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이야기 1 - 전쟁과 바다 일본인 이야기 1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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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어공부에 대한 깊은 관심 때문인지 일본문학이나 일본의 역사에 관한 책이 나오면 자연히 눈길이 간다.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풍부하다면 문학을 읽을 때도 훨씬 잘 와 닿기 때문이다. 풍부한 시각적인 화보 자료와 저자가 답사한 곳의 실물 사진이 실려 있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이해를 돕는다. 하지만 일본 역사에 대해 얕은 내 지식으로 400쪽이 넘는 상당한 분량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16~17세기의 일본 국내의 상황, 주변국들과의 전쟁의 역사, 섬나라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겪어야 했던 외세와의 관계 등 어느 정도 그 흐름을 파악할 수 있어서 유익했다

 

 ‘일본의 역사라고 되어 있지 않고 일본인 이야기라는 제목에 우선 시선이 갔다. 저자는 일본의 참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그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생각에 이 책 시리즈를 기획했다고 한다. 최근 악화된 한일관계를 생각해볼 때 일본인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적절한 책이 아닐까 싶다. 총 다섯 권으로 구성된 첫 권의 이야기는 16~17세기의 전환기를 다루는 <전쟁과 바다>이다. 여기서 저자는 세 가지 관점으로 이야기한다. 첫째, 인간 세상에서 때로는 법칙보다 우연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점, 둘째, 인간 개개인의 삶에서는 노력 이상으로 행운이 중요하다는 점, 셋째,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와 군사 분야가 인간 세계를 전진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들고 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읽어나가다가 중세의 영걸이라 하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위험한 상황에 놓일 때마다 위기가 행운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흥미를 안겨준다. 이와 더불어 일본 국내의 통일 전쟁의 과정, 유럽 국가들과의 교섭 및 이 과정에서 가톨릭의 역할과 영향력, 조선과 한반도의 문제까지 아울러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네덜란드 덴하흐(헤이그)에 있는 국립기록보관소에서 열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세계 De Wereld de VOC>라는 전시회에서 전투 없이 거래 없다 No business without battle>’는 캐치프레이즈를 마주하며 놀랐던 충격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서 다루는 시대적 상황을 이만큼 충실하게 대변할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 싶었다. 세계는 이렇게 당당하고 뻔뻔함을 원동력으로 움직이지 않았을까, 라는 것을 확신했다고 한다. 네덜란드만이 아니라 영국, 프랑스, 벨기에, 독일, 러시아 같은 국가들이 중세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상대로 벌인 일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역이든 전쟁이든 가리지 않았던 시대에 영국의 아편전쟁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유럽 열강의 각축전 속에서 일본이 식민지로 전략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흥미로웠다. 전국시대에서 통일된 나라를 열망했던 상황에 다이묘들은 수많은 전쟁 경험을 통해 유럽의 신무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원하고 있었다. 유럽 세력뿐만 아니라 백성을 지배하기 위해 강력한 군사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무기 조총과 가톨릭 세력을 받아들였으나 그로 인해 피지배 세력으로부터 위협을 느낀다. 유럽 세력의 침략을 미리 봉쇄하기 위해 일부러 기술을 퇴화시켰다는 점도 특이하게 다가왔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작심하고 공격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텐데, 식민지가 될 위기를 모면했다는 것은 행운의 힘이었다는 것이다.

 

 에도시대에 이러한 교카(狂歌)를 유행했다고 한다. ‘오다가 찧고 하시바(도요토미)가 반죽한 천하 떡, 앉아서 먹은 건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풍자적으로 부른 노래지만 일본 통일의 과정에서 패권을 잡으면서 결국 승자로 우뚝 선 도쿠가와 이에야스까지 이르게 된 역사의 과정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 재밌었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에 대해 예상외로 많은 부분을 서술하고 있었다. 보통 이 시기의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료와 연구 성과들에는 이 시기에 탄압받은 가톨릭 신자들을 너무 짧고 간단하게 다루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천민에서 양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신념을 위해 죽음을 택한 이들이 어떤 충격과 변화를 겪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물론 통일정권의 과정에서 중대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가톨릭 신부들의 보호자였던 무로마치 막부 제1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미요시 삼인방 및 마쓰나가 히사히데 등 중부 지역 영주들의 하극상에 의해 살해되는데, 이를 에이로쿠의 변이라고 한다. 그 두 달 후, 오기마치 덴노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가톨릭 신부를 추방하는 금교령을 내린다. 이런 상황에서 가톨릭 신부들은 오다 노부나가를 선택하는데. 한때 오다 노부나가에게 의지했던 가톨릭도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에 이르면 전국에 가톨릭 금지령이 내려진다.

