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간 장마중 가뭄이랬다고 마른 장마가 계속 되더니 올해는 장마 값을 톡톡히 한다. 정말 비에 갇힌 느낌이다. 이런 날씨가 12일까지 갈거라고 하던데 이런 긴 장마는 지난 1987년의 기록을 깬 거라나 뭐라나. 정말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그저 12일까지는 안 가길 바랄뿐이다.

 

어제는 일찍 자려고 했는데 tv에서 <어디선가 누군가의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립없니 나타난다 홍반장>을 한다기에 안 볼 수가 없어서 봤다. 김주혁만 살아 있었어도 안 보거나 조금 보다가 말았을텐데 괜히 안 보면 서운할 것 같아 봤다. 

 

 

사실 그는 살아생전엔 딱히 좋아했던 배우는 아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너무 일찍 죽었고 허망하게 죽었다. 죽고나니 생각나는 배우가 됐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제법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아직 그의 추도일이 되려면 몇달 남았는데 tv에선 왜 방송을 하는 건가 의아스러웠다. 별 생각없이 방송한 것 같다. 내가 너무 민감했나?

 

사실 이 영화를 이번에 처음 본 건 아니다. 오래 전에 본 기억이 난다. 그땐 처음 봐서 그런가 그냥 재밌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세월이 흘러서일까 영화가 좀 별로란 생각이 든다. 뭐 촌스러운 건 차치하고라도 이 영화는 결코 여성을 위하거나 배려한 작품이 아니다. 보고 있으면 은근 화가난다. 김주혁이 맡았던 홍반장을 위해 상대 배역인 윤혜진(엄정화)을 바보로 만드는 참 허접한 영화란 생각이 든다. 

 

         

물론 사랑을 이루려면 상대의 눈에 많이 띄라는 법칙이 있긴 하다. 영화는 이 법칙을 노골적으로 과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치과 의사라면 나름 똑똑할 텐데 여기선 뭐하나 재대로 하는 것이 없는 멍청한 의사로 나온다. 그래서 위험할 때마다 홍반장이나와 해결해 주고 거기서 사랑을 느낀다는 컨셉인데 왜 여자는 도움 받기를 좋아하는 나약한 존재라고 19세기적 사고 방식을 유지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어려울 때마다 나타나서 도와준다면 그건 고마운 일이지 사랑을 느낄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여자에게 그렇게 친절을 베풀면 사랑할 거라고 착각하는가 보다.

 

더구나 홍반장도 그렇다. 그렇게 많이 여자를 도와줬는데 여자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둘 중 하나다. 바보거나 고자이거나. 난 여자의 생김이나 재산과 학력 유무와 상관없이 그저 순수한 마음에서 도와주는 거라고 하다면 그건 영웅심으로 똘똘뭉쳤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여자는 더 못 된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들어 혜진이 운전을 하고 가다가 뒷차에 받힌다. 그리 크게 흠이 난 것이 아니라 미안하다는 사과만 받으려고 했는데 영화적 재미를 위해설까? 받힌 차가 사과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양아치짓을 한다. 여자는 관용을 베풀려는 거였는데 그런 양아치가 도로 위를 질주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만만하게 나와선 안 되는 거였다. 또 그런 상황에서 함부로 관용을 베풀면 오해 받는다. 날 좋아하나 하고. 아무튼 그럴 땐 법대로 하지고 하곤 경찰이라도 불러댔어야 했다. 물론 그러면 여자가 빡빡하게 군다고 또 뭐라고 그러겠지. 우리나라 법체계가 여자에게 호락호락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해도 욕 먹고 저렇게 해도 욕을 먹는 상황이라면 여자는 무조건 처음부터 말랑말랑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게다가 치과 간호사는 홍반장에 대한 정보를 물어다 주는데 어디서 듣고 썰을 푸는지도 명확치 않을뿐만 아니라 혜진은 그걸 꽤나 관심있게 듣고 있는데 보고 있노라면 사랑에 대한 관심 보단 속되게 보인다. 더구나 홍반장네에서 술을 마시고 거기서 잠을 잔게 그렇게도 대단한 것이어야 하는 건지. 어떤 영화는 전혀 세월을 안타고 10년, 20년 뒤에 봐도 여전히 좋다고 감탄하는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는 왜 이모양인지 모르겠다. 이 영화 평점도 좋고 칭찬일색이던데 문제 의식을 가지고 봐야지 무조건 좋은 게 좋다는 식은 좀....

