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트로이카 - 1930년대 경성 거리를 누비던 그들이 되살아온다
안재성 지음 / 사회평론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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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눈독 들였던 책을 이제야 완독 했다.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 볼만한 책이다. 역사적 사실을 거의 그대로 소설로 옮긴 저자의 필력이 좋다.


알고 보면 일제강점기와 이후 해방정국은 생각처럼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일본을 비롯해 세계열강들의 각축장이기도 했고, 온갖 사상이 난무했던 시대이기도 했다. 여기선 주로 사회주의 노동운동가들의 활약과 삶을 다루고 있는데, 읽다 보면 우리나라 노동 운동이 생각보다 오래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우리나라 노동 운동은 80년대 어느 날부터 생긴 것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나름 치열하게 몸부림치며 노동 운동을 했지만 성과는 미미해 보인다.


어찌 보면 사회주의가 나름 이상 적여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성공하지 못했다. 왜 그런가에 대해선 더 많은 연구와 성찰이 필요하겠지만 중요한 건 어떤 사상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지 않을까. 거기에 무엇이 옳고, 그르냐에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책에 나오는 실존했던 인물들은 나름 이유 있는 삶을 살았고, 우리는 그들의 삶을 존중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세상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이 책은 조선희 작가의 <세 여자>와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책의 흐름도 꼭 경성 트로이카라는 남성들에만 매어있지 않고, 여자 주요 등장인물에게도 상당 부분 할애하고 있으니 말이다. 193,40년대 여성들이 얼마나 자유분방하며 진취적이었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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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기침 2020-06-07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 여름한 햇살입니다.
살짝쿵 눈부신 나날이 되시길....
참, 몸도 건강하시고요.....^^
이상, 뜬금포 안부 인사요...

stella.K 2020-06-07 18:56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네요.
진짜 여름어요. 덥긴해도 아직 습도는 그다지 높지 않아
지낼만은한데 장마진 여름이 문제죠?
전 여름을 좋아하는데 요즘은 하루하루 가는 게 아까울 정돕니다.ㅎ
기침님도 여름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늘 오시면 인사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transient-guest 2020-06-09 0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독립운동이나 한국역사의 관점에서도 그렇지만 문학사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의미가 있고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시대라서 바로 보관함에 담았습니다. 건강하시죠?

stella.K 2020-06-09 15:44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0-06-20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공부하겠다고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사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뭔 얘기를 하는 거야? 번역이 잘못 된 거 아냐? 이러면서 읽었던 기억이...
책에 열정을 갖고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너무 천천히 읽습니다. ㅋ

stella.K 2020-06-20 19:05   좋아요 0 | URL
와우, 대단하셨네요. 저는 예나 지금이나 그런 책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그러겠죠?
요즘엔 해설판도 많이 나온 모양인데 말이죠.ㅠ
 

지난 주에 스마트폰을 바꾸고 그 기능을 익히느라 애를 먹고 있다.

그동안 사람들은 나를 멸종동물 보듯 했지만 꿋꿋하게 버텼다.

솔직히 휴대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아서 말이지.

아는 지인은 그래도 두다 보면 다 쓰임새가 있기 마련인데 왜 안 바꾸느냐고

점잖게 타일렀다. 글쎄... 하긴, 포노 사피엔스란 말도 있는데 나 같은 사람은

늦어도 한참 늦었다.

 

오늘도 카드 등록하느라 카드사에서 발급하는 인증번호를 찾지 못해

결국 등록을 하지 못했다. 얼마나 열 받던지.

내내 있었던 전화 다이얼 버튼도 얼마만에 찾았는지 모르겠다.

지난 주말엔 별로 전화 왕래가 없는 내 책 내 준 출판사 사장에게

실수로 전화가 가서 어색한 안부 전화도 했다.

"아유, 죄송해요. 제가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뭔가 뭔지 몰라 실수로..."

