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흠흠흠...
너무 오랜만에 들어와서 글을 쓰려고 하니 제 서재가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지요.
바깥의 매서운 추위보다 더 싸늘하게 느껴지는 제 서재에 온기를 넣어주신 많은 분들에 댓글이 있더군요. 그 댓글을 읽으며 뭉클뭉클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시일이 너무 오래되어 답글을 달기조차 쑥스러운 이 시점에 모든 분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간 저는 특별할거 없는 일상을 보냈습니다.
딱히 뭐라 말씀드릴 수 없지만 그냥 작게 공부를 했고 시험을 치뤘습니다.
일본어 능력시험이라는 jlpt n3급을 치뤘고요. 딱 3개월 시험공부를 그것도 옆 사람들이 옆구리 쿡쿡 찔러서 보자고하는 통에 보게 된 거라서 이번 시험은 보기좋게 떨어지리라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내년 7월에 다시 한번 시험을 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지금도 열심히 조금씩 공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부하는 동안 제가 얼마나 외골수 인간인지를 새삼 느꼈는데요
공부를 하는 중에는 책이 안읽히고, 책을 읽으면 공부를 할 수 없는, 저는 멀티형 인간과는 정말 거리가 머나먼 인간임을 느끼고 촉박한 시간에 맞춰 책을 조금 멀리하는 시간을 갖다보니 자연스레 서재에 접속하는 시간도 줄어들게 되었어요. 물론 그간에 남모를 속앓이하는 과정도 있어서 방황하는 시간도 있었기에 책 읽기가 힘들었던 부분도 있었고요.
무튼 책을 읽지 않았던 시간에 티비도 보고 영화도 보고 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책이 자꾸 생각나고 그립고.... 그렇게 너무 갈증을 느껴 읽게 된 책이 <언니들의 여행법>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취향 개성 일 어느 것 하나 같은 것 없는 4명의 각기 다른 언니들이 만나 일본어를 배우고 벚꽃이 흐트러지는 계절에 벚꽃을 보러 훌쩍 일본으로 건너가 일상과 여행이라는 주제로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읽는 동안 마음을 설레이게 했습니다. 특히나 한창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던터라

후아후아 원서를 읽고 공부했다던 대목을 읽으며 심한 부러움을 느꼈는데요. 저도 하루 빨리 원서를 읽기 위해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독한 각오는 저멀리 달나라에 던져놓고선 알라딘 서점에 접속해 '후아후아 '원서가 중고로 나와있는 것을 보고 냉큼 구매부터 하고 보는, 저는 정말 대책없는 성격임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답니다. 아직 하루키를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는데 말이죠. 일본어 공부가 언어라는 새로운 세계를 깨우는 대신 제 내면에 깊이 잠들었던 책 욕심만 무지 일깨우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고민도 슬쩍 하는 시간이었답니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가 제 상황과 너무 비슷했고 떠나고 싶은 마음도 비슷했기에 열렬히 읽었던 이 책의 중간에 이런 글이 있더군요.

" 인간이니까, 라며 안도하거나 위로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누군가를 아프게 하거나 내가 아팠을때, 기대나 바람대로 되지 않아서 후회가될 때, 삶이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 나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낄 때.... 때론 배가 고플때.. 그래, 우린 인간이니까"(p160)
올 한해의 일을 되돌아보면 부끄럽고 선뜻 꺼내놓기 조차 망설여지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많은 일들에 깊은 한숨만 몰아쉬어지는 그런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럴때 가장 힘든점은 모든 일들에 잘못을 제게 있다 생각하며 자책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좀 더 참았어야했는데.. 내가 정말 잘못된 걸까 하는 많은 생각들에 마음 아프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저 문장을 만나면서 뭔가 탁 숨이 트이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나도 인간이니까.. 실수할 수 있지. 나도 인간이니까 실패할 수 있지.. 나도 인간이니까.. 라는 위로.
