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5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박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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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내가 작년인가 야구가 나오는 일드를 본 적이 있었다. 회사에 소속된 야구팀들이 시합을 벌이는 장면이 많이 나왔는데, 야구선수를 좋아하는 연인의 이야기가 어울려 더욱 흥미로웠다. 이참에 야구에 대해 공부해 볼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럴만한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여기서는 야구만이 아니라 별 관계없을 것 같은 생뚱한 다른 이야기도 나온다. 좀 능청스럽고 빤하다고 해야 할까. 소년이 들어서는 안 되는 좀 야한 이야기도 서슴없이 대화하는 장면이 있어 당황스럽기도 하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작품의 초반부는 그래서 더욱 지루한 느낌이다. 분명히 한글인데, 의미는 모르겠고 글자만 겨우 읽어내는 기분? 이다. 내가 우리의 작가 이상의 작품을 읽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계속 읽을 수밖에 없고. 좀 시간이 지나면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온통 야구 이야기다.


 배경은 1985, 만년 꼴찌 신세이던 일본의 한신 타이거스가 일본 시리즈에서 우승하는 이변이 생겼는데, 어이없게도 선수들이 줄줄이 그만두면서 야구가 세상에서 사라져버린다는 설정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광팬들에게는 실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겠지. 이렇게 야구가 없어진 세상에서 가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야구에 대한 일곱 가지 단편이 들어있다. 900편 쓰기, 포르노 100편 보기에 도전하는 초등학생, 카프카야말로 열렬한 백업 포수였다고 믿는 노인이 있고, 일본 야구 창세기 기담 등 오로지 야구에 대한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창세기 기담의 발 빠른 닭배고픈 늑대이야기는 지루할 만큼 길게 이어지면서도 재미있다. 시와 포르노가 야구와 무슨 관계가 있기에 그것에 열중하는 것일까, 의아하기만 하다. 모더니즘 소설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문제작이라는 평처럼 일반 소설과는 매우 다르다. 우리가 읽던 익숙한 문체의 언어가 아니다. 새로 언어를 구축했다고 할까. 읽어나가는 도중 당황스런 부분이 꽤 있다.


 야구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침대씬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러다 약간의 철학적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문장이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야구를 소재로 한 소위 갖추어진소설이 아닌, 마치 야구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쓴 글 같은 느낌이다. 마치 공부를 하다가 자꾸 딴 생각의 세계로 넘나드는 상상의 세계처럼. 위대한 작가와 철학가를 등장시키면서 거침없는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나에게 야구를 가르쳐주신 큰아버지가 곧잘 말씀하셨어요. ‘연결이 끊어지면 끝이야하고.

너는 아직 알 수 없겠지만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결이야.’(P96)

연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돌고 돌아가는 게임의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매끄러운 연결의 동작이야말로 경기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테크닉이 아닐까. 야구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야구 용어를 검색하여 뜻을 알아야 했다. 참으로 많은 규칙과 용어가 존재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그것들로 우리는 연결되고 사회의 시스템은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정신병원을 전전하던 소년의 큰아버지는 소년에게 야구를 가르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임수란다. 이걸 할 수 없으면 일류 야구 선수하고 할 수 없다는데. 이 세상에서 야구와 관계없는 건 하나도 없다고도 하고. 이것 또한 거꾸로 말하면 야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축소판이라고도 해석할 수도 있다. 야구선수가 되기 위해 힘든 단련을 한다. 어떤 날은 야구에 대한 ()를 두 시간 내에 900개를 짓기도 하고. 선수가 아니어도 우리는 힘든 단련을 하며 살아간다. 하루하루의 삶에서 꼭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많은 것을 참고 견딘다. 그것 또한 단련이다. 힘든 단련. 이쯤 되면 야구와 인생은 닮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일단은 야구광들의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긴 것으로 둥근 것을 친다는 게임. 하지만, 책의 제목처럼 절대로, 우아하고 감상적이지는 않다. 단지 그들의 열정적인 야구 사랑을 제목에 담아본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야구가 없어진 가상의 현실에서 야구에 관한 이야기를 책에서 찾아 모으는 사람, 야구를 배우기 위한 소년 등 여러 사람을 등장시켜 야구 이야기를 이어간다. 저자는 이 작품을 필립 로스의 <멋진 미국 야구>의 번역본을 읽고 이 작품의 모티프로 삼은 것 같다. 원제목은 위대한 미국 문학(The American Novel)'이었다는. 야구 규칙을 몰라도 재밌게 읽은 이 책의 팬들이 많은 모양이다. 하긴 우리가 읽는 세상의 많은 책들의 어떤 분야에 대해서 다 알고 읽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르기 때문에 읽고 배우는 것이 아닐까. 제목과 다른 내용의 이야기가 색다른 매력이 될 수도 있겠다. 야구 이야기 속에서 일본인들의 속마음도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면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황당한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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