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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제전 - 세계대전과 현대의 탄생 ㅣ 걸작 논픽션 23
모드리스 엑스타인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3월
평점 :
왜 '봄의 제전'일까? 『봄의 제전』은 현대를 향하는 20세기 아방가르드 사건이다. 현대 미술사에서도 1차 세계 대전 중 다다이즘으로 이어질 전위적 분위기를 나타내는 사건으로 이 공연을 거론한다. 제전(祭典)은 말 그대로 제사 의식이다. 반복해서 뛰어오르고 한없이 빙글빙글 도는 춤을 추며 제물로 지목된 처녀들이 희생제의에 자신을 바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희생과 봄의 탄생, 파괴와 창조가 함께 공존한다. 댜길레프의 궁극의 예술을 향한 시도, 스트라빈스키의 음악, 그리고 니진스키의 『목신의 오후』에서 보여준 고전발레로부터 탈피를 위한 대담성은 1913년 5월 29일 이 『봄의 제전』 에서 융합되고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기존의 틀을 파괴하고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파리, 오귀스트 페레의 획기적인 콘크리트 건축물 샹젤리제 극장에서 공연은 큰 기대와 화제를 불러 모았고, 그만큼 평론가들과 지식인들의 저항을 받았다.
"봄의 학살"(99p)이라는 오명과 함께, "죽음으로 내달리는 세계의 등불이 되고픈 예언적 소망"(101p)이라는 파리에서의 비평들을 소개하며 저자 모드리스 엑스타인스는 이 『봄의 제전』에서 다가올 전쟁을 예견한다. 무대의 제의(祭儀)가 암시하는 것일 수도, 그것이 불러일으킨 열광에서 엿보게 된 “정신적 불안정의 징후”(101p)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파리와 베를린이 보인 반응의 온도차가 전망하는 것일 수도 있다. 베를린은 니진스키를 환영했다.
동유럽과 러시아에 가까웠던 베를린은 러시아의 예술가들과 급진적인 사상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19세기 후반, 전문 기술과 과학주의에 대한 강조와 함께 경제력을 갖춘 독일은 점차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었다. “독일과 러시아가 나폴레옹의 첫 패배 100주년을 기릴 때 프랑스는 자국의 쇠락을 실감했다.”(95p) 파리는 그들이 이룩한 문화를 지키려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고, 그 경향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까지 이어졌다. 보수와 급진, 불안한 파리와 자신감을 찾아가는 독일의 대치가 그 시대의 불안정성이다. 안정으로 가기위해 폭발을 해야 하는 물질의 상태처럼.
“1914년 8월 대부분의 독일인은 자신들이 개입하게 된 무력충돌을 정신적 의미로 이해했다.”(156p) 전쟁은 그들에게 관념이었다.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우월성” “강한 정신력” “도덕적 정당성”(158p)을 확신했다. 독일군에게서부터 시작되었던, 1914년 영국군-독일군 간의 크리스마스 휴전은 이런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그 후 전쟁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동상, 류머티즘, 참호족염, 썩어가는 시체들의 잔해와 악취로 가득한 참호전은 수많은 사상자들을 냈다. 전쟁의 제전은 거대한 희생제물을 요구했다. 독일인에게 이 전쟁은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영국인에게는 세계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다. 독일에게 점점 커지는 전쟁 참화는 미학적 의미의 심화로 받아들여졌다. 전방과 후방에서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균열이 생겼다. 그들은 분열적 곤경에 빠져 들었다.
예술가들의 전쟁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반응은 다다이즘이었다. 그들은 일련의 선언과 공연, 출판을 통해 전쟁과 기존질서를 비판했다. 우연만 남아있는 무의미적 행위에서 의미를 전달했다. 의미의 파괴가 창조해낸 의미들이다. 이들 다다이즘이야말로 전쟁이 만들어낸 예술운동이고, 종전과 함께 다다이즘 역시 의미를 상실한다.
전쟁과 함께 “과거는 배수구로 쓸려 내려가고 ‘내’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해졌다.”(357p) 과거의 질서를 지키려는 정신과 그에 도전하는 현대의 사유는 1927년 대서양을 횡단한 린드버그에게 보였던 미국과 유럽의 환호에서 나타났다. “린드버그는 옛 질서가 현대의 도전들에 맞서고 극복하는 데 따라야 할 모범으로 해석”되었고 새로운 영웅주의에 열광했다. 한편, 비행이라는 행위자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적 감수성 역시 흥분했다. “자기 자신을 위해 비행했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대담한 행위”(422p)로 받아 들여졌다. 파리의 대중과 독일 정부는 열렬한 환영을 했지만, 그 환영의 동기는 달랐다.
