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시에인션 러브>를 리뷰해주세요.
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구루미 지음, 서수지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명백히 연애 소설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소개하는데 있어서 '연애 소설과 미스테리의 완벽한 조화'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무슨 근거를 가지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요즘엔 영화를 봐도 순수한 한가지 장르만을 표방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섹스 코미디니 해서 한 가지 이상을 섞는 장르가 나온지 오래다. 그러니 소설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어딨겠는가? 하지만 감히 말하건데 이 작품은 연예 소설은 맞지만 미스테리라고 하기엔 그 미스테리적 요소는 너무나 미약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그럼에도 그렇게 어필하고 싶은 건 소설 요소 요소에 트릭을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트릭이라는 것도 그다지 트릭이란 느낌도 들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그 시대 일본을 풍미했던 음악이나 드라마의 이름을 차용했다는 것인데 과연 이걸 가지고 트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안타까운 건 나는 2009년을 사는 독자이고 나 역시 80년대를 살아왔지만 내가 왜 오늘 날 그 시대 일본에서 어떤 드라마가 히트를 쳤고, 어떤 음악이 인기를 끌었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인지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제와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일본에 대한 없던 관심이 생길리는 없지 않은가? 관심이 있다면 그 나라의 역사나 현재의 문화겠지. 지나간 문화 콘텐츠를 아는 것은 차후의 문제고.  

게다가 이런 지극히 평이한 책을 과연 내가 서평단에 뽑혔다는 이유만으로 꾸역 꾸역 읽어야 한다는 것이 화가났다. 그래도 끝까지 다 읽었다. 정말 꾸역 꾸역.  왜 읽었을까? 

지나간 시절의 일본에 문화 콘텐츠를 알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80년 대 일본 젊은이들이 사랑을 나눴던 방식이 우리나라의 그것과 너무 닮아 있어서다. 읽으면서 '어미, 일본애들도 이랬네. 후후' 사람 사는 방식이 비슷비슷 할텐데도 이상하게도 일본이나 중국이 그런다고 하면 괜히 호기심이 발동하고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에 놀라곤 한다. 그런 마음으로 난 이 책을 다 읽었다.  

그런데 이 책 아무리 봐도 좀 심하다 싶다. 한 번 읽고나면 다시 읽고 싶어질거란다. 그리고 한 번 읽고 땡치면 이 책을 읽는 진정한 맛을 모르는 거라고 조소 아닌 조소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미안한 얘기지만 난 이 책 한 번 이상 읽을 마음이 없다. 왜냐구? 두 번 읽고 싶으리만치 특이한 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책을 보는 안목이 없다고 조소하려면 해라. 까짓 거.   

이미 밝혔지만 책 내용은 지극히 평이하다.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부분은 그 어느 한군데도 발견하지 못했다. 일본 사람도 이렇구나를 빼면, 주인공 이름에 우리나라 이름을 갖다 붙여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단지 두번 읽고 싶게 만든다면 그것은 일본 독자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80년대 청춘을 보낸 오늘 날의 40대 일본 독자는 옛 일을 반추하며 아련한 추억엔 젖어들 수는 있겠지.   

그만큼 이 책은 우라나라 독자들에게 액면 그대로 먹힐 책은 아니라고 본다. 그나마 먹힐려면 번역이 아닌 번안을 했어야겠지. 주인공 이름을 일본식 이름에서 한국식으로 바꾸고, 그 시대 우리나라에 유행시켰던 음악과 드라마는 뭐가 있었을까? 암튼 그런 것으로 대치시킨다면 그나마 우리 독자도 아련한 향수에 빠져서 트릭을 찾아내는 재미도 있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야기의 흐름이 너무 평이해 "누가 이런 걸 몰라?"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소설의 번안이 흔한 일도 아니고. 아마도 없지 싶다. 누가 이것을 소설을 번안으로 보겠는가? 표절로 보지.  

하지만 연극이나 영화는 거기서 조금은  자유롭지 않을까? 예를 들어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같은 경우는 독일 작가의 작품을 번안했다고 한다. 소설도 이처럼 좀 자유로와져야 하지 않을까? 꼭 창작만을 고집해서 표절시비 붙지말고 가끔 모작도 하고 번안도하고 그럴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당당하게 원작 밝히고 모작했고 번안했다고 밝히고 하는데 누가 뭐라겠는가?  

작가를 보니 63년 생이다. 과연 그렇구나 싶다. 그랬으니 80년대 연예를 썼지.  