"그럴 수 있죠. 그럴 수 있어요. 허허허."

"뭐 덕분에 이렇게 목소리도 좋고 좋으네요. 하하하. 코로나 때문에 한번도 만나지도 못하고 이러고 있네요."

" 곧 없어질 텐데요 뭐."

"당장은 어렵지 않을까요? 못해도 2,3년은 갈 거라던데..."

믿음이 나 보다 더 좋아 보인다. 아니면 언제 없어질지 관심이 없거나.

어쨌든 난 청학동이나 미국의 아미쉬 마을에 갔다 놔도 잘 살 것 같은데

이러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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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6-03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 년 전에 스마트폰을 새로 샀을 때 한동안 어설프게 사용했어요. 새로 산 폰의 기능이 전에 쓰던 기종과 달라서 상당히 애먹었어요. 문자 쓸 때도 불편했어요. ^^;;

stella.K 2020-06-04 18:08   좋아요 0 | URL
나만 그러는 게 아니었두나.ㅎㅎ
그런데도 난 이제야 쓰는 거라서 사람들 앞에서
쓰는 건 한동안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
저 사람은 스파트폰 처음 쓰나 봐 해서.
오히려 예전엔 핸드폰 사용하는 거 오히려 당당했거든,
귀한 물건 됐으니. 이젠 그럴 수가 없게 됐다.ㅠㅋㅋ

2020-06-03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0-06-04 18:24   좋아요 0 | URL
처음 댓글 읽었을 땐 아니 저 같은 분이 또 있었다니,
놀랍고 반가웠는데 블루투스 쓰실 정도면 정말 포노사피엔스
맞으신 것 같은데요?ㅎㅎ

그런 꼼수가 있었군요. 휴대폰은 삼성이 좋은 줄 알고 있는데요.
저 핸드폰 10년 넘게 썼다가 이번에 스마트폰으로 바꾼 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대리점 직원이 저를 보더니 물건 오래 쓰는 스타일이라는 거
간파하고 오래 쓸 수 있는 거 추천해 줘서 계약했는데
정말 오래 쓸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어요.
학생폰은 2년 정도 밖에 못 쓴다더군요. 이 직원 나한텐 그렇게 말하고
2년도 못 돼서 그만 두거나 다른 곳에 가버리면 따질 수도 없고
바꾸고도 걱정이 태산이어요.
기본 요금도 제가 예전에 핸드폰 최고로 많이 썼을 때 요금과
맘먹어서 이게 잘하는 짓인가 어리벙하고 있습니다.ㅠㅠ

페크(pek0501) 2020-06-0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스마트폰을 처음 써 보시는 건가요? 깜짝 놀람~~ㅋ
제 친구들 중에서 제가 가장 늦은 편이었는데 그때가 2014년이었던 같아요.
제가 페이퍼로 올리기도 했죠.

제가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컴퓨터를 늦게 살 걸 그랬다는 거예요.
애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져 감독하기 어려웠고 저 역시 컴퓨터가 집에 놓이자 독서를 덜 하게 되더라고요. 늦게 배워도 전혀 상관이 없는 건데 그땐 컴맹이란 말이 왜그리 듣기 싫었는지...ㅋㅋ

오래 잘 버티셨습니다. 카톡 문자로 폰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도 만만치 않거든요.
어떤 때는 꺼 놓고 싶다니까요.
딱 하나 좋은 점은 오디오북을 저장해 놓고 들을 수 있다는 것, 정도입니다.
잘 활용하시길...

stella.K 2020-06-04 18:29   좋아요 0 | URL
ㅎㅎㅎ 놀라시긴. 저 스마트폰 안 쓰는 거 예전에 알고 계셨잖아요.
정말 이거 데리고 와가지고 아무 것도 못하고 있어요.ㅠ
요금 많이 나올까봐 걱정하고 있어요.
이번에 나오는 거 보면 알겠죠.ㅠ
하긴 언젠가 바꿀 생각은 하고 있었고 많이 늦긴 했죠.ㅠ

