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달동안 이용하는 통신사에서 컨텐츠를 무료로 볼 수 있게 해 줘서 나름 부지런히 원없이 봤다. 나이 드니까 영화도 시큰둥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   

  

액션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왜 이 영화에 사람들이 환장하는지 알 것도 같다. 예전 액션 영화는 주인공이 반드시 어려움에 직면하고 그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가를 보여주는데 이건 그런 게 없다. 그냥 보면 범인을 찾아내고 무조건 응징한다. 그게 관객으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는 걸 영화 관계자들이 알았나 보다.


내가 쫌 좋아하는 손석구 피의 칼부림을 하는 건 확실히 보기가 역한데 마동석 때문에 그게 상쇄가 된다. 거침이 없고 두려움도 없다. 확실히 악을 응징하는 캐릭터는 언제나 환영을 받는다. 나름 귀엽기도 하고 매력적이다. 특히 그의 핵주먹은 믿음을 준다. 마지막 버스 대결신은 가히 압권이다.     


자막 많고 대사 많은 영화 이젠 별로다. 벌써 10년도 더된 작품인데 지금 봐도 좋다. 하긴 애니매이션의 장점은 그런 거 아니겠는가. 대사가 거의 없다. 그냥 보고만 있는 것으로도 그림을 보는 것처럼 너무 편하고 좋다. 

난 내가 이 작품을 이미 본 줄 알았다. 그랬더니 처음 봤다. 그럼 내가 뭘 보고 봤다고 착각하는 걸까...



클레이 애니매이션이다. 미국과 호주, 보모의 방치속에 살아가고 있는 18세 소녀와 44세 아스퍼거 증후군(자폐의 일종)을 앓고 있는 아저씨와의 무려 22년간의 우정을 코믹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음산하고 괴기스럽다. 팀 버튼의 애니매션을 연상하게 되는데 놀라운 건 실화를 바탕으로했고, 여러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람이 불행한 환경속에서 산다고 꼭 그 사람의 운명도 불행한 것은 아니라는 걸 작품은 보여주고 있다.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작품. 작품을 논한다는 게 별로 의미가 없어보이긴 한데, 고백하자면 난 이 작품을 이번에 처음 봤다. 멋지긴 한데 아무래도 시리즈로 보는 건 좀 부담스러운 것 같아 여기서 만족하기로 했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우연히 영화 채널에서 봤는데 아쉽게도 끝까지 보지 못했다. 이번에 다시 봤는데 나름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70년대 미국 이민 사회를 그렸다. 

난 한예리의 차분한 연기도 좋고, 윤여정의 자기중심적인 연기도 좋긴한데 왠지 스티브 연의 연기가 마음이 간다. 가장으로서 한 가정을 책임지고 산다는 게 쉬운 일인가. 남자가 됐든 여자가 됐든 가장이 된다는 건 역시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아내의 바람대로 장모를 모셔와 함께 살기로 했는데 이번엔 손자와 외할머니가 잘 못지낸다. 할머니는 좋아하는데 데이빗은 할머니가 너무 이상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데이빗을 연기한 앨런 김의 연기가 정말 좋다.) 아무튼 그럭저럭 살아갈 것만 같은데 이번엔 외할머니가 뇌졸증에 걸린다. 또 그런 중에도 어렵게 오랫동안 바라 온 일을 처음으로 성사시키고 가족 모두와 기쁨을 나누고 싶은데 그 순간 아내는 남편의 진실을 깨닫고 또 싸운다. 그리고 정말 이혼을 결심한다. 그런데 가만히 있기로 한 친정 엄마가 뜻하지 않게 화재를 내 헛간을 태우고 만다. 헛간엔 납품할 물건을 쌓아뒀다. 그걸 잃어버리게 생겼다. 

하지만 그게 꼭 불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은 평소 땐 죽일듯이 싸우다가도 그런 뜻하지 않는 일이 닦치면 놀라운 응집력을 발휘한다. 그게 가족이다. 친정엄마가 불을 냈으니 적어도 한동안은 이혼의 이자도 내지 못하게 생겼다. 남편의 입장에선 좋은 일일 것이다. 또한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외할머니와 손자의 관계도 처음으로 손자가 할머니를 걱정하는 어른스러움이 발휘된다. 

한국의 사위 같으면 그런 장모라면 의식하건 말건 마구 원망을 퍼부었을지도 모르는데 미국이라 그런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지 장모를 탓할 마음이 전혀 없다. 오히려 장모가 심어놓은 미나리 밭을 아들과 함께 나와 미나리를 딴다. 그게 참 짠하다.         

좀 아쉬운 건 사실이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 굳이 흠을 잡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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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7-13 10: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범죄도시 같이 주인공이 승리하는 장면이 많은 게 저도 재밌더라고요. 더글로리, 도 그래서 성공했던 것 같아요. 예전 영화는 주인공이 당하기만 하고 관객이 마음 졸이게 한 게 많았어요.
더글로리처럼 이미 계획해 두었던 것(복수)을 보여 준다면 승리할 승산이 높으니 리얼리티가 없다는 평가를 피할 수 있을 듯요.
가족이란 그런 거죠. 제가 본 외국영화도 그런 게 있었어요. 둘이 이혼하려고 결정했는데 그때 아이가 납치되는 사건이 일어나서 부부가 합심하여 아이 찾기에 나서고 그러면서 서로 위로하고 결국 아이 찾고 부부가 화해하게 된다는 이야기예요. 불행에도 장점이 있는 셈이죠. 간단 리뷰 좋습니다.^^