실제로 일본에선 이 책이 어떤 반응이었을지 궁금하다.  출판 관계자들은 책을 보는 자국 독자와 타국 독자가 어떻게 다를 수 있을지를 잘 판단해서 책을 내야할 것 같다. 무조건 일본작가의 작품이라고 번역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평이한 쉬운 독서?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80년대 일본의 문화 콘텐츠와 젊은 남녀의 사랑을 알고 싶다면.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딱히 마음에 남는 글은 발견되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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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5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15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16 0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15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G 2009-03-16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
스텔라님 의견에 동의하구요.
인물들 이름으로 장난쳐놓은 게 신선하긴 했지만,
그것도 제가 추리나 미스터리 쪽으로는 완전 문외한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제가 '나 미스터리 좀 읽은 여자야~' 요랬다면 읽다가 때려쳤을지도 모르죠.
알라딘 서평단 도서가 연속으로 두 권씩이나!! 요따구인것도 동감합니다.
가뜩이나 글솜씨가 없어 서평쓰는데 하루종일이 걸리는 저인데...
그 시간을 들여 서평을 쓸만한 가치가 있는 책들을 보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ㅜㅜ
그래도 이번에 받은 <대한민국 표류기>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와우~^^ 만족스럽습니다. 이번주는 서평 쓸 맛이 날 것 같아요.
종종 서평 감상하러 놀러오겠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stella.K 2009-03-16 21:32   좋아요 0 | URL
주르주아님 이제 봤더니 여자 분?ㅎㅎ
저 비 때문에 속았네요.
저는 남자 분인가 했다는...ㅜ

저 같은 경우 <벤자민...>은 이미 읽은 책이구요,
것도 나쁘진 않은데 제 취향은 아니었지요.
<대한민국 표류기>는 나름 괜찮은 것 같은데 굳이 꼭 읽어야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시간 없을 땐 굳이 시간에 쫓기며 읽고 싶지 않다는 거죠.
그래도 뭐 전반적으로 1차분 보단 저도 좀 낫다 싶네요.
암튼 반갑구요, 저 비 사진 귀엽다능.^^
 
달을 먹다 -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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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읽으면서 이게 과연 나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으려나 의심하면서 읽었더랬다.  

사실 이런 형식의 소설을 안 읽어본 것은 아니다. 등장인물이 여럿이어서 시점을 달리에서 각자 자기 고백을 하는 뭐 그렇고 그런 소설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봤을 때 그런 소설들이 나름의 독특함을 가지고 있어서 나는 대체로 좋아하는 편이다. 솔직히 한 사람의 싯점 가지고는 그것을 다 표현해 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전지적 싯점을 견지하지만 내밀하지는 않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형식을 지나치게 많이 차용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좀 안타까운 건 등장인물만 해도 꽤 여럿이고 그 사람의 관점에서 타인을 바라보고 느끼는 감정이 좀 더 뚜렷했으면 좋겠는데 어느 누구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비슷한 관점을 유지하고 있어 인물의 특성이 사장되어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차라리 그럴 것 같으면 중요한 몇 사람만을 중점적으로 그 사람의 관점을 다뤄 볼 일이지 누구의 몇번째 이야기란 형식이 과연 필요했던 걸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어쩌면 작가는 자신이 다룰려고 했던 것을 충분히 표현해내지 못하고 지레 마무리를 한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이 있었다. 조금 더 깊이 파 보았더라면... 

등장인물도 특별히 악하지도 그렇다고 선하지도 않다. 대체로 그럴 땐 작가의 성향을 반영하던가, 스킬의 부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저 뭔가의 아쉬움, 안타까움, 한 같은 것을 한 가지씩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아지고 있는 아우라가 약해 보인다. 근친상간이라고 하는 사랑의 치명성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하는데 개연성이 약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끝까지 읽혔던 건 시대적 배경 즉 그 시대의 풍속을 최대한 녹아내는 지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노력에 나도 박수를 쳐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정작 앞에서 지적했던 것들을 놓치고 갔던가, 버거웠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시대적 배경은 좋은데 정서를 표현함에 있어서는 약간의 미흡함이 보이기도 했다. 특히 초두에서 배경은 조선 양반 사회를 말하는 것 같긴한데 그 흐름은 요즘을 얘기해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조금은 어리둥절했다. 물론 뒤로 갈수록 익숙해져서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정적인 느낌이 들긴했다.  

