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클래식 클라우드 10
허연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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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로 셰익스피어, 뭉크에 이어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만나게 되었다. 부끄럽게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을 단 한 권도 읽어 본 적이 없다.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하여 일본문학을 꽤 읽는 편인데 어쩐 일인지 한 번도 인연이 없었다. 어쩌면 내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대해 백지상태여서 더욱 재미있고 공감하며 읽지 않았나 싶다. 불안의 아이콘의 대명사인 뭉크가 떠오르기도 했다. 공교롭게 가와바타 야스나리도 두 살, 세 살에 아버지, 어머니를 잃고 그 후, 누나와 조부모까지 잃고 10대에 완전히 혼자가 된다. 어린 나이부터 혈육을 잃은 상실감으로 점철된 삶을 마주하였으니 작품 전반에 허무가 배어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싶었다. “고독과 비애와 소극적 성격 때문에 문학을 했다”(P49)는 그의 회고도 이것을 충분히 뒷받침해준다.

 

 저자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삶과 문학의 궤적을 찾아가는 여정은 마치 함께 그 여정을 따라 가는 듯 실감나는 여행 같았다. 지난주 일본여행을 다녀왔는데, 떠나기 바로 직전에 이 책을 받고서 마지막 부분만 읽고 갔다. 여행일정 중에 가마쿠라에 가 볼 예정이었기에 기대감이 있었다. 저자는 이 여정을 1. 설국의 세계로 2.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삶과 문학 3. 가마쿠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마지막, 이렇게 세 개의 장으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1장에서는 작품설국의 배경이 된 에치고유자와를 소개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머무르며 설국의 중심 무대이며 초안을 집필했던 다카한 료칸의 안개의 방등 에치고유자와에서 설국이 탄생할 수밖에 없는 기후로 인한 숙명과 등장인물들이 마시는 사케를 주제로 한 배경이야기도 재미있게 풀어낸다.

 

 

 

 

 

 설국은 흔히 읽기 힘들고 읽었어도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 그래서 꽤 난해한 작품인가 했다. 흔히 소설이라 하면 기승전결이 자연스럽게 스며있어 핵심적인 줄거리가 기억에 남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설국줄거리 소설이 아니라 이미지 소설’(P62)이라고 한다. 설국에 나오는 모든 배경은 일종의 논리가 아닌 이미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설국을 가장 잘 읽는 방법은 한 행 한 행, 시를 읽듯 이미지로 읽어나가는 것’(P82)이란다.

 

거울 속에는 저녁 풍경이 흘렀다. 비쳐지는 것과 비추는 거울이 마치 영화의 이중노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등장인물과 배경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설국12(P63)

 

 천천히 읽어보면 저녁노을이라든가 어두워지는 저녁 풍경의 이미지가 보인다. 시적으로 쓰인 작품을 일반적인 소설과 같은 맥락으로 읽는다면 본래 전하고자 하는 작가의 메시지가 온전히 전해지지 않을 것임은 틀림없겠다.

 

 거울을 빼놓고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을 논할 수 없다고 한다. 거울은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비쳐진 모습은 실제와는 다른 환상도 불러일으킨다. 설국의 백미라는 부분을 감상해 보자.

 

시마무라는 작년 세밑의 그 아침, 눈이 비치던 거울을 떠올리며 경대 쪽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차가운 꽃잎 같은 함박눈이 한층 크게 나타나, 옷깃을 들추고 목덜미를 닦는 고마코 주위에서 하얀 선으로 감돌았다.

