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된 편지 - 한국을 사랑했던 프랭크 윌리엄스 선교사의 편지
서만철 지음 / 두란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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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읽어 볼만하긴 하다. 유관순 열사의 모교이기도 한 공주의 영명학교에 관한 이야기다. 근데 약간 산만한 느낌이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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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7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7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7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7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래도 꿈꿀 권리
한동일 지음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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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출판년도가 2014년이면 비교적 최근인데 벌써 절판됐다. 몇몇 중고서점에 있긴 하지만 2만원이 넘는 가격에 판다. 출판사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출판해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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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8-20 05: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_@; 라틴어수업 작가님의 책인가봐요. 재출간 되었으면 좋겠네요. 2만원 넘게 판매되고 있다니@_@;;;

stella.K 2020-08-20 16:01   좋아요 0 | URL
네. 얼마 전 tv에서 강연하는 걸 봤는데 정말 감동이더군요.
라틴어 수업은 언젠간 읽어야지 했는데 이제야 읽고 있네요.
이분 책이 몇권 되는데 전작하고 싶더군요.
초판을 적은 양을 찍은 건지 아니면 그때도 워낙에 유명해
일찍 다 팔린 건지 원...
한동일 교수가 유명해진 건 라틴어 수업 출간 때였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페크(pek0501) 2020-08-20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고가 오히려 더 비싸군요.
한동일 저자의 라틴어 수업, 괜찮게 읽었어요. 그 저자 맞지요?

stella.K 2020-08-21 15:1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책이 좀 들쑥날쑥 해요.
어떤 책은 절판인데도 중고서점에서 싼 가격에 팔리고,
어떤 책은 이렇게 판매가 보다 비싸게 말아요.
정말 희귀본에 가까우면 말을 안 하겠는데
이 책은 초판이 2014년이고 비교적 최근에 나온 건데
이런 식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게 좀 거시기해요.
한동일 교수 넘 좋아요. 이번에 팬됐습니다.^^

2020-08-23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0-08-24 15:07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아니 저랑 똑같은 아이디가 유튜버에 있다굽쇼?
그 사람도 책 관련 영상을 올리나요?
저는 못 생긴대다 카메라 울렁증이 있어서
아마 이번 생엔 그런 거 못하지 싶네요.ㅠㅋ

2020-08-24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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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이란 책이 떠올랐다. 물론 그것과 이것은 내용도 결도 다르다. 더구나 뒤에 '삼대'가 붙었다. 그러니 또 염상섭의 소설이 생각났다. 어쨌든 철도원과 삼대라는 조합이 근사하게 느껴졌다. 책 표지도 마음에 든다. 무슨 책인가 했더니 전에 모 인터넷 서점의 무가지 잡지에 '마터 2-10'이란 작가의 소설 연재를 단행본으로 내면서 제목이 그렇게 바뀐 것이다. 어떻게 해서 처음에 그런 제목을 정하고 그것이 뜻하는 바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터 2-10'라니 무슨 SF물 같기도 하고 영 낯설었다. 역시 책은 제목이 반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무려 30년 동안 묵히고 어르고 달래서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처음 생각한 게 1989년 방북을 했을 때였다고 하는데 물론 30년 동안 이 작품만 붙들었다는 얘기는 아닐 테다. 작가는 그 이름이 주는 무게감만큼이나 왕성한 글을 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쓴 작품만 해도 결코 만만치 않고 짬짬이(?) 근대 작가들의 작품을 편집도 했다. 언제 그 많은 작업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는 중에 이 작품도 썼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근대 문학작품을 보면서 일제 시대 노동사를 다룬 작품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이 작품에 착수했다고 한다. 


