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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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발상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퀴즈쇼에 나가 문제를 다 풀고 거금의 상금을 받아야하는데 도리어 경찰에 체포되어 변호사 앞에서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진술하는 것으로 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이 자기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체험과 인도 문화의 이면을 엮어 술술 잘도 풀어나가고 있다.

사실 그동안 외국 소설이라고 하면, 주로 일본, 중국, 미국과 서유럽 지역이 주로 번역되어 나오는 실정이고 보면 인도 소설은 확실히 제3세계 소설로 나오자마자 상종가를 치며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그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 마이너리티 소설의 선전이요, 우리나라도 문학을 보는 지평이 넓어졌다고 해야할까?

그 소설은 (비록 그 나라에 가본 건 아니지만) 인도에 대해 보여줄 수 있는 건 거의 다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싶다. 인도하면 빠지지 않는 타지마할에 관한 이야기, 인도 국민이 영화를 좋아하느니만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 편수를 자랑한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배우 지망생의 친구 살림이나 주인공이 인도의 유명한 여배우의 집에서 종 살이를 한다는 설정에서 그 나라가 영화를 얼마나 좋아하는가를 작가는 능청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가난 때문에 압제 당하는 인도 여성에 관해서도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주인공의 이름이 독특했던만큼 인도의 종교문제도 건드려 주고 있다.

더구나 이 소설은 주인공 람 모하마드 토마스가 태어나자마자 버린 받은 고아 소년의 성장기다. 물론 고아라는 사실이 주인공에겐 힘겨운 삶을 부과하고 있지만, 어느 것에도 눈치볼 것 없고 거칠 것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란 점에서 소설적 인물로는 더 없이 매력적인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읽다보면 꼭 모험담을 보는 것 같아 재미가 있었다. 게다가 친구와의 진한 우정. 갱단과의 한판승, 창녀 애인과의 신의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마치 무슨 버디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지루하지가 않았다.

단지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너무 많은 얘기를 다룰려고 해서일까? 읽다 보면 중간에 뭔가가 뒤섞여 매끄럽게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 든다. 그래도 나중엔 해피앤딩으로 끝나고 있으니 나름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면서 잘 만들어진 영화 한편 본듯한 느낌이다. 가히 추천할만 하다.  

사족: 이 책 읽으면서 퀴즈쇼에 대한 의혹이 일었다. 우리나라 지상파 방송에서 매주하고 있는 퀴즈쇼에 이와 비슷한 함정과 의혹이 있지는 않을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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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2-04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책 보고싶던데... 도서관에 신청해놨더니 아직 안 사주네요. ^^

stella.K 2008-02-04 10:41   좋아요 0 | URL
저런...이런 책은 빨리 빨리 사 놓고 순환해야할텐데...
재밌어요. 꼭 읽어보세요.^^
 
나, 제왕의 생애 (반양장)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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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말로만 듣던 쑤퉁의 소설을 이제야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지면 쑤퉁은 상당한 이야기꾼이란 생각이 든다.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다. 15세 때 왕위에 등극한 단백이 어떤 과정을 통해 몰락해 가는가를 그리고 있다. 이야기는 어린 나이에 왕위를 이어 받았기 때문에 어머니와 할머니의 간섭(수렴첨정이라 해야 옳겠지만 그 말은 이 소설에서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과 눈치를 봐야했고, 많은 비빈들의 치마폭에 쌓여 그들의 시기와 질투를 지켜봐야 했으며, 형제들의 시해의 위험속에 살았으며, 결국 모반으로 왕위에서 쫓겨나 한낱 줄타기 광대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다. 이것은 역대 몰락의 길을 걸었던 제왕들의 전형이다. 하지만 저자가 가상의 역사 소설이라고 했던만큼 아무리 픽션이라고는 해도 허위라도 꾸밀만한 역사적 사건 같은 것은 없다. 단지 우리나라에 <조선왕조실록>이 읽는 것처럼 이 책에도 <섭궁비사>라는 것이 있어 이야기에 비중을 실을려고 하지만 이것 역시 가상의 역사책일 뿐이다.