stella.K 2023-07-13 14:42   좋아요 1 | URL
이번에 지니 TV가 예쁜 짓을 했어요.
예전엔 아주 가끔 5천원 3천원 TV 쿠폰 주더니.ㅋ
어제 자동종료 했는데 좀 아쉽긴 했지만 그렇다고 월정액 사서 보진
않으려구요. 계속 TV만 보게되서.ㅠ
더 글로리도 그렇군요. 힘 자랑하는 거 별론데 마동석 정말 매력적이예요.
귀엽기도 하고.
본 중에 제일 좋았던 건 ‘일루셔니스트‘랑 ‘미나리‘가 좋았던 것 같아요.
두 작품은 언니도 꼭 보세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니르바나 2023-07-14 0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영화 많이 보셨네요.
니르바나도 <미나리> 좋게 보았던 것 같아요.
남들이 좋다하면 그저 따라가보는 영화 관람 수준이라서 좀 그렇지만
봉준호감독의 <기생충>에 이어서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stella.K 2023-07-14 10:31   좋아요 2 | URL
잘 계시죠? 늘 저의 볼품없는 글에 댓글 달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ㅎ
영화는 정보력이 중요하죠. 아무거나 볼 수는 없잖습니까? 잘 하셨습니다. 저도 두 작품 모두 재밌게 봤습니다.^^
 

0. 구름 많은 날씨.

무척 습하다. 


1. 언제부턴가 전화를 하는 게 어색한 일이되어 버렸다. 예전엔 가끔씩 아는 사람들에게 잘 지내나 한번씩 전화를 하곤 했는데 이젠 아주 중요하거나 긴급한 일이 아니면 카톡으로 안부를 묻곤한다. 게다가 코로나가 이를 더 부추겼던 건 아닌가 싶다. 코로나 땐 너나할 것없이 다 비슷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으니 전화를 하고 말고 할게 없지 않았나?


2. 영화 두 편을 보았다. 


 솔직히 이건 보다가 말았다. 뭐 영상이 나쁜 건 아닌데 눈이 안 좋은 희대의 검객이 별 힘도 안 쓰고 오랑캐를 단칼에 물리친다. 그러고도 여전히 난 눈이 안 좋아. 앞이 잘 안 보여하며, 세상 온갖 고독과 똥폼은 혼자 다 잡는다. 영화가 구라인 건 사실이지만 난 이딴 영화 정말 안 좋아한다.




이 영화에 대해 호불호가 갈렸나 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 오판한게 있어 보기 불편했다는 게 불호쪽의 이유인 것 같은데 뭐 나름 이유가 있긴 하지만 영화는 그냥 영화로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건 실화 그 자체가 아니라 거기서 모티프를 따서 만들었다 정도로 봐야하는 거 아닌가. 진짜 실화는 20%도 안 될걸? 예를들면 우리나라 과자 몸에 좋은 뭐가 들어갔다고 자랑하지만 실제로 5%로 체 안 들어가 놓고 뻥치지 않는가? 뭐 그런 거지.  

난 대체로 임순례 감독의 영화를 좋아해 호다. 매번 새로운 영화에 도전하는 감독의 성실함이 느껴져서. 그중에서도 이 영화는 가히 최고가 아닐까 싶다. 감독이 또 보여줄게 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이렇게 남자들의 짠내나는 영화를 과연 어떻게 찍었을까 멋지다. 

넥타이 부대 그것도 철밥통이라는 나랏일 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멋지게 그려놔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한데 어쨌든 영화는 영화다. 쫌 멋진.


2-1

   

음식에 도전하는 드라마가 있다. 위의 드라마는 일드고, 아래 드라마는 한드다. 핀란드 파파는 시도는 좋은데 서사가 좀 부실하다. '칼과 풋고추'라는 일드 역시 서사가 좀 부족하긴 한데 그래도 한드 보단 좀 낫지 싶다. 시대 배경을 1950년대를 배경으로 했는데 그렇다면 좀 괜찮게 할 수도 있었을텐데 약하다. 괜히 예전에 봤던 대장금도 생각이나고, 일본은 이제 음식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아예 하나의 장르로 있을만큼 많은 것 같다.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잘 반영되 있는 것 같다. 

처음엔 한글 간판에 한글 신문이 보여서 좀 놀랐는데 CG의 힘이겠지. 그런데 그런 디테일이 드라마를 더 보게 만드는 것 같다. 괜찮은 드라마다. 


3. 그제부터 만나이가 본 나이가 됐다. 난 그럴 줄 알고 올해부터 의도적으로 누가 내 나이 물으면 한 살 줄여 얘기하곤 했다. 뭔가 삶을 유예 받은 것 같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한국 나이로 65세들은 조금 억울해하는 것 같았다. 65세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못 받게됐다고. 나라에서 챙겨주면 뭐 얼마나 챙겨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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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3-07-01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세상에 모든 일이 그렇지만 결핍해야만 가치가 그 값을 다하는 것 같습니다.
겪어보지 않았지만 해방후 전쟁기간 중에 극심하게 가난하던 시절 밥 한사발은
세상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겠죠.
전화가 큰 재산이던 시절 공중전화를 줄서서 기다리다 뒷사람 눈치보며 전화할 때
우리는 이런 표현을 자주 했습니다.
전화통에 불난다.
친구랑 만나서 온 종일 수다 떨고 또 뭔가 부족해서
집에 들어 와서도 전화기를 붙잡고 오래 전화하면
부모님께 전화요금 많이 나온다고 지청구를 먹던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전화로 통화하는게 줄어든 것은 그 만큼 소통의 총량이 줄어든 까닭이 아닐까싶어요.^^

stella.K 2023-07-01 10:40   좋아요 1 | URL
아, 맞아요. 그런 시절이 있었죠. 그래서 서로의 안부가 궁금하고 걱정해주는 그런 마음이 있었는데 말이죠. 지금은 이렇게 SNS가 발달되서일까요? 서로의 안부를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 것같아요. 좋다고 해야하는 건지 나쁘다고 해야하는건지...ㅎ
잘 지내고 계시죠? 오늘도 더운 하루가 될거라네요. 건강 유의하시고 좋은 주말보내십시오. 고맙습니다.^^

2023-07-01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01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3-07-01 2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님 연세가 벌써 그렇게 됐어요? 시간이 빨리 흘렀네요. 우리가 알라딘에서 만난 지 10년 조금 넘었으니...

