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자기 자신을 용서하라

곡선으로 직선을 그려라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가지 말고 품에 안고 가라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사랑하라

왜 가장 원하지 않는 일에 인생을 낭비하는가

오늘이 지나면 다시 못 볼 사람처럼 가족을 대하라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목표를 세우면 목표가 나를 이끈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매일 죽으나, 두려워하지 않으면 단 한 번 밖에 죽지 않는다.

마지막이라고 느꼈을 때 30분만 더 버텨라

 

어제 미세먼지가 자욱한데도 불구하고 옆동네에서 강연회가 있어 모처럼 다녀왔다. 그동안은 병원엘 다니느라 웬만큼 필요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자제하고 있었다. 이렇게 안 다니던 강연회도 다니는 걸 보면 그만도 많이 낫다 싶다. 더구나 강연회 장소가 강남역인데, 한강을 넘어가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는 슬슬 다녀주는 것도 좋지 싶어었다. 더구나 중고샵 안에서 하는건데 강연회 전후로 책도 구경할 수 있으니 괜찮은 코스 같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강연회가 생각 보다 일찍 끝나서 책 구경 조금만하고 가려다 그만 정호승의 저 책에 꽂혀 결국 업어가지고 왔다.

 

정호승은 알다시피 시인이며 수필가이기도 한데 그래서 그런지 그의 에세이는 상당히 감성적이기도 하다. 나는 대체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문장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매번 정호승의 문체에 무릎을 꿇고 만다. 

 

아, 어찌할꼬, 읽겠다고 조금씩 건드려 놓은 책도 많은데 저 책을 건드려 놓았으니...

 

그러고 보니 오빠가 세상 떠나던 해에 오빠 방에서 발견하고 조금 조금씩 읽다 이내 푹 빠져버린 <항아리>가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읽었을 당시도 누렇게 바래진 책이었는데 두어달 전 오래된 책을 처분했을 때 저 책도 보내리라 다짐했던 걸 끝내 버리지 못했다. 

 

문득 십여년 전쯤, 나의 글 선생님을 10년 넘어 다시 뵈었을 때 좋아하는 작가가 있냐고 기습적으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난 너무도 당당하게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고 했었다. 김훈 정도는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워낙 급작스러 준비도 안 됐거니와, 난 작가가 될 사람은 자기 글 외에 남의 글은 좋아하면 안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역시 덜여문 자의 덜떨어진 대답이다. 그때 정호승을 알았더라면 난 냉큼 "정호승이요." 했을 것이다.

 

감히 김훈과 정호승을 비교한다는 게 가능하진 않겠지만(워낙 그 결이 달라서) 정호승을 알게되면 감성적이면서도 위로적인 문체에 무릎꿇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에 나를 무조건 위로하고 격려하는 글을 읽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더구나 누가 좋다더라 해서 읽고 이내 빠지는 책도 나쁘진 않지만 이렇게 우연찮게 발견하고 빠져버리는 건 더 좋지 않을까.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 가운데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는 아닐까. 내가 원하던 사람과 연애를 하는 것도 좋겠지만, 생각지도 않은 사람에게서 매력을 발견하고 사랑에 빠지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말이다. 내겐 정호승의 책이 그런 책 같다. 매번 읽을 때마다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고 나를 무릎꿇게 만드는 책. 그런 한 권쯤 가슴에 품고 사는 독자가 되어보는 것도 독자가 누리는 권리이자 행운 아닐까.  

 

위의 책 맨 마지막 문장을 보며 최근에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가수가 생각이 났다. 누군가 죽을 결심을 했던 그들에게 30분만 버텨보라고 했더라면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혹시 모르니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입버릇처럼 저런 말을 해 줘야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은 아픈 곳이 많이 나았지만 대신 이번엔 팔목이 아프다. 여기가 낫는 것 같으면 저기가 안 좋고, 저기가 낫는가 싶으면 또 새로운 곳이 아프다. 어제 약국에도 들렸는데 필요한 약만 사고 팔목 감아 줄 밴드 하나 사 볼 생각도 못했다. 약도 그렇고 다른 물건도 그렇고 꼭 사던 것만 사게 된다. 나이들면 문제해결을 위해 조금도 나아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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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12-19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이팅하세욧! 아프지마시공

stella.K 2019-12-19 15:40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19-12-22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저기 아픈 데가 생기면서 나이 들어가는 것이죠. 동병상련.
저는 좋아하는 작가를 물으면 말할 작가가 많습니다.
스텔라 님과 다르게 저는 글쟁이들은 작가를 흠모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생각했어요.

잘 지내고 계시죠?

stella.K 2019-12-23 16:21   좋아요 0 | URL
작가들끼리는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글을 본적이 있어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도 먼발치에선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 알면 실망하게 될까 봐.ㅋㅋ
근데 근래 들어 서재로의 발걸음이 뜸하신 것 같습니다.
별고 없으시죠?
어느덧 갱년기다 보니 남 아픈 게 남의 일 같지 않네요.
올해도 얼마 안 남았어요. 해 놓은 것도 없이.ㅠ

모쪼록 뜻 깊은 성탄되시고,
한 해 마무리 잘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후애(厚愛) 2019-12-24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메리 크리스마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크리스마스날 대구에 첫눈이 내리면 좋겠는데 그럴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ㅎ
감기 조심하세요.^^

stella.K 2019-12-24 18:58   좋아요 0 | URL
아, 네. 고맙습니다.^^

프레이야 2019-12-28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책꽂이에 오래전부터 있는 저 책 표지 반갑네요.
한 해가 또 기울고 있어요.
우리는 알라딘묵은지 ㅎㅎ
스텔라님 새해에도 여전하게 뵈어요. 복 많이 받으세요^^

stella.K 2019-12-28 14:17   좋아요 1 | URL
ㅎㅎ 알라딘 묵은지...! 맞네요.
바쁘신 중에도 저의 서재에 들러주시고
인사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책 요즘도 조금씩 읽고 있는데
좋더라구요. 기회되면 정호승 전작하면 좋겠다 싶어요.
프레이야님도 가지고 계시다니 반갑네요.