푸른기침 2020-06-07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핸드폰 없이도 오래 살았는데, 요즘은 스마트폰을 포함해서 잡스러운 물건하고 같이 살고 있네요. 스마트폰하고 가까워지니 자꾸 스마트함과는 멀어 지고 있어 반성 반성 중입니다.
아미쉬 마을이 어딘지 모르지만 웬지 가보고 싶어졌다는.....
좋은 나날요

stella.K 2020-06-07 19:05   좋아요 0 | URL
어머, 저 같은 분이 또 계셨군요. 웬지 반가운데요?
그래도 커뮤니케이션 하려면 이게 필요하긴 하겠더라구요.
모임에서 공지사항 같은 것 알려주려면 지금까지는
저는 따로 보내줬거든요. 보내는 사람은 얼마나 번거로웠을까
이제야 좀 미안한 생각이 들더군요.ㅎ

아미쉬는 미국에 있는 우리나라의 청학동 같은데라고
들었습니다. 웬지 기침님께 어울릴 것도 같습니다.^^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1 - 1900-1934
장석주 지음 / 시공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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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사춘기 때 문학 소년이 아닌 사람이 없고, 문학 소녀가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그 시기에 우리나라 문학을 좋아하기란 게 쉬운 일일까? 잘 알려진 세계 고전 문학이나 읽어낼 수만 있다면 자타 공인 문학 소년, 문학 소녀는 아닐까. 솔직히 나는 그랬다. 그 시절 우리나라 문학이 싫었다. 우리 문학을 읽는다는 게 왠지 뒤쳐지는 것만 같았고, 뭐 별거 있나 우습게 봤다. 쏟아지던 베스트셀러도 그랬지만 근대 문학은 더더욱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때 한동안 문고본이 유행이었다. 특히 삼중당 문고는 주머니 가벼운 문학 소녀와 소년에게 가히 폭발적인 인기는 아니었을까 싶다. 책가방에 그 책 한 권쯤 안 넣고 다니는 학생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난 그런 문고본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럴만도 했다. 너무 채신머리 없을 정도로 작고 볼품이 없었다. 실용성은 좋을지 모르지만 장서용으로는 영 아니었다. 나의 오빠나 언니 세대엔 가능할지 모르지만 나는 결코 그런 책은 갖고 싶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 문고본엔 우리 고전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를테면 김동인의 <감자>나 <배따라기>, 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터> 같은 것 말이다. 책이 좀 근사했다면 적어도 한 번은 서점에서 무슨 책인가 뽑아 봤을지도 모른다. 학교에서도 그냥 권장 도서 정도로만 취급할뿐이지 그 모든 책들은 교과 과정엔 없다. 이렇게 학창 시절 국어 교육은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문학 교육은 전무했다.

이것이 이 책을 읽고 난 나의 소감 일부다. 그것도 겨우 1권을 읽고.


이 책이 유달리 감동스럽다거나 우리 근대문학을 요약해 보여주는 건 아니다. 무려 권당 500페이지 내외로 5권까지 근현대 우리 문학을 연대기로 보여주고 있다. 역사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도 아는 바도 없지만 유독 일제 강점기 또는 개화기에는 관심이 많다. 그것은 우리나라 기독교사에 관심을 갖다 그렇게 된 것이다. 그렇게 관심을 갖다보면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은 이상과 백석 등 당대 문학인과 문학 단체와 문학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기-승-전-문학(史)인 것일까.


물론 문학사를 쓴 사람이 장석주 작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동일이나 문학 평론가 김윤식 교수 또 그밖의 학자나 교수들도 쓰긴 했지만 이렇게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으면서 개론서겸 대중서로 이 책은 적절해 보인다. 문사철이 그토록 중요하다면서 우리 문학의 역사를 단편적으로도 알지 못한다면 뭔가를 놓치고 가는 것이 될 것이다.


