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행대. 가슴 뛰는 은유를 얻었다. 작가는 인생의 과도기를 이행대라고 은유한다.

 

이행대(ecotone)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집을 뜻하는 오이코스oikos’와 탄성을 뜻하는 토노스tonos’를 합친 말이다. 따라서 이행대는 생태학적 긴장의 공간이다. 무용수가 힘차고 우아하게 공간을 누빌 때 특히나 몸을 탄력 있게 움직이는 것처럼 이행대는 특별한 생태적 탄력을 띤다. 이행대는 두 지대를 잇는 다리처럼 경계지대의 식물들로 하여금 서로 교류하게 한다.

-40p

이러한 생태적 이행대를 바라보는 창조적인 시각은 인생의 이행기, 즉 과도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은유를 제시하고 있다. 탄생을 위한 임신과 출산, 성인으로 이행하는 사춘기, 노년으로 나아가는 갱년기, 상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애도, 죽음의 준비와 같은 인생의 과도기를 생태적 이행으로 은유하며 철학적 단상들을 써내려 가고 있다. 은유가 큰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우리는 인생의 과도기를 맞이할 때 예측할 수 없음으로 인한 불안을 경험한다. 최선의 선택을 하지만 항상 최선의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이 인생의 새로운 국면들에서 우리는 때로 상처를 입기도 한다.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탄생과 관련된 작가 자신의 경험담이었다.

작가는 제왕절개로 태어났다고 한다. 작가의 엄마 배에는 수술자국이 남아있다. 그 작은 절개부분을 통해 엄마 배속에서 나왔다고, 그때 아기는 너무 예쁜 신생아였다고 말해주는 엄마에게서 깊은 유대감과 자부심을 느꼈다. 어느 날 친구 엄마가 자연분만을 하지 못한 것은 인생에서 중요한 경험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 말에 깊은 충격을 받는다. 이 말을 전해들은 작가의 엄마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경험을 기꺼이 포기했단다!”라고.

 

나중에 엄마는 출산을 무슨 즐거운 행사가 아니며, 엄마와 아기에게 몹시 힘든 일이라고 일러 주었다. 제왕절개가 아니었다면 나는 살아남지 못했을 거라면서 말이다. 아이가 어떻게 태어났든 간에 건강한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다면 기뻐해야 하는 거라고 했다. 또한 어떤 출산 경험을 미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면서, 사회가 불어넣은 좋은 엄마상에 자연분만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 듯하다고 했다. 피할 수 없었던 고통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 그 고통을 받아들이기가 더 쉬울 거라고도 했다.

- 68 p

 

이 말을 듣고 작가는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한다.

 

공감을 많이 한 내용이기도 하고 속 시원함을 느낀 내용이다. 아이들 셋을 제왕절개 수술로 낳았던 때, 당시 TV에서는 자연분만에 대한 다큐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첫아이를 수술로 낳고 뭔가 실패했다는 느낌으로 우울했었다.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이 방위, 면제받은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듯, 자연분만 후기와 함께 너는 그거 모르지?’ 하던 말을 들으며 웃고 말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례한 말이었음에도 반박할 수 없게 하는 사회적 통념의 힘이 있었다.

 

스스로를 특정 기준에 부합해야 하는 산물처럼 생각하는 것은 우리 삶을 힘들게 만든다. 사회는 좋은 엄마의 표준을 제시하고 임신했을 때부터 모든 여성들은 자신이 그 기준에 못 미치는 것 때문에 전전긍긍한다.(마더쇼크) 중요한 과도기적 국면에서 시금석이 제시되는 것은 개인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스스로와 다른 사람을 열린 시선으로 존중하며 사는가, 한 번뿐인 자기 인생을 기꺼이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춘기든 중년의 위기든 갱년기든 간에 모든 과도기는 탄생의 형태를 내포한다. 우리는 익숙한 것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향하는 문턱을 넘는다. 명백하게 정의된 역할과 삶의 상황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어떻게든 표준에 맞추면서 안전성을 보장받고자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더 불안해져만 간다.- 72p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이 책의 이 부분을 떠올리게 된 것은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를 읽으면서다. 자폐라는 진단명이 생기면서 자폐의 원인을 밝혀내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연구 초기 단계에서 그 원인을 엄마들에게서 찾으려 했다는 기록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이 책의 탄생 장이 겹쳐졌다.