이제 2019년도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렇게 가는 줄 알았으면 좀 더 아껴주고 사랑해 줄 걸.
이제 가면 다시 못 오는데 말입니다.ㅠ
가는 건 아는 거고, 오는 건 또 올테니 내년엔 더 사랑해 주고
아껴줘야겠습니다.
프레이야님도 새해 바라는 소망 다 이루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인생소설 - 나는 왜 작가가 되었나
다니엘 이치비아 지음, 이주영 옮김 / 예미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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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리뷰>(번역본 '작가란 무엇인가' 전 3권 있다)라는 잡지가 있다. 1953년 창간한 이래 노벨문학상, 퓰리처상, 부커상 등 지구 상에서 더 이상 유명해질 수 없는 상을 받은 작가들을 인터뷰한 것으로 유명한 문학잡지다. 본산은 역시 프랑스가 아닐까? 그런 유명한 잡지가 같은 동향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이하 베베)를 아직 인터뷰하지 않았다는 건 어쩌면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이렇게 유명한 작가를 아직도 인터뷰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잡지의 인터뷰 조건은 뭐란 말인가. 저 위에 밝힌 조건 중 한 가지의 상이라도 받아야 인터뷰 대상이 되는 걸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베베는 명성에 비해 상복이 지지리도 없는 작가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가 그의 많은 책들을 열거하면서 무슨 상을 받았다는 글 한 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새삼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렇게 이 책의 저자가 그를 인터뷰하고 독자적인 책까지 내줬으니 그럭저럭 위로는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저자는 프랑스 내에서 유명한 전기 작가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인터뷰 보단 전기적인 느낌이 강한 책인 것도 사실이다. 읽다 보면 무슨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그만큼 문체가 유려하다.


사실 개인적으로 베베를 아주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책을 몇 권 읽어본 나로선 그를 싫어하기도 쉽진 않다.(내가 그를 좋아하지 않는 건 그의 세계관 때문이다. 특히 사람은 언제든 자의로 생을 중지시킬 수도 있다고 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좋지만 그의 사상까지는 좋아하지 않는 게 좋은 것 같다). 공상 과학 소설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그의 공전의 히트작 <개미> 읽고 그를 싫어하기란 쉽지 않다. 30년 전쯤 우리나라에 그 작품이 상륙했을 때 내가 뭐 이런 작품을 읽을 필요가 있나 거드름 피우기도 했다. 그때 후배 하나가 정말 재밌다는 말만 하지 않았어도 나는 끝까지 그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언론이 아무리 뒤떠들어도 말이다. 그 책을 읽고 베베에게 매력을 느낀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그런 공상 과학 소설에 눈을 떴다는 게 기특하고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우리가 살던 집엔 조그만 집개 미들이 함께 세 들어 살았는데 이것들은 쪼금해도 생명력이 강해서 손으로 눌러선 잘 죽지도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못 쓰는 컵에 물을 받아 놓고 거기에 빠뜨려 죽이는 것이다. 그럼 지네들끼리 엉기다 결국 물속에 빠져 죽곤 했는데 덕분에 집안에 개미가 좀 줄긴 했다. 아무래도 지네들끼리 결의를 했던 것 같다. 사람들 눈에 띄지 말자고. 혹시 눈에 띄면 서로 돕자는 말도. 하지만 왠지 <개미>를 읽고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만큼 개미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탁월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작품은 그가 30대 초반의 나이에 냈는데 소년 시절부터 개미를 관찰한 끈기도 끈기지만 관찰력이 대단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이 작품 역시 초메가톤급 히트작 <해리 포터>만큼이나 출판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는 건 이 책을 보고 알았다. 우린 흔히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는 말에 현혹되면 안 된다. 그렇게 출판되기 전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비하인드 스토리가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듯 펼쳐지는데 뭔가 마음이 찡한 느낌이 든다. 


언제나 그렇듯 작가는 첫 작품을 어떻게 내느냐와 계속 책을 낼 것이냐로 정해지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내지 말라고 말한다. 책 내봤자 읽는 사람도 없고 종이만 낭비한다고 작가가 되겠다는 의지를 어찌나 꺾던지. 더구나 비평가들에게 혹독한 소릴 듣는 건 차라리 낫다. 어차피 비평가들은 좋은 얘기는 안 하니까. 미움받는 것보다 무서운 것이 무관심 이랬다고 독자가 외면하면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 그래도 베베는 비평가들에게 욕을 먹을지언정 독자들에겐 먹히는 작가였다. 첫 작품에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이 첫 작품만큼 성공할 것인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그래도 그는 계속해서 작품을 낸다. 책을 읽어보면 전반적으로 베베의 성격은 호기심이 많고 부지런하며 성실해하다. 이건 확실히 그가 작가가 되기에 아주 좋은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형만 한 아우가 없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그다지 좋은 평판은 아닌 것 같긴 하다. 아, 물론 베베가 <개미> 이후의 작품이 범작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나 같은 경우 그가 한참 뒤에 쓴 <뇌>란 작품을 두 번째로 읽었는데 <개미> 보다 훨씬 재밌게 읽었다. 요는 처녀작 이후의 작품은 더 좋아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대체로 신인 작가들은 차기작이 처녀작만 못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의기소침해지기도 하는데 설혹 그런 소리를 듣게 될지라도 개의치 말고 계속 쓰라는 것이다. 작가가 되고 안 되고는 매번 좋은 평판을 들어야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자신이 작가임을 독자에게 계속해서 각인시키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그건 차기작이 더 낫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베베는 그렇게 열심히 써서 어느 틈엔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그건 매번 좋은 작품을 써서가 아니다. 그는 몇 번의 부침이 있었다. <개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작품도 워낙 우여곡절 끝에 나왔지만 대개는 비평가들의 혹평과 뭔가 될 듯 될 듯하면서도 안 되는 출판 상황이지만 행운의 여신은 우연히 미소 짓지 않는다. 그건 베베의 독자들에 의해 증명되기도 한다. 그의 독자들은 늘 그의 작품을 기다렸다. 거기엔 또 성실하게 쓰는 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하기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을 돌파하는 건 힘이나 판세를 읽는 영리함 뭐 그런 것이 아니라 우직한 성실함 같다. 특히 작가의 세계는. 뭐든 열심히 성실하게 하는 사람을 당해낼 재간은 없다. 하지만 성실함이란 쉬울 것 같지만 의외로 쉽지 않다.  


