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에는 루쉰의 첫 번째 소설집 『납함(吶喊)』과 두 번째 소설집 『방황(彷徨)』이 담겨 있다. ‘납함(吶喊)’은 ‘적진을 향하여 돌진할 때 군사가 일제히 고함을 지름’을 뜻한다. 그는 이 소설집 「자서(自序)」에서 젊은 시절 “자신이 가졌던 적막한 비애”를 잊을 수가 없고 그 적막함을 젊은이들에게 전염시키고 싶지 않기에 “몇 마디 더듬거리는 고함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적고 있다. 소설집을 펴내는 이유다.
신해혁명의 실패는 루쉰에게 대단히 깊은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광인일기」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청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가슴 속에 타오르던 열정은 혁명의 실패와 냉랭한 현실 속에서 식어가고 혁명을 이끌 동력을 찾지 못한 채 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불안에 잠식당한다. 일찍이 신해혁명의 실패와 환멸,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즉위, 장쉰(張勛)의 복귀 등을 목격한 작가 자신이 경험한 심리 상태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식인(食人)의 위협을 느끼는 청년의 정신증은 그만큼 시대가 야만성을 띄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에는 두 번째 소설집 『방황(彷徨)』의 소설들도 담겨있다. 납함의 소설들처럼 슬픔과 분노 같은 감정들이 담겨 있다. 이 『방황』에 담겨있는 「아Q정전」에서는 혁명으로 밤사이 세상이 바뀌어 버리고, 혁명의 대상이었던 자들이 야합하여 권력을 유지하고 혁명을 일으킨 자들의 본질은 도둑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생존을 위해 굽실거리는 군중들의 무지함, 사형제도의 잔인함 등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아Q’뿐 아니라 많은 등장인물들이 작가의 시선에 포획된다.
“현실주의 작가 루쉰이 묘사한 인물들, 특히 그가 심혈을 기울여 부각시킨 근로 민중들의 형상은 대단히 진실하다. 그들의 고통과 수난, 염원 등 이 모든 것들은 깊은 감동을 준다.”(『루쉰전魯迅傳』 왕스징 150p)
인상적인 내용은 작가 자신의 단발과 관련된 경험인 듯 보이는 서술이다. 단발을 비난했던 자들이 변발을 틀어 올리고 혁명에 앞장서는 것이다. 차마 변발을 자르지 못하고 틀어올리는 위선과 비겁함을 비판하고 있다. 여러 계층과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을 다각적 방향에서 여러 가지 주제로 바라보고 문제를 인식할 수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형제도에 대한 작가의 잡문이 있다. 죽는 순간까지 공포와 고통을 오랜 시간 동안 느끼게 하는 참형을 총살과 비교하는 글에는 루쉰의 인권 감수성을 볼 수 있다.
두 소설집에 담겨 있는 「쿵이지」, 「약」, 「고향」, 「복을 비는 제사」, 「장명등」, 「조리돌리기」, 「까오 선생」 등은 봉건사회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개혁을 실패한 채 비관에 빠져 비판만 일삼는 중국을 개탄하고 있다. 구습에 갇힌 구경꾼으로만 존재하는 군중의 냉혹함, 신분과 재산의 차이가 만들어낸 삶의 격차 등 봉건 제도의 부조리와 민중으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군중을 그리고 있다.
「고향」은 서정적이고 「조리돌리기」는 현실적이고, 「복을 비는 제사」는 깊은 교훈을 전한다. 매년 ‘복을 비는 제사’를 지내는 절기와 샹린댁의 죽음이 대비된다. 그녀의 불행한 삶은 그 시대 여성의 비참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복을 비는 입으로 불행한 여성을 향해서는 연민이 없는 냉정한 말과 태도를 보인다. 주지하고 있듯 타자를 향한 말은 죽음에 이르게도 한다.
그의 소설에 담겨 있는 비유와 상징, 그리고 그가 당시 중국에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는 데 루쉰전과 루쉰전집에 담겨있는 일기와 평론 등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는 소설뿐 아니라 잡문에 날카로운 비판과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잘 담고 있다.