저도 예전에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로 안부 인사를 했는데, 이제는 아예 안 해요.. ㅋㅋㅋ 편하게 카톡으로 안부 인사를 보냅니다. 복사하기 붙여넣기로.. ㅋㅋㅋ 그렇지만 정말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만 전화로 안부 인사를 해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 그분들한테 전화로 안부 인사하는 횟수는 줄어들지만요. ^^;;

stella.K 2023-07-02 09:18   좋아요 0 | URL
ㅎㅎㅎ 너 내 글 잘못 읽은거 아니니? 난 단지 올해 한쿡 나이 65세들은 억울하겠다고만 했다. 나 아직 그 정도 아냐. 😤

yamoo 2023-07-03 1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검객 재밌게 봤습니다..ㅎㅎ
장혁의 액션은 정말 볼만했다고 생합니다..ㅎㅎ
뭐, 스토리야..^^;;

stella.K 2023-07-03 11:29   좋아요 1 | URL
ㅎㅎㅎ 역시 야무님과 저는 다르긴 하네요. 저는 바로 그점이 마음에 안 들었잖아요. 영상은 뭐 나름 나쁘지 않았는데. 장혁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근데 평점이 높더란 말이죠. 이해는 하겠는데 액션을 좋아하지 않는 저로선ᆢㅋ

레삭매냐 2023-07-03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전화로 터는(?)
맛이 있었는데, 이제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깨톡이 잡아
버렸더라는.

물론 그 나름대로 장점도
있겠지만요. 전 그래도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전화가 더-

오늘은 무자게 덥네요. 열대
야 개시인가요.

stella.K 2023-07-04 09:09   좋아요 1 | URL
전화로 터는! ㅎㅎㅎ 맞아요. 매냐님 도 그맛을 아시는군요. ㅋㅋ 문자 아니면 얘기할 수 없는 사회가 도어버리는 것 같아 아쉬워요.ㅠ
어제는 정말 밤낮으로 더웠는데 오늘은 어제 만큼은 아닌듯 싶습니다. 그래도 여름은 여름이죠. 어디 가겠습니까?^^

페크pek0501 2023-07-04 21: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간략한 메시지는 전화보다 문자가 편해요. 보낼 때도 받을 때도 문자가 편해요.
한 시간 이상 길게 통화할 일이 있을 때만 전화를 걸게 되어요. 이때 친구랑 마음껏 수다를 떨죠.

stella.K 2023-07-05 09:09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래야 되는데 오랜만에 친구들한테 전화를 죽 돌려봤더니 다들 바쁘더군요. 오히려 전화한 제가 무안해질 정도였어요. 물론 시간대를 잘못 선택한 저의 책임도 있겠지만 다시 전화해 주는 친구는 없더군요. 나만 새됐군 하는데 그래도 가끔 전화해 보려구요. 나중에 미안해서라도 한번은 전화하겠죠. ㅋ ㅋ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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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니 오래전, 앞으로 소설을 쓸 사람은 필수로 시나리오를 배워야 한다고 하셨던 나의 사부의 말씀이 생각났다. 하지만 난 그때 그 말을 별로 믿지 않았다. 사부는 시작은 소설로 시작했다 후에 시나리오로 전향하신 분이셨는데 그냥 하시는 말씀이려니 했다. 소설은 소설처럼 쓰고, 시나리오는 시나리오처럼 쓰는 거지 뭘 새삼스럽게 그런가 싶었다. 그렇다면 소설이 본래 가지고 있는 형태나 의미가 퇴색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게다가 사부가 말씀하시는 건 상업화된 허리우드 시나리오를 가리키는 것일 텐데, 난 허리우드 영화에 대해 약간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그런 저항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사부가 말했던 그 전범(典範)을 보았다. 굳이 말하자면 나의 사부가 이긴 것이다. 


물론 내 멋대로의 생각이겠지만, 내가 사부에게서 공부했을 때가 2008년쯤 되었던 때다. 그 시절엔 이렇게 소설을 쓰는 작가가 없었다. 그나마 이 작품이 2012년에 나왔으니 2010년대나 들어서 가능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시기적으로도 나의 사부의 말을 어느 정도 부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알게 된 건데 부커상 후보에 올랐던 작가의 또 다른 작품 <고래>가 2005년도 작품이며, 작가는 이미 그 작품에서 그런 시도를 했었다고 한다. (난 아직 이 작품을 읽지 못했다.) 유구무언이다.                   


물론 굳이 소설을 영화처럼 쓰지 않더라도 훌륭한 소설은 많고, 사부의 그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여전히 고전적인 방식으로 소설을 쓸 소설가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영화적 글 쓰기가 뭔지 그 전범을 본 이상 나에겐 개안에 가까운 경험임엔 틀림없다.  


사실 영화적 글 쓰기라는 건 설명하기는 간단하다. 한마디로 소설을 영화를 보는 것처럼 쓰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 소설을 시나리오의 기법으로 쓴다는 말이다. 