고마코의 살결은 금방 헹궈낸 듯 깨끗해서 시마무라가 어쩌다 내뱉은 말 한마디조차 그런 식으로 오해할 여자로는 도저히 여겨지지 않는 데에, 오히려 거역하기 힘든 슬픔이 있는 것 같았다.’설국,129(P93)

 

 이 작품에는 에치고유자와의 지명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고 하는데, 이런 의도적인 장치는 독자를 환상과 미궁에 빠뜨리기 십상이다. 가족을 잃은 상실감과 허무가 거울 너머로 바라보는 듯한 관조적인 삶을 추구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작품을 통해 죽음을 미화하고 인간과 자연과 허무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고자 했다”, “평생 동안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애썼다”(P243)는 그의 고백을 보면 시대적 상황이나 주변의 눈치에 발 빠르게 맞추어가며 자신의 입신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의 문학 세계를 구축했던 것 같다. 또한 온통 상실감으로 점철된 삶이었기에 모든 것을 허무로 단정 짓고, 그 허무를 ’의 추구에 받쳤는지도 모르겠다.

 

탐미주의 소설의 대가라는 미시마 유키오가 야스나리의 제자이자 문학적 도반이었다는 것도 꽤 흥미를 끌었다. 미시마 유키오는설국의 주제가 어떤 특정한 순간이 아니라, 항상 움직이고 있는 인간 생명의 각 순간을 이어주는 순수지속(純粹持續)”(P82)이라고 설명했다는데 이 언급만 보더라도 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이 될 것 같다.

 

이렇게 독자들이 읽으면서 자주 미궁에 빠지게 되는 지극히 일본적인 이 작품이 어떻게 세계적인 작품이 되었을까. 당시 일본에서는 미시마 유키오나 다니자키 준이치로 등 인기를 누렸던 작가와 달리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은 고루하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여기엔 2차 대전 당시 군 복무를 하면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 문학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던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공이 상당히 컸다는 흥미로운 일화가 있었다. ‘번역 불가능한 작품이었다는 설국을, 일본어의 사용이 너무 미묘하고 모호한 표현이 많았던 작품을 번역해낸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동양적인 가치관과 정신, 그 분위기를 읽어낼 수 있었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그 덕분에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자연과 인간의 운명이 가진 유한한 아름다움을 우수 어린 회화적 언어로 묘사했다”(P127)는 평가를 받으며 일본에서 첫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갖게 된다.

 

대표작설국외에도 산소리,이즈의 무희, 천 마리 학등의 작품세계와 배경이 되는 지역의 여정은 계속된다.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고 왜소하고 조용한 학생이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18년 혼자서 이즈반도로 여행을 떠나는데, 유랑극단과 동행했던 경험이 출세작 이즈의 무희의 모티프가 된다. 무희 가오루는 약혼자였던 이토 하쓰요의 분신이라고도 한다. 이렇듯 작가의 삶과 생각이 작품에 어느 정도 투영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유난히 무희에 대한 작품이 많았는데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름난 무용 평론가이자 무용 애호가였다고 한다. “무용은 보이는 음악이고, 움직이는 미술이며, 육체로 쓰는 시이자, 연극의 정화다”(P209)고 했을 정도로 무용 지상주의자였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시대와 사회적 상황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다. ‘()’ 자체를 추구하며 절대미의 세계에 도달하고자 했다는 작가의 관점에 초점을 둘 때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그가 태어난 오사카,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이바라키, 청년시절을 보낸 도쿄, 말년까지 35년의 흔적이 서려있는 가마쿠라의 여정을 돌아보며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알아가는 알찬 시간이었다. 일본 최초의 노벨상의 명예를 누리고 가질 것을 다 가졌던 그는 드라마틱하게 삶을 마감한다. 저자는 이것을 두고 무용을 숭배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답다고 했다. 무용이 끝난 후, 아무것도 기록이 남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떠났다고.