읽고 있노라면 꼭 동화를 읽는 듯한 분위기다. 나는 바로 저자의 이런 점을 높이 사고 싶다. 뻔한 이야기를 자신만의 색깔로 변주해 내는 솜씨가 가히 탁월하다. 읽고 있노라면 영화 <마지막 황제>도 생각이 나고, 광대가 마지막까지 줄타기를 즐겼던<왕의 남자>도 생각이 난다. 몰락한 제왕 단백이 마지막에 줄타기 광대가 된다는 설정에서 묘한 아우라 마져 느끼게 한다. 왕위에서 쫓겨나 궁을 나와서야 비로소 세상을 알게되고, 광대가 되어서야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다는 것은 생의 아이러니를 알게 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또한 <논어>에 대한 글귀는 단 한줄도 인용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주는 미장센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잘 빚어낸 우아한 이미지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면서 가까운 시일내에 그의 또다른 소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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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12-31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곱번째 줄에 전형다>>>전형이다. 수정해 주셔용^^
쑤퉁의 이름을 많이 들으면서 저도 참 궁금했던 작가에요. 오늘 오랜만에 책장 정리하면서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아 새해에는 가급적 새 책 안 사기 운동을 펼쳐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했어요. 그래도 언젠가 쑤퉁을 만나볼 겁니다. 스텔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stella.K 2007-12-31 18:21   좋아요 0 | URL
ㅎㅎ 역시 예리하시군요. 이 책에 대한 호불호가 좀 나뉘는 것 같은데, 저는 좋았습니다. 마노아님도 기회 있으면 꼭 한번 읽어 보세요. 님도 복 많이 받으시길...!^^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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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주제로한 작품들은 참으로 흥미롭다. 물론 몇 작품 보지는 못했지만 <바베트의 만찬>이나 <초콜릿>같은 작품은 인간의 식욕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음식을 통해 음식이 가진 은혜를 베풀며, 나아가 종교적인 이유에서 금욕하는 인간들을 점잖게 또는 경쾌하게 조롱한다. 물론 이 두 작품들은 금욕 자체를 꼬집는 것이 아니다. 금욕 그 뒤에 감춰진 인간의 위선과 권위 의식을 까발리려고 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음식 하나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보여줬던 드라마 <대장금>같은 경우는 이영애라는 당대 최고의 배우가 주인공을 맡았다는 것을 차치하고라도, 드라마 자체만으로도 숨 죽이고 볼만한 훌륭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음식을 소재로한 영화나 문학작품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또 음식을 소재로 한 독특한 작품이 나왔다. 바로 조경란의 <혀>이다. 위에 언급한 작품들은 요리를 통해 인간의 위선이나 권력을 까발렸다면, 조경란은 독특하게 식욕과 성욕 나아가서는 애욕에 관해 지적이고도 음울하지만 훌륭한 성찬을 차려주었다. 

조경란의 작품을 처음 대해 본 나로선 이 작품이 적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작품은 결코 빨리 읽히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 이미지도 상당히 강렬하다. 독특하게도 이 책의 부록으로 그녀가 이 작품을 쓰면서 참고했을 참고 문헌이 나오는데, 작품속에서 그것들을 정말로 적절히 잘 녹여내, 읽으면서 지적인 만족감을 충족시켜 주었다.

사실 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인간이 갖는 식욕과 성욕이 서로 얼마만한 연관이 있을까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어느 한 모임에서 우연찮게 식욕과 성욕에 관한 열띤 토론(?)을 하게 되었다. 즉 인간의 욕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이라 할 수 있는 식욕과 성욕 중 어느 것이 더 우위이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오래 생각할 것 없이 당연히 식욕일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람은 하루 이틀 섹스를 하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배가 고프면 못 사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게다가 성욕은 일부러 금욕하고도 나름 만족하게 잘 사는 사람도 있다. 이를테면 신부나 수녀들 또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어도 다른 등등의 이유에서. 하지만 금방 그 자리에 있었던 이를 뒤엎는 반론이 나왔다.

