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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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몇 년 전 동명의 작품을 영화로 봤다. 영화와 원작이 다를 수 있음에도 난 영화를 봤다는 이유만으로 원작을 볼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영화나 책이나 거기서 거기지 별 건가? 이 말은 영화가 별로였다는 말도 된다. 영화가 좋으면 책으로도 읽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와 책의 협업은 긴밀하다. 그런데 이 작품 책으로 안 읽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래도 내가 전에 작가의 작품을 즐겨 읽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이 책은 여전히 나에게 봉인된 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작가들이 한 번쯤 가족 소설을 쓰긴 한다. 그건 또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고전적 면서도 감성에 호소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천명관 작가 역시 이 작품을 통해 가족 소설을 썼는데 그의 주무기인 레트로한 감성과 그 특유의 익살과 입담이 잘 버무려져 역시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영화감독 일을 하던 인모가 영화를 실패하고 설상가상으로 아내도 자신을 떠나 꿀꿀하던 차에 자살이나 해 볼까 하다가 그것도 실패한다. 뭐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 그때 엄마에게서 닭죽 먹으러 오라는 전화에 살 의욕은 없는데 식욕은 당겨 결국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말도 있으니 죽 한 그릇 먹고 죽자했다. 하지만 역시 그도 실패. 이번엔 아예 엄마 집에 눌러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가족 이야기다.


엄마 혼자 사는 집에 잠시 얹혀사는 게 뭐 문제가 되겠는가? 잠시 창피한 일이지. 문제는 그 비슷한 시기에 형 한모와 동생 미연이도 같이 살게 되었다는 게 문제지. 심지어 형 한모가 인모보다 먼저 들어와 있기도 했다. 그야말로 오 마이 갓이다. 둘의 관계가 좋으면 또 무엇이 문제겠는가? 어렸을 때 좋던 관계도 머리 크면 견원지간이 되던데 이 형제들 딱 그짝이다.


그의 동생 미연과도 오누이 지간이지만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더구나 비록 이혼은 했지만 미연이 중학생 딸까지 있다. 엄마까지 이들 다섯 식구의 나이를 합치면 족히 200살은 될 것이다. 그래서 제목을 그렇게 지은 걸까? 아니면 나이 들어 한 지붕에 살게 된 것을 조소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무튼 제목이 그렇다.


그런데 이상한 건 엄마가 그렇게 된 걸 별로 싫어하지 않았다는 것. 아니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늘그막에 자식 끼고 살게 되었다고 분통을 터뜨려도 아무 소리 못하는데 오히려 환영의 의미로 한 달 내내 고기를 먹인다. (영화도 그렇지만) 이들의 고기 먹는 모습은 꽤나 이기적이다. 문득 우리 집 옛 풍경과 왠지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이들처럼 한 달 내내 고기만 먹지는 않지만 먹기 위한 노력은 좀 치열했다. 물론 우리 4남매를 먹여 살리느라 부모님도 어지간히 힘드셨을게다. 그걸 생각하면 좀 먹는 것 앞에서 겸손하고 신사적이 될 수도 있을 텐데 그게 잘 안 됐다. 무조건 먼저 먹고, 빼앗아 먹고, 훔쳐 먹는 게 집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러다 엄마한테 뒈지게 혼나기도 했지만 먹는 거 앞에 본능적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쩌다 먹을 것을 여축해 놓고 나중에 먹는다? 그런 감짝한 생각은 있을 수도 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부모님은 이상했다. 딥다 해 먹일 때는 언제고 화가 나면 늬들은 쳐 먹는 것만 안다고 역정을 냈다. 어쩌라고? 그럼 먹을 걸 해 주질 말든가. 그래놓고 이런 우리들을 남에게 말할 땐 자라느라 한창 먹을 때라고 호호한다. 우리 부모님의 위선도 알아줄만했다. (물론 커서 자식이나 그 비슷한 존재를 키워보니 알겠다만.)


이런 집의 특징은 오사박하고 다정한 비둘기 집 같지는 않다. 그건 또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어렸을 때부터 서로 먹을 걸 두고 으르렁거리며 싸우며 자라고 서로 볼 꼴 안 볼 꼴, 있는 인간성 없는 인간성 다 보며 심지어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지 훤히 보이는데 바라는 게 뭐가 있다고 그 앞에서 우애 있는 척 고상을 떤단 말인가. 그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철저한 보복과 응징만 있는 것 같다. 그런 집에 화목은 고물상에 팔아먹은 지 오래다.


그런데 이 가족이 좀 독특하긴 하다. 무엇보다 이 집엔 가부장이 빠져있다. 아버지는 일찌감치 죽어 과거로만 기억될 뿐이다. 아버지가 없어도 이 집에 가부장이 이어지려면 남자의 보수성과 경제력이 있어야 하는데 한모와 인모는 경제력은 집에 들어올 때부터 바닥이었고, 그런데 비해 엄마와 미연 심지어 미연의 딸 민경까지 경제력 꽤나 행사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또 그들이 그것을 발휘하면 할수록 한모와 인모 형제는 쪼잔한 인물이 된다.


