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때 미치도록 책을 모았던 적이 있다. 내가 좋아서도 사고, 서재 활동을 하니 여기 저기서 책을 선물 받기도 하고, 물론 또 받은만큼 간간히 개인으로 또는 이벤트로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가급적이면 책을 안 모르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모은 책이 방 한 가득이니 더 늘어 놓을 때도 없고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사이판에 사는 친구에게 1년에 한 번 많으면 두 번쯤 보내고 있다. 한 번 보내면 적게는 40여권에서 많게는 60권 가까이 보내고 있다. 

예전에는 줄을 치지 않으면 책 읽는 맛이 안나 줄을 치고, 이건 간직할 책이니까 마음껏 쳐야지 하는 책도 어느 새 사이판 행 책 박스에 들어가 있다. 한때는 나도 밑줄그은 책을 남 주는 것에 대한 묘한 강박이 있었다. 누군가 그 책을 읽으면 괜히 관음증을 자극할 것은 아닌지. 또는 새 책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 뭐 그런 것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역으로 생각해 보면, 나도 가끔 누군가 밑줄그은 책을 받곤 하는데 그것에 대한 거부감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물론 처음엔 이 책 주인은 왜 하필 여기다 줄을 쳤을까? 살짝 궁금해지긴 하지만 만날 일도 없고, 설혹 만난다 해도 왜 그 부분에 밑줄을 쳤냐고 물어 보지도 못한다. 그러니 관음증의 자극은 잠깐 있다마는 정도다. 새 책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잠시다. 요즘 책값이 좀 비싼가? 현금 들여 사지 않을 거라면 그렇게 받는 것도 어찌보면 횡재다. 더구나 새 책이 아니니 밑줄을 맘놓고 칠 수 있어 나쁘지 않다.

나의 돌아가신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물건을 웬만해서 버리는 법이 없으셨다. 그에 비해 나의 엄마는 필요없는 것은 뭐든 버리는 걸 좋아했다. 그 점은 지금 생각해도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아마도 엄마도 아버지와 같은 성격이었다면 우리집은 온갖 잠동사니로 넘쳐났을 것이다.

예전에 책을 모으기만했을 땐 내가 아버지 성격을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쌓아두는 것이 싫어 뭐든지 가급적 안 모으려고 노력하는데 이 또한 쉽지가 않다. 예전엔 그렇게 사이판에 책을 보내놓으면 약간은 공간이 생겨 마음도 후련해지고, 저 빈 공간을 뭘로 채울까 여유로운 마음도 생겼는데, 어떻게 된 게 요즘엔 그렇게 책을 보내도 별로 비워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책을 추리는 일도 크게 마음 먹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라 자주 보낼 수도 없다.    

예전에 나는, 책을 사면 언젠가 읽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내보니 그렇지가 않다. 그때 당시엔 왜 그리도 그 책이 탐이 나던지? 무조건 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제 읽을지도 모르면서 지르기부터 하는 것이다. 그렇게 지른 책 중 물론 기필코 읽은 책도 있지만, 대부분의 책은 언젠가는 읽지 않게 된다. 책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것인지, 언제 읽겠다는 기한이 보장되지 않는 책은 시간 지나면 다시 읽기가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인터넷 서점 검색만해도 따끈따끈한 신간이 그때까지 보지도 못한 표지로 독자를 유혹하고 있는데, 눈이 보배라고 그때 당시엔 좋다고 산 책이 지금 보면 구닥다리가 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뭐 또 그게 아니어도 책이 진화하는 것처럼, 그 책을 낸 저자들도 진화하기 마련이다.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저자가 무슨 책을 내놨다하면 꼭 사게 만드는 책이 있다. 그러나 그 좋다는 책도 얼른 읽어주지 않으면 공염불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내가 꽤 겉멋이나 들고, 속은 게으른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물론 그것에 대해 굳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엄밀히 말하면, 책도 약간의 지적 허영이 있어야 모을 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출판 기술이 발달하기 전엔 책도 소위 '있는 집 자식들'이나 가질 수 있는 물건이었을테니. 물론 또 거기서도 층위가 나눠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책을 읽고 있는데, 너는 이런 책도 읽는구나 하는데서 오는 열등감과 우월감을 나눠갖지 않았을까? 