영장류의 동물 실험이 있었단다. 뇌에 전류를 흐르게 하고 한쪽에선 버튼을 누르면 여러 가지 성적 상상이 가능하게 했고, 한쪽엔 실제로 풍성한 먹을거리를 쌓아 놨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실험에서 그 동물(침팬치나 오랑우탄쯤 됐겠지?)은 코 앞의 먹을 것을 놔두고 성적 상상을 할 수 있는 그 버튼만을 굶어 죽을 때까지 하고 있더란다(물론 그러다 진짜 죽었는지 아사 직전에 그 실험을 멈췄는지 그후의 일은 알길이 없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일말의 의심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생명체가 갖는 성욕이란 것도 무시 못하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흥미로운 건, 수컷들이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암컷들이 그들의 성욕을 잘 달래주면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기야 인간의 모든 역사 배후에 이런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숨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 말은 결코 근거없는 말은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갖는 욕구는 그 하나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식욕. 즉 인간의 절대 미각를 좌우하게 되는 '혀'는 정말 잘 다스려야 하는 인체기관임에 틀림없다. 보라. 아담과 하와의 타락을. 그들은 혀로 신께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서 맛을 보았으며 수 많은 애증 낳게 했다. 사실 인간의 역사는 애증의 역사라해도 과언은 아니지 않는가?  

이 작품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시종 낮고 음울하다는 것일게다. 적어도 요리에 관한 작품이라면 좀 밝고 경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생각해 봤더니 내가 본 요리를 소재로한 일련의 작품들 역시 그리 밝지마는 않았던 것 같다. 그중 이 작품이 조금 더 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왜 이렇게 쓸 수 밖에 없었는지는 마지막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마지막 반전이 참 놀랍고 그로테스크 하다. 갑자기 예전에 보았던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가 생각이 났다.

아직 읽어 보지 않았다면 한번쯤 읽어 보라고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다. 그럼 내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도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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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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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가끔 퀴즈 프로그램을 볼 때가 있다. 막상 나 같은 사람이 이 소설에 나오는 이민수만큼이나 퀴즈쇼에 나가면 버벅거리고 아는 문제도 틀리고 그럴텐데도 한 두 문제 맞춘 것 가지고 나도 한번 퀴즈 프로그램에 나가보면 어떨까를 상상해 보곤한다. 나가면 우승은 못할지라도 못해도 본선진출에 재수 좋으면 등위 안엔 들지 않을까? 요즘엔 상금도 짭짤하다 못해, 저걸 정말 다 준단 말야? 하고 의심할 정도로 많이 주던데. 물론 그것을 다  맞춰야 한다는 전제있긴 하지만. 못 마쳐도 반타작을 할 수 있으니 그또한 나쁘지 않다. 그래도 난 낭패를 볼 확률이 좀 많아 보인다. 왜냐하면 퀴즈하면 순발력인데, 난 아는 문제도 부저를 누르는 속도가 느려서 떨어질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김영하의 책을 많이 읽었던 것은 아니다. 아마도 소설로는 이 책이 처음이지 않은가 싶다. 그만큼 김영하와 나는 인연이 없었던 것일까? 그래도 읽으면서, 아, 김영하가 소설을 이렇게 쓰는구나. 꽤 감탄하며 읽었다. 그 느낌은 뭐랄까? 상당히 도회적이면서도, 지적이고, 회색톤이며, 한땀 한땀 뜨게질 하듯 촘촘하게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가 이야기 중간중간에 소개해 놓은 소설들만 해도 몇십 권은 돼 보이는데, 그것을 나름 정교하게 배치해 놓고 있다. 게다가 이민수가 갔다던 일명 '퀴즈 회사'라는 곳도 꽤나 사실적으로 묘사해 놓고 있어서 정말 그런 곳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의 성패를 좌우하는 건 그런 지엽적인 것은 아닐터. 그가 얼마나 20대의 방황하는 청춘을 오늘 날에 맞게 그려놓고 있느냐일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작가는 상당히 충실하게 그려냈다고 생각하는 바, 독자인 나는 대체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책에 나오는 20대 후반의 자조섞인 목소리를 들어 보자.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 전자제품도 레고블록 만지듯 다루는 세대야. 안 그래?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고 토익 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자막 없이도 헐리우드 액션영화 정도는 볼 수 있고 타이핑도 분당 삼백 타는 우습고 편균 신장도 크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고,......독서량도 우리 윗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아. 우리 부모 세대는 그중에 단 하나만 잘해도, 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 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작가 김영하는 이 소설을 쓰는 내내 이십대에 대해서 생각했다고 했다. 사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20대를 건너왔고, 나의 20대랑 요즘의 20대는 전혀 다르며, 20대를 건너왔기 때문에 요즘의 20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세대의 변화라는 갭은 역시 뛰어넘지를 못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지금의 내 나이도 더 버겁다고 비중을 실어서일까? 그닥 와 닿지 않는 면도 없지 않다. 그냥, 그래, 너희들도 힘들지? 앞으로 더 살아 봐라. 삶의 무게가 더 무거우면 무겁지 새털같이 가벼울 줄 아니? 하며 측은지심이 들어가기도 한다.