그때 나의 사부는 말씀하셨다. 시나리오 쓰기가 소설 쓰는 것보다 몇 배는 어렵다고. 나는 그 말도 역시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니 사부의 말씀이 완전 이해가 갔다. 흔히 침대를 두고 과학이라고 하는데 영화야 말로 과학이다. 즉 쓸데없이 존재하는 장면은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처음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장면들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다 시간이 갈수록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져야 한다. 뭐 일종의 추리 기법과도 비슷한데 이것이 곧 시나리오다. 


그런데 그 형식을 소설로 썼다면 이게 또 단순히 시나리오를 쓰는 것보다 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시나리오는 그 영화의 설계도란 말이 있다. 그래서 작가 특유의 문체 같은 건 그다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어차피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니까.) 그냥 누구라도 한눈에 볼 수 있도록만 쓰면 된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를 소설로 옮긴다고 생각해 보라. 무엇보다 작가 특유의 문체가 살아 있어야 한다. 그 또한 만만한 작업은 아닐 터. 소설 쓰기가 더 어렵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 어려운 작업을 천명관 작가는 자꾸 해냈다. 한때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판을 굴렀다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구나 싶다. 


물론 앞서 나의 사부가 그런 말씀을 했다고 해서 시나리오 작가 모두 소설 쓰는데 유리할 거라고만 보지는 않는다. 시나리오 작가가 소설을 쓰는 건 또 다른 문제고, 새롭게 공부하고 개척한다는 뜻이겠구나를 이 책을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된다. 단지 자신이 익힌 시나리오 작법이 이롭게 작용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또 그렇게 생각하면 미안한 얘기지만, 기존의 소설가들은 서사 보단 문체에 집중하고, 주인공 외에 나머지 등장인물은 소홀히 다루는 경향이 있는데 더 분발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작품을 보면 주인공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 하나하나에 라이프 스토리가 확실하다. 그리고 그것을 작가는 새끼 꼬듯,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 능청스럽게 잘도 엮는다. 배우 송강호가 영화 <기생충>에서 그런 말을 하지 않는가.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고.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 역시 계획이 다 있었다. 그리고 그 계획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사라진다. 그러니 시나리오 쓰기보다 소설 쓰기가 더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영화에서 단역은 있을지 몰라도 하찮게 존재하는 인물은 없다고 한다. 하다못해 엑스트라도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보이기 때문에 쓸데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어떤 인물일지라도 언제 나타났다가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합리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천명관 작가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보여준다. 예를 들면, 내가 기억하기론 도치란 인물이 초반에 나왔다가 가장 먼저 사라지는 인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것을 보면 도치는 그렇게 비중 있는 인물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캐릭터고, 어떻게 최후를 맞고 이야기 바깥으로 사라지는가 확실하게 보여 준다. 또한 토끼는? 마 사장은? 언제 나타나도 평범하게 사라지는지 법이 없다. 


그런 만큼 인물 하나하나도 그냥 대충이 없다. 예를 들면, 오순의 경우도 그렇다. 얼핏 그 이름만 보면 촌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오순이야말로 전갈과 같은 여자다. 그런데 비해 마 사장은 표독스럽지만 내면의 연약함을 가지고 쓸쓸히 죽어간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등장인물의 끝판왕은 역시 주인공 권도훈이다. 어찌 보면 가장 불온하고 연약한 인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인물처럼 외유내강형의 인물도 없다. 또 주인공답게 최후까지 살아남아 이야기의 대미를 장식한다. 특이한 건 권도훈은 말이 없다. 그리고 정중동의 사람으로 죽음도 그를 비켜간다. 그런데 문제는 그는 그리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어떻게 이런 인물을 창조해 낼 수 있을까. 보면 볼수록 놀라운 캐릭터다.  


게다가 이소룡을 추종하고, 원정이란 여자를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사랑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현대사(1권에서)와 영화사(2권)를 아우르고,  80년대 삼청교육대를 다녀오고, 살인자로 누명을 쓰고 도피 생활을 하지만 오로지 원정을 만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기꺼이 영어의 몸이 되며, 결국 그의 바람대로 나이 들어 사랑을 이루는 고진감래, 사필귀정의 인물이다. 


그런 걸 보면 예전에 보았던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생각나기도 한다. 포레스트가 지능이 떨어지는 인물인지만 미국의 현대사의 주요 장면마다 그가 있었고, 무엇보다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인물 아닌가. 모르긴 해도 작가는 이 영화에서 모티프를 얻어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나는 도훈이 끝내 사랑을 이루는 것을 보면서 사랑을 믿지 않는 세상에서 우직한 바보만이 사랑을 이루는구나 하면서 이내 뭉클하기까지 했다. (최고의 사랑엔 최고의 서비스만을 바라지 않는가.) 그러면서 사람이 여러 가지를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한 가지만이라도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잘하는 사람이 돼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작가는 자연스럽게 믿음과 사랑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불신의 시대에 믿음을 얘기할 수 있을까? 이 세대는 사랑이 가능한가? 예수님도 마지막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오히려 반문하시지 않으셨나. 그렇게 묻는다는 건 정말 몰라서가 아니라 통탄하셨기 때문이고, 있기를 바라서가 아닌가. 사랑과 믿음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겠는가. 이 이야기는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어딘가에 도훈이 있을 것만 같고, 없다면 꼭 있기를 바라게 된다. 


