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동네 작가상은 젊다. 세상에 익히 이름을 알린, 또는 알리기 시작한 사람도 아닌,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사람에게 수상작의 영예를 준다. 문학동네야 우리나라 굴지의 출판사이고, 그 동네를 통해 문학상이라는 것을 받고,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면, 그 출발이 꽤 좋은 편 아닌가? 그런데 정한아라는 소설가는 전에 대산문학상도 받았다는데 나는 알리가 없었고,  이번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이는 아직 삼십도 안된 그야말로 젊은피다. 그런 그녀가 이민한 소설을 썼다면, 나는, 꽤 가능성있는 젊은 작가라고 감히 칭찬해 주고 싶다.

아직 문체의 깊이는 가늠할 수는 없지만(문체의 깊이는 삶의 깊이와 비례하는 것이 아닌가), 그 또래 쳐놓곤, 비교적 성실하고, 사유적이란 느낌도 든다. 무엇보다도 그 나이 또래라면 뭔가의 각을 세우고, 치기어린 똥폼도 잡을만할텐데, 그녀의 글을 대체로 따뜻하고, 긍정적이며, 깜찍하기 까지 하다.

사실 이 사회가 한창 직장을 구할 20대 그 나이에 밝고, 희망차게만 보이게끔 해 주지는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이 소설에도 보면 작중화자인 '나' 은미는 백수다. 그뿐인가? 등장하는 인물들 저마다 하나 같이 상처있가 있지만 힘들게 삶을 지탱하고 이끌어가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따뜻하고, 긍정적일 수 있는 건, 자신을 비관적으로만 보지않는 것과 서로가 서로를 말할 때 다소는 과장과 거짓이 섞여있을지라도, 그것을 비판적으로만 말하지 않으려는 긍정적 자세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고모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야."

......(중략)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은데 늘 우리의 밑그림을 넘어서니까 당황하고 불신하게 되는 거야. 이렇게 네가 나를 나를 보러 와준 것처럼 기대 밖의 좋은 일도 있는 거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거고. 고모는 그걸 알기 때문에 세상에 빚진 것이 없어."라고. 

 
   

 세상을 논리적이고, 똑똑해지고 싶다는 일념 하나에 매사에 사실적이고, 비판적으로만 본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하고, 재미없는 세상이 될 것인가? 그래서 어찌보면 여성적 감성이 이 세대에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모의 삶이 그다지 자랑스럽지 않더라도,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고모는 현재 미국에서 아주 잘 살고 있으며 우주비행사로서의 공무를 잘 수행중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20대가 보는 세상이(작중화자인 '나'가 됐든, 저자인 정한아가 됐든, 아니면 오늘을 살고 있는 이땅의 20대가 되었든) 그렇게 비관적이지마는 않은 것은, 그들은 비록 세상의 척박한 세상에 내몰려졌지만, 그들이 나고 자란 배경은 물질적으로, 정서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안정된 가정이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한눈에 봐도 안정감이 느껴진다. 그들은 세상을 결코 비관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은 뭔가에 치우침이 없이 안정감이 느껴졌다. 게다가 우주비행사가 나오는 등장인물의 설정(실제로는 안 나오지만)은 낭만적이고, 깜찍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얼핏얼핏 느끼는 것은 이 책 역시 정체성을 찾는 탐구의 과정을 그린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남자이면서 여자적 성향 때문에 고민하고, 마침내는 성전환수술을 결심하는 민이에게서. 또 기자 시험에 매번 낙방하자, 친구인 민이에게서 작가가 되기를 권유 받지만, 작가, 특히 소설가를 가장 나쁜 인간 부류로 본다는 은미를 보에게서 그리고 미국을 여행하고, 사람들과 만나고, 고모의 실체를 알게되기 까지의 모든 과정이, 마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가상한 노력으로 보여졌다. 특히 민이가 소설가를 안 좋은 인간 부류로 말하고 있을 땐, 지나치게 작위적이어서 오히려 실소가 나왔다. 사실 이건, 작품속에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등장시키는 것을 어느 면에선 부자연스럽게 느끼는 나의 편견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품에 작가가 나온다는 것은(직간접적으로라도) 결국 작가 자신의 정체성이 아니겠는가.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세상에 모든 글쓰기 행위는 정체성을 찾는 또는 확인 받는 과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자기 정체성에 그토록 목말라 하는 것일까? 자신은 실제적인 나와 되고 싶은 나 사이에서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첫 문장인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이 있느냐?"란 질문에 맨 먼저 봉착하게 되는 것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7-11-10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와 되고 싶은 나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 타고 있는 사람,
여기 하나 더 있네요, 스텔라님.^^ 꾸욱!

