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8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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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갯머리를 보니 겹꽃잎동백 한 송이가 다다미 위에 떨어져 있다. 다이스케는 지난밤에 이 동백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그의 귀에는 그 소리가 천장에서 고무공이 떨어지는 소리만큼 크게 울렸다.”(16p)

 

갓난아기의 머리만큼이나 큰 동백꽃을 바라보며, 다이스케는 자신의 혈관을 흐르는 선홍색 피를 상상하고 생명을 느낀다. 동백꽃에 얼굴을 묻고 향을 맡은 후, 하얀 요 위에 놓는다. 다이스케의 동작 하나하나를 따라가게 하는 시각, 청각, 후각이 동원된 아름다운 첫 장면이다.

그림 같은 장면은 낮잠을 자는 다이스케의 머리위에 늘어진 은방울꽃, 이 모습을 본 미치요가 가져온 백합, 이 백합을 바라보는 다이스케의 화폭으로 이어진다. 4폭 병풍을 상상하게 한다.

 

무의식의 욕망인 듯 머리맡에 떨어진 붉은 동백꽃은 하얀 요와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현실의 괴리된 자의식을 발견한다. 미치요의 등장과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인해 그는 자의식 과잉상태에 빠진다. 그에게 있어 이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마음이 향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부조리한 사회에서 전도유망할 수 없는 그는, 러일 전쟁 이후 상공업 팽창에 의해 형성된 신흥 부르주아인 아버지가 부정 축재 하는 것을 비판하면서도 거기에 의존하고 있는 유민(流民)이다. 이중적이다. 이 상태에 빠진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사랑과 결혼도 마찬가지다. 정조관념에 붙잡혀 불행과 매번 마주치는 결혼은 거부한다. 그러기에 미치요를 좋아하면서도 히라오카와의 결혼을 주선해주었다. 이제 와서 후회하고,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구속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 또한 모순이다. 그는 분열된다. 미치요의 백합을 보며, 순수한 마음을 따르고 싶은 동시에, 그 향기에 취해 죽고 싶은 두 가지 감정은 그의 신경증을 나타내고 있다. 그의 마지막 결정은 폭발로 이어진다.

미치요를 선택하는 것이 친구와 의()를 저버리고, 사회의 규범을 어기고, 가족들과의 단절을 가져올 것을 알면서도 그는 결정한다. 그리고 그는 생각보다 훨씬 무겁고 불안한 감정에 휩싸인다. 다이스케는 거리로 뛰어나가 전차를 탄다. 모든 것이 빨갛게 물들어 불타고 있는 세상에서 현기증을 느낀다.

 

갑자기 빨간 우체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그 빨간색이 갑자기 다이스케의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와 빙빙 돌기 시작했다. 우산 가게 간판에 빨간 양산 네 개가 겹친 채 높이 걸려 있다. 양산 색깔이 다시 다이스케의 머릿속으로 들어와 빙빙 소용돌이쳤다. 네거리에 크고 새빨간 풍선을 팔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전차가 갑자기 모퉁이를 돌자 풍선이 따라와 다이스케의 머리에 달라붙었다.……나중에는 세상이 전부 빨개졌다. 그리고 다이스케의 머릿속을 중심으로 불길을 내뿜으며 빙빙 회전했다. 다이스케는 머릿속이 다 타버릴 때까지 계속 전차를 타고 가기로 결심했다.”(325p)

 

한 송이 붉은 동백꽃의 이미지로 시작한 소설은 빨갛게 물든 세상으로 마치고 있다. 욕망이 번져 가는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시로그 후인 이 작품에서 산시로의 욕망과 불안이 다이스케에게서는 잠잠해지고, 체념의 정서마저 느끼게 한다.