천명관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그런 말을 한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실패에 대한 이야기라고. 그런데도 왜 구원 없는 실패담을 읽는 것일까?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불행에 빠진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걸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그 불행과 실패 속에서도 여전히 구원을 꿈꾸며 꾸역꾸역 살아가는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했다. 하지만 난 읽는 내내 어린 왕자를 탄생시키고 별이 된 생텍쥐페리를 생각했다. 그리고 작가는 생텍쥐페리의 후예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지난 몇 달간 개인적인 일로 꿀꿀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정말 즐거웠고 행복했다. (난 만화책은 사람을 웃길 수 있어도 소설이 이렇게 웃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작가들은 독자들이 좋은 책을 읽으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해지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 험하고도 지루한 세상에서 재밌는 책을 읽을 수 없다면 그 얼마나 삭막하고 불행한가. 


개인적으로 이렇게 재밌고 훌륭한 이야기가 왜 지금껏 영화화되지 않았던 건지 의아스럽다. 비록 부커스상 후보에서 만족해야 했지만 그런 권위 있는 상의 후보는 또 아무나 하겠는가. 이 기회에 주목을 받았으니 그의 작품이 영화화될 날도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이 작품은 소설을 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텍스트가 될만하다고 생각한다. 조만간 다시 읽어봐야겠다. 

작가의 건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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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3-06-27 0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요즘 거의 사용하지 않는 영화 관련 단어 중에 <각색>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소설을 시나리오화 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만큼 예전에는 소설을 영화화하는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각색을 잘 했던 분이 무진기행을 쓴 김승옥 작가입니다.
김승옥 작가가 쓴 소설을 읽으면 영화 장면이 그려지는 것을 보면
작가 스스로 나중에는 영화화를 전제로 소설을 쓰시지 않았나 싶기도 하구요.
소설 쓰고 각색하다가 스스로 영화감독도 했지요.
또 다른 인물로 소설가 최인호씨도 같은 경로로
소설가, 각색 그리고 영화감독까지 했구요.
스텔라님이 쓴 천명관의 소설 리뷰가 이 책을 다시 회생시킨 글로 남지 않을까 싶어요.^^

stella.K 2023-06-27 09:49   좋아요 1 | URL
아, 맞아요. 저도 그 두분에 대해선 들어본 것 같습니다. 근데 워낙 오래된 분들이라 떠올리기가 쉽지않았네요. 그리고 굳이 말하면 두분은 소설가의 자리를 끝까지 지켰던 분들이고, 그렇게 시나리오를 간간히 썼던 반면 천명관은 아예 소설로 전향했다는 거죠. 행로도 소설에서 시나리오로 나갈 거 같지만 이분은 시나리오에서 소설로 갈아탔다는 거죠. 리뷰에서도 밝혔지만 그건 또 다른 공부고 작업이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튼 이 소설 정말 재밌었습니다.
참고로 니르바나님께만 말씀 드리는건데 그의 소설집은 별로예요. ㅋ

책읽는나무 2023-06-27 1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소설 천명관 작가의 소설 중 유일하게 읽었었는데 아주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있네요^^
<고래>도 재밌으려나요?
옛날에 독자들 평이 좋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스텔라 님 리뷰를 읽으면서 브루스리 삼촌은 확실히 영화에 나올법한 캐릭터 같단 생각이 듭니다. 소설도 영화 보듯 장면들이 생생했던 것도 같구요. 시나리오 작가가 됐었어도 잘 풀렸으려나요?^^
예전엔 시나리오 같은 소설들이 굉장히 재밌게 생각되어지긴 했는데 요즘은 나이가 들었는지? 잔잔한 인생 이야기가 왠지 더 끌리고 감동스럽게 느껴져 소설 취향이 바뀌어감을 느낍니다.
그래도 <고래>는 꼭 읽어보고 싶네요.
책장에 사다 놓은지가 몇 년째인지????
책등이랑 책장이 바래져 있네요.ㅋㅋㅋ

stella.K 2023-06-27 19:10   좋아요 1 | URL
ㅎㅎ 이마도 천명관 작가가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어요. 그는 이미 시나리오를 썼다 소설을 쓰는 거거든요.
작품도 여러 권 되고. 나이들면 영화 감독도 영화판을 떠나는데
시나리오 작가라고 안 떠나겠어요?
모르긴 해도 천명관 작가는 소설로 전향해서 성공한 작가는 아닌가 싶어요.
장르소설에선 이렇게 쓰는 작가들이 많을 거예요. 특히 미국 소설가들.
근데 우리나라 순수 문학에서 이렇게 쓰는 작가는 드물지 않나 싶어요.
없진 않겠지만 대중에 알려지기는 쉽지 않겠죠.
저도 <고래>를 얼마 전 적립금 탈탈 털어서 중고샵에서 샀는데
지금 전 그의 소설집을 읽고 있는데 그건 그닥 재미가 있진 않더군요.
그러다 보니 고래는 또 재밌을까? 은근 걱정중이어요.
외국 사람들 우리나라 작품 이상하게 쓴 거 좋아하잖아요.ㅎ
근데 얼마 전 레삭매냐님 리뷰 읽어보니 재밌다고 하셔서 읽어 볼 생각입니다.
천명관 작가는 아마도 30년 안에 무리나라 현대 문학사에 이름을 올릴만한
작가는 아닐까 싶어요. 계속 글을 써 줬으면 좋겠어요.^^