책 역시 취향에 따라 사람을 구분하기도 한다. 예전엔 어려운 철학책을 척척 읽는 사람이 있으면 무작정 우러러보고 부러워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을 보면 웬지 범접하기가 쉽지 않을거란 편견부터 갖게도 한다.    

 

어쩌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음, 그래. 허영과 게으름을 얘기했었다. 난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읽는데 게으른 것 같기는 하다. 그러니 언젠가 읽을 책을 쌓아만 두고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누가 들으면 핑계라고 할지 모르지만, 난 좀 책을 읽는데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건 책은 좋아하는데, 빨리 읽을 수 가 없는 것이다. 딱히 재본 건 아니지만, 한 번 책을 펼치면 얼마까지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책마다 다르겠지만, 좀 재밌고 사로잡는 뭔가가 있다고 하는 책은 대략 1시간 반 내외인 것 같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좀 지치고 눈의 피로도 오고,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치명적인 약점이 아니어도 책 정보가 예전에 비해 엄청 빨라졌고, 많아졌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전엔 꼭 발품 팔아 서점을 나가 보던가, 신문을 보지 않으면 무슨 책이 새롭게 나왔는지, 어떤 책이 주목을 받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그 일은 손쉽게 이루어지고 있다. 각 매채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책을 소개하고 있고, 각종 이벤트를 통해 현금을 들이지 않고도 책을 구입해 보는 방법도 많아졌으니 이 게으름이라는 것도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난 그런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한 달이면 책을 소화하는(그것이 완독을 했건 이러저러한 이유로 완독을 하지 못하건간에, 소화불량이라고 말하는 것도 소화의 한 과정으로 본다면) 권 수가 예전에 비해 월등히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매체에서 쏟아내는 양에 비하면 여전히 나는 개미걸음인 것이다.       

 

2.

언제가 읽을 책을 그 언젠가 되어도 읽지 않기에 요즘에 나는 사이판 친구에게 책을 보내주는 것 외에도 중고 서점에 내다 팔기까지 하고 있다. 물론 좀 아깝긴 하지만, 더 쌓아두는 것도 뭐하고, 앞서 말한 것처럼 나도 언제부턴가 뭔가를 쌓아두는 것을 짐으로 여기기 시작하면서 우선은 내가 왜 이런 책을 읽는다고 했지? 하는

책부터 팔기로 했다. 지금까지 두 번 실행을 했는데, 비교적 집 가까운 곳에 강남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어 그곳에 갔다 팔았다. 팔아야 할 책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이것도 어느 날 박스 하나를 잡아 한꺼번에 파는 것이 나을 것도 같은데 당분간은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운동삼아 직접 나가 팔아 보기로 한다. 

내가 들린 중고서점은 내가 알기론 같은 이름의 중고서점 중 가장 초창기에 문을 연 곳인 줄 알고 있는데 이제야 들려 볼 생각을 한 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게으른가 보다. 꼭 팔 목적이 아니어도 오다가다 한번씩 들려 볼 수도 있는데 그것을 하지 못했다. 이 또한 핑계는 여러 가지다. 꼭 중고서점을 들리지 않더라도 읽을 거리는 넘쳐나고, 예전엔 서점에서 한 시간 정도는 서성이며 책 구경을 해도 끄덕없었지만, 지금은 30분 서 있는 것도 힘들 때가 있다. 물론 운동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원인도 있겠지만, 노화에 따른 것도 일부 인정은 해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고서점을 들려야한다면 이유는 한 가지일 것이다. 저렴한 가격. 하지만 이 '저렴하다'는 것도 책을 처음 팔아 본 나로선 엄청난 상대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선, 들어서는 순간 참 세련되고, 모던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름도 '중고서점'이 아닌가? 요즘에 화장실을 변소라고 부르면 눈총을 받듯, 이런 곳에서 '헌책방'이라고 하면 큰 일 날 것도 같다. 정말 점잖게 '중고서점'이라고 해야만 할 것 같다. '헌책방'은 확실히 아날로그적 용어인 것 같다. 지금도 그런 서점이 어딘가 남아 있을 것 같긴한데, 먼지 켜켜이 쌓인 책더미속에서 손님이 찾는 책을 찾아주는 주인의 목장갑 낀 손길. 조금은 바래고, 훝어보면 책의 원주인이 거 놓았을 법한 밑줄들 또는 메모의 흔적. 이런 것이 '헌책'의 의미에 더 가까워 보이는데, 어제 책 네 권의 책을 들고 두 번째로 간 중고서점에선 시쳇말로 쪽팔리는 실수를 연출하고 말았다. 네 권 중 한 권이 증정본이었던 것이다. 책을 파는 것인만큼 흠없고 깨끗한 책으로 선별해서 가져간다고 생각했는데, 그곳 직원의 예리한 눈에 딱걸리고 말았다. "증정본은 안 되시거든요."