 


처음 아기를 보았을 때 사랑스럽다는 감정을 느꼈나요?”

글쎄, 그게 사실은리타가 입을 뗐다. 진실을 인정하는 게 중요해요.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뭔가 효과가 있기를 간절히 바랐기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아이가 닭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던 일을 털어놓았다.…… 귀찮고 힘들었어요. 그녀는 인정했다.……

진실을 똑바로 마주하기는 고통스러웠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아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보여주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유일한 희망은 책임을 온전히 인정하고, 헌신적으로 치료에 전념하여 엄마로서 실패했다는 근본적인 원인을 교정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조금이라도 좋아질 수 있을까?

-127p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위험하고 잔인한 질문이었다. 한 존재를 죽음과도 같은 절망과 죄의식에 빠뜨리는. 그렇게 그녀들은 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도록 종용을 받았다. 자폐아 엄마들의 모임에 나가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작업을 한다. 인생의 이행대인 임신과 출산이 불행한 결과의 원인을 밝혀야 할 죄책감의 가시덤불이 된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이 불행한 일을 겪을 때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으며 죄의식에 휩싸인다. 장성한 자녀가 아파도 내가 잘못한 것이 있었을까하고 어린 시절을 되짚어 가며 가슴을 누른다.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의 저자 나탈리 크납은 불행한 일들조차 창조적인 이행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최초의 자폐아 도널드의 부모는 사회가 규정한 진단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들을 위한 최선의 삶을 찾아 나섰다. 이 과정에서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모임이 생성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열린 마음으로 그를 받아들임으로 새로운 행복한 사람이 탄생했다. 창조적이고 탄력적인 시선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행대는 계속해서 의미를 생성하는 장소이다.

 

이런 과도기를 다루는 비법은 없다. 모든 삶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 삶의 반경과 우리가 사는 세계를 위해, 더 나은 을 개발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한다.

 

군대가 쳐들어오는 것은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생각이 쳐들어오면 도저히 저항할 길이 없다.”

-빅토르 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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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x8117 2021-07-06 23: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그레이스 2021-07-07 07:4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볼빨간레몬 2021-07-06 23:2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의 글을 읽으니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이 읽고 싶어지네요. 늘 불확실한 날들 속에 살면서도 남을 비난하는 것엔 확신을 가지는 모습들을 보며 많은 걸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그레이스 2021-07-06 23:48   좋아요 4 | URL
확실한 해답보다는 은유가 더 큰 메세지를 전달할 때가 있죠.
감사합니다~^^

미미 2021-07-06 23:4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왕절개로 세상에 나왔어요. 이행대라...마음에 담아갑니다😉

그레이스 2021-07-06 23:51   좋아요 6 | URL
^^
이행대라는 말이 계속 남았어요.
저도 인생의 이행대를 지나는 중이라 생각되어서.

서니데이 2021-07-07 00:1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서로 다른 입장이 되는데, 어떤 것만이 맞고 어떤 경험만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요즘엔 매일의 날들이 불확실한 느낌을 담고 가는 것 같은데, 그 안에도 좋은 것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레이스님, 잘 읽었습니다. 좋은밤 되세요.^^

그레이스 2021-07-07 06:47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밤인사를 놓쳤네요^^
밤사이 비가 내려 습기로 가득합니다.
마음만은 화창하고 시원한 하루 되시길 바래요~

희선 2021-07-07 01: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가 아닐지도 모를 텐데, 아이를 기르면서 엄마가 되어간다고도 하잖아요 세상은 처음부터 엄마이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이를 어떻게 낳는가 그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닐 텐데, 어쩌다 어떤 게 좋다고 말하게 됐는지 모르겠네요 수술을 하게 돼서 엄마와 아이가 죽는 일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희선

그레이스 2021-07-07 06:50   좋아요 4 | URL
어떤 자리나 마찬가지겠지만 모성 역시 강요된 부분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07-07 07: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행대라는 단어 처음들어봤는데 멋진 말 같아요~!! 인생은 항상 과도기 인거 같아 😐
빅토르 위고의 마지막 말은 정말 멋지네요~!!

