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한 시대의 예술, 조선 후기 초상화 - 옛 초상화에서 찾은 한국인의 모습과 아름다움
이태호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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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역사가 기록한 시대의 얼굴

요즘도 시골 동네를 찾아가면 여전히 집집마다 사진이 걸려있다. 직사각형의 틀 안에 증명사진처럼 벽 중앙이 붙여두었다. 주로 바로 영정 사진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찍은 사진이다. 이런 사진 이전에는 초상화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어떤 이유로 이렇게 초상화나 사진을 찍어 벽에 걸어두었을까? 그 이유를 유추해보면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긴 이유와도 맥을 같이하지 않을까 싶다.

 

옛 초상화에서 찾은 한국인의 모습과 아름다움이라는 주제로 조선시대 초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 명지대 이태호 교수의 ‘사람을 사랑한 시대의 예술, 조선 후기 초상화’라는 책이다.

 

이 책에는 ‘왕의 초상인 어진부터 공신과 문인의 영정에 이르기까지 조선 500년 동안은 만들어졌던 초상화를 살피면서 조선 후기에 들어 변화된 초상화 기법의 차이를 분석한다. 나아가 조선 사회에서 초상화가 지닌 의미와 그 역할을 뿐만 아니라 초상화를 제작하는 주요한 기법으로 사용되었던 카메라 옵스쿠라가 도입되면서 조선 후기 초상화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여 초상화의 사실성 및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왜, 무엇이 초상화에 주목하게 했을까? 주로 사대부 사이에서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감정과 의지를 담았던 그림과 초상화가 지닌 의미를 살펴보면 그에 대한 해답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수묵산수화가 한거와 풍류의 문인 취향에 따른 이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면, 초상화는 그 문인 사대부의 얼굴과 몸을 수묵채색으로 직접 화폭에 담은 그림이다. 유교를 표방하는 지배계층으로서의 문인관료인 사대부의 사회적, 정치적 권위를 직접 드러낸 영역이다.”

 

저자 이태호 교수의 시각으로 본 수묵산수화와 초상화의 차이에서 그 의미와 가치가 잘 설명되었다고 보인다. 문화의 모든 매체가 시대정신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조선을 관통했던 유교적 이념이 초상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초상화 중에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 대략 1000여 점이나 된다고 한다. 세월의 무게를 뒤로하고도 대단히 많은 수량이다. 시대정신의 산물일 초상화 제작의 배경에서부터 각각 살피는 초상화의 특징까지 생생하게 수록된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80여명이 넘는 역사 속 인물들의 얼굴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아쉬운 점은 발표시기가 조금씩 차이가 나는 논문을 모아놓은 책이다 보니 중복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하여 반복되고 있다는 점과 고 오주석에 의해 ‘이재 초상’과 ‘이채 초상’이 시기를 달리해 동일 인물을 그린 초상화였다는 제기가 반영되지 못하여 각기 다른 인물로 이야기 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매우 흥미로운 것은 이명기 작 ‘강세황 71세 초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기록한 ‘계추기사’를 통해 조선 후기 초상화의 제작공정과 비용까지 상세한 내용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과 공재 윤두서의 초상을 비롯하여 새로 발견된 초상화 자료에 수록된 내용의 흥미로움에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을 지탱해온 유교사상의 발현으로부터 만들어지고 남겨진 초상화를 통한 우리전통의 아름다운 정신의 발견이 이 시대에 맞는 초상화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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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프 2016-05-17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채 초상의 경우는 발표 시기의 문제일수도 있지만 주류학계에서 동양사학과를 전공한 아웃사이더인 오주석선생님의 독단적의 의견으로 치부한다는 의견이 있어 더욱 아쉽습니다.

무진無盡 2016-05-17 23:17   좋아요 1 | URL
그런 아쉬움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팽배해 있음이 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머문 시선'
땅 가까이 피는 꽃 보느라 고개숙인 사이 새잎나고 초록으로 물들었다. 이 잎은 나무로 시선이 옮겨가는 신호탄과도 같다. 층층나무 잎이나고 커가는 동안 봄볕에 익어가는 생명의 힘이 전해지는 때다.


눈 감빡할 사이에 지나가버린 봄의 찬란한 순간이다. 

그대, 놓치지 말고 누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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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가지풀'
꽃도 작고 노랑색으로 피어 풀속에 숨어 뱀딸기랑 함께 있으니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만날때가 되서 이제라도 본 것으로 귀하게 눈맞춤한다.


제주도, 지리산, 경기도 강화도의 산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풀밭에서 옆으로 비스듬히 뻗어서 자란다.


꽃은 5∼6월에 피고 황색이며 잎겨드랑이에 1개씩 달린다. 꽃은 위를 향하여 피지만 열매는삭과로 밑을 향하고 꽃받침이 남아 있으며 둥글다.


열매가 가지같이 생겨서 좀가지풀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낮은 곳 다양한 무리 속에 살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서일까. '고독한 사람'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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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떨구고'

모든 것을 품어주는 바다도 더이상 어쩌지 못하면 속내를 뒤짚고 만다. 하늘도 예외는 아니다. 다,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을 때는 크게 뒤집고 엎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바람과 비가 먹먹한 가슴으로 하루를 살아내기 버거운 사람들을 위로하려고 의식을 치르듯 한바탕 푸닥거리를 벌렸다.

그렇게라도 해야 가슴 속 쌓여가는 울분을 삭이고 숨 통을 틔워 숨 쉴 수 있다는 듯 요란한 밤이 지났다.

마지막 꽃잎마져 떨쳐보내야 열매을 맺을 수 있다. 굿판 벌려 씻겨진 가슴으로 오늘을 맞이할 일이다.

맑은 풍경소리에 섞인 새소리로 눈을 뜬 아침, 다시 고요함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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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잊을 동무야


*백난아의 '찔레꽃' 노래의 일부다. 이 노래는 일제강점기인 1940년에 발표된 노래로 일제의 압박과 핍박을 피해 북간도로 이주한 나라잃은 백성과 독립투사들이 조국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른 노래로 알려져 있다.


가사에서 '찔레꽃 붉게 피는'이라는 부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가운데 간혹 붉은 찔레꽃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어 노랫말에 대한 의구심이 많았다.


오늘 그 붉은찔레꽃을 보았다. 어쩌면 노랫말이 만들어지던 때에는 훨씬 많은 붉은찔레꽃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찔레꽃 다 지면 여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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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05-17 0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동네 뒷산에 올라갔더니 찔레꽃이 잔뜩 피었더군요. 물론 하얀 찔레꽃이었는데 저는 아직 붉은 찔레꽃을 본 적이 없는지라 다음에 올라갈땐 혹시 붉은 색이 도는 찔레꽃이 있는지 눈여겨 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