페크pek0501 2023-06-29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리하여 천명관 작가의 시대가 탄생하게 되나 봅니다. 신문에 부커상 후보로 나올 때부터 심상치 않다 했어요. 재밌는 소설이라고 하시니 관심이 가는군요.
위즈덤하우스 책이 잘 팔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장사를 잘하는 출판사랄까, 그런 느낌이에요.
책 기획에 공을 많이 들일 것 같은 출판사, 게다가 작가를 보는 안목도 있고 그런 출판사 같아요.
이 책이 4백 쪽이 넘더군요. 두 권을 합하면 8백 쪽이 넘겠군요. 올 여름 더위를 잊으시고 지내시게 만들 소설 같군요. 저도 올 여름은 더위를 잊을 만한 책을 몇 권 쌓아 놨어요. 그나마 책에 빠져 이 더운 여름을 버텨 보려 합니다. 리뷰 잘 읽었어요. 좋군요.^^

stella.K 2023-06-29 19:4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예담이 위즈덤 하우스의 임프린트였네요.
근데 ‘나의 삼촌- ‘도 그렇고 ‘고령화 가족‘은 표지가
별로 맘에 들지 않더군요.
고령화 가족‘만이라도 리커버로 다시 나와줬으면 좋겠어요.ㅎ
전 요즘 그의 소설집 읽고 있는데 앞에 두 편 정도만 좋고
내내 이거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비행기‘란 중편소설은
괜찮더군요. 여성 심리를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 하며 읽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라는 건 인정해야겠더군요.
장편이긴 하지만 금방 재밌게 읽을 수 있어요.
나중에 함 읽어보세요.^^
 

 

내가 보는 G TV에 월정액을 한 달간 무료로 볼 수 있는 쿠폰이 생겨 그동안 못 본 영화를 몇 편 챙겨 보았다. 한 일주일쯤 지난 것 같긴한데 앞으로 몇편이나 챙겨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반려견을 키웠던지라 마음이 짠해질 것 같아 영화를 보는덴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도 일단 내가 유인석을 좋아하고 코미디라 부담없이 봤다. 하지만 이야기의 깊이는 없다. 그냥 유기견을 만들지 말자는 캠페인 정도로 보면 좋을 것 같다. 예전에 <퀼>이란 일본 영화를 본 적있는데 그거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구나 싶다. 유인석과 차태현이 업치락 뒤치락하는 건 볼만하다.  


브랜든 프레이저가 누군지 내가 모르는 배운 줄 알았다. 그런데 한참 생각하니 오래 전에 이 배우가 나온 영화를 본 것 같다. <조지 오브 정글>이란 영화. 오래 전 본 영화니 기억도 잘 안 나지만 저렇게 살이쪘으니 못 알아보는 수 밖에. 그때만해도 날렵했는데.


특수분장을 했고 실제로 살을 좀 찌웠다고도 했던 것 같다. 말에 의하면 브랜든은 거의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여러 상을 휩쓸고 제 2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남우주연상을 다고해서 크게 기대하고 보면 실망할 수도 있는데 그런 기대없이 보면 그럭저럭 볼만하다.


우린 이제 은둔형 외톨이에 대해 귀를 기우릴 필요가 있다. 먼저는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겠지만 그도 한계는 있을 것이다. 


워낙에 거구라 조금만 움직여도 땀을 비 오듯이 쏟는다. 병원엘 오지 않으니 의사가 정기적으로 방문을 하는가 본데 친구처럼 잘 지낸다. 가끔은 찰리의 넓은 어깨에 기대기도하는데 뭐 영화니까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땀냄새 장난 아닐 것 같다. 특히 겨땀은. 어떻게 참고 연기에 몰입할 수 있었을까 싶다.ㅋ


최근에 본 영화중에 가장 실망한 영화다.

탕웨이를 좋아해 기대를 많이했는데 역시 난 봉준호는 좋아해도 박찬욱은 좋아할 수가 없다. 내가 아무리 탕웨이를 좋아해도 박찬욱을 이길 수 없다는 교훈만 얻었다. 결국 보다 엎었다. 박찬욱은 나에게 '공동경비구역 JSA' 거기까지라고 생각한다. 난 이제 탕웨이 아냐 탕웨이 언니가 나온다고 해도 박찬욱이 만든 영화는 안 볼꺼다.


비교적 오래된 영화긴 한데 화가 클림트에 관심이 있다면 꼭 보라고 추천한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클림트에게 이런 과거가 있었다는 게 좀 놀라웠다. 물론 클림트는 나오지 않는다. 영화만 보기엔 좀 난해할 수도 있다. 클림트에 대한 예비 지식을 갖고 본다면 의미있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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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3-06-21 14: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좋은 영화 많이 보셨네요.
한달 무료면 아직도 시간이 남아 있으니 재미있게 영화감상 하세요.
따지고 보면 월정액을 내니까 무료라는 것도 공짜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G TV는 한달에 이용료가 얼마나 되나요.

stella.K 2023-06-21 18:00   좋아요 1 | URL
제가 알기론 기본 요금이 3만원인 줄 알고 있어요.
저희는 이것저것 결합상품이어서요. 정확히는 잘...
그런데 말씀하시는 것처럼 사실은 무료가 아니죠.
그래도 가끔 TV쿠폰도 넣어주고 이렇게 무료 월정액을
주는 건 첨 있는 일은 아닐까 싶어요.
저도 몇년 전에 월정액 써 봤는데 그게 다달이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3개월, 6개월, 1년 이렇게 단위별로 쓸 수 있게 되있는 것
같더라구요. 물론 영화비 정도로 거의 무제한으로 볼 수 있긴한데
어떤 건 안 되는 것도 있어요.
그리고 괜히 돈 아깝다고 열심히 보게 되니까 다른 일을 못하겠더라구요.
이것도 무료니까 보는 거지 일부러는 못 보겠더라구요.ㅋ
대신 요즘엔 그동안 못 본 최신 영화를 볼 수 있어 좋긴하더군요.
네. 그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나리자 2023-06-24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어질 결심> 대본이 블로그에서 엄청 보였던 것 같은데 그 영화인가요?
탕웨이가 나오는군요. 많이 실망하셨나봐요.ㅎ
저는 넷플에서 가끔 드라마를 보는데 최근엔 어쩌다가 중국 드라마를 보게 되었는데 동양이라 그런지 우리와 비슷한 감성이구나, 했네요. 재밌어서 아껴가며 조금씩 보고 있어요.ㅎ
주말에 좋은 에너지 충전하시길 바랄게요. stella.K님.^^