그레이스 2021-07-07 07:29   좋아요 4 | URL
참 멋진 말이고 의미가 계속 생성되는 단어라고 생각됩니다.
어제 이 글 올리고 잤는데 일어나서 다시 생각이 이어지네요.^^
감사합니다 ~

페크pek0501 2021-07-07 12: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위고의 말이 가슴에 콱 와닿네요. 한 번 생각이 박히면 생각의 노예가 되는 것 같아요.

어머니의 죄책감. 저도 그런 걸 느껴 본 적이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별일 아닌데
그땐 그렇더라고요. ㅋ

그레이스 2021-07-07 12:56   좋아요 4 | URL
^^

그레이스 2021-07-07 17:38   좋아요 2 | URL
저는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을 떨쳐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부모라 그런가봐요.^^

mini74 2021-07-07 17: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묘하게 자연분만에 대한 우월감 느끼는 이들이 있지요. 저는 시어머니가 네가 무슨 에미냐고 ㅠㅠ 목숨걸고 낳았는데 순식간에 나쁜 엄마 취급에 퉁퉁 붓도록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쒸. 지금같음 막 받아치고 그럴텐데 그땐 제가 숫기가 없어서 ㅎㅎㅎㅎ 그레이스님 글 오늘 제게 정말 위로가 되네요 ㅎㅎ

그레이스 2021-07-07 17:34   좋아요 2 | URL
거의 신앙같았죠 자연분만해야 애가 똑똑하다고 수중분만 그네분만 소개하면서 미국 유럽 일본까지 소개하는 다큐때문에 의기소침했죠.
오죽하면 자연분만 모유수유가 개그의 소재가 되었겠어요? ㅠ
좋은 거는 동의 하지만 건강하게 태어나는게 중요한데.
가슴앓이 한 미니님! 토닥토닥.
저도 토닥토닥.
ㅎㅎ
 

서로 다른 생활조건이 맞물림으로써 초래되는 영향을 생물학에서는 가장자리 효과 edge effect라고 한다. 가장자리 효과는 ‘상반되는환경의 영향이 중첩되면서 생태계에 나타나는 효과‘를 말한다.
그리하여 기후변화의 시대에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방법을알아내려 하는 연구자들은 가장자리 효과에서 힌트를 얻고자 한다. 생물 다양성을 증진하는 것은 생태계 안정에 매우 중요하기때문이다. 기후변화 때문에 어떤 식물의 번식 속도가 느려지면 다른 종의 식물이 그들이 하던 과제를 떠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야생에서 새로운 종의 탄생을 관찰하기란 쉽지가 않다. 경계를이루는 생태계의 영향으로 새로운 생물이 탄생하는 중요한 순간은 보통 인간의 눈에 가려져 있다. 숨어 있음과 신비로움은 이런창조 행위의 본질적인 특징으로 보인다.  - P41

한나 아렌트는 매 순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행동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행동능력이 있기에 뭔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질적인‘ 행동이 불가능해 보일때라도 ‘정신적인‘ 행동이 가능하다. 관점을 바꾸거나 같은 삶의상황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면서 말이다. 정신적인 행동으로도우리는 뭔가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희망은 더 나은 시간을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습관에서 한 걸음 벗어나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더 유리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 또한 희망이다. "삼촌이 나를 편다면, 난 삼촌을 죽일 거예요. 11 에거는 삼촌에게 그렇게 말한다. 이런 반항의 행위에서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에거의 희망이 드러난다. 에거는 다가올 미래가 어떻게전개될지 알지 못한다. 그의 행동으로 일상의 익숙한 진행을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자신의 편이 되어준다. 이 순간 변화가 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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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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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상과 대체, 읽어가면서 멈추게 되는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은 서사의 배경이 되는 시대정신을 가리키고 있다. 욕망의 대상이 되고, 갈등의 원인이 되고, 가려진 진실을 암시하면서 플롯을 구성해 나간다. ‘향상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향상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면 대체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를 증명하지 못하면 박탈당할지 모른다는 암시와 압박을 받는다. 실제로 실적부진, 업무 부적격성 등의 이유로 대체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소설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미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가리키고 있다. 향상되지 않으면 대체되는 세상에서 대체될 수 없는 존재의 고유함은 무엇일까를 사유하게 되는 소설이다.