작년인가, 재작년에 누구라고 하면 알만한 경제학자가 쓴 베스트셀러 책이었다. 이 책이 언제 어떻게 내 손에 들어 왔는지 기억에 없다. 아무리 베스트셀러여도 경제학에 관해선 아는 바도 없고, 관심도 없으니 이런 책이야 말로 그 언제가 되어도 읽지 않을 책이니 어떤 식으로든 진작에 해결했어야 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증정본'을 우격다짐으로 팔려고 가져왔겠는가? 그건 정말 실수였다. 좀 더 꼼꼼히 살펴보지 않은 나의 실수. 하긴 내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하지만 묻고 싶었다. 아날로그가 종말을 고하고, 디지털 시대에 헌책은 가능한가를. 내가 정말로 먼지 켜켜이 쌓인 헌책방에 그 증정본을 가져갔더라면 과연 그 주인은 받아줬을까? 모르긴 해도 받아주지 않았을까? 아주 싼 헐값에 받아줬을지 모를 일이다(물론 그건 그 중고서점도 마찬가지였을지 모르지. 아니면 말고). 그러나 난 설혹 그렇다해도 팔지 않았을 것이다. 몇 푼을 받겠다고 그 책을 팔겠는가? 그냥 가지고 있다가 또 어느 때가 되면 사이판의 내 친구에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과연 아날로그 헌책방과 디지털 시대의 중고서점의 차이는 뭘까를. 

마침 그 서점엔 고맙게도 고객을 위해 앉을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입구 가까이 몇몇의 직원들의 하나 같은 인사 소리를 듣는다. "ㅇㅇㅇ번 고객님,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알라딘 회원이십니까?" "안녕히 가십시오." 등등의 소리를. 친절해서 좋긴 하지만 뭔가 기계적이고, 저런 소리도 하루종일 해야하는 입장에선 얼마나 피곤할까를 생각해 본다.

아날로그 시대의 서점은 그렇지 않았다. 손님이 오거나 말거나, 계산해서 나갈 때까지 주인과 손님 간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무뚝뚝하게 돈만 계산하고 나가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또 오면 그때야 비로소 서로의 경계를 풀기도 한다. 내가 학창시절 어느 날 단골 서점의 주인 아저씨는 한쪽에서 낮술을 하는 것이 멋쩍었는지 책을 사러 온 나에게 "어이, 한 잔 하지."라며 농담처럼 권하기도 했다. 나는 그때 아버지로부터 주도를 배우고 있는터라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양을 했다. 지금 같으면 감히 꿈도 꾸지 못했을 광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의 인간다움이 느껴지기도 하지 않는가?    

 

3.

앞에서도 저렴한 가격의 상대성을 말했는데, 그렇게 깨끗한 놈으로 팔떨리에 책을 들고 와도 세 권을 팔아도 만원을 채 받을 수가 없다. 요즘 책 한 권에 만원이 넘지 않는 책이 얼마나 될까? 아무리 인터넷에서 사도 세 권의 책 값은 2만원을 훌쩍 넘을 것이다. 그것을 만원도 못 받고 팔아버렸으니 책들의 아우성을 듣는 것만 같다. 관심을 못 받아도 좋으니 그저 주인님 곁에만 있게만 해 달라고. 하지만 원주인으로부터 관심을 못 받느니 차라리 싼값이라도 새 주인을 찾아가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이렇게 유래없이 책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빛도 제대로 받아 보지 못하고 휴지조각처럼 버려지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

중고책을 팔 때는 헐값이란 느낌이지만, 살 때는 또 이처럼 기분 좋은 일이 없다. 특히 안 사고는 못 베기는 책을 발견했을 때는 말이다. 얼마 전, 처음으로 그곳을 들렸을 때 정말 팔기만 하고 사진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서점이라는 곳을 들어왔으니 무슨 책이 있나 구경은 해야할 것 같았다. 내가 안 읽는 책은 남도 안 읽는 걸까? 같은 책이 몇 권씩 진열된 것도 꽤 있었다. 그중에서 유난히 나의 발을 잡아 끄는 책이 있었다. 바로 강원용 목사가 쓴 <역사의 언덕에서>다. 