stella.K 2007-11-11 18:46   좋아요 0 | URL
우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사춘기 지난지 한참 오랜대도 말이어요. 또 사춘기 소녀마냥 아직도 줄타기를 하고 있다니...ㅋㅋ
추천은 고래 같은 저도 춤추게 만들죠.^^
 
바람의 화원 2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있는 동안 실로 오랫만에 호사를 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느 때 한번 우리나라 고전미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있었던가? 고백하건데 그것은 지루하다 못해 이질적이란 느낌마져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워낙에 잘짜여진 소설에 김홍도의 그림과 신윤복의 그림을 교차에서 보고 있으려니 그야말로 호사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책에 실린 두 사람의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새삼 아름답고 정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뿔싸! 이 책을 펼쳐읽기 시작하면서, 저자가 파놓은 함정에 나 자신 스스로 빠져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신윤복에 대한 성정체 때문이었다. 내가 아무리 우리나라 고미술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로서니, 신윤복이 여자인지 남자인지에 관해 이리도 자신이 없었더란 말인가? 과연 저자가 잘못 쓴건지, 내가 잘못 안 건지 한참을 헷갈리다가 결국 나는, 나의 무지함에 백기를 들기로 했다.'음, 이제보니 신윤복이 남자였었구나.'

그런데 웬걸, 얼마를 읽으려니 다시 여자로 밝혀졌다. 신윤복이 살았던 당시는 남존여비사상이 강했던 때였으므로 당당하게 여자라는 것을 밝히고 화원 노릇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을 알았을 때, 나는  혼자 '이 뭐야?'하며, 저자에게 깜빡 속은 것을 알고 얼마나 웃었던지. 이쯤되면 저자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독자를 우롱하다니...! 나는 그 알량한 지식에 허를 찔린 것이다. 덕분에 2권 초두에 나오는 김조년과 기생 정향, 윤복의 삼각관계에 대한 묘사가 생생하게 와 닿을 수 있었겠지.

이렇게 이 책은 나름 복선도 좋고, 문체도 좋다는 느낌도 든다. 게다가 영화적 기법까지 차용해서 이야기의 이미지가 선명하다. 그런데 이런 좋은 특장을 잘 갖춘 뛰어난 작품이긴 하지만 워낙 장르가 '펙션'이어서 일까? 정말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실제 이야기인지 가늠하기가 쉽지가 않다. 하기야 그러니 '펙션'이겠지 하지만 정말 신윤복이 정말 남장을 하고 화원 노릇을 했을까? 하는 것이다. 그만큼 신윤복이란 화가는 그 생애가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에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필 수도 있지만, 동시에 평전이란 부문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엔 없다. 어디 그뿐인가? 김홍도는 또 어떤가? 그의 생애에 있어서도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이 책에선 그가 색맹으로 나오는데 정말 그럴까? 또한 동시대를 살았다고는 하나 김홍도와 신윤복이 서로 사제의 인연을 맺었는지도 모르겠다. 펙션을 읽다 역사적 사실을 알고 싶은 건 자연스럽지 않은가? 