 

시나리오를 누가 썼는지 모르겠지만(감독이 썼을지도 모르지) 전혀 여물지도 않고 로맨틱 코미디라면 여성 관객을 겨냥했을텐데 도무지 어느 한 장면도 여성스러운 가치가 빛났던 장면이 없다. 세상은 나쁜 놈이 사는 세상이다. 그래도 여자를 구하는 건 남자 밖에 없다는 걸 애써 주입하려고 했다. 이런 허접한 영화는 정말 사양하고 싶다. 그래도 김주혁을 생각해 끝까지 봐주려고 했는데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웬 공익광고를 하고 있었다. 이래저래 이 영화는 나와는 인연이 없는 영화였나 보다 예전에도 끝까지 보지 못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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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03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0-08-04 14:30   좋아요 1 | URL
아유, 왜요. 댓글이란 게 원래 아무 말이나 자유롭게 하는 건데요.
늘 제 서재에 무플이 안 되도록 항상 앞장 서 주셔서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ㅎ

<새>를 했었군요. 원래 명작도 자세히 보면 구멍이 있다잖아요.
운이 좋으셨네요. 그러고 보니 <새>도 그렇지만 히치콕의 영화를 본지가
꽤 되네요. 사춘기 때 <사이코> 보고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히치콕은 확실히 대단한 사람 같아요.

비둘기 모여 있으면 좀 으시시하긴 하죠? 색깔도 그렇고.ㅋ

레삭매냐 2020-08-04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정말 영화를 많이 봤었는데
이제 영화 그리고 음악은 다 오래 전
추억으로만 간직하게 되었네요.

대신 책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
으니, 감지덕지해야 할까요.

짚어주신 대로 인연이 없는 영화가
있더라구요. 아마 의지박약이 문제가
아닐까 싶지만. 영화는 내리 달려야
하니깐요. 책은 뭐 읽다 말다를 거듭
해도 상관 없지만.

stella.K 2020-08-04 18:06   좋아요 1 | URL
의지박약...? 제가요...?
흥! 왕삐짐입니다. ㅋㅋ
그렇긴 하죠. 영화는 내리 달리는 맛이 있어야 하죠.
그래서 영화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정말 영화가 그렇게 많아도 한 큐에 보기는 참 쉽지 않더군요.
책도 그렇긴 하지만 어쩌다 뇌에 청량감을 부여하는 책 만나면
영화나 음악은 잠시 꺼둬도 되죠.^^

레삭매냐 2020-08-04 15:21   좋아요 1 | URL
아니 무신 말쌈을...

ㅎㅎ 의지박약의 화신인 저
자신에 대한 자백인 것을 !!!

이래서 주어를 정확하게 써야
하는 거군요 ~

moonnight 2020-08-04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 영화 앞에 좀 보다가 짜증나서 껐던 기억 나요 -_-

stella.K 2020-08-04 14:41   좋아요 0 | URL
맞아요. 특히 이번에 보니까 엄정화를 완전 똑똑한 바보로
만들어 놨더군요. 열 받았어요.
모르긴 해도 감독이 가부장을 못 벗어난 사람은 아닌가 해요.

transient-guest 2020-08-07 0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당시에 이런 류의 코미디가 많았던 것 같아요. 한국영화는 발전도 엄청나게 했지만 시기별로 비슷한 영화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도 듭니다. 홍반장도 당시에 꽤 화제였는데 사실 그저 그랬어요.

stella.K 2020-08-07 14:05   좋아요 1 | URL
그랬나요? 암튼 이 영화 정말 빡쳤어요.
그 영화를 보면 그 감독이 보이죠.ㅋㅋ
 
나, 살아남은 자의 증언 - 위장된 3차 대전과 잃어버린 청춘의 녹슨 파편
김정옥 지음 / 늘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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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패러디한 거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뭔가의 흥미를 유발한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가 연극 연출을 했다고 한다. 일반인들에겐 잘 안 알려져 있지만 이 방면으론 거의 대통령급 되시겠다.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며 한때는 회장까지 역임하셨다니 말이다.