stella.K 2023-06-24 19:20   좋아요 1 | URL
그니까요. 저도 많이 보여서 꽤 괜찮은줄 알았는데 탕웨이 거니까 왠만하면 참고 봐줘야하는데 박찬욱은 정말 용서가 안되더군요. ㅋ 다음 사이트에 엄청 욕을 많이해 놨더군요. 그러고 보면 서양사람들 꽤 동양에 대해 묘한 신비감을 갖는 거 같아요.
고맙습니다. 모나리자님도 좋은 주말보내십시오.^^

얄라알라 2023-06-26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어질 결심

만족스럽지 않으셨나봐요

저는 그 영화를 극장, 심야 극장에서 무서워하면서 보았던지 꼭 1년이 다 되어가네요

stella.K 2023-06-26 14:05   좋아요 1 | URL
엇, 무서우셨어요? 박찬욱 감독이 그로테스크한 면은 있지만 무서운건ᆢ하긴 좀 몇몇 장면은 좀 거시기하긴 하죠? 더구나 심야에 보셨다니 좀 그랬겠어요. 근데 심야영화가 하긴하는군요. 전 심야에 주로 자기 때문에 좀 낮설어요. ㅎㅎ

2023-06-26 14: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26 1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천명관의 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 2권 초반부에 보면,  주인공 권도운이 짝사랑하는 연인이자 에로 배우인 원정이 유 회장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오밤중에 술기운을 빌어 그의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가 그의 똘마니로부터 봉변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딴 이유는 없고, 원정이 자꾸 유 회장에게 전화해 귀찮게 구니 정신 차리게 해 준다는 명목이다.


 옛 애인이든 그의 똘마니든 뭐든 지간에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봉변을 당하는데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도운이 일찍이 이소룡을 자신의 롤모델로 삼고, 어설피 배운 무술을 연마한 몸으로 무사히 악당의 (자신의 애인을 위험에 빠트리는 사람은 다 악당이다. 그것은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손아귀에서 벗어나 둘은 원정의 오피스텔로 간다.


 사실 그때 도운은 70년대 무술영화의 인기를 등에 업고 충무로 영화판의 으악새 배우(주인공의 옆발차기 한 대로도 으악하며 죽어가는 엑스트라 배우)로 자리를 잡느냐 못 잡느냐 하던 때이기도 했다. 즉 몸을 낮추고 조용하고 겸손하게 지내야 하는 때란 말이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원정의 옛 애인인 유 사장은 영화판을 접수한 거물급 인사고 따라서 그의 똘마니들을 건드려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건드려서 좋은 건지 나쁜지는 나중 일이고 당장은 그의 똘마니들에게 원정을 구했다는 것에 안도한다. 그러나 그도 잠시, 원정이 봉변을 당할 때 입은 상처 때문인지 아니면 버림받은 설움 때문인지 눈물을 터트린다. 그러자 도운이 말없이 으악새 배우들의 필수품인 안티푸라민을 조용히 꺼내 원정의 얼굴에 발라준다. 원정이 처음엔 이를 거부한다. 그 특유의 냄새 때문에. 그러자 도운이 멍든덴 최고라며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얼굴에 발라준다.  


 영화로 봤다면 어디서 본듯한 클리셰라고 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책으로 읽으니 그도 나쁘지 않다. 더구나 전혀 멋지지 않은 도운이 그렇게 심각하고도 섬세하게 나오니 분위기가 웃기면서도 묘하게 젖어든다. 


그런데 문득 안티푸라민의 용도가 궁금해졌다. 멍든데 최고라고...?

안티푸라민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6, 70년대 가정상비약으로 이 약을 비치해 놓지 않은 집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의 용도는 모기에 물렸거나 넘어져 무릎이 까졌을 때 빨간약 대신 바르는 거 아닌가? 하지만 새삼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검색에 들어갔다. 그 결과 정확히는 소염진통제의 일종이었다. 그걸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이렇게 관심이 생긴 것도 관절이나 근육이 예전만 같지 않으니 그쪽 계통에 관심이 생기는 것이다. 예전에 팔팔한 근육을 가졌을 때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 안티푸라민의 개발 일화도 있었다.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회장이 아내 호미리 씨가 유한양행 건물 2층에 소아과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당시 한국에는 연고의 개념이 없어서 아이들의 타박상이나 염좌상(흔히 삐끗하거나 접질렸을 때)에 마땅히 발라 줄 약이 없었다고 한다. 이에 호미리 씨가 당시 막 신설된 유한양행 학술과에 건의해서 만든 약이 안티푸라민이라고 한다.  참고로 안티푸라민은 유한양행에서 최초로 자체 개발한 약품으로 올해가 100주년을 맞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약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오래된 약이다. 


나는 안티푸라민이 그저 미국의 바셀린을 본떠 만든 약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바셀린과 안티푸라민은 좀 다르다. 바셀린은 한마디로 화상 같은 피부 외상 치료에 주로 사용되는 약이다. 