 

책을 읽다보면 처음의 기대와 달리 안 읽혀질 때가 있다. 감동을 느끼기는커녕 도중에 손을 놓아버린 경우도 있다. 전에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나 버지니아 울프 등의 여러 작품을 그렇게 중단한 적이 있다. 설국이 시마무라의 행동을 따라가는 소설이 아니라 시마무라의 생각을 따라가는 방법으로 읽어야 하는 것처럼 그 작품들도 그것을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는 것을 알았다. 당연히 생각에는 순차적인 시간도 공간도 필요 없고 떠오르는 것이 곧 이야기라는 것. 미시마 유키오의 말처럼 어떤 시대관념도 기만하지 못했을 만큼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던 설국절대미의 세계를 제대로 한 번 음미해 보고 싶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느껴 보았던,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일본적인 멋과 분위기를 새삼 확인받은 느낌이다. 사실 국경과 문화는 달라도 인간의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작품 설국을 읽고 미궁에 빠진 적이 있거나 아직 읽지 못한 독자에게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충실한 키워드가 되리라 믿는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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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심리학
윤현희 지음 / 믹스커피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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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림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여러 책 속에서 만남을 거듭하면서 점점 알고 싶어졌다. 어린시절에는 벽이든 아무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끄적거리곤 했는데 어른이 되어가면서 왜 그림과 멀어졌을까. 바쁘게 살아가는 생활 패턴도 있겠지만, 제도권 교육도 그에 일조하지 않았나 핑계를 대본다. 인상파, 후기인상파, 입체파 화가 등의 이름을 외우고 그림의 제목을 암기해서 시험을 치른 경험 말이다. 문학을 넘어 미술, 음악 등 다양한 관점의 접근으로 치유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책들이 많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이다. 그림을 접하고 보니, 인간의 창조적인 천재성이 만들어낸 걸작이자 인류 최초의 예술 작품이라는 알타미라 동굴이 떠오르고, 인간의 역사에서 시각언어인 그림이 문자보다 더 먼저였다는 것에 수긍하게 된다.

 

 이 책은 심리학자인 저자가 부친을 떠나보낸 슬픔을 위로받은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많은 예술가들의 그림에 공명하고 심리학적인 접목으로 풀어낸 이야기다. 왠지 미술에 문외한인 내게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화가들의 내밀한 삶의 이야기까지 소개하고 있어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의 인생에 대한 소회도 담고 있어서 잔잔한 감동을 주었고 미술 작품을 읽어내는 능력이 한 발짝 나아가는 느낌이었다. 긍정심리학, 아들러 심리학, 게슈탈트 심리학 등 다양한 심리학을 만날 수 있다. 문학작품에서 작가의 삶이나 가치관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림에는 그것을 온전히 드러낸다고 해도 좋을 만큼 오롯이 화가의 내면을 표현하고 있었다.

 

1장 나이브 아트와 긍정심리학 2장 아방가르드 화가들과 아들러 심리학 3장 추상의 세계와 게슈탈트 심리학 4장 화가 내면의 상처와 표현주의 5장 여성 화가의 정체성: 전문성과 여성성 사이에서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처음 만나게 되는 화가는 여러 경로로 알게 되었던 모지스 할머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세련된 기교를 사용하지 않으며 순수한 즐거움과 소박함을 화폭에 담는데 이것을 나이브 아트(naive art)’ 혹은 원시 미술(primitive art)이라고 하며 아웃사이더 아트라고도 한단다. 모지스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한 슬픔을 달래기 위해 76세에 붓을 들고 가슴속에 남아있던 꿈,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사람들은 늘 '너무 늦었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입니다. 어려서부터 늘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76살이 되어서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좋아하는 일은 천천히 하세요. 때로는 삶이 재촉하더라도 서두르지 마세요.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삶을 알지 못합니다.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어요. 결국 삶이란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니까요. 언젠 그래왔고, 또 언제까지나 그럴 겁니다.’(P21)-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중에서

 

 무언가를 이루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는 말을 많이 접하면서도 조급증을 떨쳐버릴 수 없는 우리에게 모지스 할머니의 이 말은 따뜻한 위로와 무한한 용기를 준다.