이 책은 저자의 자전 에세이인데 스스로를 회색분자라며 젊은 시절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역시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떠나 얘기할 수 없구나 싶다. 더구나 저자는 자본주의 인텔리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한 삶을 살았다. 예술을 사랑해서 중앙대학을 거쳐 서울 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전쟁 중 프랑스 유학을 할 정도니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그는 프랑스에 도착하자 비로소 자유를 만끽했고 그 나라의 높은 예술 수준에 푹 빠져 공부했다. 그 점은 독자인 나도 부럽긴 하다. 무엇보다 비슷한 또래의 프랑스인들이 자신은 파시스트니 공산주의니하며 서슴없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데 놀랐다고 한다. 저자는 좌우익 어디에도 설 수 없는데 말이다. 좌도 우도 선택할 수 없지만 설혹 선택했다 해도 그것을 드러내기엔 우리나라는 얼마나 위험하며 용기가 필요한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지금은 우리나라 교육 수준이 높아져 외국에서 유학을 오기도 하지만 역시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 교육 개방의 기회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또 학생 때 구맥회 멤버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그 유명한 구인회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하니 지적 허영과 호기로움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세대인 한국전쟁에 대해 많은 회의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로 인해 그가 아는 적지 않은 사람이 죽거나 사상 때문에 북으로 갔다. 그러면서 전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려고 했다.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의문스러운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어찌 보면 그건 당연하다.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인데 거기에 어찌 명백하고 타당한 이유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아직도 찾지 못한 희생자의 뼈골이 얼만데. 그 숫자만큼이나 규명되지 않은 진실이 숨어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전쟁에 대해 묻고 있다. 하지만 마땅한 답을 구하지 못한 채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특히 맥아더와 트루먼의 관계 그 사이에서 낀 우리나라의 운명을 조명한 부분은 개인의 에세이로만 다룰 건 아니라고 본다. 어찌 보면 이 책은 개인은 역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조망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역사학자의 것 마는 아닐 뿐만 아니라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이런 증언을 더 많이 들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나의 역사 지식은 일천하다 못해 통탄할 정도니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저자는 이 책을 내기 전 가까운 지인들에게 보이고 조언을 듣고자 했다. 그러자 지인들은 좀 산만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는데 잘 쓰고자 하는 욕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책을 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저자가 연극계에 종사를 해서 그런지 글이 간결하고 이 자체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저자가 살아온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많이 짧지 않나 싶다.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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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밤이면 EBS2에서 하는 강연 프로를 계속 듣고 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강연>, <마스터>, <클래식>을 연이어 방송하고 있는데 유명 강사진의 강연을 들을 수 있어 좋다.

 

나는 한동안 이것을 보느라 다른 방송은 거의 못 볼 지경이었는데 그렇다고 매번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건 아니다. 보다가 깜빡 잠이 드는 경우도 많다. 밤에 불 끄고 누워서 들으니 그럴 수 밖에. 또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원래 강의든 강연이든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듣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난 학교 때 공부를 못 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예나 지금이나 관심 있는 건 책으로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니 강연을 듣는다는 건 역시 내 스타일은 아니다. 그래도 밤마다 강연을 들을 수 있다는 건 불꽃이 팡팡 터지는 느낌이다. 한밤의 향연이라고나 할까.

 

암튼 지금까지 가장 오래 편성을 한 건 강신주의 강연이다. 매일 25분씩 한 주에 네 번, 4주를 강연했으니.  

 

첫날 강신주 교수를 봤을 때 그가 아닌 줄 알았다. 일부런지 아니면 이유가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살이 엄청 빠졌다. 그러다 보니 얼굴에 굵은 주름도 보인다. 특히 이마. 한 10년 전쯤 그의 독자와의 만남에서 봤을 땐 거의 깍두기 머리에 약간은 촌티가 느껴지기도 했는데 살이 빠지니 세련된 것도 같고. 늙은 것도 같고, 암튼 묘한 조화다.

 

그는 이번 강연에서 아낌의 인문학을 강연했는데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고 아껴달라고 한다. 들으면서 과연 그렇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린 사랑 포화 상태에 있지 않나? 그것도 말로만. 사랑과 아낌이 같은 것 같기도 하지만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은 뭔가 그득히 채움이지만 아낌은 오히려 빼고 깎는 느낌이다. 

 

아무튼 그 문제의 강연집이 최근 책으로 나왔다. 읽어보고 싶긴한데 오래 전 <감정수업>을 사 놓고 읽지도 않았다. 읽으려면 그것부터 읽어야겠지.

 

어제 알라딘 TV에서 그가 나온 걸 봤다. 난 그가 그렇게 웃기는 줄은 몰랐다. 이렇게 웃기는 사람이라면 K 본부에 나올 땐 꽤 근엄하게 하고 나오는 거다. 입담이 장난이 아니다. 