사실 이 소설이 세태를 표방하는 만큼 각 개인은 시대의 불운아처럼도 보인다. 그래서 상처받고, 소외되고, 뭔가 병든 것 같은 사람들. 그것을 자위하고 자조하는 것이 우리들의 본분은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영웅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버릴 수 없는 그 지긋지긋한 희망 때문에라도 말이다. 그래도 우린 이민수를 시대의 희생양으로 봐야하는 것인지, 아니면 주변인으로 봐야하는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누군가는 이 세태를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무엇을 빗대어서라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김영하는 오늘의 세태를 자신의 글에 충실히 반영했던 충실한 기록자는 아닐까?

우리는 언제부턴가 희망을 말하지 않게 되었다.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해야될 싯점에서도 희망을 말하는 사람은 없고, 어두운 전망과 서로의 엇갈린 진술속에 진창을 딩군다. 희망을 말하지 않게 된 것이 정말 희망이 없어서 그런 건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그렇게 되어버린 건지 그것은 알 길이없다. 이 전망없는 세대가 이 소설속에서도 그대로 묻어나와 조금은 마음이 씁쓸해 진다.

조금 다른 얘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을 덮으면서 공교롭게도 이번에 나의 조카가 대입수학능력고사를 봤다. 나의 조카는 저주받은 트라이앵글 세대라는 89년 생이다. 트라이앵글은 내신, 논술, 수능을 지칭한다고 한다. 얘네들이 취직을 해야하는 6,7년 후에는 누가 또 어떤 20대를 주인공으로 한 세태소설을 쓸까? 갑자기 그것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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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11-25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영하 소설은 이 책이 처음인데 이 사람은 이렇게 소설을 쓰는구나...하며 감탄했어요. 대단히 재밌게 보았는데도 이상하게도 별점은 저도 넷을 주었답니다. 왜 그랬을까요^^;;

stella.K 2007-11-26 10:1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요. 다섯 주면 독자로써 너무 싸 보인다는, 뭐 그런 심리도 있었을 것 같아요. 네개 주면서 다시한번 이 별점 자체에 대한 묘한 불만이 생기더라구요. 없으면 허전하고, 주자니 껄끄럽고. 이젠 필요악쯤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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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박완서 선생의 글을 접한 때가 10대 말에서 20대 초중반이었을 것이다. 그가 내놓은 책마다 족족이 다 읽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작가의 작품을 꽤 꾸준히 읽어냈던 몇 안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박완서 선생이다.