역사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뻗어나갈지 알 수 없다. 정사로 알 수도 있지만 나처럼 어느 특정 분야에 꽂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나갈 수도 있다. 이 책은 특별히 우리나라 근대 초입은 1900년부터 1934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읽으니 우리나라 근대 사회의 한 단면이 보이는 것 같고, 문학은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것도 새삼 알겠다. 몇년 전, 누구라면 알만한 작가가 어떻게 하다 작가가 되었느냐는 질문에 종이와 펜만 있으면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작가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굉장한 문학적 내공을 감추고 있거나, 문학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거나. 


그 옛날 문학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언문을 깨우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게 문학이었다. 언문은 소위 있는 집 자제나 할 수 있었다. 문학엔 사상과 정서가 담긴다. 글로 세상을 비판하고, 세상을 있는 표현하고, 세상을 깨우치고 싶어 했다. 하나 안타까운 건 당대의 문사들 예를들면 우리가 잘 아는대로 이광수를 비롯해 알만한 문사들 거의 대부분이 친일을 했다는 점이다. 험악하거나 간신배처럼 보이는 사람이 친일을 했다면 차라리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처럼 고고하고 선비 정신으로만 무장해 있을 것만 같은 사람들이 애국심은 고사하고 깨어 있는 양심으로도 온전히 존재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문인으로서 할 일을 다하지 않았냐면 또 그렇지도 않다. 그들은 작가로서 할 일을 했다. 그렇다면 애국심이나 지식인의 양심과 작가는 별개로 봐야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야 이광수가 작가로 제대로 보이지 않을까. 또 이건 나의 사견이지만, 그들 대부분은 있는 집 자제였다. 친일에 저항하면 따라 올 육체적 고통을 쉽게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장의 안위를 도모하고 싶어하는 건 누구나 같다. 결국 문학만으로는 나라를 구할 수 없는 것을 당대 문학인들은 스스로 보여준 셈이기도 하다. 문학의 대의가 구국의 대의를 대변해 주지 못하는 것이다. 


문인들에 관해서는 늘 나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이 책을 (늦게나마)읽을 수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득 든 생각은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 받기 어렸다고, 자국의 문학이 자국민들에게 사랑 받기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은 좀 덜할지 모르지만,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정말 욕하면서 보는 경우가 많았다. 한숨을 푹푹쉬며 그것도 작품이냐며 험담 아닌 험담을 했더랬다. 원래 작가와 독자는 그런 존재다. 어떤 식으로든 입에 오르내리는 작가가 좋지 관심 밖으로 밀려난 작가는 잊히는 법이다. 잊히는 건 또 얼마나 서러운 일이랴. 근대의 작가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들이 언문을 깨우쳤다고 해서 마냥 사람들로부터 환영만 받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언문을 깨우치고도 이것 밖에 못 쓰냐고 희롱의 대상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잊힐지 몰라도 그들의 작품은 100년을 살아남아서 후대에도 읽히고야 만다. 그렇다면 오늘 날의 작가와 그 작품들도 그러지 않을까. 문학의 힘은 그런 것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제의 멀쩡한 책이 오늘은 파쇄되더라도 누군가는 그 책의 가치를 인정하고 차곡차곡 모아놓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은 그렇게 세월을 사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읽은 작가의 작품이 앞으로 100년 뒤엔 어떠한 평가를 받을지 알 수 없다. 그것이 또한 역사다. 작가만이 가장 작가답게 현세를 그릴 수 있고 증언할 수 있다.