  전통적인 불교국가임에도 사찰과 신사를 파괴하는 등 종교적 난맥상을 겪고도 나중에는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박해로 이어진다. 당시 일본인의 인구는 3천만 명 안팎으로 추정하는데 1613년에는 29만 명 정도의 최대치에 이르렀으며, 이는 지배자들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던 것이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잔인하고 참혹한 과정을 보면 지배자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히데요시는 가톨릭 절멸과 조선을 정복한다는 두 가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권력이 넘어간다. 임시로 일본을 관리하다가 히데요리가 자란 뒤에 권한을 넘겨주라는 히데요시의 유언을 뒤집고 자신에게 권한을 주었다는 권력 승계의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이에야스는 쇄국과 함께 무사 집단의 이익 보장을 위해 나라의 성장을 중단시키게 되고 유럽과의 격차는 더욱 더 벌어지게 된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치세 덕분에 넓어진 국제적 활동 무대가 오히려 좁아진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HK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16-20세기 동부 유라시아 지역의 전쟁사가 주 연구 분야로, 특히 임진왜란을 조선, , 일본 간 국제 전쟁으로 바라보는 작업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도달한 역사적 성과를 논하는데 있어 내재적 발전론식민지 근대화 이론이라는 이분법으로 한반도 역사를 바라보고, 민족주의자와 친일파를 나누는 흑백논리는 버려야 할 때라는 이야기가 인상에 남는다. 주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전국시대의 통일, 유럽과의 관계 설정, 조선 문제를 포인트로 다루었지만 동아시아, 유라시아의 시각으로 넓힌 점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져 모두 소화하기에는 힘이 부쳤다. 관심을 갖고 자주 들여다보는 정성을 들인다면 일본의 역사와 일본인을 이해하는 첩경이 될 책이라는 생각은 여전하다. 이 시리즈가 많이 읽혀 한일관계를 원만하게 풀어가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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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빠른 고전 읽기 - 1페이지로 보는 불멸의 베스트셀러 120 세상에서 가장 빠른 시리즈
보도사 편집부 지음, 김소영 옮김, 후쿠다 가즈야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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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읽기의 중요성을 알지만 시간적 여건상 많이 읽지 못하고 있어서 항상 아쉬운 마음이다. 그러던 차에 특이한 발상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고전 읽기는 우리의 귀에 친숙한 고전 명작 120편을 핵심 내용만을 추려내어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도록 정리한 책이다. 문학, 역사, 철학, 정치경제 및 과학계에서 이슈화된 작품과 불멸의 베스트셀러 성서까지 다루고 있다. 작품의 주요 내용과 메시지를 일러스트로 보여준다. 참 획기적인 책이다. 한 작품 당 1~2페이지로 요약하고 있어, 고전을 읽고 싶지만 짬을 내기 힘든 독자들에게 무척 유용할 것 같다. 고전 작품을 읽기 전에도 좋지만 읽고 나서 읽어도 정리 차원으로 활용하여도 무방할 것 같다.

 

*위대한 개츠비 다시 읽기*

 

 오래 전 위대한 개츠비를 띄엄띄엄 오랫동안에 걸쳐 읽다가 별로 흥미를 못 느꼈던 적이 있다. 이 작품이 출간 당시 좋은 평을 받았지만 판매가 저조하였고, 오히려 피츠제럴드 사후에 재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미국문학의 걸작이며 무라카미 하루키가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손꼽힌다니 기회가 되면 꼭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 전에는 도서관 대출로 읽었는데 현재는 소장하고 있다.

 

*나중에 꼭 읽어보고 싶은 작품*

 이십 대 청춘 시절에 이 책 제목에 왠지 여운이 느껴져서 이 책을 구입했었다.

훨씬 나중에 알았는데 의식흐름 기법으로 쓰인 작품이라나.  잘 읽히지 않아서 그만 덮은 적이 있다. 아직까지도 읽지 못하고 있는 책. 언젠가 꼭 읽어보리라 다짐해 본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쓸데없이 잃어버린 시간이 얼마나 많을까...

 

 문학 분야의 작품은 읽은 책이 많았지만 그 외의 분야는 제목 정도만 알고 있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더 많은 책읽기를 갈망하지만, 세상의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다. 그만큼 시간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꼭 보고 싶은 고전이라면 정독해야겠지만 읽지 못한 작품은 핵심내용만 알고 있어도 어느 정도 지적 욕구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각자의 처한 상황에 맞게 적절한 취사선택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고전 작품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겠다. 물론 정독의 효과를 얻을 수는 없겠지만 추후 감동적인 어떤 명작과의 조우가 될지도 모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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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의 역사 - 인류 역사의 발자취를 찾다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성춘택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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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 초,강인욱의 고고학 여행을 읽고 나서 어렴풋하게만 알던 고고학의 세계에 깊은 관심이 생겼다. 30년 동안 발굴의 현장을 누빈 고고학자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단순히 무덤 속에서 황금을 꺼내는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이었다.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언젠가는 과거를 남기게 마련이다. 파괴해야만 고고학이 성립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쟁과 비슷하다는 점을 언급한 것도 흥미로운 아이러니였다.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만나게 된고고학의 역사가 시선을 끌지 않을 수 없었다.


