극하는 데 힘을 쏟게 되었다. 1924년 새로운 이민법이 제정되고 남유럽과 동유럽에서 들어오는 이민자를 제한하게 되며 가정학도 이국적인요리를 식단에서 제외하고 앵글로색슨의 구미에 맞는 요리를 지키는 수호자를 자처하게 되었다. 신영양학은 결국 와스프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의 복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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