그래도 이 책은 펙션인만큼 그 자체로 읽어줘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로 즐기긴엔 결코 모자람이 없다. 물론 추리적 기법을 차용했던만큼 추리적 묘사보단 오히려 심리묘사에 더 많은 것을 할애한 듯도 보인다. 하지만 아름다움에 갖는 인간의 욕망, 당시의 사회상, 색을 내기 위해 어떤 재료들이 씌였는가 등이 비교적 자세하게 다루고있어 그것들을 읽는 묘미가 만만치 않았다. 또한 말미에 김홍도와 신윤복이 김조년을 응징하고, 서징의 딸도, 서한평의 아들도 아닌, 한 여성으로 거듭 나는 장면은 신윤복의 저 유명한 <미인도>와 함께 아름답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거기다 애잔한 에필로그 까지...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동시에 우리나라 미술을 보는 눈이 업그레이드 되지 않았을까? 뿌듯한 생각까지 들었다. 이 한 작품을 내기까지 노력을 아끼지 않았을 저자에게 새삼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그리고 저자의 다음 작품은 어떤 것이 될까 궁금해진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달래 2007-10-23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즐겁게 읽은 책이에요. ^^;;
이 책 보면서, 새롭게 저도 저희 고미술에 대해 좀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미인도>, 실제 그림으로 보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

(잘 지내시죠? ^^;;)

stella.K 2007-10-23 10:46   좋아요 0 | URL
앗, 진달래님, 글치 않아도 님 생각하고 있었는데...요즘 바쁜가 봐요. 리더스 가이드에도 잘 안 나타나시고...잘 지냅니다. 진달래님도 잘 계시죠?^^

이환 2007-10-26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읽었던 책입니다.
그림을 적절히 이야기에 접목시키는 저자의 교묘한 글솜씨에 놀랐었던 기억이 납니다.

stella.K 2007-10-26 13:5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정말 오랫만에 느껴보는 감동이었습니다.^^
 
시누헤 1
미카 왈타리 지음, 이순희 옮김 / 동녘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성경을 읽다보면(그것이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건 아니면 연구를 위해서건), 꼭 반드시 역사와 마주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역사와 이집트의 역사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던 것만큼, 이스라엘 고대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성경을 읽다보면 이스라엘 보단 이집트의 역사가 더 많이 부각되는 느낌이다.

내가 성서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창세기 후반 무렵에 나오는 야곱의 아들 요셉에 관한 이야기이다. 요셉의 이야기는 그가 애굽 즉 다시말해 이집트에 팔려가고부터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데, 이것을 토마스 만은 <요셉과 그 형제들>이란 장대한 역사소설에 담아내고 있다. 이 소설은 요셉이 애굽에서의 활약상을 묘사해 내고 있는데, 읽다보면 정말 이집트에 대해 알고 싶은 생각이 절로나게 만든다.

이렇듯 내가 이 책을 붙든 것도 시누헤라는 인물이 궁금해서라기 보단, 조금이라도 이집트를 알고 싶은 마음이 더 컷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집트하면  그 이름만으로도 신비스럽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의외로 책을 읽기 시작한 첫부분에서 의외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것은 어린 시누헤가 갈대배에 누인채 강물에 떠내려 온 것을 어느 의사 부부가 발견해서 그들의 양자로 키워졌다는 부분에서 인데,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성경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갈대배는 어린 모세만 탄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면 그런 어린 아이가 한둘이 아니었고, 띄우게 되는 사연은 여러가지다. 이를테면 가난 때문에 아이를 키울 수 없어서라든지, 또는 치정으로 인한 불의한 열매였기 때문에 버릴 목적으로 버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나의 편협한 사고를 바로잡게 될 때 책을 읽는 기쁨은 커지기도 한다. 그뿐인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의외로 역사소설이 갖는 정치적 배경이나 인간 개인의 욕망도 그렇긴 하지만, 오히려 그 시대의 문화적 배경이 더 많은 흥미가 느껴졌다.