 

요즘 어찌어찌하다 보니 웃기는 책을 많이 읽게 됐다. 요즘 대세는 잘 생긴 것 보다 웃기는 거라고 하던데. 책도 문장이 좋은 것 보다 웃기는 게 대세는 아닌가 싶다. 작가도 웃길 줄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니. 웃기지 못하는 작가는 작가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박상영 작가 알라딘 TV 고정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던데 뭐 어디 가면 굶겠냐마는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 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 못 들어주나? 본인이 그렇게 바라는데 고정시켜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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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07-30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거 라디오 방송으로 조금 들은 적 있어요 아침 11시부터 12시까지 텔레비전 방송으로 한 걸 라디오 방송으로 해주는 거예요 텔레비전 방송보다 좀 늦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게 텔레비전 방송이어서 목소리만 들으면 누군지 몰라요 처음에 이름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하지 않을 때도 있더군요 그렇게 잘 듣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말했네요 예전에는 그 말 안 한다고 그러더니 지금은 넘쳐나죠 그래도 진심이겠지요 저는 거의 안 하지만...


희선

stella.K 2020-07-30 14:39   좋아요 1 | URL
아, 그게 라디오에서도 하는군요.
저는 라디오는 잘 안 듣는지라......
이런 프로 좋긴한데 새삼 드는 생각은 모든 강연자가
다 강연을 잘하는 건 아니구나 싶어요.
어떤 사람은 좀 헤멘다 싶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강연 잘하고 그걸로 돈 버는 사람 좀 부럽긴 하더군요.
강신주도 어떤 땐 좀 헤멘다 싶은데 그래도 이 사람 강연 들으면서
철학을 좀 알아야겠구나 싶더군요.

syo 2020-07-30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깐 봤는데, 진짜 상영님 말 겁나 잘하던데요?? 부러웠다.....

stella.K 2020-07-30 14:44   좋아요 0 | URL
스요님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ㅎㅎ
입담 좋은 사람 보면 부럽긴하죠.
알라딘 TV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긴한데
의외로 등잔 밑이 어둡다고 안 보는 사람도 있긴한가 봐요.
박상영 작가 웃기니까 급관심이 가더군요.
공중파에선 어쩌면 그리도 점잖던지 깜빡 속고 있었습니다.
알라딘 TV 끝까지 봐요. 웃겨요.팧하하하하~

페크(pek0501) 2020-07-30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강신주 님의 책을 사 놓고 훑어보기만 하고 정독을 못한 1인입니다.
저는 밤에 일찍 누으면 오디오북을 듣거나 유튜브로 강의 들어요. 눈을 감고요.
눈을 쉬게 해 줘야 할 것 같아서요.ㅋ

stella.K 2020-07-30 21:27   좋아요 1 | URL
앗, 저도 방금 언니 서재에 다녀왔는데...ㅎㅎ

진짜 그 프로 정말 좋은 게 눈감고 듣기만 해도 된다는 거예요.
그러다 잠 들면 땡이지만...ㅋ
물론 어떤 강연은 재방송도 해서 나중에 챙겨보기도 하죠.
그건 아직 올레 TV에서 다시보기 서비스를 안 해 주더라구요.ㅠ

후애(厚愛) 2020-08-01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월이에요^^
이제 무더위 시작인 것 같습니다.
대구는 비가 그리 많이 내렸는데도 시원하지가 않았어요.
습도가 있어서 불쾌지수에요.
건강 챙기시고요, 시원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20-08-01 14:57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8월이 가장 덥다고는 하지만 입추가 있고,
말복이 있고, 여름의 끝이 보이는 달이기도 하죠.
조금만 견디면 될 것 같습니다.
모쪼록 수술 잘 받으시고 건강히 여름 나십시오.^^

Zara Kim 2020-08-16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서든 자주 보고 싶은 박상영 작가님🤍
 

어제 <백설공주>를 봤다.

몇년 전, 줄리아 로버츠가 악한 계모역을 맡았다는 바로 그 버전이다. 90년대 스크린을 화려하게 수놓았던(좀 식상한 표현이긴 하다) 우리의 줄리아가 일선에서 물러나 조연을 맡았다. 그것도 악역이라니. 그래도 조연이라고 하기엔 제법 비중이 있는 역할이라 그냥 쓰리톱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언제나 느끼는거지만 미국 영화는 비주얼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 같다. 또 그런만큼 이 영화는 비주얼 갑이다. 

 

알다시피 이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이야기와 조금은 다르게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래도 뭐 크게 바뀐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은 아쉽기도 한데, 백설공주를 일종의 전사로 만들어 놓은 건 나쁘지 않은데, 계모에 대한 이미지가 아쉽다. 계모가 남편을 죽게 만들고 세금을 자기 치장에 써서 나라를 위태롭게 만드는데 왜 여자는 그런 인물로만 그리는지 모르겠다. 남자를 악인으로 만들면 최소한 사치하는 인간으로는 안 그리던데...