엄마의 집에서 당장 할 일이 없는 인모는 집을 떠날 때도 하지 못했던 가족에 관한 연구를 하기 시작한다. 우선 새롭게 안 사실은 미연이 20대부터 아는 언니와 함께 지낸다는 건 사실은 룸살롱에서 일하며 가족들을 부양했던 것으로 판명 났다. 하지만 이 사실을 가족들이 정말 모르고 살았을까? 그건 아니다. 단지 모른 척하고 있었을 뿐이다. 알면 뜯어말려야 하는데 그러기엔 대신 감당해야 할 짐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또한 이들 삼 남매의 출생의 비밀도 이때 밝혀지기도 한다. 삼 남매는 혈통이 같지가 않다. 즉 한모는 아버지가 바깥에서 낳은 자식이고, 그런데 비해 미연은 엄마가 남자를 방에 끌어들여(?) 낳은 자식이다. 오직 인모만이 정상적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이만하면 콩가루 집안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버지와 엄마의 전적이 셈셈이다. 그러므로 서로를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가 이 모든 것을 모성이란 넓은 치마폭으로 감싸 안는다. 그래서 이들 삼 남매는 외풍은 있을지언정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랐다.


하지만 인모는 어머니가 제일 이해가 안 갔다. 그건 엄마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되니 엄마에 대한 불온한 기억들이 살아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중 가장 이해 못 할 건 시시때때로 물어보는 밥 먹었냐는 질문이다. 이해 못 하다못해 넌덜머리를 낸다. 엄마는 그 질문 밖에 못하는 걸까? 가방끈이 짧고 할 줄 아는 건 밥해 먹이는 재주밖에 없으니 그런가 싶기도 했을 것이다. 하긴 늬들이 모성을 알아?


하지만 엄마가 마냥 밥만 해 먹인건 아니다. 나중에 엄마는 누구와 살까를 고민하다 미연의 아버지와 합치기로 한다. 인모가 어렸다면 무조건 반대하며 반항했을지 모르지만 그럴 나이는 이미 한참 지났다. 좋고 말고 할 입장이 아니다. 물론 이건 두 사람의 합의에 의한 것이지만 거기엔 엄마의 주도적인 선택이 더 많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엄마에게 이런 당당함이 있다니. 하지만 미연에 아버지 역시 죽은 아버지만큼이나 집에선 존재감이 없다. 그런 것을 보면 앞으로 가족 형태는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겠지만 전통적인 가부장이 아니라 모계를 중심으로 한 모성이 좌우할 수 있음을 이 작품은 예시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그것은 어머니의 "밥은 먹었니?"란 질문이 상징적이면서도 압축적으로 보여 주기도 한다. 초반에도 자살하려는 인모를 살린 건 하필 울린 엄마의 전화에 밥 먹었냐는 질문 아닌가. 그 질문은 그렇게 위대하다!


하긴 엄마들은 왜 하나같이 이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 좀 다른 질문을 하면 안 되나 싶기도 하지만 이것만큼 모성을 드러내는 원형적인 질문이 또 있을까? 그래서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밥을 먹었는가 안 먹은 가로 인사를 하며 만남을 풀어 가려는 경향이 많다. 그도 알고 보면 어머니에게서 받은 영향이 아닐까.


어떤 이는 '언제 한 번 밥 먹자.'라는 공수표 날리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하는데 난 아직 이 인사가 좋다. 그런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헤어질 때 하는 인사 안녕계세요나 잘 지내란 말은 그냥 잘 지내기를 바라는 거지만 언제 밥 먹자는 말은 약속이 있는 인사로 밥 한 끼 정도는 내가 살 수도 또는 너의 외로울지도 모르는 식사에 함께해 주겠다는 말도 포함되어 있는 거 아닌가. 그런 인사를 할 수 있는 정도면 공수표를 날릴 리 없다.


아는 사람이 슬픈 일을 당하거나 안 좋은 일을 당하면 그럴수록 잘 먹고 든든히 있어야 한다고 다독이곤 한다. 물론 정신이 무너지면 육체도 무너지지만 육체를 먼저 돌보면 정신도 세움을 받기도 한다. 그 모든 것엔 엄마의 밥 먹었냐는 말을 듣고 자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소설 맨 끝에 인모가 이런 말을 한다. 헤밍웨이가 아기였을 때 완벽한 문장으로 처음 한 말은 '나는 버펄로 빌을 몰라요.'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또한 작가 그레이엄 그린이 처음 했던 말은 '개가 불쌍해요.'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역시 비범한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며 자신은 무슨 말을 처음으로 했을까를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을 말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인모의 엄마는 그렇게 미연의 아버지와 살다가 홀연히 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건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건 당연히 "맘마"였을 테니까.


그러자 작가의 의도를 알 것도 같았다. 이 작품은 모성에게 바치는 작가의 헌사였던 것이다. 집(가정)은 머물기 위한 곳이기도 하지만 떠나기 위한 곳이기도 하다. 엄마가 해 주는 맘마 먹고 힘을 내 둥지를 박차 오르는 새처럼 떠나는 곳이 집인 것이다. 맘마는 곧 엄마다. 거기에 가족들의 진실을 파헤치려고 하는 건 의미가 없다. 그냥 함께 있어 온기를 서로 나눠 주면 또 알아서 자기 길 간다. 그 집에 엄마가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로인가.


그러니 성질 나쁜 가족이라도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 비록 집에선 악다구니를 써도 필요할 때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게 가족이다. 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 가정에서 소외되어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정에 할 일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가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그 가정이 나를 지켜준다.