시누헤는 의사이면서 홀로있는 자였던 만큼 어디에도 구애됨이 없이 자유로웠고, 동시에 고독했으며, 지식에 목마른 자였다. 어떠한 야망도 꿈도 없었던 자였기 때문에 그는 자기 이외의 것들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소설속에서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렇듯 이 책은 한 나라의 정치와 문화 그리고 종교가 어떻게 연결이되고 영향을 미치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희곡 작가로도 알려졌기 때문일까? 파라오를 비롯한 역사적 인물뿐만 아니라 조연처럼 등장하는 시누헤의 사람들(즉 이를테면 그의 충복 카프타 그리고 시누헤의 여인들)의 인물 묘사나 우아한 대사들에서 확실히 이 소설은 충분히 매력적이긴 하다. 하지만 왠지 역사소설이 갖는 덕목중의 하나인 '빠르게 읽한다.'는 측면에선 이 소설은 아타깝게도 조금은 비껴난 느낌이다. 솔직히 나는 역자의 무난해 보이는 번역에도 불구하고 읽는데 애좀 먹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클 2007-09-25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왜 자꾸 시누이란 단어가 떠오르는건지...-_-+

메리 추석,스텔라님! ^^

stella.K 2007-09-25 10:52   좋아요 0 | URL
어머낫! 야클님, 반가워요. 제목이 좀 거시기 하긴하죠?
야클님도 메리 추석이옵니다.^^
 
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황석영 씨는 그 명성에 비해 나에겐 오히려 생소한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난 지금껏 그의 작품을 거의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의 읽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 아주 오래 전 그의 작품을 읽은 것도 같고, 안 읽은 것 같기 때문이다. 그만큼 작가는 나의 관심 밖이였던 것이다.

내가 그를 관심 밖에 뒀던 건, 그가 한창 필봉을 휘둘렀을 때 나는 한국문학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그의 문학적 위치가 참여문학의 최선봉에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시절을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그 시절 작가들이 참여문학을 하지 않으면 달리 무슨 글을 쓸 수 있었을까? 그런데도 난 문학하면 참여문학 밖엔 할게 없었던 이 나라의 문학풍토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정말 문학을 몰랐고, 배부른 생각을 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은 문학이 너무 개인주의화 됐고, 너무 말랑말랑해졌다. 그래서 솔직히 재미가 없어졌다. 요즘에 주목받는 작가들은, 아예 문학이 엄숙해질 필요가 있냐고 하며 스스로 탈엄숙주의를 선언하고 나오고 있으니,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그런 문학을 읽고 있을 바에야 차라리 지금이라도 참여문학을 독파해 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솔직히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아니 읽고난 후 무슨 말을 써야할지 리뷰 쓰기가 좀 막막해졌다. 읽을 땐 너무 재밌게 읽었다. 그런데 작가는 한가지 방법으로만 이야기를 풀어 나가지 않고 여러가지의 것을 혼합해서 풀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우선 주인공 바리는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이 아닌, 실제로 알고 있는 탈북의 어떤 사람을 그린 것 같이 생생하다. 게다가 바리공주의 구전설화를 완벽히 재탄생시켜 놓았다. 그리고 환상적인 요소까지 리얼하게 살리고 있어, 아, 이런 작가도 있었구나! 읽는내내 탄성을 지르게 만들었다. 게다가 작가는 참여문학의 대부(代父)답게 여전히 북한 문제와 미국의 9.11 사건, 아프가니스탄 사태 등을 바리라는 주인공을 통해 노련하게 병치시켜 놓았다. 게다가 이슬람의 내세관까지 녹여놓았으니 과연 대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과연 문학은 어때야 하는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는 개기가 되었다. 나는 아무래도 탈이데올로기화 되고, 개인주의화된 그리고 가벼움과 재미만을 추구하는 오늘 날의 문학에 찬성할 수가 없다. 그것이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역시 문학은 인생을 얘기해야 하고, 공동체적 삶을 얘기해야 하며, 그것이 옳든 그르든 작가의 인생관이 녹아져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을 읽는다는 건 나에게 크나큰 기쁨이었다. 이 작품을 읽고나니 작가의 이전 작품을 읽고 싶어졌다.