 

오래 전, 그분이 <빈들에서>란 책을 쓴 줄은 알았는데 이 책은 그 책을 다시 손 본 거라고 한다.

가끔 그런 책이 있다. 도저히 못 지나가겠는 책. 안 사려고 다른 곳을 코너를 빙빙 돌다 결국 어느 틈엔가 그곳을 서성이게 만들고 결국은 사게 만드는 책. 그런 책은 독자가 그 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이 독자를 선택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 읽고 있는 책, 앞으로 읽기를 기다리고 있는 책이 내 책상위에 그득한데 이 책을 사면 언제 또 읽게 될지 모른다. 여타의 많은 책처럼 결국 가지고 있다가 사이판 행 비행기를 타던가, 아니면 다시 중고서점에 파양되지 않을까? 처음에 나는 이 책이 두 권으로 되어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총 다섯 권이고, 그나마 이 책은 알라딘에서는 품절도서로 나온다. 어쨌든 나는 아주 조금씩 읽고 있다.

 

강원용 목사는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 1대 신앙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현대사를 관통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분의 회고록을 읽는다는 건 확실히 남다르긴 하다. 회고록이나 평전 또는 자서전을 읽는 것이야 말로 공인된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일은 아닐까?

나도 언젠가 나만의 자서전 또는 회고록을 써 볼 생각이 있는데,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지만, 이런 분의 회고록을 읽으면 나는 얼마나 하찮고 무모한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다. 특히 글쓰기가 얼마간은 치유의 효과도 있겠지만, 잠자고 있는 기억을 끄집어 내어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도 있으니 이 책을 쓰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특히, 풍수나 명리를 따라 살았던 목사님의 아버지가 장차 이 나라에 전쟁이 있을 것을 예감하고(한국전쟁) 이남으로 가려고 하는 것을 자신의 신앙을 내세워 그런 일은 없을 거라며 북에 남도록 설득하고 자신만 남한으로 내려왔던 부분을 읽고 있노라면 나도 가슴 저려온다. 오죽 마음이 아팠을까. 오죽 자신을 원망했을까? 하지만 세상엔 그런 일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사람은 한치 않을 모르고 사는 존재인가 보다.

그런데 이 책을 살 때, 이런 책은 누가 팔았을까를 생각해 본다. 나라면 팔지 않고 가지고 있었을 것 같다. 더구나 세월 탓인지 약간 바라기는 했지만 밑줄도 없고 비교적 상태가 좋았다. 물론 덕분에 나 같은 사람은 횡재한 느낌이었지만. 중고서점은 바로 이런 맛에 가는 것일게다. 그나저나 강원용 목사의 저 책의 나머지를 구입해야 할까? 고민된다. 하나가 좋으면 하나가 문제니 인생이란 게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4.

아, 잊은 게 있는데 첫 번째로 들렀을 때 나는 회원등급 플래티넘을 회복한 것을 알았다.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중고서점 거래 한 번했다고 플래티넘 회원도 되고 꽤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제 또 중고서점에 들렀다. 어제는 그냥 팔기만 하고 책은 사지는 않았다. 물론 두어 권 정도가 나의 발목을 잡았지만 나는 애써 그것들을 피해 나왔고, 그래 잘 했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첫날 거기 직원이 물어 봤었다. 현금으로 받겠느냐, 아니면 마일리지로 받겠느냐고. 나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현금으로 받겠다고 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현금을 마일리지로 너놓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역시 현금으로 받았던 것이 잘했다 싶다.