베베는 자기 본토인 프랑스에서 알아주는 작가이긴 하지만 해외에서 더 각광받는 작가다. 특히 저자는 베베가 한국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거의 한 페이지에 걸쳐서 쓰고 있는데 과연 그 정돈가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나라가 책을 안 읽을 땐 아주 안 읽어도 이렇게 좋은 작가는 확실히 밀어주는 근성은 있다. 그건 또 달리 말하면 좋아하는 작가에만 쏠려 있다는 뜻도 될 것이다. 또 달리 말하면 그전까지는 이렇다 할 공상 과학 작가들이 없었다 베베는 그 분야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기 때문으로도 풀이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 영화에도 손을 댄다. 그는 알만한 제작자와 배우와 협업을 하기도 했다.  


하루키를 말할 때 그는 피츠제럴드와 레이먼드 카버와 레이먼드 카버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건 이미 잘 알려졌다. 그렇다면 베베는 누구에게서 영향을 받았을까? <파운데이션>을 쓴 아이작 아시모프와 <듄>을 쓴 프랭크 허버트 그리고 스티븐 킹을 꼽기도 했다. 알아두면 알은척하기에 좋을 듯하다.


베베는 어느 대학의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 베르나르는 학생들에게 동물들이 하는 것처럼 그 어떤 목표도 세우지 말고 무엇인가를 하며 순수한 기쁨을 느껴 보자는 제안도 했다. 무엇인가를 할 때 판단하지 않고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꿀벌은 꿀을 만들 때 좋은 꿀을 만들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꿀을 만들어낼 뿐이죠. 여러분도 음악이든 그림이든 문학이든 무엇인가를 할 때 괜찮은 것인지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해보세요!" (316p)

나처럼 생각이 많아 한 발을 내 딛기도 힘든 사람에게 정말 도전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를 잘 대변해 주기 도하는 말 같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좋아하는 작가라면 꼭 읽어 봐야 하지 않을까. 


약간 아쉬운 점은 인터넷에 글을 쓰는 것처럼 문단줄 띄어쓰기가 너무 빈번하다는 것인데 웹은 쉽게 눈이 피로해지기 때문에 줄을 띄어 쓰는 게 좋은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종이책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또한 느낌표의 과다 사용도 보이는데 확실히 글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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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0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2-10 14:30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전 글 쓰기가 점점 더 좋아지는데
실제로 쓰는 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근데 전 이상하게 나 좋자고만 쓰면 더 못 쓰겠더라구요.
뭐든 리액션이 중요하다고 누군가 내 글을 좋아하고 추임새 넣어주면
잘 쓸 수 있는데...ㅎㅎ
고맙습니다.^^

빵굽는건축가 2019-12-1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기엔 또 성실하게 쓰는 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하기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을 돌파하는 건 힘이나 판세를 읽는 영리함 뭐 그런 것이 아니라 우직한 성실함 같다‘ 성실함에 대한 내용이 눈에 들어와요. 출장길에 재미나게.읽어봅니다.

stella.K 2019-12-10 14:35   좋아요 1 | URL
아유, 이렇게 열심히 읽어주시다뇨. 황송하네요.ㅎ
어제 저 리뷰 쓰느라고 팔목이 고생 좀 했습니다.
급하게 쓰느라 뭔가 미진한 게 있는 것 같기도한데 나중에 손 좀 봐야겠어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transient-guest 2019-12-10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미국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liberal한 세계관을 갖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자살이나 섹스에 대한 그의 논조는 무척 프렌치스럽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저는 그의 기발한 발상도 그렇지만 타나토노트를 읽고 처음 느낀 유체이탈의 경험이 신기했습니다. 그만큼 제가 푹 빠져 읽었던 것도 있지만 글에는 (약간은 미신적/주술적인 이야기) 뭔가 힘이 깃든다는 말이 떠오르더라구요. 그리고 지금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K-Pop의 한국 이전부터 한국을 다뤄준 것도 기억이 나네요. 보통 아시아가 서양작가의 책에 등장할 땐 중국 아니면 일본이던 시절부터 말이죠.

stella.K 2019-12-10 14:3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세계관이 쫌 그래요.
동양사상 그중에서도 장자인지 도교에 심취해있다고 하던데...
하지만 그의 소년 같은 지적 호기심은 높이 사 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베베하고 우리나라 정서하고 뭔가 잘 맞는가 봐요.
유독 우리나라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군요.

카알벨루치 2019-12-19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베배 글 하나도 안 읽었네요 ㅎ

stella.K 2019-12-19 15:46   좋아요 1 | URL
헉, 의왼데요? 저 같이 공상과학 소설 잘 안 읽는 사람도
베베의 책 한 두 권은 다 읽는데...
저는 그의 초창기 소설을 추천합니다.
<개미>나 <뇌>는 정말 훌륭하죠. 후기로 갈수록 별론 것 같아요.
하지만 정말 노력하는 작가임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혼밥 자작 감행 - 밥도 술도 혼자가 최고!
쇼지 사다오 지음, 정영희 옮김 / 시공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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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고 먹는 게 중요하긴 한가 보다. 못 먹던 시대는 못 먹던 시대대로, 잘 먹는 시대는 잘 먹는 시대대로 고민이 많다. 그것은 영양학적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우리는 이 문제가 해결이 되면 문제가 없을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자 먹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됐다. 바로 혼술, 혼밥이 대세인 시대가 된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같이 어울려 먹는 것이 피곤하단다. 게다가 같이 먹으면 메뉴를 통일해야 하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없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혼밥, 혼술이 대두되기 이전엔 우리가 중요했지만 이젠 내가 중요해졌다. 과연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간다. 먹는 주체는 난데 왜 남의 뜻에 묻어가야 한단 말인가. 미워하면서 진수성찬을 먹기보다 한 가지의 음식을 먹어도 편한 마음으로 먹자는 의미에서 혼술, 혼밥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혼자 먹는 게 꼭 즐거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결국 뭐든 마음먹기 나름 아닐까. 같이 먹는 것이 불편한 사람은 혼자 먹어도 불편하고, 혼자 먹는 것이 즐거운 사람은 같이 먹어도 즐거울 것이다.


좋으나 싫으나 매번 혼자 먹는 것을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자발적인 건지 아니면 이런저런 사정 때문인지 아무튼 혼자 먹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니까 이런 책도 냈겠지. 보통의 내공 가지고 이런 책이 나올 리 없다. 우리나라엔 잘 안 알려진 작가다. 일본 내에선 만화가로 활동하고 있고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일을 하는가 보다. 


