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책은 최근에 많이 번역되어 나왔지만 나는 이 책으로 첫 인연을 맺었다.
늘 소설을 많이 읽기를 바라지만, 난 항상 에세이에 마음이 간다. 그러는 것을 보면 나도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그렇듯 에세이는 삶을 생각하게 만들고, 성찰하게 만드니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해 수시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은 그래서 읽을만 하다. 에세이를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새로운 시각에 눈을 뜨게 해 준 책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각 글마다 제목이 '...하다'식의 동사형으로 되어있다. 우리가 어느 때 한 번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있어서 의미를 부여해 본 일이 있는가? 바로 그것을 붙잡아 글을 썼고, 그 속 깊은 맛이 대단하다 싶다.
게다가 또 한 번 놀라게 되는 건, 에세이집 치고는 그 두께가 만만치 않은데 이런 에세이집은 근래에 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난 이렇게 도톰한 책을 좋아해 이 책은 이래저래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었다.
특이하게도, 저자는 한국에 잠깐 산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경계인으로써의 삶이 작가로써의 정체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을 하게 만든 것 같다. 특히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모르게 일본인에 대해 편견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 이를테면 일본인들은 늘 침략자, 가해자란 의식 말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들도 전쟁의 피해자였고 그로인해 어려움을 겪고 살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저자의 진지한 글쓰기가 난 마음에 든다. 나중에라도 꼭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올해는 오빠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힘든 한 해였다. 아무래도 집안에 누가 아프면 건강서적을 안 볼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렇게도 건강했던 오빠가 갑자기 암에 걸리고 보니 새삼 이 암이란 녀석이 뭔지 알고 싶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전까지는 암은 걸릴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나 걸리는 거지 우리 가족에겐 해당도 안 되는(적어도 아직은) 거라고 치부해 버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래 전, 아버지를 암으로 잃고도 여전히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았다는 게 왠지 나 자신 스스로에게 속은 것 같아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런 책들이 오빠를 간병하는데 그렇게 많은 도움이 됐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읽었던 암에 대한 책들 거의 대부분은 병원 치료에 대해 회의적이었는데, 오빠는 알고도 또 모르고도 병원 치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오빠가 그렇게 됐으니 나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싶어, 난 어떻게 대처해야할까에 참고가 될만 하다고 할까?
무엇보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건, 저자가 나이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암도 인생에서 만나질 수 있는 한 과정이려니 하는 긍정적인 태도다. 젊은 의사가 암에 관해 글을 썼다면 처방 위주의 글을 썼을지도 모르지.
사실 오빠가 암이라고 했을 때 우리 집은 거의 초상집 분위기였는데, 이 책을 읽고 그때 우린 좀 오버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동양인들은 죽음에 대해 긍정적이지 못한데다가, 오빠의 나이가 죽기엔 아직 젊은 나이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책 표지가 아주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제목도 그렇고 암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가질 수 있게돼서 나름 좋게 읽었다.
더불어 <의사의 90%는 암을 오해하고 있다>도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무엇보다 일본 의사들만 해도 그들도 의사임에도 무조건 병원 치료만을 권하지 않는 자세가 마음에 든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고 일부 몇몇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우리나라는 마치 병원 의사만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처럼 비쳐질 때가 많아 씁쓸할 때가 있다.
바로 소개한 위의 책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나온지 좀 된 책이다. 내가 그다지 책을 계획적으로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은 정말 우연치 않게 읽게된 책인데 상당히 좋다. 출판된 당시에는 나름 지명도가 있던 책으로 알고 있는데, 다른 책 읽느라 읽어 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책이다. 이렇게 생각지도 않게 읽고 감동을 먹으면 횡재한 느낌이든다.
하지만 내가 진짜 말하려 하는 것은 이제부터다.
어제였나? 뉴스에 서점 귀퉁이에도 진열되 보지도 못하고 바로 패기되는 책이 어마어마 하단다. 나올 때는 꽤 비싼 고가였어도 패기될 땐 한 권에 100원 받고 가루가 된단다. 그도 그럴 것이, 한 해 문을 닫는 동네 서점이 너무 많고, 상승세에 있던 인터넷 서점도 최근 판매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불황이면 제일 먼저 줄이는 것이 문화비일테고, 또 그만큼 영세 출판사는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이에 대해 곧 해결방안을 제시할 거라고 하긴 하는데, 과연 실효성이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볼 때 또 하나 문제점이 있다면, 서점이나 출판사들이 너무 신간 위주로만 마케팅을 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신간이 나왔을 때 반짝 긴장하고 팔지 않으면 언제 묻혀질지 알 수가 없다.