자의식에 갇혀 있었던 그가 자신의 욕망을 따름으로 자유함을 얻으려 하나, 오히려 불안에 휩싸임을 보게 된다. 어정쩡한 상태를 깨고 욕망을 선택했을 때 그를 엄습해온 불안은 무엇 때문일까? 개인의 욕망과 사회의 욕망이 서로 대립할 때 불안하다. 규범이 세분화되고 강한 사회일수록 정도는 심하다. 인간은 사회를 떠나 살 수 없다는 조건을 떠올린다. 다이스케가 말한 것처럼, 정신적, 도덕적, 구조적으로 건강하지 않다면 분열적 양상은 더욱 극단적이게 된다. 그렇다면 개인의 선택은 건강한지 질문하게 된다. 이어지는 작품 에서 이 생각은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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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0-07 21: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책 , 그 후 넘 좋아요 *^^* 우메코의 따스함도 저는 좋았어요 ~

그레이스 2021-10-07 22:27   좋아요 4 | URL
소세키의 작품에서 형수는 전형적인 캐릭터로 등장하는것 같아요
저도 우메코 인상적이었어요
작품에서 역할도 중요했구요

scott 2021-10-07 21:5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후 통문장으로 외웠을 정도로 마지막 문단에서 멈춰섰던 감동이 ㅎㅎㅎ

그레이스 2021-10-07 22:29   좋아요 5 | URL
♡♡♡
여러 포인트!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탁월한 묘사때문에 빨려들어가게 되요
중요한 메세지가 있어도
그런 문장들이 없으면 읽기 힘들죠
소세키 작품은 그림 그리듯 !

독서괭 2021-10-07 22:2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와 그레이스님 소세키 쭉쭉 읽어나가시네요!4폭 병풍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라니, 멋진 비유입니다.

그레이스 2021-10-07 22:32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그후, 문 읽은지 조금 됐는데 조금 뜸 들였어요^^
걸러지는 한 포인트만 잡으려고...^^
<문>은 내일 쓰려구요

새파랑 2021-10-08 06: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금 <산시로>를 중간쯤 읽고 있는데 왠지 연결이 되는 기분이 드네요. 그 후 너무 좋아요. 약간 비오는 흑백영화 같은 느낌이었어요 ^^

그레이스 2021-10-08 08:59   좋아요 3 | URL
<산시로> 연재 끝내고 <그 후>가 다시 연재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문>으로.
흑백 배경에 색은 선명한 ...^^
🌺

서니데이 2021-10-08 19: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저녁시간 되세요.^^

그레이스 2021-10-08 19:24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날씨가 좀 서늘해졌습니다.
백신 후유증은 회복되셨는지...
건강조심하세요

희선 2021-10-09 01: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앞에서 나온 붉은 동백 색이, 뒤에서 여러 가지 붉은색이 나오는군요 마지막 부분 보고 이렇게 끝나다니, 다이스케 잘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1-10-09 10:39   좋아요 3 | URL
여러가지로 생각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scott 2021-11-05 16: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관왕 추카!추카!

올해는 꼬옥 동백이 보러 남해로 ~~@@@

그레이스 2021-11-05 17:20   좋아요 2 | URL
오동도 가서 동백꽃 보고 게장먹고 ㅋ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1-11-05 16: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1-11-05 17:1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청아 2021-11-05 16: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2관왕 축하드려욤~^^*♥

그레이스 2021-11-05 17:19   좋아요 4 | URL
감사드려요
미미님두요~

mini74 2021-11-05 17:0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2관왕!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ㅎㅎㅎ 이 말 너무 써보고 싶었어요 그레이스님 ㅎㅎ 당선 축하드랴요 *^^*

그레이스 2021-11-05 17:19   좋아요 4 | URL
ㅋㅋ
갑자기 무거운 듯!
ㅎㅎ
감사합니다 ~

페넬로페 2021-11-05 18: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11-05 18:17   좋아요 4 | URL
감사용~♡

새파랑 2021-11-05 18: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그레이스님 2관왕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11-05 18:17   좋아요 2 | URL
😊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11-05 18: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그레이스 2021-11-05 18:17   좋아요 3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

책읽는나무 2021-11-05 18: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전집은 언제고 읽어 볼 생각만 하고 있네요.리뷰 읽어 보니 꼭 읽어 봐야 겠단 생각이 듭니다.당선작 되신것 축하 드립니다.제게도 축하해주셔 감사드리구요^^
평안한 불금 되시길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1-11-05 18:42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
책읽는 나무님도 평안하세요~♡