문득 책을 읽다 작가 홍명희에게 한참 머물렀다. 그는 바로 그 유명한 <임꺽정>의 작가다. 이야기의 구조만을 생각한다면 허균의 <홍길동전>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다른 건 <홍길동전>은 허구의 고대 영웅을그리지만, <임꺽정>은 실록을 바탕으로 인물과 사건을 정밀하게 그렸다는 것이다. 그는 소설가이기도 했지만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시대일보> 사장을 지낸 언론인이기도 했다. <임꺽정>은 1928년에서 1940년까지 몇 번이나 중단과 연재를 반복했지만 끝내 미완성 작품으로 남는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당시 "조선 초유의 대작", "조선 현대 문학의 거탑"이란 찬사를 들으며 소설사에 남을만한 기념비적인 작품이 된다. 


하지만 내 눈길이 오래 머문 건 따로 있다. 그건 그의 독서법이다. 그는 1907년 일본의 다이세이 중학 3학년에 편입해 1910년까지 다닌다. 이 무렵 일본과 서양의 문학 서적을 접하게 되는데, 특히 3학년 2학기 때부터 독서에 매달렸다고 한다. 그는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 한 책을 보는 동안 다른 책은 읽지 않는다. 되도록 속히 읽는다."는 자신만의 독서법을 유지하며 도스토예프스키와 바이런과 자연주의 계열의 일본 작가뿐 아니라 금서로 분류된 좌파 사상가들의 저술과 풍기 문란 딱지가 붙은 책까지 섭렵한다.


대단하지 않은가. 특히 요즘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비판과 회의가 없지 않은데, 작가 홍명희가 살아 있다면 이 사실을 알면 썩소를 날릴 것도 같다. 사실 내가 학교를 다녔을 때만 해도 이것은 보편적 독서법이었다. 그것을 위해 속독이 유행이기도 했다. 한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다른 한 책을 슬쩍 끼워 보기 시작하는 버릇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반성해 본다. 물론 비판할 것은 아닌 것 같다. 중요한 건 독서의 성실함일 것이다. 작가 홍명희는 이 독서법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허리를 곧추세우며 책을 읽었을지 알 것도 같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것저것 조금씩 건드려 놓은 책중 하나인 이 책이라도 마치기 위해 허겁지겁 읽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책을 펴낸 장석주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이 책 날개 부분에 그가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가 나와있는데 얼마나 지난했을지 감히 짐작이 간다. 그 덕분에 나 같은 독자는 편안히 앉아 읽어보지 않는가. 참고로 홍명희는 원고자 1만 3천장의 분량을 12년에 걸쳐 쓰고도 완성하지 못했다. 그는 장장 8년에 걸쳐 원고지 2만 장에 걸쳐 이 책을 썼다. 가히 문학계의 수도사답다. 그도 그럴 것이 1992년 필화 사건으로 구속된 후 두 달만에 풀려나 무작정 제주도 서귀포에 방을 얻어 썼다고 하니 말이다. 나는 이 책 마지막 5권까지 다 읽고나면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를 상상해 본다. 생각보다 많이 달라져 있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안 읽었을 때 보단 달라져 있겠지. 그 한 걸음을 뗄 수 있도록 해 준 저자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아, 그리고 하나. 근대 작가들도 청소년 시절엔 하나 같이 외국 문학의 세례를 받았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나도 사춘기 때 외국 문학만 읽고 우리 한국 문학은 안 읽었다고 자책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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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5-27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맞춤법 검사에서 하나도 걸리지 않고 한 번에 무사 통과된 글이다.
믿을 수가 없어 몇번씩 확인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야호!
이러다 어떤 사람 매의 눈으로 잡아내면 어쩌지..ㅋ

페크(pek0501) 2020-05-27 22:58   좋아요 0 | URL
맞춤법 검사라는 게 있습니까?
저는 자신 없는 낱말은 아예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보고 쓰는 편이라서요...