 

 클라라는 AF(Artificial Friend). 인공지능 로봇으로 아이들의 친구로서 생산되었다. 태양으로부터 동력 에너지를 얻는다는 사실은 전개의 과정에서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매장 쇼윈도에 전시되어 있는 클라라에게 끌려 바라보고 있는 조시와 눈이 마주치고, 조시가 자신을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린다. 오랜 기다림 끝에 클라라는 조시의 친구로 판매되어 그녀의 집으로 간다. 조시는 유전자 교정치료-향상치료부작용으로 생명이 위험한 상태이다.

 

 소설 속에서 사회에는 계급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향상이라고 하는 유전자 교정 치료를 받게 한다. 그렇게 해서 더 나은 계급의 교육을 받고 지위를 얻게 해주려는 것이다. 그들은 향상된 계급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우수한 유전자를 갖고 있어야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 조시의 엄마 크리시는, 많은 부모들이 하는 것처럼, 딸에게 향상치료를 받게 했다. 조시의 언니 셀은 이 적응과정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한편, 조시의 친구 릭의 엄마는 아이를 잃는 것이 두려워 향상치료를 거부한다. 그리고 릭의 장래를 걱정하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클라라의 엄마 크리시가 향상된 신제품 AF-B3가 아닌 클라라를 선택한 이유는 클라라의 많은 것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능력때문이다. 혹시 조시가 부작용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게 되면, 클라라로 대체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한 아이를 잃었는데도 크리시는 자녀의 향상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그 욕망은 자식의 생명의 위험을 감수할 정도로 강하다. 자신의 욕망을 조시에게 대한 투사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계급과 그 경계가 뚜렷한 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떠할까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다. 어쩌면 소설 속의 사회와 다름없기 때문에 향상이란 단어가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조시의 아빠 폴은 이 계획을 알고 있는 클라라에게 묻는다. 조시의 모습과 행동과 말투는 이어갈 수 있지만, 마음을 배울 수 있겠느냐고.

 클라라는 대답한다.

 그게 가장 배우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이 아주 많은 집하고 비슷할 것 같아요. 그렇긴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고 에이에프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이 방들을 전부 돌아다니면서 차례로 신중하게 연구해서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320p)

 

폴은 다시 질문한다.

 하지만 네가 그 방 중 하나에 들어갔는데. 그 안에 또 다른 방이 있다고 해 봐. 그리고 그 방 안에는 또 다른 방이 있고, 방 안에 방이 있고 그 안에 또 있고 또 있고. 조시의 마음을 안다는 게 그런 식 아닐까? 아무리 오래 돌아다녀도 아직 들어가 보지 않은 방이 또 있지 않겠어?”(321p)

 

 클라라의 대답처럼 마음은 신중하게 연구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일까? 폴의 질문은 의식의 영역을 넘어서 끝없이 이어지는 무의식의 세계를 연상하게 한다. 인공지능 로봇이 과연 이렇게 복잡한 인간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클라라가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여러 곳에서 관찰된다.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신뢰와 의지,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의 감지, 그로 인한 불안감, 조시를 위해 희생하는 결단 등이다. 또한 투사나 동일시의 모습도 보인다. 마음을 가진 존재가 겪는 현상인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학습하고 모방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마음의 형성은 타고난 기질, 기억과 상처, , 외적으로는 문화와 전통 등 셀 수 없는 인자와 요인들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또한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면 폴의 말대로 방에서 방으로 감추어진 영역들이 끝없이 드러난다. 과연 학습해서 모방할 수 있을까? 아빠 폴의 질문처럼 시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마음, 사람을 특별하게 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마음이 존재한다면 배울 수 있는 것일까?

