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신화 - 스토리텔링 세계신화 아시아클래식 7
김남일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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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신화라면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우리 인간 세계와는 좀 먼 세계의 이야기로 생각했는데,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다시금 들었던 생각은 신화란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참 신기하다. 아스라한 기억 저편에 유년의 기억이 떠오른다. 새벽녘 어스름에 장독대 앞에서 두 손을 모아 무언가 빌고 계시던 엄마의 모습.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이 책을 읽으며 되살아나는 것도 경이로움이다. 그렇게 신화는 우리의 삶에 면면히 이어져 왔고 우리의 마음속 깊이 각인되어 왔던 것이다.


 과학기술 문명의 발달로 첨단을 달리고, 우주선을 발사하는 이 시대에 신화가 통하는 세상인가 의아하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보면 신화의 그림자는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상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의 편리한 발이 되어주는 생활필수품 자동차의 이름에 신의 이름이 들어있고, 가장 많이 팔리는 자양강장제도 바카스신의 이름이 붙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인도가 최근 개발했다고 발표한 대륙간 탄도미사일 아그니-5 조차도 막강한 위력을 지닌 불의 신 아그니에서 비롯되었단다. 마치 소유하는 물건에도 신의 능력을 빌어 강하고 완벽하게 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신화란 우리 인간세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다루는 신화는 그 수도 다양하고 폭이 넓다. 동서양의 건국신화, 영웅신화 등을 아우르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중에는 익히 알고 있던 것도 있지만, 처음 알게 되는 이야기도 있어 신화의 세계가 이렇게 이야기가 풍부하구나, 감탄하게 된다.


 제 2신화 이렇게 읽어도 된다에서 중남미 3대 문명 중 하나인 마야 문명을 대표하는 신화 역사서 포폴 부에 전해지는 신화를 소개한다. 여기서 오늘날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뿌리를 신화에서 연상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놀라웠다. 마야 문명 사회에서 공놀이 할 때의 소음을 농부들이 농지를 정리할 때 내는 소란스러움으로 해석하여 그 소음이 지하세계의 신들을 분노케 만들었다는 논리다. 이렇듯 신화의 세계를 알면 현실의 생활에서도 이웃과 다툴 일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어떤 세계를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을 가질 수 있고, 그만큼 포용력 있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신화는 과학적인 잣대로 비교할 수 없다. 깃털이 몸속으로 들어가 임신을 하게 되거나, 유화가 햇빛을 받아 주몽을 낳는 일, 알란 고아가 달빛의 정기를 받아 임신하는 몽골 신화가 어떻게 과학적인 논리로 설명 할 수 있겠는가. 신화란, 사실이냐 아니냐의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다.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죽는다는 것은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거기에 두려워할 만한 것은 없다.”(p25)고 했다. ‘죽음이야말로 신화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근거이며 원천임에도 간단히 무시하고 마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신화는 상징과 은유의 언어이기 때문에 과학의 사실적 언어로는 읽을 수 없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느꼈던 부분은 신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온갖 부정적인 모습, 이를테면 질투, 근친상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살인 등 도덕성의 부재에 대한 점이다. 신들은 인간 위에 군림하면서 이렇게 행동해도 되는 걸까.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하는 건 아닐까. 신화를 통해서 대립과 갈등이 무수히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인간세상을 들여다보며 참조 할 수 있다. 누구나 행복하고 기쁜 일만 있는 태평성대 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온갖 사술(邪術)과 무질서의 범람은 피할 수 없는 인간세상의 조건임을 알 수 있다. 신화 또한 인간의 상상 속에서 나온 이야기니 어쩌면 인간세상과 다를 바 없는 우리의 삶과 닮은꼴 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신들이 하던 노동을 대신 시키기 위해서 인간을 탄생시켰다는 메소포타미아 신화는 차라리 솔직하다.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신을 만들었지만, 인간이 늘어나자 덩달아 불평불만도 늘어났을 것이다. 인간들이 불평하는 소리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게 되자, 인간들을 없애버리려고 홍수를 일으킨다. 가장 유명한 것이 <노아의 방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신화나 인간세상의 이야기나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인간들끼리 싸움을 벌이고 여러 가지 이념을 내세워 테러를 일으키고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는 세상이다. 신이라고 해서 따뜻하지도 않다. 오히려 불같은 성격에 한 치의 너그러움도 없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내세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모두 제거한다.


 흔히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일선상에 있다고 한다. 신화에서도 그러한 징후를 찾을 수 있다. 사체화생(死體化生)신화 라고 할 수 있는 하이누웰레 신화가 그것이다. 하이누웰레가 죽은 후 시신을 묻은 곳에서 구근이 자란다. 죽음은 또 하나의 생명을 창조한 셈이다. 인간에게 유용한 작물이 말이다. 북미 인디언들에게 가장 귀한 두 가지 작물인 옥수수와 담배의 기원에 관한 신화도 그렇다. 그렇게 죽음 뒤에 소생하는 생명, 생물의 창조 이야기가 결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왠지 무시할 수 없는 그 무엇은 인류에게 심어진 신들에의 경배가 면면히 이어져 온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사체화생(死體化生) 신화는 농경신화 뿐만 아니라, 세계의 무수한 창세신화 중에도 그런 모티프를 찾을 수 있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신화가 지닌 스토리텔링은 이제 국가적인 문화유산으로도 내세울만한 무기가 된 것 같다. 서사시에 관한 한 풍부한 전승을 보이지 못했던 중국이 오늘날은 사시와 장편서사시가 풍부한 나라가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중국 내 많은 소수민족을 중국의 이름으로 포함했기 때문이다. 수 천 년 간 주변의 오랑캐로 업신여기던 그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취한 행동이다. 장족(티베트족)<게세르>, 키르기스족의 <마나스>, <장가르>를 중국 민족의 3대 서사시로 간주하고 앞의 두 가지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고 하니 그 약삭빠름이 놀라울 따름이다. 또 악몽의 신화라 불리는 현대의 신화나치즘을 언급한다. ‘다른인간과 자연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와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한 합목적적 도구였다.


 신화는 도처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학작품, 영화, 음악 등 우리가 누리고 있는 각종 예술 작품에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다. 사라져가거나 잊혀져가는 신화적 유산인 문화재를 되살리는데 시인, 예술가, 철학자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특히 켈트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아일랜드 신화와 전설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쿠훌린에게 대단한 애착을 보였다. 다름 아닌, 영웅 쿠훌린을 통해 아일랜드 민중의 집단적 정체성을 환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인문학이 시대의 흐름을 타고 되살아나듯이 신화 또한 꽃처럼활짝 피어날 것이다. 과학 문명은 첨단에 첨단을 달리고 있는 시대이지만, 인류에게서 이야기를 빼앗아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저자의 해박하고 다양한 신화에 대한 지식에 다시 한번 놀라고, 상상의 즐거움은 덤이다. , 이건 말도 안 돼, 하면서도 몰입하는 자신을 본다. 신들은 멀리 있지 않다. 항상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풍성한 상상력의 세계로 안내하는 신화의 세계에서 삶의 지혜와 의미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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