고고학 분야 최고의 대가가 쓴 훌륭하고 매력 넘치는 읽을거리.’

산뜻하면서도 매력 있고 이해하기 쉬운 책

정통하고 활력이 넘친다.’ 등등...


 많은 학자들의 추천 평도 솔깃했는데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큼 재미있었다. 40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루하고 지루한 연대기적 구성이 아니라 중요한 사건과 흥미로운 발굴, 인물을 위주로 다루고 있다. ‘역사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딱딱함은 전혀 없다. 학창시절 무조건 외워야 했던 역사적 사건이 환해질 만큼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스토리텔링 이다. 고고학은 물론 생태학, 지질학, 문화인류학 등을 함께 만날 수 있는 통섭의 식탁이라고 할까. 변화무쌍한 시대의 변화처럼 고고학도 진화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땅을 파지 않고도 땅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니. 리모트센싱 기술로 파라오와 관련된 의학 지식을 해명하고 인골의 치아 에나멜 표본을 분석하여 사람들이 어디에서 태어나 성장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첨단 기술의 도움으로 과거 사람들을 살아있는 사람으로 생생하게 되돌려 놓는다.


고고학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고고학 이야기는 지주와 여행가의 호기심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고고학이 탄생하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인데 초기에는 오래된 유물에 관심을 갖고 수집하는 호고가(好古家)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저자 브라이언 페이건은 10대 시절, 비오는 날 부모님과 함께 잉글랜드 남부의 스톤헨지(Stonehenge)를 보고 나서 고고학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10대 어린 남자 아이가 큰 돌 사이를 걸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글을 읽어 나가다 보면 저자가 자신의 일에 얼마나 열정적인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고고학이 중요한 이유, 고고학과 인류의 삶은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설파한다. 고고학이 출발할 때만해도 지구상에서 인류의 역사가 6,000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믿었지만 발굴과 증명을 통해 300만 년 이전으로 돌려놓는다. 앞으로 또 어떤 발견이 기록을 경신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만큼 과거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는 존재가 또 있을까 싶다. 아마도 태고부터 유전자에 그런 것이 새겨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과거에 대한 호기심과 과거지향적인 관습적인 생각이 고고학을 발전시켰을 지도 모른다.


고고학이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고고학은 우리 인류를 찾게 해준다. 고고학은 아프리카에서 인류의 공통 조상을 밝히고, 인간의 서로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알려준다. 우리는 놀랍도록 다양한, 모든 곳의 사람들을 연구한다. 고고학은 인간이다.’(P21)


 저자는 이 책에서 고고학의 지향점은 사물이 아니라 인간을 향하고 있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한다. 그들이 남긴 유물과 유적도 가치가 있겠지만 궁극적인 것은 인간을 연구하고 그 들의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하며,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성찰할 수 있다고 하겠다.


고고학은 어떻게 세계적인 학문으로 발전하게 되었을까


 군사전략의 천재였던 나폴레옹이 고고학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집트를 재조직하는 일에 골몰하면서도 여러 분야의 학자들을 구성했는데 그 중 지도자인 드농은 고대 이집트를 학문 세계에 올려놓는다. 하지만 정복 전쟁에 실패하고 이국적인 이집트 미술과 건축에 열광하던 유럽인들의 경쟁에 밀려 그들의 진지한 조사결과는 부각되지 못한다. 이때만 해도 고고학이라는 학문은 태동되지도 않았고 너도나도 보물 사냥에 나서던 때였다. 한편 존 가드너 윌킨슨은 유물에는 관심이 없었고 명문과 기념물, 고분을 필경했으며 진정으로 과거를 연구하는 사람이었는데 베껴 그린 상형문자가 나폴레옹의 학자들보다 더 훌륭했으며 현대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놀랄 만큼 정확하다고 한다. 샹폴리옹의 상형문자 해독과 윌킨슨이 가진 열정과 노력으로 학술적 연구가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은 고고학을 전 세계적 학문으로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한 그레이엄 클라크를 배출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고고학을 단순히 오래전 인간 사회에 대한 연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토록 좁은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그저 고고학 발굴과 유물만으로 과거를 복원할 수는 없다. 고고학은 생물학이나 지질학 같은 다른 학문과 함께 발달했다. 인간의 기원 같은 어려운 주제를 마주할 때는 여러 학문의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댔다. 동물 화석과 지질학을 모른 채 인류의 기원을 이해할 방도는 없었다. 서기전 4004년 이전에도 사람이 살았음을 보여주려면 돌과 흙층에서 오래전 절멸 동물과 사람이 같이 살았다는 증거가 필요했던 것이다.(P72)


 1859, 과학계와 고고학에서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한다. 존 에번스와 조지프 프레스트위치가 솜 강변에서 주먹도끼와 매머드 뼈를 보고 돌아온 후,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으로 폭탄선언을 한다. 인류의 기원에 대한 논란으로 고고학자와 생물학자들은 새로운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다시 자연선택이라는 기제가 논의되고 12년 후 인간의 유래에서는 진화의 문제를 탐색한다. 종교계의 반발도 있었지만 사회과학자인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1820-1903)에 의해 사회진화론이 등장하게 된다. 이로써 인간 사회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사회로, 점차 고도로 다양한 사회로 발달했다는 그의 말에 동의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고고학자가 되면 좋을까


고고학자가 되기를 동경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읽다가 이 문장을 발견했는데 인상적으로 느껴져서 소개해 본다.