좀 건방진 소리겠지만, 그래도 문학동네가 사람은 볼 줄 아는구나 싶기도 했다. 이만하면 상을 줄만도 하다싶게 작가의 노력의 흔적이 보였기 때문이다.  

습작기간 없이 단숨에 소설상을 거머졌다. 작가로선 부담스럽긴 할 것 같긴다. 그래도 지켜볼만한 작가는 아닌가 싶다.  

최근 작가의 새 책이 나온 걸로 알고 있다. 내용이 어떨지 궁금하긴 하지만 후속작이기 보단 문장에 관한 책을 낸 것 같아 조금은 아쉬운 느낌이다. 작가는 언제나 작품으로 승부를 봐야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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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리뷰해주세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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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늙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사실 없진 않은 것 같다. 솔직히 나는 늙는 것이 두려웠다. 갓 스물이 되고부터.  그 전까지는 시간이 참 안 간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스물이 되고보니 나이 먹는 것이 두려워진 것이다. 그때 나는 생각했었다. 스물 다섯이 되면 정말 나이들어 보일 거라고. 하지만 지금은 그 나이 보다 훨씬 더 많은 나이를 살고 있고, 돌이켜 보면 그 나이도 얼마나 젊은 나이었나 생각하면 그런 나 자신이 우스워 피식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런데 어쨌거나 그 무렵, 나의 지인중 하나는 빨리 나이 먹었으면 좋겠다고 한 사람이 있어 살짝 충격을 먹었더랬다. 그녀는 어찌나 평화롭고 온화한 얼굴로 스스럼 없이 말하던지 세상엔 나 같은 사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표제작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을 읽었을 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선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을리 없겠지만, 만약 있다면 이 사람은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일까를 생각해 봤다. 시작이야 늙은 모습으로 시작하는 거지만 그는 가면 갈수록 젊어지는 것이 아닌가. 늙기 싫고 나이 먹기 싫은 나 같은 사람에겐 얼마나 근사한 일이겠는가.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니, 누구든 인생을 말할 때 정점에 이르는 과정과 그 정점에 이르렀을 때와 그 정점에서 하강을 말하곤 한다. 그러면서 누구의 인생이든 다 똑같다고 한다. 그렇다면 벤자민 역시도 우리의 인생의 그라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비록 시작은 우리와 다르지만 그의 인생의 그라프나 우리의 그것이다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는 거꾸로 유년 시절을 맞았을 때 겉은 어린 아이의 모습이지만 관절염에 치매까지 걸려 골골하고 있지 않은가? 단지 좋았던 것이 있다면 그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아기의 모습으로 너무나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인간들의 죽음의 모습은 그닥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는 또 달리 생각해 보면, 늙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요즘의 세태에 경종을 울릴만 하다. 차라리 늙은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아름다운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내 세상은 좀 더 풍요롭고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늙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을 보면 정신적 성숙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아 안타깝다. 또한 시각적 효과를 얼마나 강조하는가? 그것이 사람을 얼마나 기만하게 만드는지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다고 죽음이 안 오는 것도 아닌데...   

어쨌든 읽다보면 의외로 마음이 넓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인생 별거 있어?" 하며 나이 드는 것을 싫어하며, 두려움이 많고, 안으로 숨어들려고만 하는 나에게 뭔가를 일깨우고 앞으로의 생에 용기를 갖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독특하지만 사랑스러운 이야기란 생각이 든다.  

애석하게도 피츠제럴드의 작품은 유명함과 달리 그동안 나와는 별 인연이 없는 작가였다. 오래 전 혹자는 그의 작품이 잘 안 읽혀진다고 토로한 글을 읽어 본적이 있는데, 나 역시 그의 말에 공감할 수 밖엔 없었다. 그나마 이 표제작이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이 독특하고도 위트가 넘치는 작품에 나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비록 피츠제럴드는 죽고 없을지라도. 