 

앙리 루소의 <야비드가의 꿈>

 

 이외에 이 부류의 화가로 헤르만 헤세, 앙리 루소, 구스타프 클림트를 소개한다. 이 중 앙리 루소의 독특하고 신비스런 분위기의 그림은 나름의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신조어 소확행을 실천했던 화가였다. 프랑스가 번영과 발전을 이루며 좋은 시절로 불리는 벨 에포크(belle epoque)의 절정이던 19세기 말, 세관원으로 일했던 앙리 루소는 가난하고 가정적으로 불행했지만 주간의 업무가 끝난 주말에 붓과 그림 도구를 챙겨들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떠난다. 여행할 형편은 아니어서 파리를 떠난 적이 없었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대한 활용해야만 했다. 주말 화가라는 야유를 받았던 루소의 작품은 피카소의 관심을 사로잡으면서 빛을 발하는데... 다른 화가들과 공동 작업장으로 사용했던 몽마르트의 작업실로 앙리 루소를 초대하고 기욤 아폴리네르는 그의 그림을 높이 평가하는 시를 헌정하기도 한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긍정의 심리학의 선구자였던 것이다.

 

폴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화>

 

 2장에서는 아방가르드 화가로 디에고 벨라스케스, 마네, 드가, 폴 세잔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폴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화>가 새롭게 다가왔다. 예전에 교과서에서 대수롭지 않게 보았던 사과 그림말이다. 원근법이 무시되고 시점 또한 복수의 소실점으로 역동적인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정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옆면과 뒷면, 윗면에서도 볼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은 그간의 고정관념을 깨트려주고 대인관계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는 해석이 멋지게 다가왔다. 전통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회화의 새로운 접근을 확장시켜주는 혁신적인 아웃사이더였던 것이다. 캔버스라는 평면적인 종이에 이러한 가치관과 마음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그림에 조금씩 눈을 떠가는 기쁨이란 이런 것일까.

 

 

 3장에서는 파블로 피카소를 비롯하여 바실리 칸딘스키, 피에트 몬드리안, 파울 클레와 게슈탈트 심리학을 다루고 있다. 들어본 적은 있지만 용어가 와 닿지 않았는데 독일어인 게슈탈트란 전체혹은 형태라는 의미의 단어란다. 우리가 현상이나 대상을 부분적 요소로 지각하기보다는 하나의 통합적인 의미를 가진 전체로 지각하려는 경향성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관심있는 부분은 전경(핵심˙본질)이 되고 반대의 경우는 배경(비본질적 요소)이라는 것을 정확히 인식할 때,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예술의 정수만 표현하고자 애썼던 피카소의 그림을 이해하는 첩경이 아닐까 한다.

 

 일찍이 그의 천재성을 알아차린 거트루드 스타인은 “19세기의 회화는 프랑스에서 프랑스인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20세기의 회화는 스페인 사람에 의해 프랑스에서 일어났다.”며 피카소의 영향력을 표현하기도 했다. 또 독일의 아트 딜러 다니엘 칸바일러는 피카소의 그림에는 낭비가 없다. 장식과 기교가 배제되어 있어 오히려 호소력이 짙다.”고 평가했다. 아홉 살 때 이미 라파엘로처럼 데생했다는 천재 화가 피카소도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며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라고 했다. 핵심만을 포착하는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예술의 정수를 발견한 피카소의 <해부도>는 웃고 싶을 때 보기 좋은 그림이라고 소개한다. 군더더기 없이 간략한 몇 개의 선으로 이루어진, 특히 동그란 몸통 부분을 보면서 정말로 웃음이 났다. 우리네 삶도 이것저것 복잡하게 따지지 말고 지금을 소중히 여기며 심플한 삶을 가꾸어 나갔으면 좋겠다.