그때 그는 40대에서 50대의 나이었을 것이고, 그의 소설에 나온 주인공들도 꼭 선생만한 나이의 여성들이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 나는 그의 소설을, 산문집을 잊고 살았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한 작가에 대해서 어느만치 알겠다 싶으면 다른 작가 또는 다른 책으로 관심을 돌리는 나의 콩 뛰고 팥 뛰는 종잡을 수 없는 마음 때문이었을 게다. 그리고 이렇게 한 20년쯤의 세월이 흘러 그의 소설을 다시 접하고 보니, 그는 여전히 당신만한 나이의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사람들에 대해, 삶에 얘기하고 있다. 20년 전에는 중년의 여성이었겠지만, 지금은 노년이다. 그렇게 꼭 자기만한 나이의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물론 젊을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노년이 될 때까지 글을 쓰는 작가들은 꽤 있다. 그런 작가들은 더 노련해지고, 더 풍성한 글을 쓴다. 하지만 주인공을 딱 자기만하게 하고, 그 나이의 주인공의 싯점에서 쓰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내가 보기엔 그리 많이 않아 보인다. 이 책의 해설을 맡은 김병익 씨도 우리나라엔 아동문학도 있고, 청소년문학도 있지만, 유독 노년문학의 부재를 지적했다. 그것의 이유로는, 전쟁과 가난으로 작가들이 장수하지 못했거나 조로하기 때문이라고 했다.(285p) 그렇다면 노년문학은 어떤 것일까? 수록작 <대범한 밥상>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너 딴 반찬도 먹지 그 군둥내 나는 짠지 국물은 다 마셔버리냐? 나중에 물키려고."

"글쎄 나도 모르게 그 군둥내가 비위가 땡기네. 이거 어떻게 만든거니?"

"만들고 말고가 어딨어? 무를 통째로 왕소금에 푹 절인거지."

"그건 아는데 짠맛 말고 군둥내가 꼭 요만큼만 나게 하는 레시피 말야."

"레시피 좋아하네. 그거 작년 것도 아니고 아마 재작년 걸 거야. 김장때가 쉬 돌아올 것 같아서 뒷마당에 묻어둔 항아리를 살피다가 밑바닥에 골마지를 푹 뒤집어쓰고 있는 무가 서너 개 남았기에 버리기도 뭐해서 씻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손님 맞을 준비한답시고 나박나박 예쁘게 썰다가 맛을 보니까 어찌나 소탠지 몇 번 물에 울궈내고 나서 다시 물 부어놨던 거야. 가미한 건 초 몇 방울하고 실파 썬 것하고 고춧가루 솔솔 뿌린 것밖에 없어." (220-221p)

참 평범하지만 노년문학 아니 박완서 문학을 이토록 잘 표현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짠지엔 양념과 재료의 맛을 좌우하는 황금 비율의 레시피가 없다. 오로지 왕소금과 원래 무가 가지고 있는 맛의 성질이 오랜 시간을 두고 하얀 골마지를 뒤집어 써야 나온다. 하지만 쉽게 먹을 수도 없다. 쓰도록 짜서 몇 번을 물에 울궈내야 겨우 먹을 수가 있다. 나도 몇번 먹어 본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만큼 그렇게 맛 있는 음식이 아니다. 그런데 이 노년의 여인은 그 군둥내 나는 국물을 맛있다고 들이킨다. 과연 그것은 그 나이만이 느낄 수 있는 인생이 주는 맛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표제작 <친절한 복희씨>를 비롯한 9편 모두는 겉으로 드러난 생의 이면을 저자 특유의 문체로 재치있고 웅숭깊게 드러내고 있다. 특별한 멋도, 기교도 없다. 그냥 예전에 나의 외할머니가 어디선가 듣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옮겨 들려주는데 그것이 마냥 재미있어 또 듣고 싶어했던 것처럼, 선생의 문학은 나에겐 꼭 그런 느낌이다. 그야말로 한 작품, 한 작품 읽을 때마다 가슴속 깊이 뭔가가 켜켜히 내려앉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이 책은 내가 한동안 어떠한 일로 기분이 꿀꿀해 했을 때, 위로 받으라고 어느 착한 알라디너 분이 선물해 주신 것이다. 그 분의 마음이 하도 따뜻하게 느껴져 나는 잠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기만 했다. 그리고 그분 때문에 다시 펼쳐 든 박완서 선생의 이 책은 참으로 나의 마음을 보듬어 안아 주기에 충분했다.