 유물 분석 전문가가 되려면 특별한 인성도 필요하다. 유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면 특히 더 그러하다. 끝없는 인내와 흔히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세세한 특성을 물고 늘어지는 열정과 과거에 대한 사랑이 필요한 작업이다. 몬텔리우스는 그런 성품을 갖추고 있었다. 훌륭한 언어학자로서 느긋하면서도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여러 강의에 나서면서 고고학을 대중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노력하기도 했다.(P113)


 몬텔리우스는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국립역사박물관에서 일생을 보내면서 관장의 자리까지 올랐는데, 수집과 유물을 다루면서 생애를 보낸 최초의 박물관 고고학자 중 하나라고 한다. 그는 교차편년방법을 개발했으며 고고학의 성과를 대중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임할 때, 그 분야에서 빛나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고고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흔히 고고학을 떠올리게 되면 왕족들의 화려한 보물이나 장엄한 건축물을 먼저 떠올린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그늘에 가려진 이름 없는 백성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집트 나일강 삼각주의 파이윰 분지의 카훈(kahun)에 있는 일꾼들의 마을 조사에서는 일반인들의 잔혹한 삶이 드러난다.


 보통 사람들은 들에서 일해야 했을 뿐 아니라 적은 배급만 받고 공공사업에 동원되었다. 인골에는 고된 노동의 흔적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힘들고 단조로운 삶이었다. 그러면서 나라와 지도자를 떠받쳤지만, 이 사람들의 의도와 취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거대한 기념물과 고분에 관심을 가졌던 그 당시 대부분 사람들과 달리 페트리는 고대 이집트 문명이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된 노동에 의지했던 복합사회였음을 알고 있었다.(P169)


 파라오 세누스레트 2세의 엘라훈 피라미드를 건설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고된 삶을 말해주고 있다. 어찌 이들 뿐이겠는가. 우리 역사나 다른 나라에서도 이름 없는 소시민들의 가혹한 역사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어떻게 연대를 측정할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세월을 어떻게 측정하는 것인지 신기하기만 하다. 미국의 화학자였던 윌러드 리비Willard Libby (1908~1980)는 시카고 대학에 재직하며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을 고안하기 시작하는데, 고고학 유적을 역년에 따라 연대 측정을 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결국 노벨상을 받게 된다.


그것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우주 광선이 대기 중의 질소를 만나 14C라는 방사성탄소가 일정하게 생긴다고 가정한다. 일반적인 비방사성의 탄소와 함께 공기 중의 14C도 광합성을 통해 식물에 흡수되고 동물도 식물을 먹음으로써 방사성탄소가 몸에 들어간다. 동물과 식물이 죽으면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끊겨서 더 이상 방사성탄소가 들어오지 않는데, 이 순간부터는 방사성인 14C는 일정한 비율로 붕괴하여 그 함량이 줄어들게 된다. 즉 죽은 식물, 나뭇조각, 뼈에 남아있는 14C의 함량을 측정하면 얼마나 오래전에 죽었는지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어떤 표본에서 방사성탄소의 함량이 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5,730년이라고 결론짓기에 이른다. 가히 고고학 연구에 있어 혁명이라고 할만 했다. 고고학은 여러 학문이 연결되어 통합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엿보다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심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진시황 이야기다. 영생을 위해 불로초를 찾아 헤맸지만 중국을 통일하고 겨우 11년 만에 마흔 아홉 살에 죽음을 맞이한다. 1974년 무덤으로부터 2.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우물을 파던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는데. 장정 70만 명이 땅을 파서 무덤 공간을 만들었다니 그 규모는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시황제의 병마용은 국제적인 관심을 끌며 수십만 명이 찾아오는데 공기 오염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단다. 발굴 과정에서 테라코타 병마용이 훼손되는 문제도 있지만 수은 중독의 위험 때문에 시황릉의 봉분은 발굴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을 이야기한다. 당시 수은은 영생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는데... 지나친 욕심은 판단을 흐리게 하고 화를 부른다고 했던가. 저자는 리모트센싱, DNA, 동위원소 분석 등 세련된 과학적 방법으로 화려한 시황릉의 놀라운 발견을 기대하고 있다.


아이스맨 외치의 삶이 밝혀지다.