나이가 많으니 혼자 먹는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할 것도 같은데 그렇지도 아닌가 보다. 책 한 권을 낼 정도니 말이다. 하긴 사람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 시작하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느 식당에서 여든 넘은 노인이 혼자 술이나 밥을 먹는다고 하면 예사로 보지 않을 것이다. 이 시간에 왜 혼자 와서 저러고 있는 걸까, 독거노인인가, 배우자와 싸우고 갈 곳이 없나, 왠지 쓸쓸해 보이네 등등. 하지만 저자는 그러면 그럴수록 더 당당해지라면서 노하우를 공개하기도 한다.   


사람은 태어나 엄마 젖을 빨 때부터 혼자 무엇을 먹도록 되어있지 않는 것 같다. 그만큼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교감이란 말이다. 하지만 자라면서 매번 사람들과 뭔가를 먹을 수는 없다. 집에서라면 문제가 없겠는데 문제는 학교나 직장 등 사회생활을 하면서 왠지 혼자 먹으면 어색할 거란 사회적 편견이 이런 책을 낳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본 두 개의 TV 영상이 생각났다.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한 외국인이 혼자 점심을 먹으러 어느 식당에 들렀는데 그곳 주인이 자신을 되게 안쓰럽게 보고 있어서 불편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또 하나는 한물간 어느 아이돌이 혼자 어디까지 놀아 볼 수 있을까 레벨 테스트를 하는 장면이었다. 혼고라고 해서 혼자 고기를 먹는 게 혼밥, 혼술 보다 훨씬 높은 레벨이었다. 그는 좀 어색했긴 했지만 혼고를 무사히 통과했다고 안도하는 모습이다.  


전자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서양에서 온 외국인이 었는데 알겠지만 서양은 개인주의가 팽배한 곳 아니던가. 그러니 식사를 혼자 하는 것쯤이야 아무 문제가 안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을 두고 우리나라 잣대를 들이대 외롭지 않을까 안쓰럽다고 생각하는 건 괜한 오지랖을 넘어 무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후자의 경우 그렇게 어색한 걸 통과했다고 좋아하느니 차라리 고기를 사서 집에서 먹거나 마음에 맞는 사람 한 둘과 같이 오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그 아이돌이 고기를 함께 먹을 사람이 없으리만큼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 테니까. 요는 혼자 먹든 같이 먹든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다는 거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혼밥은 누구도 피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일수도 있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독신으로 살게 될 때다. 혼자 있으면 밥을 잘 안 먹게 된다. 먹어도 대충 때우거나. 중요한 건, 그럴수록 더 맛있게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돌아가신 친할머니는 일찍 홀로 되시기도 하셨지만 또 일찌감치 자식들을 출가시키기도 하셨다. 연로하시니 이젠 누군가 차려주는 밥을 드셔도 좋을 텐데 그러지 않으셨다. 혼자 지내시기 뭐해 세를 두기도 하셨지만 그렇다고 그 세든 사람과 밥까지 같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할머닌 언제나 밥과 반찬을 손수 만들어 꼭 밥상에 받혀 안방에서 드시곤 했다. 어느 한 끼도 부엌 부뚜막에 앉아 대충 때우시는 법이 없으셨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야 말로 진정한 혼밥의 고수는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일까, 할머니는 80을 넘겨 사셨으니 옛날 노인 치고 장수하신 편이다. 매번 그러기가 쉬웠겠는가. 어쩌면 할머니에게 혼밥은 하나의 수행 같은 거였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드니 그런 할머니가 많이 생각이 난다. 나도 과연 할머니같이 살 수 있을까. 


사실 난 예나 지금이나 혼밥이 그리 익숙하지 못하다. 물론 집에서는 전혀 문제가 안 되지만 바깥에 나가서 혼자 무엇을 먹는다는 게 익숙하지 않다. 그래도 요즘엔 식당 어디를 가도 혼자 먹는 사람 한 둘은 꼭 보게 되니 닥치면 잘한다. 오래전 혼밥 혼술이란 말이 나오기도 전 나는 갑자기 김밥이 너무 먹고 싶어 정말 혼자 식당에 들어가 먹고 나온 적이 있다. 그때 누구와 같이 먹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혼자 먹는다는 불편함 감수할 만큼 김밥이 먹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먹는 내내 '까짓 거 혼자면 어때 이렇게 맛있는 걸.' 하며 혼자 먹는 나를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거기엔 TV가 한 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건 확실히 사람의 마음을 다소 편하게 해 준 것도 사실이다.       


책을 보면 혼식에도 나름의 요령은 있는 것 같긴 하다. 이를테면 주인이 너무 친절한 식당은 가지 말란다. TV는 필수고, 읽을거리를 챙겨 가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그리고 지나치게 밝은 곳이나 깔끔한 곳 보단 다소 허름한 곳에 가급적 화장실이나 출입구 가까운 구석진 곳에 앉으라고도 한다. 저자가 우리와 가까운 일본 사람이고 보면 정서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렇게 챙겨서야 어디 편하게 식당인들 갈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조차 버려야 진정한 혼밥인이 되는 건 아닐까. 그럴 수 없다면 거듭 말하지만 차라리 그냥 혼자 집에서 먹어라. 그게 훨씬 낫다. 


이 책은 정서가 비슷한 우리나라에선 어느 정도 읽힐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와 사고방식이 다른 앞서 말한 서양인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솔직히 난 이 책을 다 완독 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어느 유명 셰프가 재밌다고 극찬해서 호기심에 읽었는데 별로였다. 같은 동양권이라고 해도 먹는 음식이 다르고 낯서니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 혹시 우리나라 어느 미식가가 쓴 책이라면 좀 읽어 줄만 하지 않았을까. 그만큼 호불호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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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12-01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혼밥 마니아는 음식을 천천히 먹을 줄 아는 사람이에요. 대부분 사람은 음식을 빨리 먹는 편이에요. 그리고 주위 사람들 눈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빨리 먹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제가 혼밥을 선호하는 이유는 음식을 천천히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건강을 위해 음식을 오래 씹으면서 먹어야 해요. ^^

stella.K 2019-12-02 14:23   좋아요 0 | URL
맞아. 그리고 아무거나 대충 때우지 않고
자신이 직접 만들어 먹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겠지.
우리 할머니처럼.^^