 

 

 4장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 에드바르트 뭉크, 에곤 실레, 모리스 위트릴로의 작품과 그들의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맨 처음 고흐를 만난 건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고부터였다. 그 후 고흐의 전기, 영화를 통해서 제대로 알아갔다. 여기서는 이제 막 관심이 생긴 뭉크에 대해서 언급하려 한다. 불안의 아이콘이 된 <절규>를 중학교 미술책에서 보았던가. 아름답지 못한 그림에 유령같이 느껴져 별로 좋은 기억은 없던 그림이다. 최근 어떤 책에서 언급된 뭉크의 삶을 대략 알았고 이 책에서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 강박적인 종교인이었던 아버지의 냉혹한 양육 방식은 부정적인 정서를 뿌리내리게 했다. 탄생한 순간부터 죽음과 질병의 천사가 자신을 따라다녔다던 뭉크의 고백처럼 그의 그림에는 불안, 우울 공포, 질투, 피해망상 등의 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숨 쉬고, 고통받고, 느끼고, 사랑하는, 살아 있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겠다. 본 것을 상상하며 그리지,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지는 않겠다.”(P227)고 밝힌 생 클루 선언은 그림에 대한 혹평에도 불구하고 본연의 길을 충실히 걸었던 결과 시공간을 뛰어넘는 공감과 불안과 공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아이콘이 되지 않았을까. 가끔 기사화되어 끔찍한 사건을 야기하는 조현병 환자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뭉크 또한 신경쇠약과 조현병이 있었다고 해서 놀라웠다. 자신의 내면의 불안과 공포를 피하지 않고 인정하고 직시하면서 예술활동으로 승화시켰기에 오늘의 뭉크가 있었던 것이다. 고난의 삶을 극복한 숭고한 정신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이 있기에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위로받고 힘을 얻는지도 모른다.

 

수잔 발라동의 <푸른 방>

 

 5장에서는 베러트 모리조, 메리 카사트, 수잔 발라동, 루이스 부르주아 등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전문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추구하고 여성에게 강요되었던 전통적 가치를 거부하며 시대를 앞서간 여인들의 용기 있는 인생이 들어있다. 이 중 수잔 발라동은 사생아로 태어나 사생아를 낳고(4장에 나오는 모리스 위트릴로가 아들임.) 프랑스 미술아카데미 정회원으로 추대되기까지 한, 우뚝 선 불꽃처럼 살아갔던 화가이다. 생활고와 미혼모라는 악조건 하에 분투하면서도 역사상 여자가 여자의 누드를 그린 것은 전무후무 할 만큼 당찬 화가였다. 그녀가 그린 여자의 누드는 남성의 시선이 투사한 에로티시즘의 홍조도 없는 진실 그대로의 몸이다. 르누아르의 모델이었던 수잔이 비밀스럽게 키운 화가의 꿈을 고백하며 화첩을 보여주었을 때 그들의 계약 관계는 끝난다. 굴곡 많았던 수잔의 삶은 아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지만 결국 두 모자는 그림으로 국가의 인정을 받으며 안정되고 명예로운 노년을 보내게 된다.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이 또 있을까.

 

수잔 발라동의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가 그린 <노트르담 성당>

 

나에게 예술은 나 자신의 정신분석학이자 나만의 공포와 두려움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어떤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당신에 대해서 직시하고 알아야만 한다. 그런 고찰이 당신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P319)

 