 ‘아이스맨 외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늘날 고고학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있다. 19919월 독일의 등반가 헬무트 지몬 부부는 알프스 산 골짜기에서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지역 검시관은 등반사고의 희생자로 여겼지만 시신의 상태가 너무 오래되었다는 판단 아래 고고학자를 불렀는데... 전문가들이 시신을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한 결과 서기전 3150년 사이 유럽의 신석기시대 말~청동기시대 초의 연대로 밝혀진다. 사고 당시의 키와 나이 등 무슨 일을 하며 살다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든 것을 밝혀낸다. 무려 5,000년 전에 죽은 사람을 말이다! 집안에서 마신 연기 때문에 검어진 폐, 끊임없는 노동으로 인해 갈라진 상처, 비어있는 위장으로 배고픔에 허약해진 상태를 읽어낸다. 하지만 DNA분석으로 네 명의 적과 싸우다가 화살을 맞고 피를 흘려 죽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마치 탐정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로웠다!


 이렇게 놀라울 만큼 완전하게 한 사람의 생애를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은 알프스 산에서 냉동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최신 의학 기술은 고고학 연구에서도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의료 영상 분석으로 미라를 벗기지 않고도 연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오래된 뼈에서 폭력의 흔적을 발견하고 한 사람이 살았던 일생을 밝혀낸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사람이 죽으면 살았을 때 다친 부분이 멍으로 남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뼈가 있는 말이었다.


고고학의 미래는 어떨까.


 고대의 유물과 유적을 발굴하고 수집하는 것으로 시작한 고고학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진화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추어적인 형태에서 세계적인 학문으로 자리매김한 고고학계에서 여성 고고학자들의 활약도 볼 수 있었다. 사막 여행가이자 정부의 관료였던 거트루드 벨과 발굴가로서 미국 고고학을 개척한 학자로 칭송을 받는 해리엇 보이드 호스의 발자취는 고고학자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저자가 자주 언급한 이야기가 있는데, ‘고고학은 늘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는 말이다. 또 발굴은 이제 더 이상 과거처럼 매력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전통적인 발굴 방법으로는 제대로 연구할 수 없을 만큼 규모가 크고 복잡한 앙코르와트를 LIDAR(Light Detection and Ranging) 기술을 이용하여 인구를 추산하고 밀림이 아니라 도시 한가운데 위치했던 흔적을 찾는 과정은 놀랍기만 하다. 최근에는 드론까지 동원되어 고고학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하니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고고학은 이제 전문가들만의 분야는 아닌 것 같다. 현재는 언젠가 과거가 된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도 언젠가 과거는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과거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과거를 통해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현실이 조금 지루하고 허탈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속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탐정소설처럼 흥미롭고 생생한 이야기 속에서 눈을 뗄 수가 없을 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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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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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역사 도서전용 깜짝 상품권을 받게 된 것이 계기였다. 많은 책들 중에 지적이고 해맑은 표정의 저자와, ‘고고학 여행이라는 제목이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무척 흥미롭고 신선한 지적 체험을 경험한 기분이다

 

 

 고고학 하면 공룡화석이나 황금과 보물 찾는 이야기가 먼저 떠올랐을 만큼 어렴풋이 알고 있던 고고학, 고고학자들이 하는 일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초등학교 때부터 고고학자를 꿈꾸며 살아왔다는 저자는 여러 교수들의 추천 평에 어울리는 타고난 이야기꾼 같다. 시베리아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주로 중국, 몽골, 중앙아시아 등에서 활동했는데, 그만큼 다양하고 풍성한 사례의 발굴 이야기를 생생하고 현장감 있게 들려준다. 단순히 유물과 유적을 발굴하는 것만이 아니라 발굴된 대상은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받는 느낌이었다. 차가운 유물에 불과하지만 한때는 따뜻한 체온과 감성을 호흡했던 존재,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

 

저는 바로 유물을 통해 죽어 있는 과거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고학적인 연구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그 유물들이 원래의 기능을 잃고 땅속에 묻혀야 합니다. , 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죽고 난 다음에 고고학자들은 다시 그들을 꺼내어 부활시킵니다. 생동감 있는 삶의 모습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하는 셈입니다.’(P8~9)

 

 죽어서 묻힌 사람을 부활시킨다?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자손의 기억에 남아 대대손손 회자되는 것처럼 고고학자들이 하는 일도 이와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고고학이란 무엇일까.

 

고고학은 쉽게 설명하면, 유물을 연구해서 과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지식, 문화 등을 밝히는 것이다. 인간은 왜 그렇게 과거 사람들의 모습에 관심이 많았을까?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그렇지 않다. 그건 바로 과거를 생각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인류의 진화하는 숙명에 기인한다.’(P22)

 

 어쩌면 인간은 과거의 향수에 빠져 사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미래는 아직 닥치지 않아 알 수 없다. 현재를 살면서도 뜻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나,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살아갈 때도 흔히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지 않은가.

