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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1
최규석 지음 / 창비 / 2015년 5월
평점 :
'송곳'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된다고 했을때
또 신랑이 이 웹툰을 재밌게 봤다고 했을때도
그다지 책을 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미생'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냉큼 '미생'을 구입하지
않았던거 처럼. 내가 책을 구입하는 목적에는 꼭
읽어야만 하는 '호기심'이 있어야 하는데
그 '호기심'이 없었다. 그런데 드라마가 회를 거듭할수록
마음을 콕콕 찌르며 파고드는 대사들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확인해보고 싶어 세 권을 구입했다.
어제 잠들기 전 펼쳐든 1권을 단숨에 읽으며 생각했다.
역시 드라마와 함께 보니, 드라마로 느낄 수 없었던 이수인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고, 또 드라마에서 나오지 않던
장면들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영상물과 원작을 함께 봐야 하나보다.
이웃이신 오로라님 말씀처럼, 한 번 읽으면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으니 두 번은 봐야 제맛이 느껴진다.
이수인은 원칙대로 사는 인물이며, 부당한 처우를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인물이다. 장교 시절에도 군에 부당한 처사를 참을 수 없어
도망치듯 제대를 하고 입사하게된 푸르미라는 유통업체에서
과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다. 매너있는 프랑스인 상사가
그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렇게 믿었던
프랑스 상사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해고를 명령한다.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들을 쫒아내길 원한다.
하지만 그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투쟁을 시작한다.
고구신은 부진노동상담소를 운영하며 체불, 산재,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을 대변해주는 인물이다. 악한 사람에겐 강해지지만,
약한 사람에겐 한 없이 약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 하지만 내면에
아픔과 고통이 많은 사람이라 더 애잔한 모습이 보인다.
이 두 사람이 만났다. 원칙을 수호하는 사람 이수인과
약한 노동자를 대변해주는 고구신의 조화가 앞으로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너무 기대가 되는 작품이었다.
1권에서 뽑은 명대사들.
' 내가 나를 경멸하지 않고도 세상과 어울릴 수 있는 때가 오리라는 희망,
조금 더러운 어른이 된다 하더라도 그게 내탓은 아니고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위안'p81 - 이수인
' 그는 그때까지 내가 만나본 가장 어른다운 어른이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는 가장 교활한 형태의
체제 수호자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몇마다 말로 내 쓰러진 자긍심을 일으켜 세우고
학교에 대한 분노를 달래고
부당한 처벌까지 수긍하게 만들었지만
학교는 변한 것도 잃은 것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꼰대가 될 소중한 기회를 놓쳤다'p87 - 이수인
'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발이 절벽일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같은 인간이.p192~194 - 고구신
' 여기까지는 왔다고 우리가.
1800년대 유럽에서 노동자 두명이 술집에 모이는 것도 불법이던 시절.
1900년대 초 미국에서 일곱살짜리한테 하루 열네시간씩 일을 시켜도
계약의 자유이던 시절.
그런 시절부터 피 흘려가며 만든 법이야. 노동법이.
누가?
당신같은 사람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못하고
주면 주는 대로 못 받는
인간들.
세상의 걸림돌 같은 인간들.'p202 - 고구신
'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p205 - 고구신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몸만 커다랗게 자란 어른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우물에 갇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까막눈이 된 어른.
시청률이 전부는 아니지만, 드라마 시청률이 저조한건 좀 속상하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함께 시청하며 생각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를 좌지우지 하려고만 하지말고,
진짜 학생들이 배워야하는 '사회적인 관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교과서 편찬에 열을 올린다면 누가. 그 누가 손가락질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