그보다 저는 요즘 한글 파일의 맨 위 보면 찾기, 라고 있잖아요. 그걸로 반복되는 낱말을 걸러 내는 작업을 많이 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반복적으로 쓰는 게 많은지 깜놀입니다. 예를 들면 것, 이라는 낱말을 치는 거예요. 그러면 열 몇 개가 나와요. 그러면 다른 말로 대체하는 작업을 하는 거죠. 있다, 라는 낱말도 반복해 쓰지 않는 연습을 합니다. 또 것이다, 라는 말을 제가 잘 쓰더라고요.
참고로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라는 책에 자세히 나와 있답니다. 미리보기로 보셔도 됩니다. 앞부분에 나와 있는 걸 보고 구입했거든요.



stella.K 2020-05-28 19:13   좋아요 0 | URL
엇, 그거 있는데. 사이트마다 있지 않나요?
한글에도 있는데 전 옛날 버전이라 그런지 많이 걸러내지 못하더군요.
작년에 브런치 개설했는데 그건 좀 많이 걸러주는 것 같아서
일단 거기에 쓰고 맞춤법 검사한 후 이쪽에 옮기죠.
그 검사시키면 빨간 줄이 쫙 뜨는데 없어서 신기했어요.ㅎㅎ

<안정효의...>는 오래 전에 사 놓고 완독을 못하고 있습니다.
읽으면 좋긴한데 참고서 같이 써 놔 가지고 꼭 어느 정도 읽으면
진도가 안 나가더라구요.
저는 글 쓰기 책은 이윤기나 김연수 작가처럼 쓰는 걸 좋아하는데 말이죠.ㅋ

2020-05-27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28 1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28 2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29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0-05-28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겠지만, 뒤에서 두번째 단락 세번째 줄 원고지를 원고자라 쓰셨군요 찾으려고 한 건 아니고 글을 보다 보니 보였습니다 원고자라는 말이 있어서 괜찮았던 거겠습니다

홍명희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한 책을 보면 다른 책은 안 봤군요 제가 그러는데... 요즘은 책 여러 권을 보라는 말을 많은 사람이 하기도 하더군요 그건 소설이 아닌 책일 때가 아닐까 싶어요 소설은 흐름이 있으니 그걸 놓치면 안 좋잖아요 그저 제 생각일 뿐이지만... 그렇다 해도 저는 어떤 책이든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군요 시작했다 그만둔 책도 조금 있지만...

저는 중, 고등학생 때는 책을 모르고 읽지도 않았네요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싶어요 그때 한국 소설을 잘 안 보는 건 국어나 문학 시간에 하는 공부여서 그랬던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때 그걸 알고 시나 소설 찾아본 사람도 있겠습니다 공부로 할 때는 재미없어도 그냥 볼 때는 재미있는 게 문학이 아닌가 싶어요


희선

stella.K 2020-05-28 19:04   좋아요 0 | URL
기계도 완벽한 건 아니라니깐요.ㅎㅎㅎ
그럴 줄 알았습니다. 단지 맞춤법 검사하면 빨간 줄이
쫙쫙 치는데 신통하게도 그게 없는 거예요.
여태까지 그런 일 한 번도 없었거든요.ㅋㅋ

저는 요즘 우리나라 근대 문학을 읽어 볼 생각에 한껏 부풀어 있습니다.
물론 실제론 많이 못 읽겠지만 왜 진작 못 읽었을까 후회가 되더군요.
희선님도 기회 있을 때마다 한 권씩 읽어보시죠.
암튼 오타 잡아주셔서 고맙습니다.^^
 

1.지난 주말 우리 집에 아이가 왔다. 6살 여자 아이. 이를테면 나의 이종 사촌의 딸이 제 엄마와 함께 큰이모네를 온 것이다. 그렇게 아이가 우리 집에 오기는 또 얼마만일까. 시골에 아기 우는 소리가 사라졌다, 20년만이다, 30년만이다 하는데 서울 같은 대도시도 상황은 비슷하지 않을까. 우린 사촌끼리도 그다지 친하지 않아 그동안 만날 일도 없었다. 정말 사촌이 이 아이만할 때 보고 이제 보는 것 같다. 어렸을 때 이 사촌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에 없다. 우린 처음엔 다소 어색해 했지만 나이를 물어보고, 혹시 실수할지 몰라 다시 한 번 촌수 확인하고 그러면서 이내 서로 어색한 웃음을 주고 받았다.