 

 이렇듯 고고학에 대한 관점도 과거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유물을 통해 지혜를 얻기도 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진화하고자하는 심리의 시스템에 연유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유인원의 직립보행이야말로 목숨을 건 진화였다고 한다. 두뇌와 지혜를 얻는 대신 너무나 많은 동물적인 장점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30여종의 인류 중 현생인류를 제외하고 모두 멸종했다니 새삼 인류의 진화가 위대하게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유물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당시 어떤 음식을 먹고 살았는가 밝히는 것이었다. 토기의 바닥에 남은 곡물의 찌꺼기를 분석하여 5000년 전 중국에서 맥주를 마셨다는 것을 밝혀낸다. 곡물 중에는 보리가 섞여있음을 알아냈는데 보리는 중국에서 자생하는 곡물이 아니었고, 여기서 5000년 전에 유라시아를 중심으로 동서의 교류가 있었음을 증명해낸다. 영겁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 흔적을 읽어낸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이렇게 유물, 유적을 발굴하고 분석하며 과거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적 상황이나 문화를 읽어내는 것이 고고학의 역할이다. 과거의 사람들을 통해서 인류의 나아갈 길이나 의미 있는 삶의 통찰이 가능하게 해주는 고고학, 멋진 학문인 것 같다. 황금이나 보물을 찾아내는 일을 기대하며 고고학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지만 정작 하루 일과 후 맥주가 한 잔이 고고학자들을 묶어두는 힘이라니 직업의 세계는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다.

 

 무언가를 후대에 전하고 남기려는 인간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가 보다. 쓰던 물건이나 그릇, 애정을 쏟았던 가축들의 뼈까지. 또 남은 사람들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감성이 담긴 편지가 발견되기도 한다. 발굴하는 과정에서 고고학자들이 느끼는 감정 또한 예사로울 것 같지 않다. 보이지 않는 땅 속 과거의 유물들을 통해 사유하고 새로운 삶의 모습으로 채색해주는 고고학자들이 달라보였다. 단순히 유물의 발굴에 그치지 않고, 과거의 사람과 유물에서 한때 인간의 따뜻한 숨결을 되찾아 주는 일이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하고 내일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사색하게 한다. 우리가 걷는 길, 아래 어딘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죽음과 삶은 함께 공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고학은 과학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이다.“

 

전쟁과 고고학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파괴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전쟁이 현실 사회의 구조를 파괴하는 것이라면, 고고학은 지층의 구조를 파괴하여 그 속에 있는 유적과 유물을 꺼낸다. 전쟁은 서로를 파괴하는 행위를 통해서 새로운 사회의 질서를 부여한다. 고고학은 땅을 파헤쳐서 자연에 숨어 있는 유적과 유물을 꺼낸다는 점에서 유적을 파괴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전쟁에서 승자가 그 이후의 세상을 재편하듯이 유적을 파괴하고 그 속의 유물을 꺼내서 과거를 다시 재편하는 고고학자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서로 닮아 있다.’(P213) 

 

 파괴해야 만이 과거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세상에 밝혀낼 수 있다. 파괴를 전제로 하는 점에서 전쟁과 고고학이 닮은 점을 끌어내는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알고자 하는 인간의 호기심과 본능이 고고학이 발생하고 발전하는 토대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오래전 우리 지역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는 공고가 있고나서 유적이 발견되어 공사가 몇 해 늦어진 적이 있었다. 개발은 작업이 동반되기 때문에 땅 속에 있는 유적의 파괴는 필연적이며, 건물이나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공사에 앞서 미리 유적을 발굴하는 것이 구제발굴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도입 30년도 안 되는 구제발굴을 통해 얼마나 많은 유적이 사라졌는지 모른다고 한다.

 

 또한 현대의 정치가와 사업가들의 개발, 경제논리를 앞세워 고고학 유적이 파괴되는 안타까운 현실을 말한다. 레고 랜드 건설현장인 춘천의 중도에서는 비파형 동검이 발견된 사례를보여준다. 무덤이 아닌 집자리에서 발견된 것으로 한국은 물론 동북아 청동기 시대의 연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4대강 사업의 경우는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개발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어떤 유적이 있었는지 발굴은 제대로 되었는지 정보는 미약하다고 했다. 마구잡이식 구제발굴로 인해 사라지는 유적이 없어야 할 것이다. 제대로 된 조사와 발굴이 정책화되어 통해 소중한 유물과 유적이 유실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 수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꿈꾸거나 죽은 뒤에도 여전히 부귀영화를 꿈꾸며 황금으로 치장하여 땅 속에 묻혔다. 하지만 그들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남아 있는 건 오직 황금뿐이다. 오히려 무덤에 넣은 황금이 많을수록 도굴꾼들의 우선 표적이 되었다. 무덤은 깨지고 황금은 빼앗겼다. 수많은 무덤을 발굴하면서 이처럼 덧없는 인간의 욕망을 깨닫게 되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에서 중요한 건 뭘까? 이 한 문장이 그 힌트가 되지 않을 까 싶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다 공짜야. 그걸 누릴 줄 알면 부자인 거야.”(P302~303)

 