 

그래도 볼만하다. 그런데 엔딩은 좀.. 감독의 취향인 것 같긴한데 무슨 인도풍의 노래를 부르고 끝난다. 차리리 발리우드 버전으로 영화를 만들어 그렇게 끝난다면 이해하겠는데 다와서 이건 뭐지 싶기도 하다.

 

백설공주 역의 릴리 콜린스는 처음 보는 배운데 진한 눈썹을 제외하면 진짜 예쁘긴 하다. 줄리아의 시대는 가고 릴리가 온 줄도 몰랐구나 싶다. 그나저나 줄리아 이 영화 이후 출연작이 있나 했더니 2018년까지 그래도 꾸준히 영화 출연을 했네. 내가 그동안 이 친구의 출세작 몇 작품 외엔 너무 관심이 없었구나 싶다. 그저 메릴 스트립만큼이나 오래 가는 배우가 됐으면 한다.

 

주일 날 아침에 tv에서 영화 채널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 본다고 해도 끝까지 볼 수도 없고. 그런데 <사운드 오브 뮤직>을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끝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반가운 마음에 옛 시절을 생각하며 봤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중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 영화속에 흘렀던 노래들은 지금도 흥얼거릴만큼 어렵지않고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다. 가끔은 좀 그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도 잘 나간다는 뮤지컬 <프랑켄슈타인>도 음악은 좋지만 따라나 부를 수 있나. '도레미 송'이나 '에델베이스' 못 부르는 사람 있는가? 중학시절 영화가 너무 좋아 책도 사 봤다. 하지만 책은 좀 별로였다.     

 

그런데 까마득한 세월이 흘러서보니 새삼 영화가 현실성이 별로 없지 싶다. 스토리 배경이 2차 대전 전후였던 것 같은데 전혀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 문득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이 생각이 났다. 마치 당대 유럽의 어느 유명한 호텔을 축소시켜 놓은 듯한 느낌이다. 과연 유럽에 잘 사는 귀족들은 얼마만한 부를 가지고 있을까 새삼 궁금하기도 했다. 뭐 그도 부모에게 물려 받은 재산이 많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개 장교가 혼자 7명이나 되는 자녀 양육에, 입주 가정교사와 적지않은 하인들을 거느리고, 호텔 수준의 연회가 전시 상황에서 가능할까? 새삼 이런 것들이 보이더라. 역시 이런 영화는 한 번만 봐야한다.

 

내용은 잘 이해 못하겠는데 몇 편의 이야기를 옴니버스로 보여주는 프랑스 애니메이션이다. 물론 픽사 애니메이션도 좋긴한데 둘중 어느 것부터 보겠냐고 묻는다면 난 당연 프랑스 것부터다. 그만큼 프랑스 애니메이션은 독특하면서도 묘한 매력이 있다. 더구나 이 애니메이션은 밤의 이미지를 극대화 했다. 그러면 난 환장한다. 더불어 아프리카와 이집트풍을 적절히 믹스한 느낌이다. 나중에 한 번 더 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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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07-28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설공주에서 백설공주는 전사가 되는군요 계모는 여전히 나쁘게 나오고... 계모하고 백설공주하고 힘을 합치는 걸로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왕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아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기도 하니... 어떤 데서는 왕이 알고도 모르는 척했을지도 모른다고 하던데... 저도 예전에 <사운드 오브 뮤직> 봤어요 언젠가 들으니 줄리 앤드류스는 어떤 수술이 잘 안 돼서 노래를 잘 못하게 됐다고 하더군요 그때 참 안 좋았을 듯한데 나이 먹고 그걸 재미있게 말하기도 했답니다 긍정스러운 사람인가 봅니다


희선

stella.K 2020-07-28 15:47   좋아요 1 | URL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캐릭터죠.
지금까지 백설공주 이야기가 여러 버전이 있더군요.
흥미롭긴 합니다.

줄리 앤드류스가 병이 있었군요. 몰랐습니다.
알고 봤더니 1935년생이더군요.
최근까지도 영화활동을 했더라구요.
대단하다 싶어요. 존경스럽고.
나이들어 활동 안하는 배우들도 많은데
죽을 병이 아니라면 자기하던 일은 계속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긴 하다. 사실 지난봄 나는 무슨 생각에선지 문제의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샀다. 그전부터 가격이 유난히 싸다는 것 외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우연히 이게 한 시적으로 특가로 팔고 기간이 지나고 나면 정가에 판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정가로 바뀌기 전에 서둘러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난 또 평소 버릇대로 앞부분만 읽고 다른 책에 한 눈을 팔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김봉곤 작가의 수록작이 문제가 되자 갑자기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읽고 나니 마음이 좀 착잡해졌다. 


