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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픽 미스터리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이재익 옮김 / 달콤한책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독자를 넘어서 자신의 책을 출간하고 싶은 꿈이 있다. 작가지망생은 차고 넘치지만, 한 권의 책으로 내는 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래도 옛날에 비하면 자비출판의 방법도 있어서 출판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었지만, 순수하게 작품성을 인정받아 책으로 나오기까지는 미미하다고 하겠다. 이 작품은 책을 소재로 하여 벌어지는 미스터리다. 미스터리라고 해서 공포를 느끼는 이야기는 아니다. 미심쩍은 사건을 다른쪽 시선에서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추적하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도입은 미국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작품 <임신중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남자 주인공인 도서관 사서가 나오는데 그 도서관은 출판사들이 거절한 모든 책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그의 생각은 열혈 독자에 의해 ‘누구도 원하지 않은 책들의 도서관’은 실현된 모양이다. 정말일까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것을 모티브로 하였을까.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 크로종 시립도서관이 생긴다. 재미있는 구성으로 몰입하며 읽을 수 있다. 대사도 얼마나 맛깔 나는지 읽다가 쿡쿡 웃게 한다. 출판되지 못한, 그러니까 거절당한 원고를 모두 받아준다는 기상천외한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이 도서관의 관장인 구르벡이 그 프로젝트의 기획자다. 이 아이디어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방불케 하는 여정이 이어진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나면서 천 권에 달하는 원고가 쌓인다. 구르벡은 원고에 파묻혀 지내가다가 중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아내가 있었는데, 단 몇 주 만에 집을 나가고. 아무도 왜 나갔는지 모르며, 소문만 무성한 가운데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구르벡이 이 미스터리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걸까. 궁금증이 폭발하며 다음 장을 넘기느라 바쁘다.
어릴 때부터 꿈꾸던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는 델핀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매력적인 아가씨다. 작가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다. 그런 그녀는 젊은 작가 프레드 코스카의 데뷔 소설을 발견하여 강렬한 촉을 느끼면서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이들의 관계는 급속도로 진전하여 프랑스 서쪽의 땅끝 마을 델핀의 고향으로 휴가를 보내러 갔다가, 크로종 도서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뼛속까지 편집자의 임무에 충실한 델핀이 그렇게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흘려 들을 리가 없다. 단짝이 된 프레드와 함께 탐방한 도서관에서 걸작을 발견했다며, 흥분한다. 책 제목은 <사랑의 마지막 순간들>이며, 글쓴이는 앙리 픽. 여기서 가장 백미는 사랑의 마지막 순간을 푸시킨의 임종 순간과 교차시켜 묘사했다는 것.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이 언급된다. 이 작품을 보니 발레리나 강수진이 떠오른다. 강수진의 은퇴작인 <오네긴>은 러시아의 문호 푸시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에 차이코프스키의 서정적인 음악을 더한 <오네긴>으로, 자유분방하고 오만한 오네긴과 순진한 시골 처녀 타티아나의 비극적인 사랑을 담은 작품이라고 한다. 이처럼 실명으로 언급되는 작가와 작품의 이야기도 지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앙리 픽은 평생을 피자 요리사로 살다가 2년 전 죽은 인물로 밝혀진다. 미망인 마들렌 할머니와 딸 조세핀을 만나 인터뷰하며 야단법석이다. 설마 진짜 앙리가 소설을 썼을까 의아해 하다가 달리 방법이 없으니 모두 믿는 분위기로 휩쓸린다. 언론, 방송의 홍보 효과를 얻은 이 사건은 엄청난 파급력으로 당사자들과 주변을 흥분시킨다. 고전문학을 읽다보면 주인공이 갑자기 생각지도 않던 친인척의 거대한 재산을 상속받는 상속자가 되는 꿈같은 횡재가 종종 들어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황상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고인(故人)이 소설을 남겼다니, 믿기 어렵지만 작품의 내용에서 자신들의 자취를 찾아낸다. 이건 내 이야기다 라며 짜 맞춘다. 약간의 억지가 엿보이는 장면이다. 이런 상황이면 집 나갔던 남편도 돌아온다. 바로 조세핀의 전남편 마르크. 아내를 배신하고 떠난 마르크의 속셈은 뻔하다.
한편, 믿기 어려운 이 사건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한때 악명 높은 문학평론가로 일했던 기자 출신 루슈가 등장한다. 여러 단서를 모으기 위해 조세핀에게, 또 조세핀의 가게로 찾아가는 등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열정적이다. 앙리의 친필 편지를 입수하는 순간 어느 정도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낸 듯하다. 이것은 어떤 반전으로 이어질까.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찡한 감동도 있다. 아버지 생전에는 그다지 친밀감도 느끼지 못했던 조세핀은 과거를 떠올린다. 아홉 살 때 받은 편지를 찾으면서 많은 음반을 뒤적이고 거기서 추억을 되새긴다. 부친 사후(死後)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소설을 쓴 아버지가 위대하게 느껴진다. 이렇듯 물질만능의 태도 또한 여실히 드러난다. 진실의 여부는 안중에 없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 평범한 사람들이 예상치 않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면 우쭐하면서도 남의 옷을 입은 듯 마음은 불편하다. 마들렌과 조세핀도 차츰 평정을 되찾으려 한다. 진실을 알아야겠다며. 구르벡의 뒤를 이어 도서관장이 된 마갈리 등 주변 인물들의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심경의 변화도 흥미롭다.
결국 초반에 잠깐 출현했다가 죽은 구르벡은 미스터리를 제공한 셈인가. 그것을 집요하게 파헤치려는 루슈. 루슈와 조세핀의 조합은 의외로 잘 어울린다. 애써 찾은 진실을 외면하고 적절한 선에서 현실과 타협하고 안주하려는 인간의 본성 역시 들어있다. 구르벡은 왜 자신의 이름으로 하지 않고 앙리의 이름을 빌렸을까. 단 몇 주를 함께 살았던 마리나를 사랑했지만, 붙잡지 못한 그 안타까운 마음을 책으로 남겼고,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하는 마음에서였을까.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안고 벌써 후반부에 다다르게 된다.
몇 개의 반전으로 이렇게 마무리되는 건가 싶었는데...
어, 이건 또 뭐지? 더 큰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인간의 이기심이 보인다. 책으로 성공하고 싶은 작가와 작품을 발굴해서 유명세를 타고 싶어 하는 편집자를 비롯한 출판계의 인물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더니, 트릭이 들어 있었다. 여우가 자기 꾀에 넘어간다고 하는 상황과 흡사하다. 영문도 모른 채 이들의 마케팅 전략에 평범한 마들렌 할머니와 딸 조세핀은 휘말렸던 것인가. 책 한 권을 베스트셀러로 만들기 위해 온 역량을 쏟는 출판사와 평론가 영업대리인들의 역할을 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잊을만하면 표절 시비에 휘말리는 사건이 나온다. 이것은 더 큰 사건이다. 실제로 이러한 이야기가 있을까, 의아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미스터리다. 단지 재미있게 읽고 약간의 교훈과 감동의 여운이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