초란공 2021-11-05 22: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2관왕 축하드립니다~ 소세키 전집 소장은 필수입니다~^^

그레이스 2021-11-05 22:36   좋아요 3 | URL
예 ! 필수입니다~^^
제가 소장하고 있으니...ㅋㅋ

감사드려요 ~♡

모나리자 2021-11-05 23: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11-05 23:47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bookholic 2021-11-06 07: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예전에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읽고
그 책에 소개된 <그 후>를 읽겠다고 사두었는데,
어디있는지도 모르겠네요. ㅎ
저도 언젠가는 꼭 읽어보겠습니다~~~

그레이스 2021-11-06 10:20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저장합니다~

thkang1001 2021-11-06 13: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을 많이 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1-11-06 13:5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1-11-06 18: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세키의 작품에 나오는 동백꽃의 ‘붉은 색‘과 백합의 ‘흰 색‘ 대비 속에서 장예모 감독의 <영웅> 속의 색채 활용을 떠올리게 됩니다. 색채로 표현된 감정이 세상으로 번져가는 것인지, 세상의 격류가 인물안에서 색채로 표현되는지, 혹은 둘 다 일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현상 속에서 관계성을 찾으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1-11-06 19:07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말씀하시니 붉은 수수밭도 떠오르네요!

초딩 2021-11-07 11: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

그레이스 2021-11-07 14: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1-11-07 1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2관왕도 축하드리고 플친님들의 뜨뜻따땃한 애정의 인사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 북플세계.책좋아하시는 친구님들 다 넘 멋지세요. 다음달도 기대할게여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1-11-07 12:5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러블리땡 2021-11-07 2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 나쓰메 소세키 전집 생각치도 못했던 책인데 그레이스님 글 읽고 관심이 생겼던 기억이 나네요 (소심해서 댓은 잘 못달고 생각만하는 타입이라서요 ㅎㅎ)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려요 좋은 밤 되세요~

그레이스 2021-11-07 22:18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러블리땡님~^^
 
태풍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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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형형색색이다‘라고 말하는 다카야나기. 순수 문학과 돈 사이에서 갈등은 극대화하고 있다. 도야는 돈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 세상에서 학자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한 질문이 떠오른다. 학자의 옷을 벗고 상아탑 울타리 밖으로 나온 당신에게 남아있는 것은 돈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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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10-05 23: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학자의 갈등이 태풍인건가?ㅎ 근데 궁금한게 있는데 현암사판 표지에 한시랄까? 하이쿠랄까? 한편씩 있는데 이 내용이 작품과 연관성이 있을까요? 일알못이라서ㅠ

그레이스 2021-10-06 05:15   좋아요 5 | URL
한 여인이 노래를 부르는데 가사에 이 태풍이 딱 한번 들어가요. 바로 표지에 있는 시!
메타포로 본다면 태풍에 머리카락도 흩날리고, 나비들도 흩어지는 것처럼 메이지40년 물질만능주의의 태풍가운데 순수한 인문학을 꿈꾸는 청년을 비유한다고 할까요?

전체 내용에는 태풍이 전혀 나오지 않아요^^

막시무스 2021-10-05 23:22   좋아요 4 | URL
갈수록 이형님에 대한 매력도가 상승하고 있습니다!ㅎ 순수, 청년 이런거 나오면 마음속에 쓰나미가 쓸고 지나가 줘야 할것 같은 느낌인데 머리나 나비가 살짝 흩날리는 느낌이라니! 뭔가 의미심장할 듯요!ㅎ 굿밤되십시요!