이해가 전혀 안 가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는 노동운동을 한다고 하면 무조건 빨갱이로 보는 경향이 있고 이것은 꽤 오랫동안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해 왔다. 지금도 여전하고. 그러니 노동사 자체를 다루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것을 문학으로 녹여낸 작품은 더더욱 기대할 수가 없다. 모르지. 북한 문학엔 우리 남한보다 많이 있을지. 솔직히 우리나라 근대 문학이라는 것도 한정적이란 느낌이 들긴 하다. 근대에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이든, 근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는 요즘 작가든지 간에 말이다. 그런 점에서 황석영 작가의 이 작품은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별히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를 배경으로 했다. 흔치 않은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내가 최근에 읽었던 안재성의 <경성 트로이카> (조선희 작가의 <세 여자>도 포함)와도 맥락을 같이해 뭐 이런 우연이 있나 반갑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근대를 들여다보면 어느 지점에서든 만날만한 인물들이란 생각이 든다. 게다가 작가 특유의 작품을 엮는 재주는 거의 신기에 가까워서 읽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그려진다. 누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 주면 좋겠다 싶다. 한동안 역사 드라마가 붐이었는데 요즘엔 좀 뜸한 편이라 좀 아쉽다.


특히 이 작품은 현대와 근대를 교차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첫 장면부터 나오는 노동자의 크레인 고공 농성을 사실적으로 그려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난 몇 년 전 뉴스나 신문에서 고공 농성 소식을 접하면서 그들이 허공에 매달려서 뭘 하는가에 대해 지금까지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만큼 내가 우리나라 노동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었구나 뜨끔했다. 


노동 문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지난 8월 14일은 우리나라 택배 역사 28년 만에 처음으로 택배 없는 날이었다고 한다. 난 아직도 그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 당연히 택배 기사들도 남들 쉴 때 쉬는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난 공휴일에 택배를 받아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그들이 28년 역사 동안 한 번도 제대로 쉰 적이 없어서 그런 특별한 날을 지정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왜 기본적인 게 어떤 사람에 이처럼 특별해야 하는 것일까. 마침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그날 하루를 쉰 택배 노동자들은 그만큼 밀린 일을 그다음 주에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하루 쉴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고 한다. 그건 내가 고공 농성 때 농성자는 크레인에 매달려 뭘 하고 지내는지를 전혀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말 우리나라 노동 문제는 양파 같아서 까도 까도 새롭다. 도대체 우리나라는 빨갱이란 이름 아래 노동자의 문제를 얼마나 많이 숨겨 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우리나라 노동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386 세대 언저리쯤 노동 문학이 나왔던 것을 감안해 얼핏 그 무렵부터를 생각하면 큰일 난다.


이런 작품은 황석영 같은 걸출한 작가가 쓰는 것이 맞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아직 황석영 작가에게 매료당하지 못했다. 본문만 600쪽이다. 유장한 문체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권할만하다. 독서는 내가 소화해 낼 수 있는 분량만 읽는 것이 아니라 가끔 미친 척하고 읽을 수 없을 것 같은 책에 도전해 봐야 는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난 이 책을 훗날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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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8-19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황석영작가와는 딱히 안맞더라구요. 기념비적인 객지같은 작품도 있지만 문학사적 역사적 의의로 읽었지 작품이 확 좋다는 아니었던것 같아요. 그래서ㅜ이 책도 고민좀 하다가 살짝 빼놓았는데 읽지는 않을것같아요

stella.K 2020-08-20 16:08   좋아요 0 | URL
ㅎㅎ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아니네요.
저도 전에 한 3권쯤 읽었는데 딱히 좋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그림은 그려지는데 문체의 맛은 별로 없는. 그냥 스토리텔링이나
서사에 강한 그런 작가라고 봐야할 것 같아요.
주로 남성 작가들이 이렇지 않나요? 김탁환도 그렇고.
저도 사실은 안 읽을까 하다가 일제강점기에 관심이 있어
읽었는데 과유불급이더군요.ㅋㅋ

카알벨루치 2020-08-20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석영의 문체도 좀 끌리는데... 600쪽이라 큰 일 하셨습니다 ^^

stella.K 2020-08-21 15:18   좋아요 1 | URL
ㅎㅎ 역시 황석영 작가는 여자 보단 남자들한테 인기가 많은가 봅니다.
끌리면 읽으셔야죠.^^
 