 

 

 

 

사실 작가의 작품은 이 책이 처음은 아니다. 먼저 <소설 보다:봄-여름 2018>에서 처음 읽었다. 읽으면서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처음 읽는 작가의 작품이 별로면 다음에 또 읽게 될 확률은 매우 낮다. 그래서 김봉곤 작가는 나와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성적 취향이 같지 않다는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나는 보수적인데 비해 어쨌든 그는 진보적이니. 그런데 이번에 작품을 읽으면서 의외로 그가 좀 달리 보이기도 했다. 전작도 그렇고 이번 작품도 그렇고 그는 아마도 계속 이쪽으로 글을 쓰지 않을까 싶다. 보통 작가들의 그런 태도를 나쁘게 말하면 우려먹는다고 하고, 좋게 말하면 천착이라고 할 것이다. 내가 볼 때 그의 주제는 나와는 맞지 않지만 그런 태도나 사유는 충분히 인정할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먼저 읽었던 작품보다 훨씬 잘 읽혔고, 작가의 성격이 보여서 좋았다. 


그의 작품을 두고 사소설이니 오토 픽션이니 하는데 그건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 소설을 쓰는 일련의 작가들이 있다는 걸 나는 적어도 5, 6년쯤부터 알고 있었다. 처음 이 장르를 접했을 때 이것을 소설이라고 봐야 하는 건지 산문이라고 봐야 하는 건지 대충 난감해하기도 했다. 이전에는 주로 자전 소설 또는 자전 에세이로 불리기를 좋아했고, 그것은 일정 정도의 형식미와 시대정신을 반영하기도 했다. 그것이 2000년대 들어오면서 개인의 삶, 취향, 경험이 중요시되면서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오토 픽션도 부각되기 시작한 것 같다. 또 그런 만큼 이전 세대는 사소설은 일본에서 유행했던 만큼 우리나라에서 선 터부시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건 또 요즘 그런 글을 쓰는 작가들조차 그렇게 불리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2015년에 나온 이석원 작가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란 책은 사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데 출판사의 결정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이라 하지 않고 이야기 산문집이라고 했다. 사실 자전 소설이나 자전 에세이라면 인생의 어느 한 시절을 다루거나 인생 전반을 관통하는 그런 것이어야 하는데, 그런 형식은 없고 마치 일주일이나 한 달치 일기 또는 삶의 한 정경을 소설로 자유롭게 쓴 듯한 느낌이다. 그때 난 뭔가 모를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모르긴 해도 이런 식의 글을 쓰는 작가가 많이 나오겠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이런 책은 독자의 관음을 충족시켜주지 않는가.       


그렇게 사소설이 주류를 이루다 보니 작가들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실제 인물의 사생활 침해가 우려가 되기도 한다. 이건 또 오토 픽션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닐 것이다. 작가가 어떤 소설을 쓰든 인물을 가공하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오토 픽션은 일상의 시시콜콜한 일면을 그리니 더하지 않을까. 문득 오래전에 성석제 작가의 독자와의 만남에 간 기억이 생각난다. 질의응답 시간에 주변 인물을 쓰다 보면 그들로부터 소위 민원이 들어오지 않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하시냐고 묻자 그는 빙그레 웃으며 본인인 줄 잘 모르거나 알아도 대충 웃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고, 드물게 멱살을 잡혀 본 적도 있는데 그럴 땐 출판사가 나서서 대신 해결해 준다며 알듯 모를듯한 대답을 했다. 하긴 그렇게 사람 좋은 모습을 하고 있는 작가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소설에서조차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그리겠는가. 그래도 그런 일이 아주 없지는 않은가 보다.


난 김봉곤 작가의 문제의 소설을 읽기 전에는 침소봉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으니 피해자에게 마음이 기우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읽고 나니 솔직히 무엇이 문제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물론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작가가 좀 더 신중하지 못한 걸 탓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C누나는 작가만 알고 독자는 모른다. 그냥 짐작하기로 작가와 친한 사이인가 보다. 그러니까 그렇게 연애 상담도 하지. 그 정도다. 전후 맥락을 봐도 작가는 C 누나의 말을 잠깐 인용한 수준에서 끝난다. 그런데 소설을 있는 동안 그 일은 일파만파가 됐다.