희선 2021-10-07 0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보다 지금 더 돈이 없으면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는 느낌입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1-10-07 08:27   좋아요 1 | URL
ㅠ ㅠ
 

"자신들은 사회의 상류층에 속해 일반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어서 세상에 자신만큼 이치에 정통한 사람은 없다, 학자는 누구든 자신에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가련한 일로 그들이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문화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다카야나기 군의 눈이 빛났다. 피가 다시 두 뺨에 솟구치는 듯했다.
"영문 모를 그들의 자만을 구제할 길은 없다 하더라도 사회에서 그들의 자만을 지당하다고 시인하는 것은 실로 정 떨어지는 경망함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흔히들 저 사내는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재산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라고 쉽게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어찌 알겠습니까. 그런 사회적 지위를 얻고 상응하는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 P188

흰 나비, 흰 꽃에
조그만 나비, 조그만 꽃에
흩어져 있네, 흩어져 있네
기나긴 근심은, 긴 머리카락에
어두운 근심은, 검은 머리카락에
흩어져 있네, 흩어져 있네
부질없이, 부는 태풍
부질없이, 사는가 속세에
흰 나비도, 검은 머리카락도
흩어져 있네, 흩어져 있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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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10-05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은 태풍인데, 표지엔 나비가...
그레이스님, 좋은 밤 되세요.^^

그레이스 2021-10-05 22:50   좋아요 1 | URL
여인이 부르는 노래 가사에 태풍과 흰나비가 등장해요^^
 

선혈을 햇빛에 쪼여서, 7일 동안 매일 그 변화를 잎의 뒤쪽에 표시하여 한 장 안에 새긴다면, 이런 색이 되려나 하며다카야나기 군은 아까부터 나뭇잎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를 연상하고 있을 때 다카야나기 군은 겨드랑이 밑에서 무언가 차가운 것이 속옷으로 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콜록 하고 헛기침을 한 번 한다.
형태도 여러 가지다. 불에 구운 찰떡의 모양은 천차만별이지만, 모두 뒤틀려 있다. 벚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도 버스럭버스럭 하며 그저뒤틀린 상태에서, 그렇게 뒤틀린 채로 부는 바람의 꼬임에 따라간다.
- P66

물기가 없는 것에는 미련도 집착도 없다. 표표히 자신의 장래를 불안한 바람에 의지하고도 태연한 것은, 죽은 뒤의 축제에서 공연한 소동에 들뜰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람에 휩쓸리는 낙엽과 휩쓸려가는 대팻밥은 일종의 광기다. 그저 죽어가는 것들의 광기다. 다카야나기 군은 죽음과 광기를 자연계와 연결시키고는 마른 어깨를 추켜올리며 또 콜록 하고 헛기침을 한 번 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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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한눈팔기는 자전적 소설이다. 원제 도초()는 해찰하다는 관용적 의미가 있지만 작가 자신을 그저 길가에 피어있는 풀에 빗댄 의미로 읽었다.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 다른 집안으로 입양되었다가, 양부모의 이혼으로 다시 본가로 돌아온다. 그가 복적(復籍)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이 과정에서 받은 상처와 어두운 그림자가 그려져 있다.

 

생가의 아버지에게 겐조는 조그마한 방해물에 지나지 않았다. 이 못난 자식이 뭐 하러 난데없이 나타난 건가, 하는 표정으로 아버지는 그를 거의 자식으로 대우하지 않았다.”(255p,한눈팔기)

 

겐조는 바다에서도 살 수 없었다. 산에서도 있을 수 없었다. 양쪽에서 버림받고 이쪽저쪽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동시에 바다에서 나는 것을 먹고, 때로는 산에서 나는 것에도 손을 댔다”(255p,한눈팔기)라고 당시의 처지를 비유하고 있다. 이것이 소설의 요소를 더 가미한 것인지 모르지만, 그가 받은 상처는 헤아릴 수가 있다.

 

소세키의 자아인 겐조는 계속해서 금전적인 요구를 해오는 시마다에게 분노를 느낀다. 그의 요구를 들어주도록 하는 것은 인정(人情)이다. 그 인정은 그저 사람이 사람에게 느끼는 순수한 감정이라고 할 수가 없다. 한 때 키워줬다고 주장하지만 친부로부터 양육비를 받아낸 그의 몰염치는 겐조에게 당혹감과 수치감마저 준다.