어떤가

생명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맑은 공기, 따사로운 햇살, 풍성한 자연의 혜택이 모두 공짜다. 더 가지기 위해 초조해 하기 보다는 가진 것을 제대로 누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오랫동안 발굴현장을 누빈 저자가 끌어올린 삶의 통찰이 어우러진 고고학여행의 생생한 이야기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앞으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유물을 보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 것 같다. 왠지 애정을 담아 그들의 삶의 모습은 어땠을까 상상하게 될 것 같다. 고조선의 <공무도하가>와 하프의 기원, 유물의 도굴 이야기, 3천 년 전 두만강 유역 사람들이 침을 놓아 몸을 치유했던 시간의 기억을 밝혀내는 이야기 등 흥미로운 내용들이 가득하다. 언젠가는 흔적 없이 사라질 인생이다. 고고학 여행이야기는 어떻게 하면 오늘을 가장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사색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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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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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운 저자의 책을 몇 권 읽은 적이 있는데 문화심리학자라는 직함이 주는 무게에도 불구하고 엉뚱함과 진지함이 어우러진 재미있던 글로 기억한다이 책 또한 그랬다제목에서 벌써 낭만이 느껴진다바닷가 공간에 작업실이라니뭍과는 차원이 다른 시간이 흐를 것 같다아무 연고도 없는 여수 바닷가에어릴 적 좋아하던 꿈을 위해 화실을 마련하기까지의 과정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역창고(美力創考)’, ‘아름다움의 힘으로 창조적인 생각을 한다.’는 멋진 뜻이 담긴 공간여수의 봄여름가을겨울의 아름다운 풍경과 직접 그린 그림도 눈을 즐겁게 한다이 책은 저자가 슈필라움을 꿈꾸며 살아온 지난 몇 년간의 삶을 조선일보에 연재했고그 글들을 모아서 출간했다고 한다.

 

 생소하고 낯선 단어 슈필라움(spielraum)’이 왠지 근사하게 느껴진다. ‘놀이(Spiel)’와 공간(Raum)’이 합성어로 우리말로는 여유 공간’ 정도로 번역할 수 있으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한단다.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인데 그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단어가 우리말에는 없다고 했다우리에게 그러한 공간이 아예 없었거나 그런 공간의 필요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던 때문이라고 말한다.

 

 나도 예전에 집이 아닌 다른 곳에 나만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시내 접근이 용이하면서도 약간 변두리라도 공기 좋은 곳마루가 있는 주택이며 마당도 있었으면 좋겠다아니다마당이 있으면 쓸고 관리를 해야 하니까 일이 많아지려나조그마한 텃밭이 있어서 채소를 가꾸어 먹어도 좋겠다거기서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방해받지 않는 그런 공간에서 글을 쓴다면 엄청 잘 써지지 않을까새벽에 일어나서 시원한 공기도 느껴보고저녁 해질 무렵이면 아름다운 노을도 볼 수 있고 얼마나 좋아이런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역시 남자가 쓴 이야기라 남자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특히 한국 남자들의 슈필라움의 부재에 대한 이야기도 공감할 수 있었다자동차 운전석에 대한 애착이나 자연인’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이유를 알게 되어서 너무 웃겼다버지니아 울프가 저절로 떠올랐다.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있으면 얼마든지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던초고속 성장을 경험한 우리 사회의 사회심리학적 문제는 슈필라움의 부재에서 찾는다남녀를 떠나 심리적 여유 공간이나 최소한의 물리적 여유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물때는 어쩔 수 없는 시간이다살다 보면 물때와 같은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시간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물이 들 때가 있고나갈 때가 있다잘될 때가 있으면 안 될 때가 당연히 있다이 물때와 같은 시간마저 통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조급함이다항상 잘되어야 하고안되면 불안해 어쩔 줄 모르는 조급함 때문에 참 많은 이가 불행해졌다.(p44)

 

 여수에서 정착하기 위해 배 조종 면허까지 따는 등 발품을 팔아 준비하는 과정은 제법 진지하다바다의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선 그 정도는 해야겠지만역시 아무나 못할 일이다. ‘물때라는 말도 뭍에서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하루 중 밀물과 썰물이 있고 물이 들고 빠지는 사리와 조금이라는 이 물때와 우리의 에서의 시간기다림에 대해 성찰이 느껴져 좋았다역시 장소가 바뀌면 살아가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겠다물의 흐름을 보고 느끼며 기다림을 배우고 둥근 마음으로 변화하는 한 사람이 보인다.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로 회자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이미 있던 인더스트리 4.0’이라는 개념을 차용한 것에 불과하다는데여기서 낯선 단언적과 담론적이란 단어가 나온다문학과 예술이 단언적이라면 학문은 담론적인 것이라 한다. ‘산업혁명’ 자체가 과학과 기술의 통합이라는 지식혁명인데 어떻게 낡은 개념인 산업혁명으로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담론적이어야 할 학문적 개념을 단언하며 혼란을 부추긴 상황을 질책하는 것 같다너무 시류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이 중심이 되는 단언적인 삶, ‘나다운’ 삶을 살라는 조언으로 들린다.