작가는 후기에서 이 작품은 아는 동료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착상이 되어 썼다고 한다. 역시 작가는 언제 어디서고 소설의 순간을 잡아내는구나 싶다. 그러니 작가는 얼마나 예리하고 예민한 족속인가. 작가의 수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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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2-09 0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처음으로 한 말이 뭔지 아는 사람 많을지, 적을지... 엄마나 아빠라는 말 같기도 합니다 엄마가 먼저일 때가 많겠군요 부모는 늘 자식을 걱정하겠습니다 그러니 밥 먹었냐고 물어보겠네요 잘 먹고 지내라는 뜻도 있겠습니다

stella.K 님 명절 편안하게 보내세요 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4년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희선

stella.K 2024-02-09 12:58   좋아요 1 | URL
저도 첨으로 했던 말이 뭘까 생각해 봤는데 알 수는 없고 맘마나 엄마였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희선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명절 잘 보내십시오. ♡~

호시우행 2024-02-09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특히, 소설가들의 감수성과 창작능력은 놀랄만 하지요.

stella.K 2024-02-09 13:0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부러울 때가 많아요. ㅋ
이책 정말 재밌는데 표지는 맘에 들지는 않더군요. 그래서도 더 더욱 읽을 생각이 없었죠. 좋은 소설 읽으면 밥 먹은 것처럼 든든해요.ㅎ

cyrus 2024-02-09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밥은 먹었니?’만큼이나 어머니가 자주 하는 말이 ‘너, 어디 갔다 왔니?’가 있어요. ㅎㅎㅎ

stella.K 2024-02-09 13:11   좋아요 0 | URL
아직도...? ㅎㅎ
글에 쓰진 않았지만 그 질문은 이제 내가 울엄마한테 많이하지. 내가 울집에서 밥순이거든. 밥 안 자시냐는 말도 내가 더 많이하고. 울엄마 내가 밥 차리면 꼭 TV 앞에 앉아 계시거든. 누가 차려주는 밥상 좀 받아 보고 싶은데 요양원이나 들어가야 하나 싶다. ㅋ

물감 2024-02-09 1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도 이번 리뷰는 문체에서 천명관 작가의 냄새가 나는데요. 천명관 작품의 리뷰라서 그런가ㅋㅋㅋ 분명 진지한 회상 풍의 글임에도 어째선지 킬킬거리며 읽어버렸습니다. 늬들이 모성을 아느냐!!
그렇군요. 모성에 대한 헌사로 다시 읽는다면 색다른 느낌일지도 모르겠어요^^ 설 잘보내세요!

stella.K 2024-02-09 17:25   좋아요 1 | URL
캬~! 역시 물감님은 저의 글을 알아주시는군요. 근데 천명관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죠. 전 천명관 좋아합니다. ㅋ
아, 그러고보니 중요한 걸 잊고 있었군요.
물감님도 새해 복 많으시고 명절 잘 보내세요!^^
 
작가를 짓다 - 문호와 명작을 만들어 낸 보이지 않는 손
최동민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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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한번 읽어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읽게 됐다. 판형은 좀 작은 편인데 빈티지한 느낌이 좋다. 작가의 어원이 짓다라고 하던데 제목도 잘 지은 것 같다. 


이 책은 당대 유명 작가와 그를 있게 한 보이지 않은 조력자에 관한 이야기다. 그 조력자는 편집자일 수도 있고, 연인이나 배우자일 수도 있으며 자매나 형제일 수도 있다. 또 아주 드물게는 경쟁자일 수도 있고.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쓰도록 자극을 주고 도움을 줬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어쩌면 2등이라고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조명했다. 더구나 문학사에서 그런 사람들이 뭐 그리 중요했겠는가. 작가로 주목받기에도 힘든데. 그래도 저자가 이렇게 다뤄줬다는 게 새삼 기특하고 고마운 생각도 일견 든다.


하루키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작가는 링은 오르기는 쉽지만 오래 버티기는 어렵다고. 그것에 대해 저자는 말하기를 작가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특별히 싸울 상대도 없고, 그저 링에 올라 멀뚱히 앉아 백지를 바라보는 것 그게 전부다. 이런 규칙뿐이기에 승리나 패배가 기록되질 않는다고. 하루키가 이런 말을 하니 작가는 뭔가의 천형이 있는 것 같아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왜 그처럼 많은 작가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데뷔작 내지는 초기작을 내고 조용히 사라지는지 알 것도 같다.


사실 우린 몇몇 작가들이 계속 오래도록 작품을 내니까 그 일도 할만 한가보다 싶지만 알고 보면 그런 작가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전업작가도 그리 많은 편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 어느 직업 세계에서나 별이 된다는 건 너무 힘이 든다. 그래도 그걸 해 내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볼 때 그 사람에게 박수를 쳐주기 보다 세상에 못할 일은 없겠구나란 생각이 먼저 든다. 단지 다른 건, 저 사람은 해냈다는 것이고 나는 아직 안 했거나 못했다는 것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읽다 보면 나는 운명론자(?)는 아닌데, 사람은 평생 한 번 정도는(그보다 몇 번은 더 할 수도 있고) 은인을 만난다고 하던데 과연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작가에게도 통하는 말인가 싶기도 하다. 사실 작가는 혼자 쓰는 고독한 작업자들 아닌가. 근데 그렇지 않다는 걸 이 책은 증명해 보이고 있다.


특히 이 책의 첫 번째로 나오는 <<자기 앞의 생>>으로 유명한 로맹 가리의 보이지 않은 조력자이자 그의 어머니인 니나 카체프의 조력은 그야말로 인상적이기도 하고 눈물겹기도 하다. 저자가 왜 이 두 사람을 가장 먼저 조명했는지는 알 것도 같고.