상처가 있는 겐조는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자녀에게 있어서도 살갑지가 못하다. 부인에 대한 이기적이고 권위적인 태도, 딸들에게 무심한 그는 나를 의아하게 했다. 정말 이랬다고?

사오일 전에 다소 강력한 지진이 있었을 때 겁쟁이인 그는 바로 툇마루를 통해 뜰로 뛰어내렸다. 그가 다시 객실로 올라왔을 때 아내는 그에게 생각지도 못한 비난을 퍼부었다.”(261p,한눈팔기)

 

생각지도 못한 비난이라니? 겐조의 생각은 정말 나쓰메 소세키의 것일까 하고 의심했던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다. 어느 순간, 그의 상처는 이런 감정적 불구 상태를 만들 수 있었고, 그의 생각이나 에피소드는 모두 사실에 가깝고, 그것들이 소재로 사용되기까지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있었고, 자기 상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글쓰기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겐조에 대한 나의 감정은 분노에서 연민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비인정(非人情)을 추구했던 풀베개의 화공을 떠올렸다. 주인공을 통해 작가가 추구했던 삶에 대한 관조와 자아에 대한 객관적인 탐구 작업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지(理智)만을 따지면 타인과 충돌한다. 타인에게만 마음을 쓰면 자신의 발목이 잡힌다. 자신의 의지만 주장하면 옹색해진다. 여하튼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다.”(15p,풀베개)

 

살기 힘든 세상에서 살기 힘들게 하는 근심을 없애고, 살기 힘든 세계를 눈앞에 묘사하는 것이 시()고 그림이다. 또는 음악이고 조각이다. …… 그저 직접 보기만 하면 거기에서 시도 생기고 노래도 솟아난다. 착상을 종이에 옮겨놓지 않아도 옥이나 금속이 스치는 소리는 가슴속에서 일어난다. 이젤을 향해 색을 칠하지 않아도 오색의 찬란함은 스스로 심안(心眼)에 비친다. 그저 자신이 사는 세상을 이렇게 깨달을 수 있고 혼탁한 속세를 마음의 카메라에 맑고 밝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 된다.” (16p,풀베개)

 

서두를 일 없는 여행길에서 주인공은 이런 상념에 빠져 걸음을 내딛고 있다.

인간 세상에 의례 있는 일이니, 괴로워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떠들어대기도 하고 울어대기도 하면서 30년간 줄곧 그렇게 살아와서 주인공은 신물이 난다. 그는 도연명과 왕유의 시경을 자연에서 직접 흡수하여 잠시라도 비인정(非人情)의 천지를 소요하고 싶다.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꺾다 보니

한가로이 남산이 들어오네 "(도연명)

 

경치를 한 폭의 그림으로 보고, 한 편의 시(詩)로 읽는 괴로움이 없는 상태, 화구를 들고 여행을 떠난 주인공의 목적은 이 경지(境地)를 위함이다. 괴롭고 힘든 삶을 잠시 떠나 눈에 보이는 경치를 인정에 얽매이지 않고 그대로 화폭에 옮기는 화첩기행을 떠난 주인공에게서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게 된다.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관조적인 시선을 말하는 그의 글은 한 편의 시로 읽힌다. 두려움과 공포든, 실연의 고통이든 객관적으로 눈앞에 떠올려 문학과 미술의 재료를 삼으려 한다. 이것이 그가 하려는 비인정 여행이다. 글로 쓴다면 춘분지나고까지에서 시도된 에크리튀르일까?

 

여행길에서 잠시 들른 낯선 마을, 그곳에서 만난 여인은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그녀에 대한 소문들은 그의 생각을 끌고 간다. 풍경을 담아내려는 화가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고, 대담한 듯 안하무인인 여인에게서 한 폭의 그림을 본다.

