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행대. 가슴 뛰는 은유를 얻었다. 작가는 인생의 과도기를 ‘이행대’라고 은유한다.
「이행대(ecotone)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집을 뜻하는 ‘오이코스oikos’와 탄성을 뜻하는 ‘토노스tonos’를 합친 말이다. 따라서 이행대는 생태학적 긴장의 공간이다. 무용수가 힘차고 우아하게 공간을 누빌 때 특히나 몸을 탄력 있게 움직이는 것처럼 이행대는 특별한 생태적 탄력을 띤다. 이행대는 두 지대를 잇는 다리처럼 경계지대의 식물들로 하여금 서로 교류하게 한다.」
-40p
이러한 생태적 이행대를 바라보는 창조적인 시각은 인생의 이행기, 즉 과도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은유를 제시하고 있다. 탄생을 위한 임신과 출산, 성인으로 이행하는 사춘기, 노년으로 나아가는 갱년기, 상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애도, 죽음의 준비와 같은 인생의 과도기를 생태적 이행으로 은유하며 철학적 단상들을 써내려 가고 있다. 은유가 큰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우리는 인생의 과도기를 맞이할 때 예측할 수 없음으로 인한 불안을 경험한다. 최선의 선택을 하지만 항상 최선의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이 인생의 새로운 국면들에서 우리는 때로 상처를 입기도 한다.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탄생과 관련된 작가 자신의 경험담이었다.
작가는 제왕절개로 태어났다고 한다. 작가의 엄마 배에는 수술자국이 남아있다. 그 작은 절개부분을 통해 엄마 배속에서 나왔다고, 그때 아기는 너무 예쁜 신생아였다고 말해주는 엄마에게서 깊은 유대감과 자부심을 느꼈다. 어느 날 친구 엄마가 ‘자연분만을 하지 못한 것은 인생에서 중요한 경험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 말에 깊은 충격을 받는다. 이 말을 전해들은 작가의 엄마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경험을 기꺼이 포기했단다!”라고.
「나중에 엄마는 출산을 무슨 즐거운 행사가 아니며, 엄마와 아기에게 몹시 힘든 일이라고 일러 주었다. 제왕절개가 아니었다면 나는 살아남지 못했을 거라면서 말이다. 아이가 어떻게 태어났든 간에 건강한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다면 기뻐해야 하는 거라고 했다. 또한 어떤 출산 경험을 미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면서, 사회가 불어넣은 좋은 엄마상像에 자연분만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 듯하다고 했다. 피할 수 없었던 고통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 그 고통을 받아들이기가 더 쉬울 거라고도 했다.」
- 68 p
이 말을 듣고 작가는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한다.
공감을 많이 한 내용이기도 하고 속 시원함을 느낀 내용이다. 아이들 셋을 제왕절개 수술로 낳았던 때, 당시 TV에서는 자연분만에 대한 다큐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첫아이를 수술로 낳고 뭔가 실패했다는 느낌으로 우울했었다.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이 방위, 면제받은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듯, 자연분만 후기와 함께 ‘너는 그거 모르지?’ 하던 말을 들으며 웃고 말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례한 말이었음에도 반박할 수 없게 하는 사회적 통념의 힘이 있었다.
스스로를 특정 기준에 부합해야 하는 ‘산물’처럼 생각하는 것은 우리 삶을 힘들게 만든다. 사회는 좋은 엄마의 표준을 제시하고 임신했을 때부터 모든 여성들은 자신이 그 기준에 못 미치는 것 때문에 전전긍긍한다.(『마더쇼크』) 중요한 과도기적 국면에서 시금석이 제시되는 것은 개인을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스스로와 다른 사람을 열린 시선으로 존중하며 사는가, 한 번뿐인 자기 인생을 기꺼이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춘기든 중년의 위기든 갱년기든 간에 모든 과도기는 탄생의 형태를 내포한다. 우리는 익숙한 것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향하는 문턱을 넘는다. 명백하게 정의된 역할과 삶의 상황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어떻게든 ‘표준’에 맞추면서 안전성을 보장받고자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더 불안해져만 간다.」 - 72p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이 책의 이 부분을 떠올리게 된 것은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를 읽으면서다. 자폐라는 진단명이 생기면서 자폐의 원인을 밝혀내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연구 초기 단계에서 그 원인을 엄마들에게서 찾으려 했다는 기록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이 책의 탄생 장이 겹쳐졌다.
「“처음 아기를 보았을 때 사랑스럽다는 감정을 느꼈나요?”
“글쎄, 그게 사실은…” 리타가 입을 뗐다. 진실을 인정하는 게 중요해요.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뭔가 효과가 있기를 간절히 바랐기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아이가 닭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던 일을 털어놓았다.…… 귀찮고 힘들었어요. 그녀는 인정했다.……
진실을 똑바로 마주하기는 고통스러웠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아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보여주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유일한 희망은 책임을 온전히 인정하고, 헌신적으로 치료에 전념하여 엄마로서 실패했다는 근본적인 원인을 교정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조금이라도 좋아질 수 있을까?」
-127p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위험하고 잔인한 질문이었다. 한 존재를 죽음과도 같은 절망과 죄의식에 빠뜨리는. 그렇게 그녀들은 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도록 종용을 받았다. 자폐아 엄마들의 모임에 나가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작업을 한다. 인생의 이행대인 임신과 출산이 불행한 결과의 원인을 밝혀야 할 죄책감의 가시덤불이 된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이 불행한 일을 겪을 때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으며 죄의식에 휩싸인다. 장성한 자녀가 아파도 ‘내가 잘못한 것이 있었을까’ 하고 어린 시절을 되짚어 가며 가슴을 누른다.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의 저자 나탈리 크납은 불행한 일들조차 창조적인 이행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최초의 자폐아 도널드의 부모는 사회가 규정한 진단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들을 위한 최선의 삶을 찾아 나섰다. 이 과정에서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모임이 생성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열린 마음으로 그를 받아들임으로 새로운 ‘행복한 사람’이 탄생했다. 창조적이고 탄력적인 시선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행대는 계속해서 의미를 생성하는 장소이다.
이런 과도기를 다루는 비법은 없다. 모든 삶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 삶의 반경과 우리가 사는 세계를 위해, 더 나은 ‘감感’을 개발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한다.
“군대가 쳐들어오는 것은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생각이 쳐들어오면 도저히 저항할 길이 없다.”
-빅토르 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