하지만 내 개인적으론 (좀 조심스럽지만) 니나는 자신의 아들을 조력했다기 아들이 엄마에게 작가가 되도록 가스라이팅 당했다는 느낌이 든다. 또 어찌 보면 그렇게 가스라이팅 당할 것 같으면 좀 더 근사하고 강력한 뭔가에 당할 일이지 작가가 뭐 볼 일 있다고 그럴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그는 엄마가 하자는 대로 쫓아서 다 했다. 그나마 엄마의 바람대로 나중에 정계에 입문해서 장관이 됐으니 여한은 없겠지만.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니나의 희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모자 사이엔 뭔가의 간극이 있어 보이긴 한다.


어쨌든 이 책은 흥미롭긴 하다. 작가가 저 혼자되는 것 같아도 절대 그렇지 않다. 여기엔 다루지 않았지만 하루키도 그처럼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내와 좋은 편집자가 있기에 가능했다. 이렇게 누군가 조력자가 있다는 건 상당히 중요하다. 작가는 혼자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 나의 글을 기다려 주고 냉정하게 조언해 줄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없다면 만들어야 한다. 특히 요즘 젊은 작가들이나 아마추어 작가들은 혼자 쓰지 않고 그룹을 만들어 서로 도와 가며 활동하기도 한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책을 좋아하긴 한다. 이를테면 작가의 이면을 다룬 책들 말이다. 유려한 문체도 좋고, 무엇보다 저자의 시도가 참신해서 읽어 볼 만하다. 하지만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뭔가 뒷심이 약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조력자를 다루기보단 작가에 대해 다루고 대충 마무리하는. 뭐 대체로 책들이 그렇긴 하다. 끝까지 뒷심 좋은 책은 별로 많지 않다. 그런 것을 감안할 때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공들인 흔적은 느껴져 이 정도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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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4-01-15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 역시 되어가는 존재인가 봅니다. ‘전업-’이라는 접두어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 선망의 접두어기 아닌가 싶네요. 전문성을 보다 강조하여 ‘전업백수’였으면 좋겠습니다.^^ 이정도면 그냥 혼자 살아야겠죠? ㅋ

stella.K 2024-01-16 19:55   좋아요 1 | URL
ㅎㅎ 지금 초란공님이 하시는 일도 전업 아닌가요?
제가 전업 백수입니다. 전업 백수도 쉽진 않죠. ㅋㅋ

초란공 2024-01-16 21:50   좋아요 1 | URL
뒷심 있는 전업 백수가 되는 일은 더욱 쉽지않을 듯 합니다. 특히 ‘과로’하지 말아야 하고요. ^^ 건강 잘 챙기세요~!

stella.K 2024-01-17 10:29   좋아요 0 | URL
제가 무슨 뒷심이...ㅎㅎ 암튼 감사합니다. 초란공님도 건강하시길.^^

페크pek0501 2024-01-17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력은 필수, 그리고 버티기, 가 중요한 것 같아요. 버티다 보면 좋은 운이 찾아와 좋은 일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러므로 작가는 능력을 키우며 기다리는 자. 인내하는 자, 인 것 같습니다.^^

stella.K 2024-01-17 17:06   좋아요 0 | URL
아, 그 말씀도 맞네요.^^

hnine 2024-02-11 1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최동민이라는 이름이 낯익다 했더니 제가 한때 즐겨듣던 팟캐스트 <작가를 짓다> 진행하시던 분이네요. 거의 매일 들었었는데.

stella.K 2024-02-11 19:53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이 사람 글은 잘 쓰더군요.
브런치에서 무슨 상 받고 책으로 낸 줄 알고 있는데
팟캐스트도 한다고 듣긴했어요.
 
사람을 찾아, 먼 길을 떠났다
한수산 지음, 이순형 그림 / 해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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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수산 작가의 책을 이제야 처음으로 읽었다.

책을 산다면 주로 중고샵을 이용하는 편인데 오래전 이 책을 보관함에 담아 놓고 잊고 있다가 얼마 전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나와 있길래 횡재다 싶어 덥석 샀다. (나만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일단 사 놓고 쟁여 두는 스타일인데 이 책은 이상하게도 비교적 빨리 손이 갔다.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 봤더니 오랜만에 8, 90년 대의 서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물론 이 책은 2006년도에 나왔지만 명백히 한수산 작가는 8,90년 대 한창 활동했던 작가다.