 

쓸쓸하게 기댄 아()자 난간 아래서 나비 두 마리가 붙었다 떨어졌다 하며 날아오른다. 그 순간 나비에게서 나에게 눈길을 옮겼다. 시선은 독화살처럼 공기를 뚫고 사정없이 내 미간에 꽂힌다.”(63p,풀베개)

 

나미씨는 자신을 그려달라는 제안을 하고, 그 제안은 오필리어를 연상하게 한다. 그는 동백꽃이 뚝뚝 떨어지는 아름다운 연못을 배경으로 그녀를 그리지만 무엇인가가 빠져있다. 그녀의 얼굴에 연민이 없다. 그녀야 말로 비인정으로 이 세계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얼굴에 연민이 가득 떠있던 마지막 장면, “그거예요! 그거! 그게 나오면 그림이 됩니다.”(185p) 라고 외치는 주인공! 그의 외침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터너로 풍경을 보고 밀레이의 <오필리어>로 나미를 보던 그는 그녀의 얼굴에서 연민을 발견하고 화폭을 마음에 새겨넣는다. 그럼 그녀에게서 발견한 것은 비인정의 태도로 가능한 것이었을까? “드디어 현실 세계로 끌려나왔다.”고 그는 말한다. 증기를 내뿜는 기차에 실려 전쟁터로 가는 사람들과 이별하는 장소, 기차의 창문을 두고 마주친 시선. 화가는 그녀의 이별을 화폭에서만 보고 있을까? 마지막 외침이 도드라지고 어색한 것은 그가 화폭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갑작스런 자각때문일까? 그녀의 얼굴에 가득한 감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던진 말이라는 생각이다. 


작가가 말했듯 기쁨이 깊을 때 근심 또한 깊고, 즐거움이 클수록 괴로움도 크다. 이를 분리하려고 하면 살아갈 수가 없다.”(16p)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삶에서 울고 웃고 괴로움에 잠 못 이루는 밤은 그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고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된다. 예술은 자신 안의 것들을 타자의 삶에 녹여내어 그림으로, 그가 병들지 않도록 해주었다. 서양화를 통한 객관적인 시선을 이루려고 했던 것은 오해가 아닌가 싶다. 증기에 휩싸인 터너의 기차에도 작가의 심상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국화꽃을 꺽던 도연명 역시 애써 잊으려 했던 번뇌가 있었기에, 남산이 눈에 들어오는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한다.

 

작가가 주인공을 통해 말했듯이 비인정의 자세를 오래 지속할 수는 없다. 잠시의 여행에서 잠깐 이룬 것일 뿐이다. 다시 돌아와 삶을 둘러싼 인정 속에서 마음은 번뇌를 계속하게 된다. 그 잠깐의 시간은 작가에게 구원이었다.

윌리엄 터너 <비, 증기, 그리고 속도>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어>

정선 <동리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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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03 01: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풀베게 첨 읽었을때와 두번째 읽었을때 보이는게 다르고
숙련된 화공의 붓끝처럼 경지에 오른 대가의 문체에 놀랐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두 작품 그림!

마음의 번뇌!
결국엔 살기 힘든 세상에서 살기 힘들게 하는 근심을 없애고, 살기 힘든 세계를 눈앞에 묘사하는 것이 시(詩)고 그림이다. 또는 음악이고 조각!!

그리고 플친님들의 명품 리뷰들 ^ㅅ^


그레이스 2021-10-03 07:18   좋아요 3 | URL
예 그렇죠?!
저도 읽으면서 초기작에서 볼 수 없는 문장들때문에 감탄했어요
이렇게 보고 이렇게 쓰는구나 하고...^^
감사합니다 ~♡

2021-10-03 0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03 0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06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1-10-03 02:1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맨 앞에 글을 보니 언젠가 한눈팔기가 아닌 다른 제목 본 게 생각났습니다 겨우 찾았습니다 예전에 《길 위의 생》으로 나온 적 있었군요 사람은 사람과 살아가야겠지요 살아 있는 한 번뇌에서 벗어날 수 없겠습니다 그걸 어떻게 하면 좋을지...