페크(pek0501) 2019-12-04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밥 먹으면 맛을 깊게 음미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누군가와 먹으면 말하면서 먹느라 들으면서 먹느라 맛 음미가 소홀해질 수 있죠.
커피도 그렇더라고요. 누구와 만나 마시면 정신 없이 마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어느 나라의 음식점에선 말없이 음식을 먹어야 하는 규칙이 있대요.

stella.K 2019-12-04 14: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게 가장 좋은 혼밥의 자세일 거예요.
그런데 이 책은 어떻게 하면 혼자 먹는 그 머쓱함을 최소화
할거냐 뭐 그런 거에 촛점이 맞혀진 듯하고 나머지는
무슨 요리는 이렇더라 저렇더라며 소소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생각 보다 재미가 없더라구요. 제가 일본 요리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저는 기독교인이지만 불자들이 바루공양하는 건 정말 좋은 모습같아요.^^

후애(厚愛) 2019-12-04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점심때만 혼자 밥을 먹는데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혼자 먹을 때는 너무 급하게 먹어서 말이지요.^^;;
그리고 대충 먹어요.
같이 먹을 때는 이것저것 만드는데 이상하게 혼자 먹게 되면 요리도 하기 싫고 대충 먹게 되네요.

많이 춥습니다.
옷 따뜻하게 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stella.K 2019-12-04 18:47   좋아요 0 | URL
ㅎㅎ 먹는 것도 성격 나름이긴 해요.
어떤 사람은 혼자인 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후애님처럼 누군가를 즐겁게 해야 비로소 나도 즐겁게 되는.
좋은 성격이이신 것 같습니다.
저는 음식을 이것저것 한꺼번에 못 만듭니다. 너무 힘들어
한 두 가지만 만들어 먹는 타입이죠.

그러게요. 올 겨울도 별로 안 추울 거라고 하긴 하는데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네요. 후애님도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후애(厚愛) 2019-12-06 17:20   좋아요 0 | URL
정말 올 겨울도 별로 안 추울 거라고 하더니 옆지기 때문에 오전에 병원 갔었는데 많이 추웠어요.
이런 날씨에는 따뜻한 방에서 귤을 먹으면 책과 시간 보내는 게 딱인 것 같습니다. ㅎ
따뜻하게 주말 보내시고요, 항상 건강하세요!!!!^^

stella.K 2019-12-06 20:36   좋아요 1 | URL
오늘 모처럼 중고샵 갖다왔는데 춥긴 춥더군요.
우리나라 추위가 시베리아 추위보다 더 춥다고하는데
안 가 봐서 모르겠고 그래도 몇분 지나면 곧 익숙해지던데요 뭐.ㅋ
후애님도 주말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서니데이 2019-12-07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는 잘 모르겠는데, 지금은 혼자 밥먹는 것도 영화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약속이 생겨서 친구를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혼자 편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더라구요.

12월이 되니, 날씨가 이젠 진짜 겨울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제는 정말 차가웠어요.
갑자기 날씨가 차가워져서 감기 걸린 분도 많으시대요.
steall.K님,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transient-guest 2019-12-0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술은 좀 합니다만 혼밥은 귀찮아서 대충 때우게 됩니다 그냥 뭐 싸가거나 사갖고 와서 사무실에서 편히 먹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편한 걸 최고로 치게 됩니다 ㅎ

stella.K 2019-12-09 12:58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술 먹는데 안주는 간단하잖아요. 땅콩 하나만 있어도 안주가 되니.
혼밥은 귀찮긴 해요. 그래도 요섹남이라고 요리 몇 가지는 알아두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ㅎㅎ

transient-guest 2019-12-10 09:39   좋아요 1 | URL
아 혼밥여부와는 별개로 제가 요리는 좀 합니다 ㅎㅎ 뭐 잘 한다기 보다는 이것 저것 그냥 할 줄 아는 정도 ㅎㅎ
 

요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란 책을 조금씩 읽고 있다. 읽다가 등장인물인 우치다가 이런 말을 한다. 


"먹고 자고 사는 곳이라고 한 것은 참 적절한 표현이야. 이들은 뗄 수 없는 한 단어로 생각해야 돼. 먹고 자는 것에 관심 없이 사는 곳만 만들겠다는 것은 그릇만 만들겠다는 얘기잖아? 그러니까 나는 부엌일을 안 하는 건축가 따위 신용하지 않아. 부엌일, 빨래, 청소를 하지 않는 건축가에게 적어도 내가 살 집을 설계해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어."(106p)


우리나라의 건축가 특별히 집을 짓는 건축가들은 저 말에 얼마나 동의할지 모르겠다. 요즘의 건축가들은 동의할지 모르지만 예전엔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것 같다. 예전엔 건축가들이 집을 짓는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건축가들을 집 장수 또는 미장이라고 낮춰 부르며 공간이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공간에 맞추는 구조였다. 부엌만 해도 요즘에 과연 저런 부엌이 있나 싶기도 한데 실제로 없지는 않은가 보다. 몇 년 전부터 시즌제로 방영되고 있는 <삼시 세 끼>라는 프로를 보면 찬장이나 부뚜막이 부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아예 마당 한 귀퉁이에 나와있는 걸 볼 수가 있다. 비나 바람을 겨우 가리는 정도로 얼기설기 만들어져 있는데 딱 70년대 분위기 그대로다. 


어렸을 적 내가 기억하는 첫 집은 세를 줄 수 있게끔 지어졌다. 창문은 있으나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그래서 천정에도 창문을 냈지만 그것 역시 비나 한기를 막기 위해 슬레이트 지붕 쪼가리로 덥어 빛이 안 들어오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낮에도 겨우 형체나 알아보는 정도여서 불을 켜고 있어야 했다. 문간방 옆의 부엌은 말이 좋아 부엌이지 수도 시설도 없는 광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물론 불을 때는 아궁이는 있었다). 요즘 같으면 그런 집에 세 들어 살겠다고 올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은 우물이나 수도도 공동으로 쓰는 경우가 많아 그게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세탁기도 있는 사람이나 쓸 수 있는 시절이었으니까. 찬장 놓을 자리는 있으나 낮은 부뚜막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고 물도 맘대로 쓸 수 없으니 물 쓸 일은 모두 마당에 나와 해결해야 했다. 그래도 꼭 부엌에서 물을 써야 하는 일이 있다. 그럴 경우 셋방 아줌마는 양동이의 물을 한 가득 퍼 가져가 국이나 찌개를 끓이고 냄비에 밥을 안쳤다. 나중에 아줌마는 그 일이 너무 번거로웠는지 엄마에게 큰 항아리를 빌려 부엌 한쪽에 세워두고 거기에 물을 아구까지 채우고도 한 양동이의 물을 더 가져다 놓았다. 모르긴 해도 그 아줌마는 항아리에 물이 채워지면 배가 불렀을 것이고 줄어드는 것을 보면 아까워했을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아줌마의 모습이 애잔했다.     