난 아직도 8,90년대 작가들의 작품을 읽은 것보다 안 읽은 것이 더 많은데 그래도 그때 한창 매스컴에 오르내리던 작가들의 작품을 읽느라 가랑이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이렇게 말하면 소설 꽤나 읽었던 사람으로 오해받을까 싶은데, 그땐 지금만큼이나 매체가 다양하지 않아 기껏해야 신문이나 라디오 광고가 전부였다. 그러니 그중에 내 귀를 간질이고 눈에 들어오는 책이래봤자 얼마나 되겠는가. 지금의 5분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시절 한수산 작가도 나름 꽤 유명했는데 왜 난 책 한 권 읽어 볼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다. 그 시절엔 이문열이나 황석영 같은 걸출한 작가들이 있었다. 그들을 요즘의 언어로 말하면 문단계의 상남자들이다. 그런데 비해 한수산 작가는 황태자라고나 할까? (물론 진짜 그렇다는 건 아니고 앞서 말한 두 분에 비하면이다.) 아무튼 결이 좀 다른 작가란 느낌이 있다. 당시로선 역시 상담자답게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소설이 소위 먹어줬던 때라 한수산 작가는 나에겐 늘 예외로 밀려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작가의 작품을 읽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모르긴 해도 작가가 한창 문명을 떨치고 있을 때 읽었으면 난 좀 시큰둥 했을지 모른다. 그 시절 내가 산문집을 그리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 아직 덜 여물 때니 무엇을 제대로 알았겠는가. 소설도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고 꾸역꾸역 읽었던 것 같다. 게다가 우린 동시대의 것을 좀 낮게 보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상대적으로 저평가한 작가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지나놓고 보니 아, 이런 작가였구나! 새삼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중고샵에서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샀다고 마냥 좋아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를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복간해 제값 내고 사 봐야 되는 건 아닌가 싶었다. (물론 그러면 나 같은 얌생이는 안 볼 확률이 아주 없진 않다.ㅠ )

산문집도 시대마다 결을 달리하는 것 같다. 지금처럼 다양한 결을 갖는 것도 좋긴 하겠지만 그 시절의 서정이 배어있는 책이 좋다. 이 책이 그렇다. 뭔가 옛 생각에 젖어들게 만든다. 역시 문학은 세월을 약간 비껴서 봐야 더 잘 보이는 건 아닌가 싶다. 앞으로 10년 뒤에 요즘 핫한 소설이나 산문을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진다. 그만큼 책은 역사적 산물이고 살아 숨을 쉰다. 10년 뒤에도 잊히지 않고 읽히는 책이 된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일 것이다. 독자가 10년 뒤에도 찾아 주지 않으면 그 책은 유명무실하다. 아니 외로울 것이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건, 작가가 자신의 은사를 기리며 쓴 글이다. 작가가 대학시절 국문학에서 영문학으로 전과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박용주 교수를 기리는 마음이 애틋하다. 여간한 은사가 아니면 이렇게 챕터 한 장을 통째로 쓰는 건 드물 것 같다. 그런 걸 보면 사제지간이 꽤 끈끈했던 모양이다. 작가는, 교수님은 '생활은 평범하나 이상은 드높게(Plain Living High Thinking)'라는 말을 흑판에 쓰면서 낭만주의의 핵심을 기억시킨 분이라고 소개한다.

또한 소설가들 중엔 술을 그것도 미국 작가들이 많이 마시는데 왜 그런가에 대해 교수님은 누가 작가가 글을 쓴다는 건 발가벗는 것 같은 부끄러움 때문이라고 카더라며 그러니 글 쓴다고 너무 술을 많이 먹지 말라며 경계해 주셨다고도 쓰고 있다. 그런 것을 보면 박용주 교수는 한수산 작가를 아들같이 챙겼나 보다. 또한 그분은 이 세상을 둘로 나눈다면 토머스 울프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겠다며 토머스 울프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게 존경해 마지않던 은사님의 마지막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며 울먹인다. 그리고 훗날 교수님의 아드님이 결혼 주례를 작가에게 부탁받았을 때 과연 그럴 자격이 있나 잠시 주춤했다고 쓰고 있다. 순간 얼마나 은사님이 생각났을까 싶다. 그 글을 읽고 있는데 나에게도 과연 그런 은사님이 계셨을까를 돌아보게 한다. 분명 계신다. 작가의 은사님만 같지 않을지라도.

책은 후반부에 우리나라의 쿠바 유민사와 고려인을 찾는 시베리아 8천 킬로미터 대장정의 기행문을 담기도 했다.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 이 책 사 보길 잘했다 뿌듯함마저 느껴졌다. 그러면서 정말 우리가 아는 역사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득, 예전에 작가들은 이렇게 자료수집이란 명목하에 취재하기 바빴다. 취재가 작품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러다 어느 때부턴가 작가들은 엉덩이의 힘이라며 취재보단 서재나 연구실에 앉아서 글을 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이제 취재는 기자나 르포나 기행 작가만 하는 것 같다. 과연 이게 맞는 건가 의문스럽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요즘의 산문집과 다르게 뭔가의 힘이 느껴지면서 작가가 참 치열하게 글을 썼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문체도 나름의 격조가 느껴진다.

여담이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거리의 악사'란 작가의 원작 영화를 보기도 했다. (영화는 당시는 어떨지 몰라도 요즘 보기엔 다소 감이 떨어지는 느낌이어서 다소 아쉬웠다.) 확실히 원작을 영화로 보는 것과 책으로 보는 것은 차이가 많다. 뭐 선택이고 취향이지만 난 역시 책 보다 나은 원작은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유명한 작가의 필화 사건도 언급했는데 그로 인해 작가는 잠시 한국을 떠나 살기도 했다. 누구의 소설 제목처럼 한국이 싫어서. 그 시절 필화 사건 하나쯤 연루되지 않은 먹물들이 어디 있겠는가. 철없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때 친구 하나가 운동권이었는데 그 때문에 알만한 명문 여자 대학에서 잘리고도 시대가 바뀌자 오히려 그것이 훈장이 되었다.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는 게 맞는 말 같다.