주인공 목해원 역을 맡은 박민영이야 기본은 하는 배우니 따로 말할 필요는 없는 것 같고, 개인적으로 임은섭 역을 맡은 서강준의 발견이 좀 놀라웠다. 솔직히 난 이 배우를 별로 눈여겨보지 않았다. 예전에 모 드라마에서 맡은 배역이 좋게 말하면 차도남이고, 나쁘게 말하면 얌체 같은 이미지를 맡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거기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선 참하고 단단한 청년의 이미지를 제법 잘 소화해 냈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에서 감정 이입하고 싶었던 캐릭터가 있다면 그건 엉뚱하게도 은섭의 여동생 휘였다. 그 역을 배우 김환희 양이었는데 낯설지 않은데 어디서 봤나 했더니 영화 <곡성>에서다. 악령이 들어 눈을 허옇게 까뒤집고 "뭣이 중헌디?"를 외쳤던 그 아역 배우가 벌써 커서 여고생으로 나온다. 여기선 엉뚱 발랄하다 못해 4차원 우주소녀로 나온다. 특히 아주 잠깐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오빠, 언니, 선배라고 부르지만 평소 땐 자기 부모를 제외하고 위아래가 없다. 아무래도 같진 않지만 영화에서의 페르소나를 연기한 듯싶기도 하다. 아무도 휘의 위아래 없는 무개념을 탓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휘의 무개념은 전략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긴 무개념이 문제가 아니라 주제 파악을 못하는 게 더 문제라고 보는데 적어도 휘는 그 정도는 아닌 듯싶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아이는 자신이 전따 즉 전교에서 따돌림받는 정도는 알고 있다. 물론 그런 시골 학교에서 전따래 봤자 서울의 웬만한 학교 2, 3개 반을 합친 정도도 안 될 테니 따돌림의 범위가 그리 넓지도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괴로워도 슬퍼도 전혀 꿀리지 않은 강인한 멘털과 사회성이 묘하게도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얼핏 로맨스물인 건 같지만 여성 서사고, 상처를 치유해 가는 힐링 서사다. 내가 이 드라마에서 유심히 본 건 해원이 외가가 있는 장소와 그 안에서 드러나는 비밀과 고백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지치고 힘들면 소울 푸드를 찾는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자신이 자신을 위로할 때이고, 사람은 외롭고 힘들 때 위로받을 수 있는 장소를 찾는다. 그것이 고향일 수도 있고, 어느 산중의 절이나 수도원일 수도 있으며, 별장일 수도 있겠지.


지상에 그런 곳이 단 한 군데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결코 자살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바로 해원이 타향에서 지치고 힘들 때 찾은 곳은 외가였다. 하지만 그곳이라고 그녀에게 마냥 좋은 곳은 아니다. 사실 그곳은 해원이 오래전부터 풀지 못한 비밀과 상처를 묻어두고 떠나 온 곳이기도 하다. 결국 해원의 귀향은 그 문제와 마주하거나 해결하는 데 있다. 


사실 고등학교 때 해원은 엄마가 아빠를 죽인 관계로 외가에 맡겨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 때문에 새로운 학교에서의 적응이 쉽지 않다. 아무리 엄마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소문은 나게 되어있다. 하지만 그 소문의 진원이 자신의 베프인 보영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그 배신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나이 땐 그런 거 있지 않나? 친한 사이일수록 서로 비밀 하나씩 공유하는 거 말이다. 해원은 보영에게 무슨 비밀을 얘기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해원은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보영에게 얘기함으로 영원한 친구 관계를 보장받으려 한다.   

  

 비밀은 원래 나타나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 마음속엔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어 하는 속성이 있다.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은 게 있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 주위에 가장 친한 사람에게 그 사람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흘려 보라. 그러면 그 친한 사람은 친구를 변호한답시고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술술 불게 되어 있다. 바로 보영이 그덧에 걸려든 것이다. 해원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옹호한답시고 자신만이 알고 있어야 할 비밀을 얘기한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친한 친구를 잃는 치명적 실수가 된다는 걸 나중에 깨닫지만 그땐 이미 늦었다.  