부엌도 부엌이지만 욕실과 화장실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지 싶다. 내가 자랐을 때만 해도 욕실이 생략된 집이 많았다. 친가나 외가댁은 물론이고, 내가 살던 집은 목욕탕이 있긴 했지만 안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별도로 지어져 있어 슬리퍼를 신고 가야 했고 그나마 추운 겨울엔 감기 걸릴 것을 걱정해서 부엌에서 씻은 적도 있다. 그렇게 부엌은 목욕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펄펄 끓는 물과 빨간 고무 대야 하나만 있으면 부엌에서의 목욕은 언제든 가능했다. 


그 옛날 변소는 왜 그리도 멀고 무서웠던지. 변소를 왜 변소라고 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어렸을 적 나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나와 비슷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의 집에 처음으로 놀러 가서 약간의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 아이의 집은 변소가 아닌 화장실에 양변기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난 방광이 터져나가기 직전인데도 그 위에 앉아 일을 보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왜냐하면 안 써 봤기 때문이 아니라 써 봤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아버지를 따라 큰 고모댁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집 역시 양변기를 사용했다. 멋모르고 위에 앉아 일을 보다가 곤혹을 치렀다. 그때의 트라우마가 작동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어린이 변기 시트가 있다지만 그땐 그게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 그 친구와 그 친구의 언니의 허락을 받고 그 집 부엌 수채 구멍에 일을 해결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 이사를 했는데 그때까지 기와집을 벗어나 소위 말하는 양옥으로 이사를 했다. 얼마나 좋던지. 하지만 난 그때도 양변기에 대한 트라우마를 벗어버리지 못했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양변기에 앉았다 일어났을 때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 안도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내 몸이 자라 있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실내 한 공간에 부엌과 변소와 목욕탕이 함께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야 비로소 부엌은 주방으로 변소는 화장실이란 이름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집의 구조에서 부엌과 변소는 가장 홀대받던 공간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집은 무엇을 중심으로 발전했을까. 모르긴 해도 마루와 안방이 중심이 되었을 것이다. 한옥도 그렇고 기와집도 그렇고 마루는 마당과 턱이 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높이가 높으면 높을수록 신분의 높음을 나타내지 않았을까. 가장 큰 방을 안방이라고 했던 것도 대가족이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는 문화였으니 그랬겠지만 거기에 가부장이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거기에 여자를 배려한 주방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양옥의 시대를 맞으면서 부엌과 변소가 실내에 들어왔다는 것은 여자와 어린아이 심지어 노인을 배려한 획기적인 주거 시스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집은 해가지면 전기도 아낄 겸 거실에 불을 켜놓는 것이 아니라 주방에 불을 켜놓았다. 그때 처음 쓰기 시작한 식탁은 밥만 먹는 곳이 아니라 언니나 오빠가 숙제나 시험공부를 했다.  


그러다 거의 14, 5년 만에 집을 아예 허물고 새롭게 지었다(물론 그안에 한 번 크게 수리를 한 적이 있긴 하다). 공교롭게도 그때 살던 동네가 개축 붐이 일어났는데 그 바람을 타고 우리 집도 그렇게 한 것이다. 그때 우리 집은 언덕 꼭대기에 있었는데 집을 새로 짓고 그전까지 우리가 얼마나 한심한 집에서 살았는지 처음 알았다. 처음 이사 올 때 그렇게 좋아라 했던 집이었는데 전혀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왜관에만 신경을 썼을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주거 시스템이 발전 단계에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우선 마당을 대폭 줄인 게 좀 아쉽긴 했지만 대신 실내 공간은 그만큼 늘어났다. 안방과 거실은 넓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지만 주방을 넓힐 생각을 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예전의 화장실이 있던 자리에 배치를 했다. 그러면서 큰 창문을 두 개나 내었다. 그 창문을 통해 동네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좋은 날은 멀리 여의도 63 빌딩까지도 다 보였다. 그런 것을 예전에 화장실 자리로 삼았다니. 알다시피 어느 집도 화장실 창문을 크게 내는 경우는 없다. 대신 예전에 주방이 있던 자리에 화장실 겸 욕실을 만들었다. 화장실 창문 치고는 좀 크게. 또 그렇게 생각하니 예전 집 주방 창문도 그리 크지 않았던 게 생각이 났다. 통풍을 위해서라도 주방창문은 크게 내도 좋았을 텐데 왜 그렇게 조그마하게 지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 집은 소위 말하는 집 장수가 지었는데 그렇게 훌륭한 주방을 짓고도 그는 집을 잘 지었느냐 못 지었느냐는 화장실을 어디다 지었느냐로 알 수 있는데 이 집은 좋은 위치에 지어졌다고 만족해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화장실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에 그 집 장수의 말에 금방 수긍할 수 있지만 소설 속 우치다의 말과는 좀 차이가 있어 보이긴 하다.


집 설계에 아버지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집은 역시 살아 본 사람이 더 잘 아는 법이다. 더구나 이제 새로 지으면 또 언제 다시 짓게 될지 모르니 신중의 신중을 기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설계가 좋으면 뭐하겠는가. 여기저기 공사를 날림으로 해서 짓고도 하자 보수하는데 애를 먹었다. 그래도 주방 하나만큼은 끝내주게 잘 지어서 한동안 우리 집의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다. 모르긴 해도 아버지는 설계 일을 했어도 잘하셨을 것 같다. 