물론 나 개인적으론 작가의 다소 샤먼적인 색채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그것을 통해 우리나라의 의식의 뿌리를 파헤칠려고 했다는 문학적 성과는 높이 사고 싶다. 또한 작가가 이전에 연극작업에 참여한 이력이 있어서일까? 작품에서 다분히 연극적 이미지가 베어있어 조만간 누군가에 의해 이 작품은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공연물로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보게 만들었다. 그것은 운이 좋아서일까? 가제본으로 읽으면서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연극대본을 넘기는 것 같은 기분도 한몫 더 했으리라. 지금은 읽은지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잔상이 쉬 지워지지 않는다. 바리데기. 과연 추천할만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작가의 건필을 빌어 본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7-07-07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연극적 요소를 찾아내셨나 보군요. 황석영은 이야기꾼이지요. 이 책은 아직 안
읽어봤지만 다음에 읽을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stella.K 2007-07-08 18:39   좋아요 0 | URL
그럴리야 없겠지만, 아무도 작업을 안 하면 나라도 하고 싶어요. 물론 머리 빠지는 일이지만...ㅎㅎ

mira95 2007-07-07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도 기대중인데..빨리 읽고 싶어요. 황석영은 언제나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작가지요..

stella.K 2007-07-08 18:4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전 기회있는데로 <심청>이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황석영의 <심청>은 어떨까 궁금해지더라구요.^^

쿠자누스 2007-08-27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와 우연케 어느 식당에서 마주쳤을 때, 9/11을 소설로 만들어보라는 제안을 하려다가 공연히 실망만 하게 될 것 같아서 그만 둔 적이 있었는데요, 이 책에 무얼 썼을까 궁금하네요.
 
카페 여주인 프랑스 현대문학선 24
레몽 장 지음, 이재룡 옮김 / 세계사 / 1997년 7월
평점 :
품절


저자는 <책 읽어주는 여자>로 유명한 작가다. 하지만 나는 애석하게도 아직 그 작품은 읽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저자의 또 다른 책, 이<카페 여주인>이란 작품을 읽게 되어 나름 행운이란 생각이 든다.

내용은 간단하다. 어떤 작은 마을에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여자에게 편지 한장이 날아든다. 그것은 어느 작가로부터, 하룻밤을 같이 지내주면 10만 프랑을 주겠다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소설은 시작하고 있다.

생각해 보라. 정말 누군가가 하룻밤을 지내주는 댓가로 적지 않은 돈이 생긴다면 제의를 받는 사람의 마음은 어떻겠으며, 주위의 반응은 또 어떻겠는가? 이것을 작가는 아주 그럴듯한 설득력을 가지고, 한 여름 밤의 꿈처럼 아주 섬세하고도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여기에 작가의 능력이 빛을 발한다.

솔직히 나는 작가의 내공에 좀 놀랐었다. 대작을 쓸만한 작가에겐 그다지 놀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만한 역량이 되서 그렇게 쓰는 것인데 새삼 놀라고 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그저 작가가 펼쳐 준 잔칫상에 독자는 편안히 앉아서 즐겨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소품. 즉 작은 이야기를 이만큼 능청스럽게 펼쳐 나가는 작가들 보면 솔직히 질투가 날 정도다.

그런데 문득 읽다가, 만약 이와 똑같은 이야기를 우리나라의 어느 작가가 그려낸다면 어떻게 그려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를 비하 할 마음은 없지만, 아무래도 우리의 정서엔 돈과 섹스를 동의어로 보는 경향이 있어, 한푼어치의 에누리도 없이 과감하게 까발리려고만 했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갖는 신비감이 반감이 되면서 또 똑같은 얘기하고 앉았구나, 하지 않을까? 이것을 클리셰라고 한다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는 결국 작가의 몫이다. 레몽 장은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위해, 주인공인 카페 여주인과 10만 프랑을 제의한 작가를 파리의 어느 박물관으로 대려다 놓는다. 그리고 사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만드는가 하면, 역사의 한 단면을 얘기하게도 만든다. 그리고 프랑스 유명작가의 말도 인용하게 만든다. 과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작가의 역량이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 상당히 육감적이며 흥미롭고, 지적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책을 읽는 내내 마치 프랑스 영화 한편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아주 괜찮은 소설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7-06-30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 끌리네요. 님이 매혹된 소설 읽어보고 싶어 담아갑니다.

stella.K 2007-06-30 10:40   좋아요 0 | URL
네. 한번 읽어보세요. 저는 몇년 전에 사놓고 벼르고 벼르다 이제야 읽었네요. 이런 여름 날, 특히 조용한 밤에 읽으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