지나간 전쟁에 대한 유럽인의 의도적 침묵을 깬 것은 1929년에 발표한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이다. 전후의 심리 상태,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한 세대의 정서적 불균형을 설명했다. 전쟁은 꿈을 상실한 전후세대를 만들어 냈고, 사회적 탈선의 뿌리였음을 알려 주었다. 대중은 이 책에서 그 자신의 그림자를 보았고, 그들이 처한 개인적인 곤경을 알게 되었다. 1920년대 후반, 레마르크의 소설은 전쟁 붐을 일으켰다. 이 작품에 대해서도 역시 유럽과 독일은 다른 반응을 보였다.
패전국인 독일은 과중한 경제적 부담, 경제 공황, 정치적 혼란 가운데서 ‘이상 국가’를 내세운 나치즘이 무대에 오른다. 저자는 나치즘이 “비합리주의와 기술주의가 만난 모더니즘적인 충동인 또 다른 혼성체의 산물”로서 “문화적 분출”이고 “세속적 이상주의의 극치”(507p)라고 한다. 그리고 나치즘에서 나르시시즘, 키치, 니힐리즘, 컬트를 읽는다. “나치즘은 아방가르드의 여러 충동의 대중적 변형이었다.”(520p)고 말한다. 1914년, 히틀러는 “순수한 이상주의로 충만한 채”(512p) 헌신했던 전쟁에서 이후 꾸준히 영감을 얻는다. 지나간 전쟁을 다른 감상으로 보는 존재가 등장한 것이다. 1933년 독일 수상에 오른 그는 “국가사회주의라는 독일을 회복시키는 현상을 만들어낸 공로를 예술에 돌렸다.”(524p) 그가 했던 선언들은 예술행위를 닮았다. 그는 자신을 니체와 바그너가 요구한 사람으로 인식했고, 그의 이상주의는 다시 한 번 유럽을 제전의 무대로 만들었다.
디테일한 역사적 사실과 자료의 고증을 따라가다 보면 길을 잃기 쉬운 책이다. 나는 ‘봄의 제전’ ‘크리스마스 휴전’ ‘린드버그’ ‘레마르크’ ‘히틀러’로 이어지는 맥락 안에서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를 발견하려고 했다. ‘봄의 제전’으로부터 시작해서 ‘히틀러’로 이어지는 제시어들은 창조와 파괴의 싹을 담고 있었고, 군중을 가르는 힘이 있었다. 예술은 누군가에게는 창조의 힘으로 누군가에게는 파괴의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의 처음 질문을 상기한다. "어디서 허구가 끝나고 현실이 시작되는가?" 토마스 만의 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 대한 비평에서 하인리히 만은 “어느 것이 먼저 오는가? 현실인가 시인가?”(21p)라고 질문을 던진다. 예술은 사람들의 이성에 머문 사유를 마음으로 끌어내려 행동하게도 하고, 현실을 담아내는 틀이 되기도 한다. 예언적 행위가 되기도 하고, 저항을 담은 선언적 행위가 되기도 한다. 우리 시대의 예술은 무엇을 담지하고 있는가? 다른 제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술과 현실이 일치하는 순간 그것은 창조가 될 것인가, 파괴가 될 것인가? 질문해보게 된다.
읽는 동안 『봄의 제전』을 찾아 감상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소개된 문학과 예술작품들도 찾아보았다. 무엇보다도 가슴을 울린 것은 전쟁 중 참호에 울려 퍼졌다던 헨델의 『라르고』였다. 총성이 멈춘 전장의 크리스마스, 참호 저편에서 들려오는 바이올린 연주곡을 듣는 병사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정도의 감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죽음이 널려있는 비좁은 참호 안의 병사들과 대조된 비현실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라르고』에 가사를 붙인 ‘옴 브라 마이 푸 Ombra mai fu’는 오페라 『세르세 Serse』의 아리아다. 전쟁의 왕인 크세르크세스Xerxes가 왕궁 뜰의 플라타너스를 보며 평화를 노래하는 내용이다. 이 아리아의 역설만큼이나 참호에서 울려 퍼진 『라르고』 선율의 비현실적 떨림 때문에 가슴이 먹먹했다.
지금도 전쟁의 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폐허가 된 도시의 건물, 혹은 기차역에서 우연히 듣게 될 음악을 상상해본다. 역설적이고 기이한 슬픔을 지울 수 없다. 예술은 이 전쟁을 어떻게 기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