그러므로 정말 좋아하는 베프가 있는가? 비밀 공유도 좋긴 하지만 그 친구가 감당 못할 너무 큰 비밀은 말하지 마라. 어쩌면 아니 십중팔구는 그 때문에 친구를 잃을 수 있다. 그나마 여기선 보영이 실수는 하지만 끝까지 해원과 친구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엄청난 비밀을 말해 버리면 오히려 그 말 한 사람이 친구를 잃을 수도 있다. 그런 건 생각도 않고 보영이 신의를 저버렸다고 원망하고 냉정하게 구는 건 해원이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한 행동이다.  


그런 만큼 끝까지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는 보영이 같은 친구가 오히려 진정한 친구일 수 있다. 물은 건너봐야 그 깊이를 알 수 있고, 사람은 겪어 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친구가 그렇게까지 용서를 구하며 다가가려고 하는데 한 번쯤은 용서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 못 들어주겠는가. 나도 누구 못지않게 신뢰 좋아하고 부르짖는 사람이다. 하지만 비밀이 원래 드러나라고 있는 것처럼 신뢰 역시도 깨라고 있는 거라고 하면 지나친 말장난이 될까.


인간관계를 신뢰에만 그 기조를 둔다면 상처는 안 받을 수 있고 그것이 깨졌을 때 할 말이 있겠지만 진실한 관계 더 깊어지는 관계는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신뢰 하나 지켜나가는 것도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는 그것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하지만 누구는 그랬다. 사람은 신뢰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이라고.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보영이 본의 아니게 해원에게 미움을 받는 존재가 됐지만 누군가에겐 이해받고 사랑받는 존재일 것이다. 보영의 말대로 신뢰가 깨졌다고 예전을 돌이킬 수는 없겠지만 노력은 해 볼 수 있다. 그래야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한 번 용서해 줬다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만 그때는 그때 가서 또 생각해 볼 일이고, 지금은 용서해 주는 것이 맞다. 사람이 용서해 줘야 할 때 용서해 주지 못하면 그것도 평생 후회로 남는다. 무엇보다 해원이 은섭을 가지지 않았는가. 보영은 은섭에게 사랑을 거절당했다. 해원에게 용서받지 못한다면 불쌍하지 않은가.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건 고백이다. 비밀의 폭로가 누구에게는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기도 하지만(해원과 보영의 경우), 비밀은 누구에겐 고백이 될 수 있다. 그건 해원과 이모의 경우다. 이 이야기엔 반전이 숨어 있는데 해원의 엄마가 그녀의 남편을 죽인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해원의 이모인 심명여가 죽인 것이다. 그나마 배우자 살인은 상대적으로 형이 짧지만 처제가 형부를 살해했다면 그건 무기다. 그것을 막고자 언니가 자신이 죽인 것으로 하고 대신 형을 산 것이다. 이건 확실히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우발적이든 고의적이든 동생이 자신의 남편을 살해한 건 자신이 매 맞는 아내기 때문이다. 형부에게 언니가 매를 맞는데 그 상황에서 이성적이는 쉽지 않다. 자신 때문에 동생이 살인을 저질렀는데 동생이 감옥에 가야 한다면 그것을 보고 있어야 하는 마음은 편할 리 없다. 차라리 육체가 힘들어도 마음이 편한 게 낫다. 하지만 그건 언니의 생각이고, 그 사실을 함구하고 언니 대신 조카를 키워야 하는 동생의 마음은 육체는 편할지 모르지만 마음은 지옥이다. 10년 뒤 그것을 조카에게 고백해야 한다면 조카가 받을 충격은 어떨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고백해야 할 때 고백하지 못해 그녀는 병까지 얻었다. 그리고 자신은 병이 나도 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해원의 이모에겐 병이 최악의 은총 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차선의 은총이거나.