처음 출판사는 문제가 된 부분을 삭제하면서 다시 책을 발행하겠다 했다. 그러더니 다음엔 아예 작가의 작품을 빼고 발행할 거라고 했다. 또 그러더니 이번엔 작가가 아예 상을 반납했다고도 했다. 이쯤 되면 과연 이럴 사안인가 싶어 소설의 문제의 부분을 다시 한번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시 읽어보니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공감이 가긴 했다. 내가 작가의 변호인도 아니니 이건 작가가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 같진 않다고 해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말은 이미 작가 자신이 충분히 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같은 여자면서 참 형광등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용서하시라. 하도 음담패설이 난무한 세상에 살고 있어서 일까 그들의 대화는 음담패설 수준에 끼지도 못 한다고 생각했다. 그냥 둘만의 사적인 대화라고만 생각했다. 굳이 그렇게 보자면 오히려 작가는 C 누나 보단 그의 어머니를 희생양으로 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어머니를 부조리한 인물로 묘사하지 않았는가.)  


만일 그게 문제가 된다면 앞서 얘기한 이석원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또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읽은 지 좀 돼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책에서 작가는 어느 이혼녀를 소개팅으로 만나 가까워지기까지의 과정을 비교적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읽다 보면 얼굴이 붉혀지는 장면도 없지 않은데 작가야 이렇게 쓴다곤 해도 상대는 과연 자신의 이야기가 그렇게 까발려지는데 괜찮을까 아무리 익명이라도 하지만 말이다. 그것에 대해 작가는 생각하고 썼을까 뭐 그런 생각들을 잠시 해 봤다. 지금까지 말이 없는 걸 보면 어떤 식으로든 잘 넘어갔나 보다. 하지만 난 정작 영화 <롤리타>를 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알다시피 나보코프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으로 어느 소아성애자의 비극적이고도 파괴적 사랑을 그리고 있다. 난 그걸 보면서 새삼 내가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건지 잠시 현깃증이 났다. 아무리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수컷에 의한, 수컷을 위한, 수컷의 이야기라지만 그 화법에 질리고 말았다. 하긴 본격적으로 여성이 화자가 되거나 주인공으로 나온 소설은 2세기가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수컷의 화법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기하급수적으로 드러났다. 아무리 현대 남성 작가가 최대한 자신을 낮추고 글을 쓴다고 해도 여성의 감성과 화법을 이해하고, 어느 부분에서 상처를 받는지를 채 헤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세상에 어떤 작품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작품은 없다.


고의든 아니든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 상처를 받았다면 용서를 구하는 건 마땅한 일이다. 무엇보다 작가가 수상을 자진 반납했다니 과연 그답다 싶기도 하다. 모르긴 해도 그는 웬만해서 밀면 밀리는 대로 흔들면 흔들리는 대로 순응하지 저항하는 법이 없는 그런 캐릭터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작가 편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독자나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야 하는 동료 작가들의 입장에선 쓸 자유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볼멘소리를 듣는 것 같다. 원래 작가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연대할 때는 또 연대하지 않는가. 모르긴 해도 이런 일은 앞으로 더욱 빈번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작가의 설자리는 좁아지고, 이렇게 패가 나눠져서 서로를 비난하고(물론 건전한 토론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상을 반납하고, 책을 다시 찍고 그럴 건가? 또 어찌 보면 이건 편집자의 책임도 없지 않다고 본다. 아무리 오토 픽션이고, 솔직하게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작가라고는 하나 편집자가 제 기능을 발휘해 줬다면 문제가 되지 않거나 축소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말에 의하면 김봉곤 작가도 출판사에서 편집 일도 한다던데 설마 자기 작품을 편집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어쨌든 이번 계기를 통해 문학 종사자들의 고민이 더 깊어질 듯하다. 나는 이쯤에서 작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문제에 대해 한 예를 들어 보겠다. 그것은 <나의 투쟁>이란 두꺼운 4권짜리 자전소설을 쓴 그 이름도 어려운,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다. 그는 원고를 쓰고 출판하기 전 책에 등장하는 사람을 일일이 찾아가 허락을 받고, 그 과정에서 절교가 선언된 지인도 있었다고 했다. 과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과연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나라면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세상을 작가인 사람과 작가가 아닌 사람으로 나눈다면 그 근거를 무엇에 두겠는가. 작가는 끝까지 써서 마침표를 찍는 사람이고, 작가가 아닌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마침표에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저 수고를 포함시켜야 한다면 당연 그것을 해 낸 사람이 작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작가가 된다는 건 얼마나 어렵고 고달픈 일인가.  