희선

그레이스 2021-10-03 07:28   좋아요 5 | URL
길위의 생... 소설 내용과 훨씬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면서도 뭔가 올드한 느낌도 있고, <행인>과도 의미가 겹치구요^^
어디선가 본듯한 제목!
왜 <한눈팔기> 라고 했는지 알것 같아요 ^^
희선님! 여러번 감사합니다 ~~♡

새파랑 2021-10-03 06: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한눈팔기와 풀베게가가 저렇게 연결되는군요~!! 마지막 문장은 너무 좋네요 😄

그레이스 2021-10-03 07:15   좋아요 4 | URL
제 생각 속에서 연상된 것들이라...^^
지금 읽어보니 고쳐야할 문장이 너무 많네요
밤에 쓴 문장들이라 😂
감사합니다 ~

mini74 2021-10-03 09: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작가님의 아픔이 담긴 책이군요. 일본은 이런 양자제도가 꽤 흔한가봐요. 소설 속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거 같아요. 그래이스님 글 정말 잘 읽고 가요. 뭔가 쓸쓸한 가을과 어울려요 *^^*

그레이스 2021-10-03 09:57   좋아요 5 | URL
우리만큼 혈연이 깊지는 않은가봐요
아마도 사무라이시대를 겪으며 군신관계가 강조되며 형성된 정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처를 받지 않는건 아니겠죠?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1-10-03 17: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보통사람들보다 더 예민한 예술가적 감성은 그를 예술의 세계에서 성취를 이루게 하지만, 일상의 삶에서는 그 예민함이 더 많은 고통으로 이어질 거 같다는 생각이 그레이스님 글 읽다보니 드네요.
일상은 사실 적당히 무디게 넘어가야 견딜수 있는 일들이 너무 많잖아요. 그래서 예술가가 못되는 저를 한탄하지 않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또 하기도 합니다. ^^

그레이스 2021-10-03 17:04   좋아요 4 | URL
그들의 몫이 따로 있겠죠
예술로 풀어내야만 하는 작가들의 몫
그들의 감성을 우리는 작품으로 경험하구요 ^^

서니데이 2021-10-04 18: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밀레이의 오필리어는 처음 보았을 때, 그림 속의 인물이 인상적이었어요.
나중에 들으니 모델이 무척 고생했다고 하더라구요.
오늘은 개천절 대체휴일이었습니다. 좋은 휴일 보내셨나요.
그레이스님, 저녁 맛있게 드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그레이스 2021-10-04 18:33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가을인데 습도가 높아서 덥네요
건강조심하세요~♡

scott 2021-11-05 16: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소세키옹 마니아 👆이 쉼 ^^

그레이스 2021-11-05 16:30   좋아요 2 | URL
이번 달은 소세키 덕분!
감사합니다.

mini74 2021-11-05 17: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세키옹 ㅎㅎ 입에 착 달라붙어요. ㅎㅎ 그나저나 그레이스님덩달아 산 소세키 책들 읽어야 하는데 ㅠㅠ ㅎㅎ 당선 무지무지 축하드리옵니다 *^^*

그레이스 2021-11-05 17:23   좋아요 2 | URL
^^ 감사합니다~♡

청아 2021-11-05 17: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플의 소세키 열풍의 선두주자 그레이스님!!ㅎㅎ♥ 제가 오늘 4시간밖에 못자서 실수했어요😭

그레이스 2021-11-05 17:31   좋아요 1 | URL
^^
감사드려요~♡

서니데이 2021-11-05 18: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그레이스 2021-11-05 18:38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

페넬로페 2021-11-05 18: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2관왕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11-05 18:38   좋아요 3 | URL
감사드려요~
페넬로페님~♡

새파랑 2021-11-05 18: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리얼 마니아 그레이스님 2관왕 진심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1-11-05 18:4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진정한 마니아 강자 새파랑님도 축하드려요~♡

새파랑 2021-11-05 18:43   좋아요 2 | URL
제가 손이 다쳐서 오타가 많아요 😅

그레이스 2021-11-05 18:58   좋아요 1 | URL
아! 어쩌다가!...
빨리 회복되시길 바래요

bookholic 2021-11-06 0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이달의 당선작 2관왕 축하드려요~~~

초딩 2021-11-07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