어제는 거길 나오면서 몇년 전 아는 사람에게 신세를 지고 갚지 않은 일이 생각이났다. 물론 그쪽은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한동안 잊고지내기도 했는데, 아무래신경이 쓰인다. 책이라도 팔아 신세 갚는 일에 보태야할 것 같다. 옛날엔 책 팔아 학비에 보태쓰곤 했는데, 책을 판다고 얼마나 보탬이 되겠느냐만 그래도 내가 신세진 일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둘 생각이다. 그러다 생각지도 않게 신세를 갚게되면 붕어빵 사 먹지 뭐.

 

그렇게 털어내도 별로 비워냈다는 느낌은 안 든다. 하긴 이제 시작인데 비워내면 얼마나 비워냈겠는가? 별로 표도 나질 않는다. 평생 100권의 책만 지니고 살았다는 수필가 피천득 선생이나, 최근 안 일이지만 김영하 작가도 생각하는 것 보다 적은 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도 최종 목표는 정말 가지고 있어야할 책 외엔 갖지 않는 것이다. 갖고 있어야겠다고 하던 책도 세월이 흐르면 별로란 생각이 드는 책도 있다. 그렇게 속아내서 내가 죽을 때까지 남아 있는 책은 몇 권이고, 어떤 책이 될까? 집에 돌아오자 난 또 생각해 본다. 다음엔 어떤 책을 내다 팔까? 이제 나에게 책은 그런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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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1-18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으로 들어온 책을
차근차근 아끼고 사랑하면
그 책이 누구 손으로 돌아가든
아름답게 읽힐 수 있으리라 느껴요.

언제나 즐거운 눈길로
책과 사람과 삶 마주하셔요~

stella.K 2013-11-18 15:49   좋아요 0 | URL
책도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애착이 가니까 그렇겠죠.
그래서 제대로 읽어 주지도 못하고 입양 기관에
맞기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 미안하죠.
그래도 나 보다 꼭 읽어 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한테 가는 게 맞다고 봐요.
제가 강용원 목사님의 책을 입양해 온 것처럼.^^

페크pek0501 2013-11-21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책을 팔지 못할 것 같아요. 아까워서요.
읽지 않은 책들이 많고 어쩌면 끝까지 읽지 못할 책이 있더라도 언젠가는 읽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하나도 없애지 않을 거예요.
이 책도 좋고 저 책도 좋고... 하다 보니까 한꺼번에 병행해서 서너 권을 읽게 되어요.
아직도 읽고 싶으나 읽지 못한 책들이 제 손을 기다리고 있어요.
시간이 많아지면 하나씩 읽어 나가서 리뷰 한 편씩 써서 올리는 걸로 마무리하고 싶어요.
언젠가는 지금보다 시간이 많아지는 날이 오겠지요?

그 대신 책이 많아지는 게 부담스러워 앞으론 아주 신중하게 골라서 책을 구입할 생각입니다. ^^



stella.K 2013-11-21 12:43   좋아요 0 | URL
언니는 욕심쟁이어요!ㅎㅎ
저도 언니 같은 생각이었는데 언젠가는 하다가 안 읽고 방치한 책이
10년 가까이 된 책도 읽더라구요.
이런 책은 아끼고 사랑해 줄 새 주인을 만나는 것이 낫겠다 싶더군요.
요즘엔 글을 가볍게 쓰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정말 책 고르는데 신중해져요.
저는 고전을 많이 못 읽었는데 그런 책은 정말 한번 사면
쉽게 못 처분할테니 그렇게 되면 저도 예전처럼 책 함부로 못 파는
독자가 될 거예요.ㅋ

비로그인 2014-05-21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좋은 글이 많네요. 책에 관한 이야기, 의료 이야기 등등. 책. 약간의 지적 허영이 있어야 모을 수 있는 물건이라는 글에 공감합니다...

stella.K 2014-05-21 12:29   좋아요 0 | URL
와우, 저의 오래된 글에 댓글을 달아 주시다니...
제가 그런 말을 썼네요. ㅎㅎ
다시 생각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푸른기침 2014-06-27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공감합니다. ^^ 뜬금없지만 제 꿈은 모든 책을 버리고 딱 한권만 남기는 겁니다.
저도 모르지만 그 책이 무엇이 될지는 참 궁금합니다.

stella.K 2014-06-27 12:14   좋아요 0 | URL
와우, 이런 오래된 글을 보시다닛!
저는 뭐 성경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아서라기 보다(성경은 항상 어렵더군요)
버리면 왠지 불경스러워지는 것 같아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