마침 때를 같이하여 영화도 같이 볼 기회를 가졌는데 그렇게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요즘엔 문학과 영화가 공생을 하다보니 눈이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좋은 현상이라고 해야겠지? 이 작품의 경우 나 개인적으론 영화가 원작을 훨씬 능가하지 않았나 싶다. 좀 지루할 수도 있지만 잘 만들었단 생각했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피츠제럴드란 이름 만으로도 관심이 가지 않을까?  '위대한 개츠비' 외에 우리가 이 사람의 작품에 대해 뭘 알았겠는가?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인생의 의미를 알고 싶어하는  또는 우린 너무나 시간을 허비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란 자성의 목소리를 가진 자라면 한 번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전에 읽고 리뷰 써 놨던 것을 서평단 리뷰로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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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2-17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영화 보셨군요. 저도 어쩌다보니 영화부터 봤네요.
영화와 원작을 비교하는 건 별로 의미있진 않지만요..
의견이 분분하더군요. 이 책 찜해뒀어요.

stella.K 2009-02-17 11:06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가요? 전 시나리오 공부를 해 봐서 그런지 관심이 가더라구요.
영화가 더 잘 만들어졌단 느낌이 들어 책은 오히려 밋밋하단 느낌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영화와 원작이 공생하는 건 앞으로 더 심화되면 심화됐지
줄어들진 않을걸요?^^
 
리진 2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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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이 책을 읽었다. 2007년에 나왔으니 2년이 되온다. 출간 당시, 아니 이 작품이 모일간지 연재 소설로 연재될 때부터 이 작품은 화재였다. 지금 나는 그 일간지를 끊은 상태지만, 난 그때 당시만 해도 그 일간지를 보고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읽을 수도 있었는데 연재 형태는 계속 이어지는 맛이 없어서 눈길도 주지 않았다. 가끔 일러스트는 봐왔지만.  

그런데 단행본으로 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사실 작가의 이전까지의 작품은 호불호가 명백히 갈리는 양태를 보이는 것 같은데, 난 애석하게도 불호쪽에 가까운편이었다. 작가의 '풍금이 있던 자리'를 10년도 더 된 세월 전에 읽었는데 그때의 당혹감이란...!  

사람은 편견의 존재라고 했던가? 한번 안 좋은 인상이면 여간해서 바뀌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 이후에도 매스컴에선 작가의 작품들에 찬사의 수식어를 부치기를 주저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때도 여간해서 작가의 작품을 읽기를 주저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작가에게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또 어쩌랴, 독자는 소비자인 것을. 취향의 문제겠지만, 내 지갑 열어 책값을 지불해야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또는 좋아할만한 책에 책값을 지불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래도 이 작품 만큼은 대중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 심지어 나와 같이 불호의 태도를 보여  돌아 앉았던 사람들이 바로 앉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나쁘면 끝까지 나쁘라는 법이 없고, 좋으면 끝까지 좋으라는 법이 없듯, 결국 작품이 작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도 팔랑귀라서 그럴까? 사람들이 좋다고하니 마음이 동한다. '그래? 그렇다면 어디 한번...?!'  

그렇게 마음 먹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이 작품을 오래도록 읽지 못하고 있었다.(예나 지금이나 나의 책 읽어 내는 능력은 지진아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왜 이리도 더디 읽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다른 책에 치어 여간해서 읽을 틈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엉뚱하게(?)도 정작 읽어야할 이 작품은 여전히 읽지 못하고 <엄마를 부탁해>를 먼저 읽었다. 이 책은 '리진' 이후에 나온 작품인데 그때 읽었던 은은히 퍼져오는 감동이란 굳이 '리진'을 먼저 읽지 않아도 왜 사람들이 작가에 대해 그렇게 입을 모으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아무튼 이 작품을 읽으면서 정말 작가가 와신상담한 흔적이 역력하다. 책 말미에 작가가 이 작품을 어떻게 썼는지 그 과정을 말해주기도 했지만 정말 궁중무희였던 리진을 형상화하기 위해 흘렸을 작가의 땀과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특히 우리나라 개화기와 그 시대 프랑스의 역사적 배경을 잘도 직조해 냈다. 물론 역사 소설인만큼 작가의 상상력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했겠지만, 리진이 프랑스에서 모파상을 만나고, 당대의 프랑스 문화를 풀어내고 있을 때 정말 감탄할 정도였다.  

단지 내가 약간은 불만스러웠던 건, 물론 풀이와 이해를 위해서겠지만 작가가 비슷한 상황과 문체를 반복해서 쓰고 있다는 점에서 예전에 인상지어줬던 작가의 과거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그래도 뭐 그게 그다지 크게 불만스럽진 않다. 정말 재밌게 잘 읽었으니까.  