 

<깊이 공감했던 문장>

 

공연한 불안의 개념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그 개념들을 가나다순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해보는 것도 좋다. ‘가나다순으로 정리하는 것은 개념의 개념화’, 즉 메타 개념화라 할 수 있다자신의 생각에 대한 생각인 자기 성찰’ 또한 이런 메타 개념화의 한 형태다개념화된 불안을 다시 한 번 상대화하면 불안의 실체가 더욱 분명해진다더 이상은 정서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정리되지 않은 불안은 기하급수적으로 부풀어 오른다어느 순간부터는 혼자 힘으로 도무지 감당하기 힘들어진다.(P83)

 

조금 틈만 생기면 걱정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되살아난다. 거의 쓸데없는 걱정이 대부분이라는데. 그래서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자꾸 줄어든다. 

불안의 개념화, 이 방법으로 소중한 시간을 벌어야겠다. 

 

행복 혹은 좋은 삶에 좀 더 실천 가능한 방식으로 접근하자는 이야기다. ‘싫은 것’, ‘나쁜 것’, ‘불편한 것을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하나씩 제거해나가면 삶은 어느 순간 좋아져 있다. ‘나쁜 것이 분명해야 그것을 제거할 용기와 능력도 생기는 것이다. ‘나쁜 것이 막연하니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다그러나 무조건 참고 견딘다고 저절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내 스스로 아주 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좋은 삶은 결코 오지 않는다아무도 내 행복이나 기분 따위에는 관심 없기 때문이다.(P115)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쓴 말년의 역작 공간의 생산의 핵심 내용이다공간은 그저 비어 있고수동적으로 채워지는 곳이 아니다공간은 매순간 인간의 상호작용에 개입하고의식을 변화시킨다오늘날 문화 연구(cultural studies)’에서 공간은 아주 새롭게 각광받는 주제다그동안 시간에 밀려 시답잖게 여겨졌던 공간이 갖는 문화적 기능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려는 학자들의 시도를 공간적 전환(spatial turn)’이라고 부른다.(P203)

 

이제는 좀 천천히 가도 된다. ‘직선의 모더니티는 평균수명이 채 50세도 안 되던 시절의 이데올로기다. (중략평균수명 100세 시대에는 하면 된다가 아니다되면 하는 거다부딪히면 돌아가는 곡선을 심리학적으로는 관대함이라 한다오늘날 한국인들이 가장 못하는 거다이렇게 곡선의 섬에서 직선의 삶에 관한 메타 인지적 통찰을 얻는다.(P231)

 

내 책장을 가득 채운 책들을 보면열이면 아홉이 꼭 물어봅니다. “이 책들을 다 읽으셨어요말문이 콱 막히는 질문입니다그런 질문은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하는 겁니다단언컨대책은 다 읽고 책장에 꽂아두는 게 아닙니다앞으로 읽으려고 책장에 꽂는 겁니다책장에 책이 그렇게 많은 이유는 내가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는 뜻입니다.(P273)

 

빵 터졌다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있지만 신간에 자꾸 눈이 가서 이래도 되나 했는데 이제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겠다언젠가는 꼭 읽을 테니까책이 가득한 책장을 보는 뿌듯함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지금까지 살던 장소와 전혀 다른 곳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분명히 삶의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 같다하지만 원한다고 해서 누구나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이런저런 이유가 발목을 잡는다경제적인 여건도 받쳐줘야 하고 익숙한 것과의 결별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좌절해야 하나아니다현재 살고 있는 집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면 된다자신이 원하는 곳에 꿈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여건이 완벽해질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순 없지 않은가짧은 인생이니까지금 여기서 소박한 공간이나마 만들어 놓고 꿈을 키워나가는 행복한 시간을 만들면 된다나는 이렇게 위안을 삼으려한다.

 

 사실 이 책을 다 읽고 가장 부러웠던 것은 저자의 외국어 실력이다세상에나는 겨우 일본어 공부 하나로 쩔쩔매고 있는데 모국어 외에도 3개 국어라니

100세 시대의 무기는 외국어 공부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그래서 좀 더 분발하기로 했다.

 

 저자의 바닷가 작업실을 엿보는 것은 부럽고도 동기부여가 되는 시간이었다신혼시절 1년 넘게 여수에서 산 적이 있다.(그때는 여천이었다.) 그 동네 작은 기차역이 아직도 있는지 아름다운 절 향일암은 어떻게 변했을까 문득 궁금하다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펼쳐지는 도전적인 삶그 이야기를 공유한 저자에게 감사드린다구체적으로 애쓰지 않으면 '좋은 삶'은 결코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자꾸 뇌리에 남는다푸른 바다와 대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미역창고에서 창조하는 좋은 책과 멋진 그림 많이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리뷰 대회를 계기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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