“‘무엇 때문에’ 소설을 쓰게 되었는가를 말하라면 나는 여전히 10여 년 전의 ‘계몽주의’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반드시 ‘인생을 위하여’야 하고 또 그 인생을 개량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전에 소설을 ‘소일거리’라고 하거나 ‘예술을 위한 예술’을 ‘소일거리’의 병적인 신식별명으로 부르는 것을 대단히 싫어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병적인 사회의 불행한 사람들 가운데서 제재를 많이 취하였는데 그 목적은 병의 원인을 드러내어 치료에 주의하도록 각성시키기 위해서였다.”(『南腔北調集』 「나는 어떻게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나」)


“물에 빠진 개는 두들겨 패라”
1925년 ‘북경여자사범대학’ 투쟁에서 교육당국에 대해 승리를 거두고 더 이상 ‘물에 빠진 개를 때릴 필요가 없다’는 저우쭈오런(周作人의) 주장에 대해 한 말이다. 「페어플레이는 뒤로 미루어야 한다」라는 글에서 그는 “사람들은 ‘개’를 불쌍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참여했던 신해혁명의 실패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다.
“개의 성질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 오늘날의 관료들과 지방신사나 외국신사들은 저희들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은 적화니 공산이니 하여 매도한다. 민국원년 이전에는 다소 달랐지만 처음에는 캉여우웨이(康有爲) 당이라고 하였고 후에는 혁명당이라고 하였으며 심한 경우에는 관청에 밀고까지 하였다.……그러나 마침내 혁명은 일어나고 말았다. ……“(『墳』「‘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에 대하여」)
혁명과 함께 새로운 풍조가 나타나고 새롭게 되는 과정 중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말고 그것들이 제멋대로 기어 올라오도록 내버려두었기에”, 민국2년 하반기 “위엔스카이(遠世凱)를 도와 숱한 혁명가들을 물어 죽였다.”고 루쉰은 말한다.
신해혁명을 실패에 이르게 한 군벌 위안스카이의 칭제(稱帝)와 같은 반혁명적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의 글은 자신이 고백하듯 날카롭고 사정이 없다. 하지만 “공정한 도리와 정의라는 미명으로, 도덕군자의 간판으로, 부드럽고 후한 체하는 가면으로, 유언비어와 공론을 무기로, 어물어물하면서 빙빙 돌리는 글로 자신의 배를 채우고, 세력도 문필도 없는 약자들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붓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신해혁명과 이후 혁명들의 실패로부터 얻은 이러한 깨달음들을 그의 일기와 잡문집, 소설에서 전한다. 미신과 구습의 노예가 되어 변하지 않는 군중, 사욕에 사로잡혀 추락하는 혁명가들, 허무와 무기력감에 사로잡혀 분열을 일으키는 지식인들을 상징과 비유의 언어에 담아 계몽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작가의 좌절감과 분노, 그럼에도 굽히지 않는 의지와 용기가 배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의 소설과 평론들은 이런 답답함과 분노의 감정이 짙다.
사람들이 과거의 오래된 습관으로부터 벗어나 변화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이다. 혁명으로 큰 변화를 일으키고 민중을 깨울 것이라는 꿈은 곧 사위어 버린다. 루쉰은 그 원인을 완전히 결별하지 못한 구습, 적폐, 사욕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을 그는 ‘물에 빠진 개’로 비유하고 있다.
대선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루쉰의 글들은 새삼 많은 메시지로 다가왔다. 조금의 관대함도 없이 대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인정으로 대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오래된 『노신소설전집』, 『루쉰전』, 『노신문집』2,4권을 갖고 있다. 한겨레 출판 『노신소설전집』인데 을유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을유의 『노신소설전집』은 같은 번역자이지만, 말을 조금 더 부드럽게 다듬었다. 그런데 나에겐 거칠고 강한 표현들이 더 다가온다.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내가 겪고 있는 현재의 상황때문인가 싶다. 『루쉰전』은 공동번역자인 신영복의 글체가 보인다.
『루쉰 전집』1-20권은 로망이다.
더구나 전집을 다 읽는다는 것은 꿈일듯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