10년 만에 고백을 하고 모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이냐는 과제가 남았다. 선택한 방법은 자신이 겪은 일을  글로 쓰는 것이다. 글쎄, 그녀가 천주교 신자였다면 진작에 신부를 찾아가 고백성사라도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물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쓴다는 건 확실히 좋은 방법이다. 그것이 세상에 알려질 수도 있겠지. 마침 신명여는 작가다. 지금까지는 익명의 독자가 그녀의 소설을 읽었겠지만 지금은 독자가 확실히 정해져 있다. 그건 조카인 해원이다. 신명여가 이 문제를 잘만 푼다면 그녀는 훨씬 더 좋고 깊어진 글을 쓰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그 사건 이후 절필을 하기도 했는데 그 마음 알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는데 무슨 (얼어 죽을) 소설이란 말인가.


중요한 건 해원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엄마가 아니라 이모라는 것을 알았을 때 받을 충격도 충격이지만 과연 이모를 용서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선 숙제로 남겨 놓는다. 사랑도 쉽지 않은데 용서는 쉽겠는가. 하지만 보영을 생각하면 해원은 둘 다를 용서해야 한다. 이 사람은 용서하면서 저 사람은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건 모순이니까. 용서가 쉽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


어찌 보면 이 이야기는 우리가 추앙해마지 않는 도 선생님의 <죄와 벌>의 또 다른 버전 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고전에서 나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지 않은가. 다소 소녀적 감성을 걷어 낸다면 꽤 의미 있는 작품이 될 것도 같은데 뭐 이 자체만으로도 나쁘진 않다. 더구나 연출 잘하기로 유명한 한지승 감독의 연출도 보는 내내 좋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소녀적 감성이란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여성 작가의 섬세함으로 봐야 하는 건지 아니면 남성다운 선 굵음을 겁내 한 발 물러선 것 같기도 하고, 전체적으론 좋긴 한데 경탄할만한 구석이 없다. 조금 더 치열하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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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8-15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나면 그동안 못 봤던 드라마라도 흥미롭게 볼 수 있을 듯하네요.
세세히 쓰셔서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그려지니까요.

stella.K 2020-08-15 17:45   좋아요 0 | URL
ㅎㅎ 어쩔 수 없는 스포예요.ㅠㅠ
이 드라마 괜찮았어요. 볼만해요.

지금 저는 <하이에나> 보고 있는데
재밌어요. 주지훈이 되게 웃기게 나오는데 연기 잘 해요.
말하자면 허당 역활인데 김혜수한테 밟히는 캐릭터죠.ㅋ
안 보셨다면 함 보세요.^^

moonnight 2020-08-15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민영 참 예뻐요^^ 이 드라마는 못 봤지만 stella. K님 정성들인 설명 읽으니 꼭 본 것 같아요^^

stella.K 2020-08-16 18:54   좋아요 0 | URL
오, 노! 직접 보셔야죠. 이건 그저 제가 생각한 걸 쓴 거구요.ㅋ
휘가 어떻게 우주 소녀인지, 서강준이 연기가 어떤지 보셔야 해요.
박민영은 예쁘고 자연스럽게 연기해서 좋긴한데
얼굴을 좀 많이 고친 것 같다는 생각이...ㅋ
그래도 뭐 연기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 같긴해요.
웃을 때 정말 예쁘더군요.^^

희선 2020-08-16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비밀은 아예 말하지 않는 게 좋겠지요 보영이 일부러 말한 건 아니었네요 어쩌다가 잘못해서 말하다니... 이모도 참 힘들었겠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는 자신이 갚는 게 훨씬 좋은데, 해원이 엄마가 자기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자신이 대신 감옥에 가다니... 멀리에서 보기에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가까이 있는 사람은 그것만 바로 앞에 일어난 일을 생각할 테니...


희선

stella.K 2020-08-16 18:57   좋아요 0 | URL
원작도 좋았고, 대본을 잘 쓰긴 했어요.
겉으론 평범해 보이는데 어떻게 감춰진 이야기를 드러내 보여주는냐가
드라마의 관건이긴 하죠.
정말 사람이 할 말을 못하고 사는 건 고통인 것 같아요.
 