지금은 예전 같은 필력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작가는 최근까지도 책을 내면서 편안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그게 참 보기가 좋다. 아무리 작가는 정년이 없는 직업이라지만 젊었을 때 치열하게 쓰고 노년이 되어서는 즐기면서 쓰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모쪼록 강건하셔서 오래도록 글을 써 주셨으면 좋겠다.

부디 건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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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1-10 2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수산 작가가 감성적인 글을 쓰신 분인데 남산인가 어딘가로 끌려가 고문당한 걸 생각하면 기가 찹니다.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하더라고요.
건강하시면 좋겠어요^^

stella.K 2024-01-11 11:52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서 고문을 당했다고. 아마 그 때문에 일본으로 가셔서 은사님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고 쓰셨던 것같아요.
제가 요즘 이렇습니다. 돌아서면 깜빡하거나 가물가물 입니다. 이해하시길. 이 책 읽은지 좀 되거덩요. ㅋ

2024-01-11 04: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11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목련 2024-01-11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읽은 작가의 <가을 나그네>를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정확하지 않지만 소설 속 딸 이름이었던 동영, 서영, 남영. 줄거리는 도통 생각나지 않고요. ㅎ

stella.K 2024-01-11 12:03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딸 셋만 낳길 다행이네요. 넷이었으면 뭐라고 지였을까요? 북영에세 ㄴ을 뺐을까요? ㅋ
제목 말씀하시니까 한수산 작가와 비슷한 결을 가진 작가가 최인호나 박범신 작가가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마음 같아선 이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쫘악 읽어보고 싶기도 한데 그냥 마음 뿐이네요. ㅠ

blanca 2024-01-11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시대 특유의 서정성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어요...아련하네요. 저는 요새 무려 80년대 전원일기를 다시 보고 있답니다.

stella.K 2024-01-11 15:17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한때 그랬어요. 리모컨 운전하고 있으면 옛날 고릿적 드라마 를 하는데 아, 저런 때가 있었지, 아련해 지더군요. 그리고 그렇게 브라운간을 채웠던 배우들이 하나 둘씩 진짜 저 하늘의 별이되는 걸 보면 쓸쓸해요. 그래도 이렇게 옛 작가의 글을 더듬어 읽는 것도 꽤 낭만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랑카님도 한 번...!^^
 

               


우연찮게 보게된 드라마다. 그런데 이게 무려 2020년도에 만들어졌다는 걸 알고 좀 놀랐다. 아니 이렇게나 오랜 드라마를 그것도 내가 보고 있는 G TV에서 그것도 무료로 보여준다. 근데 뭐 때문인지 전회는 아니고 4회만 보여준다. ㅉ

처음엔 조금 보다가 재미없으면 접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 꽤 괜찮게 만들었다. 화면도 예쁘고 편집 아기자기하게  잘했다. 

며느라기의 뜻은 사춘기, 갱년기처럼 결혼하게되면 꼭 겪게되는 인생의 과정을 그렇게 부른단다. 국어 사전에도 등재될만한 공식 단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성을 대표할만한 상당히 상징적인 단어라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가정은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예전엔 시어머니하면 완고하고 고집센 마귀 할멈 같은 이미지지만 이 드라마에 나오는 시어머니면 정말 좋은 시어머니라고 생각한다. 나름 며느리를 이해하고 배려해 주려고 노력한다. 며느리 역시도 노력하는 며느리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좋은 게 좋은 것이 되지 못하며 서로 잘하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일은 더 꼬이기만 한다.

이 드라마의 장점은 주인공에게만 촛점을 맞추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 저마다 처해진 입장과 현실을 보여주므로 역지사지를 통해 서로간의 이해를 높여가는데 촛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악한 사람이 없고 주인공이라고 해서 특별히 선하거나 더 똑똑하거나 잘난 것도 아니다. 또한 세대간의 사고의 차이도 가감없이 보여준다.

특별히 내가 한 집안의 며느리라는 걸 여지없이 깨닫게 해 주는 건 명절이나 집안 제사 때가 아닐까 싶다. 이미 말했다시피 시어머니가 옹졸하고 편협한 사람이 아닌데도 살아 온 패턴과 굳어진 사고 때문에 아들 내외와 충돌을 일으킨다. 사실 요즘 같은 시대에도 명절에 친정 먼저 들리고 시댁을 나중에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신랑이 공평을 기한다고 추석 때 본가를 먼저 왔으니 다음 돌아오는 명절인 설 때는 처가 먼저 들렸다 온다고 했더니 아버지는 노발대발이고 엄마 역시 싸늘하다. 와~ 결혼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그나마 생각해 보겠다는 엄마가 고마울 정도다.

그걸 보면서 우리나라는 결혼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긴하다 싶다. 무엇보다 결혼하면 지워지는 여러 가지 역할들을 덜어내야 한다. 명절도 아들 며느라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된다. 물론 부모 입장에선 서운하긴 할 것이다. 그러면 서로 절충안을 찾아야 한다. 

결혼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드라마를 보면 부부가 서로 어떤 역할을 할 건지 서로 의논해서 일종의 행동강령을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흔히들 결혼한 커풀들은 많이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한쿡은 아직도 남녀의 결혼이 아니라 집안끼리의 결혼이 더 강하기 때문에 명절이나 집안 행사 때 어떻게 할지를 시부모와 상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게 뒷받침이 안 되있는데 부부만 아무리 행동강령을 만들면 뭐하겠는가. 다 깨지는 걸. 그건 사위가 처가 부모와도 마찬가지다.    