어떤 작가도 자신의 이야기에 등장인물을 나쁜 사람으로 묘사하고 싶은 작가는 없을 것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그 인물의 부조리한 일면을 드러내 줘야 할 때가 있다. 그 과정에서 의식을 했든 못했든 실제 하는 인물이 상처를 받았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나는 지금 김봉곤 작가를 옹호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런 일은 작가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 두서없이 써 봤다. 더불어 작가를 보는 일반인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 


작가라는 직업이 매력적이기는 하다. 존경도 많이 받고. 하지만 매력적이라고 해서 인품도 훌륭하고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도 완벽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러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 그런데 간혹 그렇게 착각하는 것 같다. 그건 아마도 작가가 유일하게 전지적 시점을 구사해서 그런 건 아닌가 싶다. 이건 또 신의 시점이기도 하다는 소리다. 넓은 의미에서 신은 공평하긴 하지만 가끔은 신 조차도 전지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지는 않는다. 그런 것처럼 작가는 완벽할 거란 기대 같은 건 안 했으면 한다.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다. 언젠가 누구라면 알 만한 작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것도 자조적으로. 작가는 언제든 나쁜 사람이 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 말을 하는데 작가는 정말 그냥 되는 건 아니겠구나 싶다. 작가란 그런 것이다. 나는 김봉곤 작가의 필치에서 그가 심지가 굳건한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다. 모쪼록 미안한 일은 미안한 일이고 작가로서 계속 정진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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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0-07-24 09: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어렵고 미묘한 사안이에요. 스텔라님과 동의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편집과 검열의 과정의 전문화도 필요한 것 같아요. 작가의 쓰고자 하는 욕구와 타인의 사생활 침해 부분의 균형은 사실 스스로가 엄격하게 찾으면 제일 좋지만 외부의 좀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선이 필요하지요. 작가로 무언가를 쓴다는 행위는 참으로 무거운 것 같아요. 스텔라님의 열린 시선이 참 좋아요.

stella.K 2020-07-24 16:15   좋아요 1 | URL
전 어쩌면 김봉곤 작가가 편집자를 따로 두지 않았거나
편집자의 말을 듣지 않았거나,
편집자가 미처 그 문제를 잡아내지 못했거나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즉 우리나라는 과연 편집자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웬지 전 이 책이 갑자기 좋아지더라구요.
예전에 젊은 작가들 재미었다고 했는데 그건 저 또한 젊어서인 것 같고
지금은 좀 아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물론 생각뿐이지 막상 이들의 책은 못 읽을 거면서...후후

읽느라 고생이었을텐데 끝까지 읽고 댓글 달아줘서 고마워요.
솔직히 꼴은 저래도 저거 쓰느라 한 3일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
물론 김봉곤 작가의 그런 결단을 두고 같은 작가로부터
어떤 말을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작가의 방식도 존중해 줄 필요는 있다고 봐요.
꼭 저항하는 것만이 세상을 견디는 방법은 아니거든요.
심지가 있는 사람 같았어요. 잘 추스르고 또 좋은 글 썼으면 좋겠어요.
작가. 참 쉽지 않은 직업이예요.^^

희선 2020-07-26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젊은작가상에 실린 소설인가 보네요 그 책 사두고 아직 안 읽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 일 이번이 처음은 아닌 듯해요 예전에도 자기 얘기 썼다면서 작가 고소한 사람 있겠지요 글을 쓰려면 그걸 쓰겠다고 허락을 받고 쓰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아주 다르게 쓴다면 모를까 그 소설을 보는 사람은 잘 모를 테지만, 당사자는 그걸 보면 기분이 안 좋겠지요 글과 그 사람이 똑같은 사람도 있지만 아주 다른 사람도 있겠습니다 그것도 잊지 않아야 할 텐데... 어떤 소설가는 아는 사람이 그 소설에 나오는 거 나 맞지 묻기도 했답니다 그건 아니었다고 하는데...


희선

stella.K 2020-07-26 11:52   좋아요 1 | URL
실제로 그런 일이 있긴 있군요.
사실 그 과정을 거쳐야하는 것이 맞는 것 같긴한데
나쁜 의도가 아니고 맥락을 이해한다면 그냥 좀 넘어가 주면 안 될까
싶기도 해요. 물론 먼저는 작가가 슬기롭게 쓰긴해야겠지만
일일이 그걸 챙긴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도 편집자가 더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점점 작가들 글 쓰기가 쉽지 않겠다 싶어요.
돈 많은 작가라면 변호사라도 산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