안티푸라민은 그 이름도 적절해 보이는데, 반대를 뜻하는 안티(anti)와 염증을 뜻하는 인플래임(inflame)을 합쳐서 만든 이름이다. 이게 또 군부대에도 들어간다고도 하니 역시 이건 어린아이들을 위한 약만은 아니었다. 군부대에 들어갈 정도라면 확실히 실제 으악새 배우들도 썼을 법하겠다.  


그런데 안티푸라민은 그렇게 6, 70년대는 대세였지만 이후로 비슷한 류의 약들이 경쟁적으로 나오면서 급격하게 우리의 뇌리 속에서 사라져 갔을 것이다. 난 정말 이 약이 이제 안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까지 손흥민을 앞세워 CF가 나오기도 했으니 우리가 기억을 못 하고 있을 뿐 그건 항상 있어왔다. 아무리 만병통치약이라고도 세월을 이기는 약은 없는가 보다. 


그런 안티푸라민을 도운이 떨리는 손으로 원정에게 발라줬다니 확실히 상대의 마음을 훔치고도 남았을 것 같다. 게다가 때를 놓치지 않고 시크하게 한마디 한다.


- 그리고 보니 많이 닮았네요.

- 뭐가?

- 여기 그림에 있는 여자 하고요.

그러면서 도운은 연고 뚜껑을 들어 원정에게 보여준다.

기억하는가? 버드나무 상표 아래 간호사 캡을 쓴 여자의 얼굴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무엇을 본들 그 사람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평소 쟁반같이 둥근달에도 그 사람이 보이는 법이다.  

그러자 원정은 도훈에게 평소 숙맥인 줄 알았더니 아부하는 재주도 있다며 그를 춰준다.

이쯤 되면 안티푸라민은 누구에겐 사랑이겠다. 도운이 발라주는 안티푸라민과 함께 육체의 상처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참고로 안티푸라민에 얽힌 내 어린 시절 속된 추억 하나를 얘기하자면, 난 그것을 립글로스 대용으로 사용했다. 물론 그건 입술 튼데 바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절 당대를 주름잡았던 여자 가수들이 어느 날 TV에 나왔는데 입술에 무엇을 발랐는지 반짝반짝 윤이 났다. 그러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게 어찌나 육감적이던지 나도 발라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게 뭔지도 몰랐고 설혹 알았다 해도 엄마가 어린 나에게 그런 걸 사 줄리 없다. 화장품의 일종일 테니. 꿩 대신 닭이라고 안티푸라민이라도 바르고 나는 남이 안 보는대서 하춘화나 정훈희를 흉내 내며 나만의 백일몽을 꿈꿨다. 

하지만 역시 원정의 말처럼 안티푸라민의 냄새는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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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6-17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안티푸라민보다도 호랑이
지름이 ... ㅋㅋㅋ

브루스 리, 1권은 읽은 것
같은데 2권도 읽었는지 가
물가물하네요.

stella.K 2023-06-17 10:29   좋아요 1 | URL
ㅎㅎ 매냐님 그럴리가요. 6,70년대 유년시절을 보냈다면 안티푸라민 세대입니다. 우리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쓰셨겠죠.ㅋ
2권은 1권에 비해 재미가 좀 없긴하지만 이야기의 힘은 전혀 빠지지 않더군요. 이만하면 가히 괴물이다 싶어요. 천명관 작가.

서곡 2023-06-17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입술에 바세린 추천드립니다 ㅎㅎ 주말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stella.K 2023-06-17 11:21   좋아요 1 | URL
립크린이 없을 때는요. ㅎㅎ 고맙습니다. 서곡님도 좋은 주말보내시기 바랍니다.^^

기억의집 2023-06-17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세대의 안티푸라민 대단했지요. 바세린과 더불어~ 저도 요즘 무릎 관절이 안 좋아 병원 다녀요. 나이가 들긴 드나봐요. 나이 드니 관절이 힘들어 합니다!!

stella.K 2023-06-17 20:55   좋아요 0 | URL
백번 이해합니다. 저도 몇년 전 아파서 병원에 다녀댔죠.
좀 서글픈 생각도 드는데 아프니까 관절에 좋은 약이 뭔가 자꾸
찾아보게 되요. 그러다보니 새롭게 알게 된데 안티푸라민이구요.
몸조심해요. 내 몸 내가 위해줘야지 누가 위해주겠습니까?ㅠ

니르바나 2023-06-17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의 책이야기를 보니 천명관의 이 소설이 더 재미있게 보이네요.
안티푸라민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주 가끔씩 멘소래담 로션과 번갈아요.

stella.K 2023-06-17 21:08   좋아요 1 | URL
니르바나님 젤 첫번째로 댓글을 쓰실 뻔하지 않았나요?
무슨 얘긴지 좀 궁금했는데...ㅎㅎ
북풀에는 댓글이 완전히 지워지지가 않고 흔적이 남거든요.^^

니르바나님은 아직도 쓰시는군요.
저는 몇년 전까지만해도 멘소레담 썼는데 그것 보다 더 강력하고
손에 약 묻히지 않고 바를 수 있는 젤형으로된 파스를 쓰고 있죠.
붙이는 파스는 피부가 가려워서요.
제가 어느새 이렇게 되버렸답니다. ㅠㅋ

아, 저 이제부터 천명관 팬되기로 했습니다.
오늘 2권 다 읽었는데 재미에 뭉클함까지
갠적으로 올해의 부커상에 감사해요.
천 작가 부커상 후보되지 않았다면 이 책 언제 읽었을지 몰랐어요.ㅋㅋ

2023-06-17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18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