난 출산 돌봄을 인구정책의 하나로 보는 우리나라의 시각에 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결혼이 행복하면 아이도 자연스럽게 낳을텐데 결혼할 수 있는 여건은 안 만들고 무조건 애만 낳으라면 그게 실효성이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암튼 이 드라마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아직 안 본 사람이 있다면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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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01-07 07: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tv에서 여러번 재방송해주기에 저도 재미있게 봤어요.
책 표지의 헤어스타일이 실제 드라마에서 박하선 헤어스타일이랑 똑같군요 ^^
특별히 문제있는 인물이 없다는게, 이게 대한민국에서는 지극히 평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게 오히려 문제구나 생각했어요. 결혼한 자녀에게 개입하려는 부모, 결혼했음에도 부모에게 의존하려는 자식, 모두 앞으로 바뀌어가야겠지요.

stella.K 2024-01-07 09:56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근데 저는 왜 이제야 봤을까요?
맞아요. 부모를 의지하려고 하는 것도 문제죠. 사회 구조도 문제고.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게되야 가족 문제도 많이 해결될 거라고 봐요. 가족끼리 끈끈한 결속도 나쁜 건 아닌데 인간관계 참 쉽지 않아요. 그죠?ㅋ

페크pek0501 2024-01-10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것 봐야겠군요. 인간관계에서 마음의 매듭을 푸는 데 도움을 줄 것 같네요.
문화가 바뀌려면 기성 세대의 시선이 바뀌어야 할 텐데 쉽지 않은 일이죠.
추신) 스텔라 님의 춤 추는 이미지 사진, 참 멋집니다. 어느 서재에서 님의 댓글로 이미지 사진을 보고 재밌어서 달려왔어요.헤헤~

stella.K 2024-01-10 19:53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이 드라마 시즌 1을 봤는데 3까지 나온 것 같더군요.
정말 공감하면서 봤어요.
박하선하고 권율이 연기를 잘하더군요. ㅎ

서재 이미지 좋아하시는 분이 많으시네요. ㅎ
사실 저 이미지는 2006년도인가? 그때 황진이란 드라마 했잖아요.
거기서 황진이 역을 맡았던 하지원의 한복 의상에서 따 온 거라고 하더군요.^^
 

0. 흐림.

거의 매년 우리나라는 이맘 때 가물었는데 올해는 별로 춥지도 않지만 비나 눈 오는 날도 제법 된다. 가물지 않는 건 나쁘지 않은데 갈수록 겨울이 겨울답지 않은 건 뭔가 불온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1. 그 말 많고 탈만은 2023년이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 올해는 그 어느 해 보다도 다사다난했던 것 같다. 올핸 유난히 유명 인사들의 죽음의 소식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도 연말은 잘 지나가는가 보다 생각했는데 이선균 배우가 크게 한 방 먹여주고 떠나서 역시 우울하게 한해를 마무리 하게 되는 것 같다. 난 연말마다 하는 시상식 같은 건 잘 안 보는데 짬짬히 보니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들은 고 이선균 배우를 의식한 건지 하나 같이 흰색 아니면 검은색 드레스와 슈트를 입었더라. 

뭐 그런 의미도 있겠지만 뭔가 시위의 의미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 사건이 터져 나왔을 때 정치권쪽에서 한창 쟁점화됐던 사건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술책이었단 말도 있던데 그러기 위해 한 사람이 그것도 유명 배우가 죽어야 했다면 의상 시위 정도 가지고는 안 되지 않을까? 재발방지 대책이 그들 안에서도 나와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알고보면 가장 많은 말을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오죽 답답했으면 죽어서까지 말하고 싶어했을까. 사람들은 자살은 거의 대부분 우울증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도 아닐 것 같다. 어떤 자살은 분노나 원한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2. 이영애 배우를 좋아해 드라마 <마에스트라>를 끝까지 봐 주려고 했는데 안 보는 게 낫지 싶다. 이젠 단순히 치정이 아니었다. 무슨 마약에 살인에 뭐 이런 드라마가 있나 싶다. 게다가 너무 작위적이어서 어제는 보면서 헛웃음까지 나오더라. 근데 나도 좀 그런 게 이 드라마가 어느 프드를 원작으로 했다는 말을 들어서일까? 프랑스 드라마도 참 별거 아니란 생각이 드는 거다. 특히 마약 가지고 황홀해 하다 죽는다는 설정은 이제까지 본 드라마 중 가장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2-1. 마약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우리나라는 이미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이제 마약은 일상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마약과의 전쟁도 좋긴한데 이젠 마약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 달라져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물론 마약은 근절되야 한다. 근데 이젠 마약을 단순히 범죄로만 바라보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건 차라리 사회적 질병으로 봐야하는 건 아닐까? 마약과의 전쟁이라면 여전히 범죄로 규정해서 잡아 들이기만 하겠다는 소리로 들리기도 하는데 그래가지고 마약을 근절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젠 치료에 촛점을 맞추어야 하는 건 아닌가 싶다.

또 죽은 사람 얘기해서 미안하지만 고 이선균 배우가 마약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언론에서 보도를 자제하고 치료 기관 또는 범죄인 인권 보호기관(과연 그런 곳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같은 곳에서 그를 적극적으로 보호해 줘야만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관련된 범죄가 소명되면 그때 가서 보도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죽음을 두고 어떤 사람은 정치계 탓을 하던데 그래서 명복을 빌지 못하겠다고 하는데 그건 또 무슨 귀신 신다락 까먹는 소린지 모르겠다. 명복을 빌려면 깨끗히 빌어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라. 나 같은 민초는 명복 밖엔 빌어 줄 것이 없어서 그렇게 했다. 적어도 그 사람은 나 보다 잘 나지 않았는가. 