오늘 예배를 드리고 교회를 나오는데 비가 많이 온 관계로 버스를 탈까하다가 지하철을 타자했다. 지하철을 타려면 교회 입구에서 발을 돌려 한층을 내려가야 한다. 그러니까 난 애초에 그러기로 했다면 한층을 더 올라 올 필요가 없고 그 일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발길을 돌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키가 작달막한 한 남자 집사님이 갑자기 나 있는 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다. 혹시 내가 예전에 알고 있는데 얼른 알아 보지 못하는 걸까? 아님 내 뒤에 누군가 있어 그에게 알은 척을 하려고 저러나? 어쨌든 쉽게 알은 척을 못하고 못 본 척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 사람 정말 나에게 볼 일이 있었다. 그는 내가 방역을 위한 체크를 안하고 예배 드리러 가는 사람으로 오인을 한 것이다. 물론 난 즉시 해명을 했다. 버스 탈까 하다가 지하철을 타려고 다시 내려가는 것 뿐이라고. 금방 오해는 풀렸지만 뭔가 모를 찜찜함이 한동안 나를 사로잡았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언제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일까. 물론 방역 차원에서 예민하게 지켜보는 게 맞는 것 같긴한데 뭔가 감시 받았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분이 엿 같았다. 더구나 그는 그렇게 오해가 풀렸는데도 사과 한 마디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물론 감시사회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코로나 때문에 더욱 심해진 것 같다. 안전을 담보로 사람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게 어쩔 수 없다지만 코로나가 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한다. 

 

생각해 보라. 코로나 감염자들. 집이나 카페에서 넋놓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코로나에 감염됐다는 문자라도 받으면 얼마나 당황할 것인가. 순간 모든 것을 중단하고 공안에 체포되듯 끌려가 어딘가에 격리된다고 생각하면 옛날 전체주의 사회와 무엇이 다른가. 

 

지난 번에 교회에 감염자가 발견되서 2주간 폐쇄되기도 했는데 2주간 현장 예배를 드릴 수 없게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짜증 보단 그 감염자가 그날 어느 좌석에 앉아서 예배 드렸는가가 나중에 모니터링 되어 보고되기도 했는데 좀 서늘했다. 물론 그 사람에 대해선 나이와 성별 정도외엔 알려진 게 없는데 그렇더라도 그 사람도 적잖은 충격이었을 것이고, 그 일이 내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마냥 가슴만 쓸어내릴 수마는 없을 것 같다. 사람이 언제 코로나에 걸릴지도 모르고 안 걸린다해도 잠재적 환자 취급 받고 감시 받고 있다는 걸 이렇게 피부로 느껴야 한다는 게 정말 인류의 비극 같다. 그저 빨리 코로나가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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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8-10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 간에 불신이 자리하게 되는, 우리가 요즘 특이한 경험을 하고 있는 거죠.
코로나로 인해 잃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를 만나 본 지도 오래되었어요. 올해 들어 한 번도 못 만났으니까요.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stella.K 2020-08-10 14:14   좋아요 0 | URL
역시 코로나 이후 사람을 자유롭게 못 만난다는 게
제일 아쉬운 것 같아요. 저도 그래요.
그나마 저는 지인 둘을 2월무렵에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땐 이렇게 확산될 줄 몰랐죠. 잠시있다 사그러들 줄 알았는데.
유럽 사람들 왜 마스크 안하려 하는지 이해되기도 해요.
거긴 워낙 개인주의 사회잖아요. ㅋ

2020-08-10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0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3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3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0-08-14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상한 팬데믹 시절,
뉴노멀이라는 이름의 규제
들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stella.K 2020-08-15 11:10   좋아요 0 | URL
그렇죠. 뉴노멀, 뉴노멀 하는데
과연 이러고 살아야 하나...?
물론 적응하기 나름이고 적응을 잘하는 자가
살아남는다잖아요. 그래도 감시받고 통제 받는 건 정말 싫습니다.
확실히 디스토피아의 세상인 것 같습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