 

엄마 심부름 때문에 왔는데 아무리 조카라도 손님은 손님이라고, 엄마는 거의 쓰지 않는 손님용 접시에 음식을 담고, 점심을 먹게 했다. 설거지는 내가 했다. 문득 조카들이 그리워졌다. 왜 그런가 했더니 내가 설거지를 해서다. 조카들이 왔으면 밥을 배불리 없고 설거지는 자기네들이 알아서 했을 것이다. 설거지를 내가 해서 억울해서라기 보단(사실 그런 점도 없진 않지. 손님에게 설거지를 시킬 순 없지 않은가) 언니가 조카들을 데리고 왔던 그 풍경이 오버랩 돼서다. 이런 날 언니와 조카들이 와 줬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걸 보면 어렸을 때 보고 이제 본 그 사촌에겐 미안한 일이 되려나.

 

2. 올해 5월은 여느 5월 같지 않아 선선한 날이 많았다. 지난 겨울이 별로 춥지 않아 복수하는 건 아닌가, 역시 계절은 계절다워 제때 춥고, 제때 더운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 아닐까 엄마한테 말했더니, 엄마는 대뜸 올해는 윤4월이란다. 음력으로는 같은 달을 두 번 사는 것이다. 아, 그래서 날씨가 이런 거였구나. 엄마는 지난 겨울에 덥었던 이불을 여태 빨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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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05-26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자주 비가 와서 사월에 그렇지 않았던가 했는데, 맞아요 이번에 사월이 윤달이었어요 이번 오월이 사월 같은 느낌이 들었던 건 그래서였나 봅니다 가끔 더울 때도 있지만 비 오고 나서 서늘해졌어요 이번주에 비 오고는 더워진다 합니다


희선

stella.K 2020-05-26 15:2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앞으로는 날씨가 훈훈해질까요?
괜히 더운 날이 그리워지더라구요.
앞으로 더운 날이 창창히 펼쳐질텐데 말입니다.^^
 

지난 2월, 우리 영화 <기생충>이 세계 주요 영화제를 석권하고 마침내 미국의 아카데미까지 넘보고 있을 때, 미국의 한 원로 배우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는 다름 아닌 커크 더글라스다. 향년 나이 103세. 고인에겐 예의가 아닌 줄 알지만 난 그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와 비슷한 시기에 영화 활동을 같이했던 영화인들이 이미 오래전에 타계했기 때문에 그도 그러려니 했던 것이다. 


커크 더글라스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는데 글쎄, 우리나라에 TV가 보급되기 시작하고 외국 영화를 안방에서도 보는 것이 가능해졌을 때(대략 1970년대에) 우리에겐 <주말의 명화>와  <명화 극장>이라 일컫는 세대가 있었다. 바로 그때 자신의 존재를 부각했던 1 세대 배우라고 하면 설명이 가능할까. 아무튼 그의 부고 소식을 들으니 같은 시기에 활동했지만 이미 이 세상을 떠나간 배우들이 필름처럼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이를테면 앤서니 퀸이나 록 허드슨, 엘리자베스 테일러, 오드리 헵번 등등의 배우가. 그들은 정말 화면 안에서 빛났다. 


가 빈센트 반 고흐로 분하고 나왔던 1956년작 <열정의 랩소디>란 영화는 정말 볼만하다. 사실 이 영화 이후에도 고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이렇게 저렇게 생각보다 많이 만들어졌다. 드라마도 있는 것으로 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러빙 빈센트>가 아닌가 싶다. 이 작품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나 개인적으론 실사에 고흐의 필치를 살렸다는 측면에서 기술의 승리를 보여준 건 맞지만 때문에 오히려 감동은 좀 반감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보단 모든 고흐 전기 영화의 아버지 격인 이 <열정의 랩소디>가 오히려 인물에 충실해 보인다. 특히 커크 더글라스가 연기한 고흐는 정말 그가 살아 있다면 과연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게 몰입도가 상당히 좋다. 