 여자 뭉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평생을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직시해야 했던 루이스 부르주아가 매거진 GQ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 공포와 두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다. 고통을 잊기 위한 방편으로 예술을 했고 예술은 자신의 정신분석학이었다는 것이다. 긍정의 심리학을 엿볼 수 있는 화가들도 있었지만, 더 많은 예술가들이 내면의 고통과 불안을 온전히 들여다보며 영혼을 치유해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통으로 얼룩진 삶을 극복하고 빛나는 별로 우뚝 선 그들의 삶을 읽고 뭉클한 감동이 일었다. 무엇이든 풍족하고 편리한 시대에 나만 힘든 것처럼 꾀를 부리고 태만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하였다. 오롯이 지금, 현재를 살았던 예술가들의 족적을 헤아려 좀 더 오늘에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화가들의 삶과 심리학이 곁들여진 이야기를 통해 어려웠던 그림이 쉽게 느껴졌다. 그림을 통해서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대의 확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또한 자신에게는 위로와 힘을 준다는 것도. 저자는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모든 연령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정신을 건강하고 풍성하게 가꾸는 일이지만, 특히 아동과 청소년의 경우에 칸딘스키의 그림과 색채이론의 응용이 감정인식과 공감능력 발달에 도움이 될 수 있다’(P171)고 했다. 우리는 심각한 소통의 부재와 공감능력의 상실시대에 살고 있다. 어린 학령기부터 누구나 그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개발하여 우리의 감성을 촉촉하게 해주는 미술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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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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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 년 전 최재천 교수의 통섭의 식탁을 읽고 나서, 나의 독서 편식 상황을 깨닫고 경계를 넘는 책읽기를 시도해보고자 독서 목록을 정비하며 새로운 기분으로 들떴던 적이 있다. 우선은 경제 관련 서적과 동기부여에 관한 책으로 시작해서 좀 깊이 있는 철학과 사상에 관한 책으로 넓혀가야지 했지만 쉽고 빨리 읽히는 책에 손이 가는 바람에 더 나아가지 못하는 책읽기가 되었다. 블로그 활동을 하게 되면서는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나마 가끔 열리는 리뷰 대회를 통해서 평소와 다른 분야의 책을 접하게 되어 매번 감사한 마음이 다. 이 책도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철학이 삶의 무기가 된다니! 제목 또한 강렬하고 좀 어렵지 않을까 염려도 되었는데 서문을 읽으면서 그동안 생각했던 철학에 대한 편견을 깨끗하게 환기시키며 기대감으로 고조되었다. 그동안 철학에 대한 접근이 지적 호기심과 폼을 잡고 싶은 허영이 아니었나 반성하게 되었다. 지적 충족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실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철학자를 떠올릴 때 맨 먼저 칸트가 떠오른다. 어김없이 오후 3시면 산책을 해서 마을 주민들은 칸트를 보고 시간을 가늠했다는. 그리고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잇는 그리스 철학자들. 몇 해 전 플라톤의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이 책의 서문을 접하고서야 깨닫게 된다. 철학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가며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 눈앞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얼마만큼 대답을 해 줄 수 있는가,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을.

 

 저자 야마구치 슈는 바로 이러한 우리 앞에 닥친 삶의 문제를 안고 있는 사회인들이 철학의 본질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굳은 믿음으로 이 책을 기획했음을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1949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제의 계기로 로버트 허친스 교수의 교양 없는 전문가야말로 우리의 문명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라는 주장을 들어 왜 우리가 철학을 배워야만 하는지 네 가지의 이점을 들어 들려준다.

 

1. 상황을 정확하게 통찰한다.

2. 비판적 사고의 핵심을 배운다.

3. 어젠다를 정한다.

4.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이 책의 부제는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이다. 1부는 무기가 되는 철학으로 철학을 배우는 새로운 방법과 그동안 왜 우리가 철학 앞에서 좌절해야 했는지 이유를 들어 설명한다. 2부는 지적 전투력을 극대화하는 50가지 철학 · 사상으로 사람, 조직, 사회, 사고에 관한 핵심 콘셉트를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가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로 인한 고민이다(P28)라고 지적했다는데 이것을 미처 몰랐더라도 우리는 가정을 넘어 조직이라는 사회에서 부딪히는 문제가 인간관계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에서 다룬 주제의 핵심이 더욱 와 닿지 않을 수 없다.