 

 이 소설에서 클라라의 태양숭배는 독자를 난감하게 한다. 자신에게 에너지를 주는 태양을 섬기며 클라라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고 헌신한다. 죽음과 상실이라는 인간의 불안에서 출발한 원시종교의 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기적인 마음의 경향을 억제하는 신앙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클라라의 의식에 이 신앙이 생겨나는 과정과 쿠팅스를 파괴해야 한다는 동기를 갖게 되는 과정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것도 인공지능 로봇의 선택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어색함은 아직 알지 못하는 영역을 구현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마음은 볼 수도, 느낄 수도, 무게를 달 수도, 해부하여 갈라 보일 수도 없다. 오랫동안 마음의 좌소(座所)에 대해 알고자 했지만 밝혀진 것은 없다. 마음은 영혼과 호환되며 언급되어 왔고, 마음은 뇌 손상과 같은 것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는 것등을 알 뿐이다. 게리 콜린스는 마음 탐구에서 마음을 사고, 학습, 문제해결, 의지, 인식, 집중, 기억, 주의, 그리고 사상과 감정의 경험 등을 포함한 우리의 정신 활동의 총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길버트 라일은 의지, 정서, 성향, 자기인식, 감각과 관찰, 상상력, 지성 등으로 마음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마음의 개념, 길버트라일)

 학문의 분야마다 학자마다 마음의 정의가 다르다. 정의조차 부정확한 것을 모방할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을까?

 

 대체계획은 조시의 회복으로 취소된다. 조시가 부작용을 이겨내고 건강해진 후에 클라라는 말한다. 자신이 조시를 대신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어머니, , 멜라니아, 아버지가 가슴 속에서 조시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는 다가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조시의 특별한 무엇인가는 조시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442p) 대체는 불가능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 인간의 특별함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는 것이다. 마음을 모방할 수 있는가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일 것이다.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엄마 크리시가 조시의 언니 셀의 대체 로봇을 받아들이는데 실패했다는 것이 그 예일 것이다.

 

 능력으로 인정받는 경쟁사회는 한 인간이 마주할 대체라는 암울한 개인의 운명을 예고한다.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에 의한 대체인 것이다. 미래에는 유전자 조작으로 향상된 한 인간에 의한 것이거나,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향상대체라는 매커니즘이 끌고 갈 계급사회와 인간소외에 대한 해답은 곧 소멸될 AF 클라라에 의해 제시되었다. 한 사람을 둘러싼 사람들의 사랑이다. 공존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사랑은 희망을 가리키는 키워드이다.

 

 “이 우주에서 우리에겐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진다,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 그 두가지 선물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불인 동시에 우리를 태우는 불이기도 하다.”-메리 올리버

(328p 로봇시대 인간의 힘구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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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7-05 22:36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하 ㅠㅠ 그레이스님. 글을 어쩜 이렇게 고급지고 그레이스하게 쓰시는 거죠., 부럽게 ㅠㅠ 인간의 특별함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다는 말 너무 좋아요. *^^*

그레이스 2021-07-05 22:45   좋아요 7 | URL
;;;;;
감사합니다 ~♡
사랑!
최고의 진리죠^^

초딩 2021-07-05 23:36   좋아요 6 | URL
매우 인정합니다! :-)

붕붕툐툐 2021-07-06 21:11   좋아요 2 | URL
저도 격한 공감! 괜히 그레이스님이 아니심!!

새파랑 2021-07-05 23:3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관한 책은 언제나 좋더라구요~!! 리뷰에 쓰인 마으메 대한 이야기 너무 멋지네요 👍 전 올해 나온 책중 이 책이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1-07-06 06:25   좋아요 4 | URL
마음에 관해 이것저것 찾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scott 2021-07-06 00: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그레이스님의 이문장에 밑줄을 쫘아악!५✍⋆*

만일 ‘향상‘된 유전자 치료가 가능하다면
전 치료 받고 싶은 곳이 많습니다!