이 작품에서의 압권은 단연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아니었을까?  이 부분을 대하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하다. 그리고 또 하나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 개화기의 대표적 인물을 들라면 그것은 당연 명성황후와 흥선 대원군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관계야 그동안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긴한데 어찌보면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사람들을  우린 너무 우리가 편한 방법으로 그들을 알려고 해왔던 것은 아닐까? 그것이 정말 역사적으로 옳은 것인지 알려고 하는 노력을 얼마나 해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과연 자료가 얼마나 나와있을까? 출판물을 중심으로 알아 봤더니 이 또한 별로 나와있지는 않아 보인다. 역사학자들의 게으름인건지 아니면 매스컴의 무관심인건지 알 길이 없다.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특장이라면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의 역사와 동시대 프랑스의 문화를 함께 읽을 수 있는 점이 가장 크지 않을까 한다. 더불어 봉숭아 꽃물처럼 서서히 하지만 강하게 사람을 매료시키는 리진의 청초하고도 강렬한 이미지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역시 좀 욕심을 내자면 리진의 형상화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와 오늘날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동시대성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그래도 A4 용지 한장 반에 갇혀 있을 뻔했던 리진이 작가의 입김에 가슴이 아리도록 형상화 됐다. 그렇다면 아직도 역사의 빛 한자락도 받아보지 못한 묻혀진 영혼들을 무엇으로 다 펼쳐 보일 수 있을까? 작가들이 할 일이 참 많아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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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1-30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오랜만이죠^^ 새해 신명나는 일 많으시길 바랍니다.
리진,은 제가 사뒀다고 읽지 않고 누군가에게 선물한 책이에요.
읽고 싶긴 한데 아무래도 안 읽고 넘어갈 것 같은...
작가의 비슷한 상황묘사와 문체가 독자에겐 식상할 수 있겠단 생각은 드네요.
참 그걸 벗어나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stella.K 2009-01-31 10:54   좋아요 0 | URL
앗, 혜경님! 제가 먼저 인사 드렸어야 했는데...부끄.
맞아요. 그런데 이 작품은 그래도 지적하신 것에서 많이 벗어난
느낌은 있어요. 차라리 좋기론 '엄마를 부탁해'가 더 좋다고 보아집니다.
근데 전체적으론 작가가 감성의 작가라 읽다보면 좀 우울해지더라구요.
그래도 이 작품은 역사 소설이라 좀 나은 편이었다고나 할까?
가끔 읽으면 좋을 것 같기도 해요.

참, 혜경님도 잘 지내시죠?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슴다.^^

 
샤라쿠 김홍도의 비밀
백금남 지음 / 한강수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내가 이 책을 집어 들은 건 순전히 어느 한 책 때문이고 그것을 드라마로 만들어 지금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기 때문이란 걸 부인할 수가 없다. 또한 그것은 신윤복을 다루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김홍도를 알고 싶어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관심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의 화인에 대한 삶은 이제까지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다가 요즘 팩션이란 장르를 힘잆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팩션이 어느 한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것이라 읽다보면 실제로 그 사람의 삶이 어땠나 궁금해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신윤복이든, 김홍도든 그들의 삶이 어땠는지 정확한 사료가 없다고 하니 안타깝다.

그래도 이 책을 보면 저자가 김홍도를 작품속에서 살려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저자는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함께 세계 3대 초상화가로 일컬어지고, 빈센트 반 고흐와 같은 유럽 인상파 화가들에까지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일본의 천재 화가 도슈사이 샤라쿠, 그가 김홍도라는 가설(334p~335p)에서 이 책을 쓸 생각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서익채라고 하는 당시 검시관을 통해 사라진 김홍도를 추적하고, 조희룡이란 제자를 통해 스승 김홍도를 추억하는 것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물론 서익채나 조희룡은 가상의 인물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야기는 상당히 짜임새가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와 공력을 들였을지 알 것 같다.

특히 난 조희룡이가 스승을 추억하는 장면에서 김홍도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고, 예술에 대하여 그리고 천재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김홍도에 대해서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마직막 부분에서 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닥 크게 문제 삼을 건 못되지만, 그래도 그때 당시 한 여자에게 애인이 있을 거란 건 어찌보면 현대적 감각을 유지하고 싶었던 작가의 작은 바람 때문은 아니었을까 해서 실소를 하기도 했다. 뭐 없으란 법도 없겠지. 아무리 엄격한 유교 사회라 할지라도. 그리고 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약간 김이 빠지는 듯한 느낌도 없진 않다. 그래도 관심을 갖고 읽을만 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서든 팩션이란 문학장르를 통해서든 나 같은 벽안의 독자가 우리 예인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는 건 반가운 일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이 책의 저자를 비롯해서 일선 작가들의 수고와 선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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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6 13: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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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6 16: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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