어떠한 꾸밈도  에누리도 없는 선생 특유의 문체는, 마치 어떠한 기교도 없이 애조띤 정서만을 목소리에 담아 노래 부르기로 유명한 가수 이미자 씨의 음성을 생각나게 한다. 또한 살잔 소리, 낭탁, 우세스럽다 같은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선생만의 독특한 어휘는 김병익의 말대로, 눈치로 받아 들이게끔 넉넉한 마음을 만들어 준다. 게다가 문장부호 또는 줄바꿔 쓰기 등도 여간해서 잘 쓰지 않는 선생의 문장에선, 오히려 이것을 너무 심하다 싶으리만큼 쓰고 있는 겉멋든 젊은 세대의 글쓰기 방식에 잔잔한 하고도 도도한 도전을 주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이제 나는 선생의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던 젊은 날을 관통하여, 선생이 처음 글을 쓰고 문필을 날렸던 그 나이 언저리에 도달해 있다. 나이 먹어서 좋은 건 그다지 없어 보이는데, 한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젊을 때 보다 덜 방황하고 덜 실수한다는 거다. 젊을 땐 그게 그렇게 하고 싶고, 좋아 보이는 것들이 때를 지나놓고 보면 그것도 그다지 좋은 것마는 아니라는 것을 아는 시기가 바로 지금의 내 나이인 것 같다. 그래서 웬만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모르겠는게 인생이고, 꿀꿀한 게 인생이다.

박완서 선생은 서문에서, "나를 위로해준 것들이 독자들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고 쓰셨다. 나는 언제쯤이면 이 꿀꿀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며 살게 될까? 선생의 소설 속에 나오는 주인공의 나이쯤이 되면 진짜 사람들을 위로하며 살게 될까? 그렇다면 시시때때로 섣불리 이게 다일거라는 생각은 하지 말고, 조금 더 살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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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2007-11-13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그렇군요. ^^
지난번 산문집에서 좀 노인스런 고집이 느껴져서 당장은 조금 망설이고 있는데,
결국엔 읽을 것 같아요. ^^;;
좋은 리뷰, 잘 읽었어요. ^^

stella.K 2007-11-13 18:09   좋아요 0 | URL
그럼 추천도 좀 해 주시지 안쿠...>.<;;

프레이야 2007-11-13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이 이리 후하게도 다섯개를 주신 거 보면 분명 읽어야되는 책
맞죠? ㅎㅎ

stella.K 2007-11-14 10:38   좋아요 0 | URL
그럼요. 박완서 선생 글을 읽으면 정말 쓰고 싶어져요. 근데 나름 심혈을 기울여 리뷰 썼는데, 댓글도 추천도 그리 많지 않군요. 저는 왜 이럴까요? 흐흑!

프레이야 2007-11-15 08:5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ㅎㅎ 토닥토닥~ 심혈을 기울여 쓰는데 말이에요^^
클릭 한 번 더 하면 되는뎅..
님의 명언 "추천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stella.K 2007-11-15 10:58   좋아요 0 | URL
ㅎㅎ 님도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