요즘엔 우리나라도 주방에 꽤 공을 들이는 추세인 것 같다. 그래서 주방을 아예 제2의 거실이란 개념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진 것 같은데 이게 과연 소설 속 우치다가 했던 말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TV를 보니 주방 한쪽 귀퉁이에 조그만 책상과 독서용 스탠드를 놓고 나름의 운치를 살렸는데 꽤 괜찮아 보이긴 했다. 하지만 묘하겠도 나는 그 옛날 셋방 아줌마가 부엌에 갔다 놓았던 물항아리와 오버랩이 되고 말았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에게도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는데, 뀡 대신 닭이라고 현실적으론 그게 불가능하니 주방에 그런 조그만 공간이라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것이 낫겠지만 그래도 왠지 애잔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여자가 있어야 할 곳이 여전히 주방 한쪽 귀퉁이라니. 원래 여자는 그렇게 애잔한 존재였던가.


다시 한번 우치다의 마지막 구절을 읽어보자. "... 그러니까 나는 부엌일을 안 하는 건축가 따위 신용하지 않아. 부엌일, 빨래, 청소를 하지 않는 건축가에게 적어도 내가 살 집을 설계해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어." 뭔가 철학이 느껴지는 말이다. 나 역시 그 사람이 아무리 능력자고 잘난 사람이라도 일상을 잘 살지 않는 사람은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제시간에 자고, 제시간에 밥을 먹고, 빨래며 청소를 미루지 않고 일정 정도의 청결을 유지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신뢰할만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건축가에 빗대면 저런 말이 나오지 않을까. 또 집을 짓는 일은 당연히 그 안에 들어가 사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 그 공간을 이해하지 않고 서야 어떻게 집을 짓겠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우치다의 말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의미심장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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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9-11-25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 화장실이에요. ^^

stella.K 2019-11-25 19:28   좋아요 0 | URL
작가님은 서재 아니신가요?ㅎㅎ
남자들은 대체로 그런 것 같긴 하더라구요.
저의 돌아가신 아버지도 화장실을 오래 사용하곤 하셨죠.^^

cyrus 2019-11-25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2~93년에 공동 화장실이 있는 집에 살았어요. 그러니까 화장실이 집 밖에 있었고, 우리 집 옆집에 사는 사람도 사용하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그 화장실이 변소인지 양변기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94년에 이사한 집의 화장실에 양변기가 있었어요. 화장실이라는 곳은 친숙하면서도 생각보다 무섭게 느껴지는 작은 규모의 장소라고 생각해요. 제가 예민해서 그런지 양변기 있는 화장실에 혼자 가는 것이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stella.K 2019-11-25 20:54   좋아요 0 | URL
와,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나도 그 비슷한무렵 교회 청년부에서
봉사활동을 나갔는데 강남의 한 빈촌을 간 적이 있었어.
알지 모르지만 강남이 모두 잘 사는 건 아니거든.
빈부 격차가 심하지. 그곳 화장실이 공동으로 쓰는 데였지.
난 무서워서 한 번도 못 가봤어.
넌 양변기인데도 무서웠구나. 난 재래식 변소가 무서웠고
양변기는 싸이즈가 안 맞아서 물이 옆으로 세고 그랬거든.ㅎㅎ

빵굽는건축가 2019-11-25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밑줄그어가며 읽었던 책 이야기가 나오니 댓글 달지 않을 수 없네요
동료 건축가들에게 권해주는데 재미가 없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고
겨우 다 읽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저는 너무나도 설레이며 읽었던 책이에요
특히 책에 등장하는 요시무라준조 선생님의 작품들이 나온 오래전 책들을 몇 권 구입해서 볼 정도로 재미나게 보았던 책이에요 반가워요 ^^ 샘

stella.K 2019-11-25 21:06   좋아요 0 | URL
앗, 요시무라준조 선생의 책이 몇 권 있나요? 혹시 추천 좀...
솔직히 평이 좋아서 읽고 있긴 하는데 조금 지루하긴 하더라구요.
그래도 묘사라던가 문체가 정말 좋더군요.
글이 보통이 아니라 끝까지 읽어 보려구요.
이거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은데 영화는 안 나오네요.^^

빵굽는건축가 2019-11-25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선생님 요시무라준조 선생의 책은 단행본은 찾기 어려워서 몇권의 잡지를 구입해서 보고있어요. ^^ 맞아요 문체랑 묘사가 좋아요. 제가 예전에 설계사무실 다니던 풍경이랑 그런 설렘이 있는 책이에요. ^^

니르바나 2019-11-25 21: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정말 잘 쓰셨네요.
이를테면 스텔라님 어릴 때 그 시절 집의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한편의 건축 문화사네요.
살펴보니 요즘도 이달의 리뷰, 페이퍼를 시상하던데
이번 달에는 스텔라님의 이 글이 뽑혀야 된다고 알라딘측에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이것저것 잔뜩 상품을 집어 넣은 글만 이달의 리뷰, 페이퍼로 시상할 게 아니라
바로 이런 글을 뽑아야 된다고 거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stella.K 2019-11-26 14:36   좋아요 0 | URL
아, 니르바나님 고맙습니다. 님의 칭찬을 받으니까 으쓱한데요?ㅎㅎ
그래도 뭐 알라딘이 작심하고 쓴 글은 대체로 주는 편 같더라구요.
이렇게 니르바나님이 칭찬하실 정도면 다음 달에도 무난히 받지 않을까요?ㅋ

이 책 좋더라구요. 니르바나님께도 어울리는 책은 아닐까 합니다.
고맙습니다.^^

빵굽는건축가 2019-12-05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읽어 보니 정말 연작같아요. ^^

그나저나 다행이네요. 저는 집에서청소 빨래 특히나 화장실청소 전문이에요. ^^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읽다 멈추었는데 다 읽어 보셨나봐요. ^^

stella.K 2019-12-05 15:20   좋아요 1 | URL
ㅎㅎ 아니어요. 전 버지니아 울프는 오래 전 도전했다가 실패했죠.
자기만의 방은 워낙에 유명해서...ㅠ

빵굽는건축가 2019-12-05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울프의 글을 읽다가 접어놓은지 1년이 되어가요. ^^
 