나는 누가 뭐래도 언론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이 제 정신만 차리더라도 정가에서 어떤 명령이 떨어져도 옳지 않으면 안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뭔가의 유착이 있었겠지? 지금도 죽은 사람에 대한 미담과 불온한 보도가 번갈아 가면서 뜨고 있다. 내 친구 하나는 오래 전부터 뉴스건 신문이건 다 안 본다고 하던데 이해할 것 같다. 소문만 있고 정론은 없는 쓰레기다.


3. 올해는 개인적으로 너무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 누군가를 향한 분노와 원망으로 한 해를 보냈던 것 같다. 왜 홀수 해에 악재가 붙을까? 그렇다면 처방책은 뭘까를 생각해 봤더니 홀수 해에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를 계획하고 그 계획을 실천해 보는 거다. 그러다 보면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고 짝수 해에 뭔가의 기쁜 일을 맛 보게되지 않을까? 내후년엔 꼭 실천해 보리라. 

잘 가라, 2023 년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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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4-01-01 10: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난주 금요일부터 쉬고 있어서 2023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아쉽다기보다는 쉬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ㅎㅎㅎ 진짜로 휴식날이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이미 이번 주 일하면서 처리해야 할 물량이 많다는 걸 알고 있어서 당분간 일찍 퇴근하는 날은 없을 것 같아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stella.K 2024-01-01 14:54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래 맞아. 새해 가 됐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냥 숫자 하나 변했다는 거 뿐이지. ㅋ 넌 그 좋아하는 책을 앞으로 한동안 많이 못 읽겠군. 하지만 네가 책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힘차게 해. 너도 새해 복 많이 받고 올해도 좋은 책 많이 읽어. 고마워.^^

서곡 2024-01-01 15: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첫날 오늘 잘보내시길요!!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

stella.K 2024-01-01 15:26   좋아요 1 | URL
앗, 고맙습니다. 새해가 됐는데 날씨가 참 우중충하네요. 맑으면 좋을텐데 그죠? ㅎ 모쪼록 서곡님도 남은 시간 평안히 보내시구요, 내일부터 힘찬 발걸음 내딛으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페크pek0501 2024-01-01 18: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 해가 너무 빨리 갑니다. 우리는 마음의 준비 없이 그냥 나이 한 살 또 먹고요.
이번엔 시상식을 보지 않았고, 식구들이 못 자게 해서 제야의 종소리는 함께 들었습니다.
새해에는 모든 전쟁이 종식되었다는 뉴스를 듣게 되기를, 누군가가 갑자기 떠났다는 소식은
들려 오지 않기를 바라게 됩니다. 불행한 일이 없으면 그게 행복인 거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stella.K 2024-01-02 10:16   좋아요 1 | URL
아, 언니 바람대로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올핸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무고히 죽게될까 벌써부터 걱정이에요.
뭐 걱정은 걱정이고 우린 또 우리의 삶을 살야겠죠. 힘차게 살기로 해요. 홧팅!!

희선 2024-01-02 01: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새해 첫날은 따듯했어요 따듯해서 겨울에 이렇게 따듯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추울 때는 춥다고 안 좋아했는데... 다음주에 추워진다고 합니다

stella.K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 잘 챙기시고 짝수해니 지난해보다 좀 낫겠지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희선

stella.K 2024-01-02 10:21   좋아요 2 | URL
그렇죠? 올핸 눈도 많이 왔는데 금방 녹아요. 근데 그게 마냥 좋지마는 않더라구요. 오히려 추워진다니까 조금 안심이 되는 거 있죠? ㅋ 짝수 해 행운 빌어준거 고마워요. 모쪼록 희선님도 올해가 좋은 한 해가 되길 빌어요. 복 많이 받어요.^^

자목련 2024-01-02 11: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드라마 <마에스트라>를 보고 있는데 제가 기대했던 내용이 아닌 막장(?)으로 흘러서 아쉬운 마음이 많아요. 저는 어떻게 끌날까 궁금해서 그냥 시청하고 있어요. ㅎ

stella.K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tella.K 2024-01-02 15:05   좋아요 1 | URL
저도 자목련님과 같은 생각이었는데 지난 주일에 못 봤어요. 그럼 앞으로도 안 보게될 것 같다능. ㅋ
고맙습니다. 자목련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 좋은 글 쓰시기 바랍니다.^^

yamoo 2024-01-02 1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24년엔 꼭 달인에 등극하시길!^^

stella.K 2024-01-02 15:09   좋아요 1 | URL
서재의 달인 이제 포기하려고 했는데 야무님 이러시면 승부욕 생기는데요? ㅎㅎ
암튼 고맙습니다. 야무님도 행복한 한 해되십시오.^^

서곡 2024-01-03 17: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 프사 이뻐요 ㅎㅎ

stella.K 2024-01-03 18:03   좋아요 1 | URL
ㅎㅎ 그렇습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보는 순간 이거 내 서재에 걸면 좋겠다 싶더군요. 그래도 현재 활동하는 작가라 혹시 몰라 오래 걸 생각은 없고 설 명절 정도까지만 걸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