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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열전 - 3.1운동의 기획자들.전달자들.실행자들
조한성 지음 / 생각정원 / 2019년 1월
평점 :
나의 정체성 어딘가에 3·1운동이 자리 잡고 있다. 공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3월이 되면 만세 운동과 독립선언서에 대해 배웠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로 시작되는 단조의 노래, 곧 불을 뿜을 것 같은 총구 앞에 태극기를 휘날리는 여학생과 군중의 그림, 제암리 학살, 고문 등, 3·1운동은 나에게 고통과 슬픔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오랜 시간 삼일절은 태극기를 조기(弔旗)로 달아야 할지 헷갈릴 만큼 우울의 정서를 안겨준 기념일이다.
저자는 경찰과 검찰의 심문조서·예심심문조서·공판시말서 등의 기록물을 활용하여, 3·1운동에서 임시정부의 수립까지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이 기록물들은 한계를 갖고 있다. 저자도 그것을 인정한다. 고문과 구타로 거짓 자백까지도 받아내려는 일제 공안 당국과 그 자백의 범위를 축소하려는 피고 사이에서 진실이 가려질 위험이 있다. 저자는 여러 사람의 증언과 역사연구 자료로 걸러내고 메우는 작업을 거쳐 이야기를 복원함으로 우려했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1929년 7월, 여운형은 중국 상해에서 사법경찰에 체포되어 고국으로 돌아와 심문을 받는다. 10년 전,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특사로 보내기 위해 독립청원서를 작성하고, 그 청원서의 주체로 상해 신한청년당을 조직했음을 진술한다. 이 소식은 선우혁에 의해 이승훈에게 전해지고, 기독교인들은 독립 운동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다. 이들의 마음을 지핀 전달자 선우혁의 행적은 확인할 수 없다.
기획자들 심문에서는 민족 대표들의 접촉과 연합의 과정이 진술된다. 그 과정에서 멈칫거림, 결렬 위기, 갈등이 있었다. 선언문 낭독 장소의 변경, 33인 중 친일인명 사전에 오른 변절자들의 수가 반증하듯 지도자들은 약하고 불안했다. 당연히 계획은 완전할 수가 없었다. 그런 불완전함을 학생들과 시민들이 메워나갔다. 그들이 또 다른 기획자와 전달자가 되고, 독립운동은 상상할 수 없는 규모가 되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3월 1일에 일어난 만세는 그날 하루에 그치지 않았다. 3월 5일 2차 만세시위가 학생들의 주도로 일어났다. 경성에서 출발하여 지방 곳곳으로 전단이 뿌려졌다. 이제 심문 기록은 전달자들과 실행자들의 것으로 채워진다. 평범한 사람들의 기록이다. 시위에 가담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들은 일본의 폭정 하에서 일본인으로 살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들은 만세 후 다시 자신들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들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투쟁을 이어갔다. 《조선독립신문》 발행과 같은 매체 운동이다. 이들 중 나의 눈길을 끈 것은 《각성호회보》를 만들어 배포한 학생 양재순과 노끈장수 김호준의 조합이다. 이들의 도모는 우발적이고 충동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해 5월까지,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특별한 날들이었다.
차별과 멸시, 강압과 폭력의 통치가 없었다면 조선인들은 일본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이런 질문은 공허하다. 제국주의의 태생 자체가 그럴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는 이미 구시대 유물이 되었다. 그러면, 3·1 운동에서 건져 올려야 할 정신은 무엇일까를 묻게 된다. 불의에 항거하는 정신이다.
개인은 그 공동체에 스며있는 정서를 공유한다. 나는 ‘각성과 투쟁의 역사를 가진 국가의 국민’이라는 자각과 헌법이 3·1운동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는 지식을 오랜 후에야 받아들였다. 이런 앎은 삼일절에 대한 나의 우울함의 정서를 깨뜨리고 변화시켜 왔다. 이 책의 메시지 역시 나의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3월의 정서를 훑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불의에 항거하는 현대사의 장면들은 3·1운동의 유산이고, 그 정신을 더 빛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