 

 철학을 배우는 새로운 방법에 이 책을 쓴 의도가 잘 나타나 있다. 그동안 철학에 관심을 갖고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리스의 철학자를 시작으로 접하지 않았을까 싶다. 시간 순으로 방대하게 이어지는 철학자와  무거운 주제에 압도되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너무 오래전의 사상이고 현실과 호환이 안 되거나 동떨어진 내용인 경우도 있어서 어렵고 진부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저자는 여타의 철학 입문서와 달리 시간 축으로 구성하지 않았으며 현실의 쓸모에 기초하며 철학 이외의 영역도 다루었음을 밝힌다. 저자의 이런 신선한 의도를 접하면서 어떻게 내 삶에 적용시킬 수 있을까 기대감을 갖고 읽어나갔다. 니체의 르상티망부터 시작하는데 학창시절 철학자와 사상가의 명제를 암기하여 시험을 치르던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세상에, 어떻게 철학자에 대한 사상을 그렇게 배우게 되었을까 싶다. 그러니 졸업하고 나선 철학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던 것이다.

 

 현대사회는 옛날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다. 한 명의 어린 아이를 교육하기 위해 온 마을이 달려들었다는 시대가 아니다. 문명의 발달은 인간에게 편익을 주었으나 마음은 고독한 시대이다. 개인적인 삶의 모습이 버튼 하나만 터치하면 눈앞에 나타나고 상대적인 박탈감을 너무나도 쉽게 느끼는 시절이다. 점점 소외감으로 마음의 문을 닫아가고 서로의 마음을 모르게 되고 그런 환경으로 쉽게 변화해 간다. 아무도 모르게 무시무시한 일을 모의하고 그것이 터져야만 내막을 알게 되는 사회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한 사람의 내면에서는 무언가 벌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 등이 뒤섞인 시기심과 시기심이라고 여기지 않는 감정과 행동까지 포함한 폭넓은 개념으로 니체의 르상티망(ressentiment)을 든다. 어렵게 느껴졌던 철학 용어가 환해지기 시작한다. 자주 언급되는 이솝우화의 여우과 신 포도이야기 속 여우의 심리와 고급 브랜드 상품을 구입하며 르상티망을 해소하고 있다는 철학적 견해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는 폭을 넓혀준다. 이렇게 타인의 시기심을 이용하면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이어진다는 흥미로운 철학을 왜 가까이 하지 않았을까.

 

 반면 좀 놀라운 부분도 있었다. 거대한 자연에 비하면 개인은 나약한 존재다. 열심히 살고 노력을 하면 언젠가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대부분 품고 살아간다. 그런데 장 칼뱅의 예정설을 접하고 놀라면서도 우리가 사는 현실의 상황과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지 수긍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신에게 구원을 받을지 못 받을지는 미리 결정되어 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선행을 쌓느냐 못 쌓느냐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P76)

 

 이 주장은 기원은 신약성서로마서830절에 신은 미리 정해진 자들을 부르고, 부른 자들을 의로 삼으며 의로 삼은 자들에게 영광을 내렸다는 말에서 미리 결정되었다는 키워드로 도출된다는데. 오늘날 조직에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인사고과에서 밀려나는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 핵심 내용은 뒤에서 공정한 세상 가설을 설파한 멜빈 러너(Melvin Lerner)보이지 않는 노력도 언젠가는 보상받는다는 거짓말로 연결되어 혼란스런 마음을 부추긴다. 이미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된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1만 시간의 법칙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얼마나 많은 책에서 다룬 내용이었던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고 싶은 일에 1만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면 결국은 이루게 된다는 희망이 여지없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세 개의 명제를 들어 풀이하는데.

명제1 : 천재 모차르트는 노력했다.

명제2 : 노력하면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가 될 수 있다.