보도지침 걷는사람 희곡집 3
오세혁 지음 / 걷는사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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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여러 장르가 있지만 희곡은 내놓은 자식 같아 왠지 짠한 느낌이 든다. 일반 독자들도 소설이나 에세이, 시는 읽어도 희곡은 잘 안 읽지 않는가. 나도 한때는 연극  대본을 썼고 지금도 간간히 기회 있을 때마다 쓰고 있긴 하지만 희곡은 잘 읽지 않는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아무리 TV 드라마와 영화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도 책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희곡은 공연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헤겔은 희곡은 시와 소설의 특성을 다 갖춘 변증법적 형식이라며 가장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유럽의 이렇다 할 작가들도 희곡을 쓰기도 하고, 독자들 역시 일상적으로 희곡을 즐겨 읽는다고 한다. 과연 그런 풍토가 우리나라엔 언제쯤이면 정착이 될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희곡집을 읽었다. 이 책은 저자의 두 번째 책이라고 한다. 저자는 연극 연출도 겸하고 있는데 첫 번째 책이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고, 두 번째 책은 그로부터 5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쯤 되면 작가로서는 엄청 게으른 작가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공연을 해야 하는 연출가의 입장이라면 꼭 게으르다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작가의 입장에서 자신의 작품이 공연이 되든 안 되든 꾸준히 쓰는 노력을 한다면 독자들도 언젠간 희곡을 공연용이 아닌 문학의 한 장르로 인식하고 읽게 되지 않을까? 아님 우리나라의 지명도 있는 작가들도 영역을 넓힌다는 의미에서 가끔 희곡도 써 주시던가. 시와 소설의 특성을 함께 두루 갖춘 분야가 희곡이라지 않는가. 보통 우리나라에 알려진 소설가들 그들의 시작은 시였다가 소설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젠 그러지 말고 희곡을 경유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저자가 필력이 있어 보인다. 수록작 모두 수준 있어 보이는데 그중 나는 '괴벨스 극장'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괴벨스는 알다시피 히틀러가 총애하던 인물이었고, 극은 그가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히틀러의 눈에 띄어 나치 시대를 열어 나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선동가로서 문학 및 예술을 사랑했고 그것을 교묘히 나치 선동에 이용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장애자였고 삐뚤어진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알고 보면 그 자신 스스로가 그랬다기 보단 주위의 사람들이 그를 잘못된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 괴벨스란 인물을 작품 속에서 살려내면서 오늘날의 세태를 풍자하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그 엮는 솜씨가 제법 근사하다. 작가의 이런 풍자와 비판은 다른 여타의 작품에서도 보이고 있는데 희곡의 장점은 바로 이런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특별히 이런 파편화된 포스트모더니즘의 사회에서 예술은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작품 전반에 깔려 있기도 한데 과연 예술가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제 한 번 작가의 작품을 귀로 들어봤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맨 마지막 수록작 '분장실 청소'는 연극의 마지막 공연과 함께 철거될 분장실에서의 철거반원과 배우, 가수의 처남 등이 펼치는 일종의 콩트 같은 느낌이기도 한데, 재치도 있으면서 웃픈 연극이기도 하다.      

      

앞서 희곡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요즘은 희곡집들이 꽤 괜찮은 판형으로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일반 독자들도 시야를 넓혀 희곡도 즐겨 읽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추천할만하다.  

 

햄릿이 연극에 대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잊지 말게. 연극은 인간의 영혼을 빛추는 거울이어야 하네.‘ 뭔 뜻인지 알아? 연극을 하기 전에 인간이 되란 소리야.너희들은 연극 하려면 멀었어. 왜냐? 인간이 덜 되었거든. 내가 너희를 배우가 되기 전에 인간으로 만들어 주겠다. - P20

생각하면서 살지 마라. 살면서 생각해라. 시대는 바뀌고 바뀌고 또 바뀐다. 그때마다 시대의 부끄러움도 달라진다. 그때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라. 그럼 너는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다. 이 온갖 가능성이 열려 있는 파릇파릇한 놈아.- P23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이여. 환난의 파도를 이 손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죽는다는 것은 잠든다는 것 잠든다는 것은 꿈꾼다는 것. 내게 꿈꿀 권리가 없다면 세상의 비난과 조소를 어찌 견뎌낼 수 있을까. 폭군의 횡포, 세도가의 모욕, 사랑의 고통, 무성의한 재판, 관리들의 오만, 세상 곳곳 악취를 풍기며 썩어들어가는 부패, 이 더러운 똥통 같은 세상을 어찌 참아낼 수 있을 쏘냐. 한 자루의 단도면 깨끗이 청산할 수 있을 것을.

주혁들, 박수

이게 바로 독백이야. 마음의 말이지. 일상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말이지. 마음속에 흐르는 생각을 혼자만의 시공간에서 말하는 것이 독백이다. 연극이 위대한 이유는 독백이 있기 때문이야. 일상에서는 한 사람이 긴 시간 동안 말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저마다 자기 말을 하지. - P29

인간이란 존재는 그런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과 살아가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과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굴 싫어하거나 경멸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의 지식은 우리를 냉담하게 만들었으며, 우리의 영리함은 우리를 차갑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생각은 많이 하면서, 느끼는 건 정말 짧습니다. 우리는 기계보다는 인간성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영리함 보다는 친절함과 상냥함이 필요합니다. 이것들이 없다면, 인생은 폭력이 될 것이며, 우리 모두 헛되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미워하지 마십시오. 사랑받지 못한 미움일뿐이고, 자연스럽지 못한 증오일뿐입니다.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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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11-13 14:42   좋아요 0 | URL
그래도 셰익스피어 정도는 읽으시지 않으셨을까요?
기회되시면 함 읽어 보세요. 시나 소설과는 또다른 맛이 있어요.^^

페크(pek0501) 2019-11-14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곡 읽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예전에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다 읽었지만 소설에 비해 스피드를 내어 읽을 수 없었죠.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름까지 기억해 가며 읽는 게 부담스러워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희곡 <관객 모독>을 사지 않고 그의 소설로만 두 권을 샀어요.

좋은 희곡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읽어 보겠습니다.

stella.K 2019-11-14 14:27   좋아요 0 | URL
ㅎㅎ 맞아요. 솔직히 셰익스피어 좀 어려워요. 그런데 왜 셰익스피어를 읽지 않고는 희곡을 논할 수 없는 것처럼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래서도 희곡을 가까이 할 수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희곡은 많이 못 읽어서 감히 추천할 수 있는 수준은 못되구요,
얼마전에 읽은 범우사에서 나온 희곡 안중근도 괜찮고, <현대 명작 단만극 선집>이란 책도 꽤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저는 나혜석의 생애를 다룬 희곡집으로 나온 게 있어 찜해 둔 적이 있는데
읽어보고 싶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