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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 - 茶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0
라오서 지음, 오수경 옮김 / 민음사 / 2021년 12월
평점 :
별을 바라듯, 달을 바라듯, 승리 바라며 희망 가득 찼다네.
(흥) 국민당이 북경에 들어오자, 그 횡포가 왜놈에 뒤지지 않는구나.
주인 왕씨도 억울하구나. 나나 마찬가지로 목숨 겨우 부지했네.
오래된 찻집도 낡고 헐어서, 온갖 머리 짜내도 소용이 없네.
하늘도 불쌍하고 땅도 불쌍한데 관에 있는 나리들만 돈 보따리를 찼네 (122)
총 페이지 수는 작품해설과 연표까지 해서 147쪽의 희곡이다.
(가격은 지만지는 12800원이며 민음사는 9000원이다)
작가는 라오서, 본명은 수칭춘이다. 한국말로는 서경춘으로, 입춘 전날 태어나 봄을 축하하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군인말고는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는 팔기군 출신으로, 은자 세 냥 정도의 월급을 받는 말단 군인이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살아계실때도 가난했지만, 의화단과 연합국의 전쟁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어머니의 삯바느질에 의지해 더욱 궁핍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작품에는 베이징의 뒷골목과 가난한 이들의 모습이 생동감있게 그려진다. 또한 디킨스의 소설을 좋아하고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도 한다.
(팔기제도는 만주족의 군사조직제도이다. 여기서 기는 깃발을 의미한다. 빨강과 파랑, 노랑과 하양 네 가지 색과, 테두리가 있는 네 가지 색 해서 팔기군으로 나뉜다. 라오서의 아버지는 테두리 없는 붉은 색의 정홍기 소속이었다. 테두리가 있는 쪽은 양, 테두리가 없는 쪽은 정을 붙였다.)
작가는 베이징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그래서 베이징인들의 모습을 제대로 그릴 줄 아는 작가, 베이징어를 잘 다루는 작가라 칭해졌다고 한다. 라오서는 교직에 몸 담았고, 영국에서 중국어 교사로 6년간 일하면서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영어를 소설로 배우면서, 어느 순간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고.
자신이 보고 듣고 자란 고향의 이야기를, 혹은 자신이 잘 아는 삶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 후 미국초청으로 미국에서 잠시 살다가, 중국 공산당 초청으로 본국으로 돌아와 활동했지만, 문화혁명당시 홍위병들에게 둘러싸여 모욕과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결국 다음날 호수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장소는 유태란 찻집이며, 중심인물은 왕이발이란 찻집 주인이다. 찻집도 주인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건만, 세월이 세상이 온갖 다양한 인물들이 파도처럼 넘실대다 결국 찻집에 포말처럼 밀려와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린다.
커다란 찻집 유태의 흥망성쇠는 청나라 말기 중국의 현대사와 그 맥을 같이 한다. 변법자강운동의 실패, 위안스카이의 죽음 이후 중국이 분할되던 시기, 항일전 이후 국민당과 미군이 득세하던 시절이 배경이다.
찻집은 시대에 맞게 개량한다고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돌아간다. 누구는 죽고 누구는 잡혀가며 누구는 딸을 팔아야 한다. 누구는 구걸을 해야 하며, 누구는 내시에게 시집을 가 고통을 당해야 한다. 누구는 혁명을 하고, 누구는 앞잡이가 되어 알지도 못하는 이들을 잡아가고 배를 불린다. 버젓이 주인이 있지만, 주인이 아니다. 언제든 부패한 권력 앞에 빼앗길 모든 것들, 서민들에겐 가진 것도 먹을 것도 없지만 그들은 목숨마저 내놓으라고 한다. 그들의 부패는 법이며 폭력이다. 끌려가고 몽둥이에 맞으며, 굶주리며, 빼앗기며 근근이 삶을 이어간다.
유태란 찻집엔 단 하나의 규칙만이 있다.
“나랏일은 이야기하지 맙시다”
싸움이 일어나서도 말다툼이 생겨서도 아니다. 말 한마디에 감옥을 가고, 말 한마디에 꼬투리가 잡혀 재산을 잃을 판이다.
아니, 삶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죄 인냥 온갖 고난이 닥쳐오는 곳이다.
청나라의 무능과 부패, 제국주의의 침략과 욕심만 채우려는 나라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던 군벌들과 국민당, 온갖 군상들이 드나드는 찻집에서 왕이발과 진중의, 상대인은 자신들 세 사람의 몫으로 지전들을 뿌리며 외친다.
“네 귀퉁이 상여꾼이오. 이 집서 지전 백이십 꿰미 내었소”
그들의 죽음을 미리 장사지내며 뿌리는 지전들이 슬프다. 삶이 죽음임을 아는 이들, 그들이 뿌리는 지전은 죽어갈 자신들을 위한 노잣돈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럼에도 사랑했던 나라에 대한 희망이 아닐까. 지금의 부패한 나라를 장사지내며 좀 더 나은 세상을 희망하며, 뿌리는 지전들이 멀리 멀리 날아가, 그들이 원하는 세상이 도래하길 기원해본다.
“난 정말 못된 짓이나 도리에 어긋난 짓은 해 본 일이 없다고요. 그런데 왜 살아갈 길까지 막는 거지? 내가 누구에게 잘못했나?”
아가씨, 울지 마시오. 어둠도 다하면 날이 밝아 오는 법. 아가씨, 슬퍼 마시오. 서산의 샘물이 동쪽으로 흐른다오. 괴로움 실은 물 흘러가고, 기쁨 실은 물이 흘러올 테니, 이제 아무도 다시 노예 노릇은 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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