우리는 흔히 고흐를 두고 고독의 화가라고 말한다. 왜 그를 두고 그렇게 말하는 걸까. 잘 알다시피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 모든 것이 서툴렀다. 친구와의(화가 세잔) 우정을 지켜나가는 것도 서툴렀고, 사랑은 더더욱 그랬다. 고흐는 사촌 여동생을 사랑했지만 그녀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몰라 아쉽게도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 잃어야 했다. 누가 보면 사랑은 밀당인데 그런 테크닉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비웃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랑이 어디 테크닉만 가지고 되는 것일까. 사랑을 고백했다 거절당한 그를 보면서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데 못해도 한 번 정도는 더 노력해 봐야 하는 건 아니냐고 한다면 그건 어쩌면 그는 물론이고 상대에게도 모독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 영화를 봤을 때 나는 문득  <봄. 봄>과 <소낙비>의 작가 김유정을 떠올렸다. 그는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죽고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집안이 급격히 기울었다. 그는 7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난봉꾼인 형과 고집불통에 수전노의 아버지가 서로 불화하는 것을 보며 우울한 소년이 되어갔다. 그러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만다. 어머니를 여읜 지 2년 만의 일이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이나 마찬가지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나이었을 텐데 그러고 보면 그는 소년 시절부터 감수성이 유달리 예민했던 것 같다.


형은 아버지와 불화했지만 유정에게만큼은 잘해 주었다고 한다. 형이 술과 여자에 빠져 가족들을 못살게 굴었을 때도 그만큼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형이 재산을 거덜내고, 고향인 강원도 실레 마을 이혼한 둘째 누이 집에 얹혀사는 신세가 되었을 때 사랑이 찾아왔으니 상대는 박녹주였다. 박녹주는 김유정 보다 나이 많은(그래 봐야 두 살 연상이다) 화류계 판소리 명창이다. 하지만 둘은 어울리지 않은 짝이었고, 그의 유일한 친구였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인회남은 악몽에서 깨어나라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김유정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박녹주에서 열정을 쏟아부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담배 연기 가득 찬 방에서 밤낮없이 연애편지에만 매달렸고, 나중엔 자신을 안 만나 준다고 그녀에게 협박과 공갈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게다가 '박녹주를 사랑한다'라고 혈서까지 써서 일기장에 간직하기도 했단다. 이쯤 되면 집착을 넘어 광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훗날 그의 집착적 짝사랑은 끝나긴 했지만 몇 년 후, 박봉자라는 여인을 사진만 보고 반하여 열렬한 구애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결과는 실패다.


이런 김유정에 대해 이 책의 저자는 아마도 그가 일찍 어머니를 여읜 데서 온 외로움 때문일 거라며, 실제로 그는 평생 어머니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뿔뿔이 출가해버린 누이들에게서는 예전과 같은 애정을 기대할 수 없기도 했으니 한편 이해할 것도 같다. 그렇다면 사진으로만 본 박봉자란 여인에게 사랑을 퍼부었던 것도 그녀가 그의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 정도라면 고흐는 김유정에 댈게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김유정의 집착이나, 고흐가 훗날 자신의 귀를 자르는 광기까지 둘의 공통점은 우리가 미쳐 다 헤아릴 수 없는 고독 속에서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갔다는 점일 것이다. 고독이 예술에 절대적인지 그건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둘은 우리가 인정해 줄 만한 예술가임엔 틀림없다. 하나는 미술에서, 하나는 문학에서. 그리고 이들의 생애는 그저 하나의 이야기로만 접할 수 있는 우리는 그저 쓸쓸함으로 그들을 기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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