이책 미국에서는 베스트 진입조차 못했고
영국에서는 초반만 왕창 팔렸다가
지금은 독자들이 찾지 않는
자극적인 SF를 원했던것 같습니다
영미권 독자들은
그럼에도 영국은 이번에 여름 휴가 필독 30권에 클라라를 넣어줬는데 ( *ฅ́˘ฅ̀*)

그레이스 2021-07-06 06:29   좋아요 5 | URL
이시구로의 책은 항상 자극적인 내용은 없는것 같아요
우리가 고민했던 것들 역사에서 이미 쟁점이 되고 있는 이슈들을 다루고 있는듯요
하지만 그것들은 오랜동안 머릿속에 남아서 고민하게 하는 것 같아요.^^

희선 2021-07-07 01: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로봇이 더 사람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요 겉모습만 같다고 그 사람이라 할 수 없겠습니다 그러면 클론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클론도 다른 사람이죠 사람이 가진 마음과 사랑이 희망이겠지요 좀 엉뚱하기는 해도 클라라도 조시를 많이 생각하지 않았나 싶어요


희선

그레이스 2021-07-07 07:11   좋아요 2 | URL
♡~
클론은 로봇보다 더 생각할 지점이 많은 것 같아요.
어슐러 르귄이 쓴 소설 읽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원더북 2021-08-05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ㅎㅎ 저 이 리뷰를 다른 곳에서 먼저 읽었는데 그레이스님셨군요! 여기서 다시 읽으니 더 반갑습니다^^

2021-08-05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1-08-05 11:43   좋아요 1 | URL
지금 이 글도 수정해야 해요 ㅎㅎ

원더북 2021-08-05 11:45   좋아요 1 | URL
그래이사에 달려 있는 수많은 리뷰 중에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리뷰였어요^^

그레이스 2021-08-05 11:5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coolcat329 2022-10-12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글 너무 잘 읽고 갑니다. 조시와 아버지가 나눈 인간의 마음에 대한 대화, 덕분에 다시 읽었구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책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는 ‘유전자 교정치료-향상치료‘라는 말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그레이스 2022-10-12 22:08   좋아요 1 | URL
댓글 달아주셔서 제가 리마인드 하는 시간이 됐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부끄럽네요. 감사드려요~~~♡
 

우리가 갓난아이로 세상의 무대에 나왔을 때, 인생이라는 연극은 벌써 오래전에 시작되어 있었다. 주인공, 무대 배경, 줄거리도 있었다. 인생을 처음부터 우리 손으로 시작하기에는 너무 지각했다고나 할까? 우리는 가족사, 문화사, 진화사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전통 속으로, 갈등 속으로, 시대적인분위기 속으로 들어왔다.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막간에 문은 다시 한 번 반쯤 열린다. 우리는 숨죽이고 그 안으로 들어가 어둠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다"라며 "시작 부분은 나중에야 비로소 예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연극의 규칙이다"라고썼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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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mind)」은 중요한 의미에서 3원적이다, 즉 마음의 과정은 궁극적으로 3개의 부류로 나누어진다는 생각은 오랜 세월 동안 논란의 여지가 전혀없는 공리(公理)처럼 간주되어왔다. 지금도 우리는 종종 마음이나 영혼은사고, 감정 및 의지라고 하는 세 부분을 갖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좀더형식적인 어투로 말하자면, 마음이나 영혼의 기능은 더 이상 환원이 불가능한 세 가지 상이한 양태인 인지적 양태 (Cognitive mode), 정서적 양태(Emotional mode) 및 의욕적 양태 (Conative mode)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밝히고자 하는 바는 정서 (emotion)라는 단어가 적어도 서너 가지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 「경향성 (혹은 동기)」, 「기분」, 「(심적) 동요 (動搖)」, 「감정」등이 그것이다. 동요 (agitations 혹은 commotions)를 포함해 경향성 (inclinations)과 기분(moods)은 발생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공적으로건사적으로건 도대체 발생하지 않는다. 즉 이것들은 행위나 상태가 아니라 타고난 기질이다. 

이에 반해 감정은 발생사건 (occurrence)이다. 그렇지만 인간행동을 서술함에 있어 감정에 관한 언급이 차지하는 위치는 통상적인 이론들이 인간행동과 관련하여 차지하는 위치와 판이하다. 
기분 혹은 마음상태(frames of mind)는 동기 (動機)와는 달리, 그러면서도 질병이나 기후상태와유사하고 일정하게 사건들이 「결합된 일시적 상태이며, 그 자체가 발생사건 외부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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