나만해도,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신간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새로 나온 책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고, 그것을 읽어주지 않으면 뭔가 뒤쳐지는 것만 같다. 그리고 예전에는 매체가 한정되어 있고, 꼭 발품 팔아 서점에 가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신간에 대한 생명력이 제법 길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년도에 나왔다고 해도 몇 개월 차이도 없는데도 벌써 구간 취급을 받는다.
이것은 아무래도 인터넷의 영향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과연 앞으로도 스테디셀러가 가능할 수 있을지, 가능해도 얼마나 가능할 수 있을지 새삼 의문스러워졌다. 신간만 가지고는 출판사나 서점이나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각 인터넷 서점마다 잘 쓴 리뷰어들에게 시상하는 제도가 있지만, 거진 대부분이 보면 신간 위주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간혹 출판된지 좀 지난 책에도 당선의 영예를 주기도 하는데 그건 어쩌다 가물에 콩나듯 하는 것 같다. 신간도 물론 많이 알려져야겠지만, 그 때문에 잘 만든 책 한 권이 스테디셀러로 가지 못한다면 좀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
출판된지 좀 오래 되었어도 한번씩 눈길을 주고, 무엇보다 자발적인 북클럽이 활성화 되어서 좋은 책이 꾸준히 사랑 받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비근한 예로 외국에선 출판 당시는 별로 빛을 못 봤는데 북클럽에서 찾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그래서 늦게 빛을 보는 책들이 있는데, 그런 것처럼 이때야말로 '독자의 힘'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사실 불행했던 예술가의 삶을 읽는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언젠가 에밀졸라의 <작품>이란 책을 읽고 기분이 너무 우울해져 읽다가 덮어버린 적이 있다. 이 책도 우울한 것으로 따지자면 에밀졸라의 책 못지 않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 자체가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상당히 잘 쓴 책이다. 특히 작가의 문체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리만큼 매혹적이고, 깊이가 있다.
무엇보다 작가가 중견을 넘어 노장인데 필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들어서도 지치지 않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나이 먹었다고 절필하는 작가들을 가끔 보곤 하는데, 물론 평생 잘 다닌 직장 은퇴도 하는데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왠지 작가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펜을 놓지 말아야 진정한 작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입장에서 세상에 쓰고 싶은 글이 얼마나 많은데 절필을 한단 말인가?
올한 해, 영화 때문에 유명해진 소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화를 소설로 만든 책엔 눈길도 안 주지만, 소설을 영화로 만든 책은 일단 관심을 갖고 보는 타입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는 아직 이 작품을 영화로는 보지 못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 본 나는, 일단 작가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관상에 관한 거의 모든 자료를 작품속에 잘도 녹여냈다. 작가에게 정말 관상을 볼 줄 아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했는데, 과연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작가는 관상가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것이 너무 만연해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없지 않았다. 물론 좋게 보자면 관상도 쉬운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도 되었지만. 읽고 있으면 정말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고, 사람을 그냥 지나치게 되질 않는 것 같다.
얼마 전,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이 서거했다. 나는 또 짬짬히 그 나라 국민의 추모 장면을 뉴스를 통해 보곤했는데, 다소 놀라운 장면을 보았다. 그 나라 국민들은 그다지 슬퍼하는 기색없이 오히려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오빠 얘기를 해서 그렇긴 하지만,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보면 그게 꼭 슬퍼할 일인가에 대해 다소간의 의문을 갖곤 한다.
물론 두 번 맺어질 수 없는 인연을 죽음으로, 이제 다시는 살아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슬프다 못해 서늘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축제로 만드는 나라가 있다는 게 자못 부럽기까지 하다.
이 책은 임종에 관한 책이다. 더 정확히는 살아 있는 사람이 임종을 맞이한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역시도 적잖이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안녕을 고하고 떠나갔다. 내년엔 또 어떤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나갈까? 죽음을 점점 더 가까이서 느낀다. 축하 할 일에만 너무 좋아하지 말고, 슬퍼하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었으면 한다.
여담이지만, 축하 받을 일에만 축하해 주는 사람은 오래가지 않는다. 슬플 때 말 한마디라도 따뜻히 남겨주는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서재에 오빠의 부고를 알렸을 때, 네 분 정도의 서재인이 위로의 말을 남겨 주셨다. 그분들껜 아직도 감사한 마음이 남아 있다. 하지만 내가 한동안 서재 활동을 거의 안한 여파가 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도 종종 서재에 글을 남기긴 하겠지만, 역시 아쉬워 할 일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잊혀지면 잊혀지는대로 한 세상을 살아가는 게 인생이 아니던가?
그대 때문에 또 한 해를 살 수 있어서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그래도 있다는 것에 감사와 위로를 삼아 본다.
한 해 사시느라 수고 많았다고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서재인들에게도 미리 인사를 남겨 본다. 남은 한 해 잘 마무리 하고, 부디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