아 그래서 이 책이 유독 눈에 띄었나보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에도 인연이 있다는 말은 이럴때 사용하는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무튼 많은 위로를 받으며 4명의 언니들의 일본 탐방기는 일상의 이야기들과 어울어져 즐거웠지만 지역 특산품인 맥주와 음식에 관한 이야기에선 정말 힘겹기도 했습니다. 저도 언젠가 여행을 간다면 언니들처럼 '따로 또 같이' 여행법을 실천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말미에 오키나와에 관한 글이 실리면서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의 저자 우다 도모코상을 만났던 이야기가 짤막하게 실렸는걸 읽게 되었습니다. 마침 집에 있던 터라 냉큼 집어서 읽기 시작했는데요. 우다 도모코상도 책의 서문에 언니들이 다녀갔던 일화를 담아놔서 무척 신기하고 두근거려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서로 언어와 나라는 달라도 짧게나마 책을 통해 만나게 되는 신기한 일상들에 괜한 설레임도 갖게 되었습니다.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의 저자 우다 도모코상에게 제일 먼저 놀란 건 나이입니다.
저와 동갑이었습니다. 저자의 약력을 읽으며 조금 화가났습니다. 물론 저에게 말입니다. 같은 나이에 자신의 삶을 당당하고 아름답게 가꾸는데.... 나는... 이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무렵 이렇게 말했습니다.. 괜찮아.. 인간이니까... (^^)
서점에서 일을 하던 도모코상은 어느 날 오키나와로 2개월간의 발령을 받고 오키나와의 서점에서 근무하던 중 오키나와의 출판 시장에 큰 매력을 느껴 그곳에 정착하여 일본에서 제일 작은 서점 울라라를 열게 되었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담고 있습니다. 서점하고는 전혀 어울릴거 같지 않은 시장에 자리잡고서 지나가는 손님들과 상인들의 일상, 오키나와만의 자부심어린 주민들의 책 사랑이야기, 출판시장의 흐름들을 일기처럼 소소하고 세세하게 들을 수 있어 무척 재밌게 읽었는데요. 기회가 된다면 꼭 이 책을 들고 오키나와에 찾아가 도모코상에게 꼭 싸인을 부탁 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회화 연습도 하자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언어 공부를 하며 많은 힘을 준 책을 꼽으라고 한다면 줌파 라히리의 책을 빼놓을 수 없을거 같습니다. 자신의 언어를 버리고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읽으며,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기 위해 도약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의 대단한 근성과 언어를 사랑하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느끼기도 했답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한 나라의 문화를, 정체성을 만나는 계기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단어를 공부하다 보면 왜 이렇게 세세히 쪼개서 말을 할까. 우리나라 처럼 하나로 표현해도 될텐데 라고 툴툴거리던 마음이 ' 아 이 나라의 문화는 이렇게 세밀하고 촘촘하구나'하는 생각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번역서를 읽는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는데요. 그 단어를 사용하기 위해서 번역가님들이 얼마나 고심에 고심을 하며 숱한 밤을 보내셨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해서 번역서를 읽을 적에 글을 어떻게 풀어놓으셨는지 즐기면서 읽는 것도 책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책에 대한 갈증이 서서히 풀리다보니 제 머리 속에서 수없이 떠돌아 다니던 말들이 서재에 옮겨놓고 싶은 갈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서재에 돌아와 글을 쓰는 이시간에 느낄 수 있던건 책에 관해 이렇게 열렬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곳은 이곳, 이 장소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휴~ 모처럼 집에 돌아온거 같아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낸거 같아요. 오랜만이라 절제가 안되 주절주절 참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 하루만 더 지나면 2016년의 해를 보내고 2017년의 새로운 해를 맞이 할텐데요. 서재의 이웃님들 모두 새해에 즐겁고 행복한 일들 가득하시길. 늘 건강이 함께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모두 감기 조심하시고, 저를 잊지 않고 응원해주셨던 마음 따뜻하셨던 님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담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