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갓난아이로 세상의 무대에 나왔을 때, 인생이라는 연극은 벌써 오래전에 시작되어 있었다. 주인공, 무대 배경, 줄거리도 있었다. 인생을 처음부터 우리 손으로 시작하기에는 너무 지각했다고나 할까? 우리는 가족사, 문화사, 진화사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전통 속으로, 갈등 속으로, 시대적인분위기 속으로 들어왔다.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막간에 문은 다시 한 번 반쯤 열린다. 우리는 숨죽이고 그 안으로 들어가 어둠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다"라며 "시작 부분은 나중에야 비로소 예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연극의 규칙이다"라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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