명제3 : 노력 없이는 모차르트 같은 천재가 될 수 없다.(P260)

 

 재능보다 노력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수없이 들어왔지만 여기 예를 든 명제는 논리 전개에서 흔히 발생하는 초보적인 실수로 사실은 전혀 명제의 증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법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대상이나 악기, 종목, 과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바람과 현실의 세계를 직시하지 않고 맹목적인 믿음일 때는 위험한 주장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노력은 보상받는다는 공정한 세상 가설에 사로잡히면 사회나 조직을 도리어 원망하게 될 수 있다는 사례는 정말 헛헛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옛날부터 우리는 그런 말을 많이 들어왔다.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고.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한층 더 공정한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며 의무라는 것을 명심하자고 조언한다.

 

 그렇다면 너무 씁쓸하지 않은가. 힘없는 개인이 살아가기 위한 토대가 되는 소박한 희망이 사라진다는 것은. 하지만 어차피 사람은 작은 희망에도 일어설 수 있는 존재다. 대표적인 실존주의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는 앙가주망(engagement)하라는 말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물음에 몰두했다. ‘앙가주망(engagement)’ 은 ‘참여(commit)’를 의미한다. 참여한다는 것을 사르트르는 우리 자신의 행동과 이 세계에 대한 책임두 가지로 정리했다. 자신의 행동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여기에는 자유가 따른다

 또 사람의 일생에서 우발 사건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바로 그 예가 전쟁이란다. 흔히 전쟁은 나와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반전운동이나 병역을 거부하고 도망칠 수도 있었는데 받아들인 것은 선택했다는 것이고 결국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논리정연하고 냉정한 지적에 섬뜩해진다. 이것은 사르트르가 말한 인간은 자유의 형벌에 처해 있다는 진정한 의미로도 이어진다. 누구에게나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무엇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유를 갈구하지만 넘치는 자유 때문에 괴롭기도 한 존재인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공정한 세상 가설예정설을 실체를 알았다고 해서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사르트르가 세계의 리더들은 왜 직감을 단련하는가에서 소개했다는 현대 미술가 요제프 보이스의 사회적 조각우리는 세계라는 작품을 제작하는 데 공동으로 관여하는 아티스트이기에 이 세계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하루하루 생활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그야말로 희망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인생을 예술 작품처럼 창조해 내야만 자신의 가능성을 깨달을 수 있다는 역설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지금까지 이런 마음과 태도를 갖고 삶에 임한 적이 있었던가, 돌아보게 하였다.

 

 지금 우리는 거대하게 시스템화 된 세상에 살고 있다. 매뉴얼화 된 시스템이란 얼마나 편리한 것인가.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물이 흐르는 듯한 일처리를 보장한다. 철학을 배워야 하는 네 가지 이유 중 네 번째의 같은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는다.’는 언급을 상기시키는 부분을 만났다. 바로 20세기의 정치 철학을 논하는데 필수 아이콘이 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접하게 된다. 수많은 책을 통해 만났는데, 극도로 세분화되고 시스템화 된 우리의 현실은 자신도 모르게 물들어 가기에 쉬운 상황이 아닐까 섬뜩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악이란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P100)

 

 나치 독일이 600만 명의 유대인을 처리하기 위한 계획에 주도적 역할을 한 아돌프 아이히만이 있었고, 작년에 읽었던 맨부커상 수상작인 리처드 플래너건의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에서도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게 했다. 하이쿠를 읊고 낭만을 아는 대위 고타가 천황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사람의 목을 치는 기술을 연마하고 그 과정을 부하인 나카무라에게 얘기하는 장면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이 무섭고 떨리지 두 번 세 번의 연습을 거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시스템이란 이런 것이다. 극도로 세분화된 시스템 속에서는 잘잘못을 따질 수가 없다. 애매하고 교묘하게 역할을 분담하여 악에서 빠져나가려는 발버둥에 헤아릴 수 없는 무고한 인명은 왜냐고 묻지도 못한 채 희생되고 마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옳고 그른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고등한 인간이니까 말이다. 더불어 시스템화 된 조직에서 생각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비극을 낳게 하는지 일침을 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만 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겐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사람이 모여서 조직이 되고 하나의 사회를 이룬다. 각각의 주제를 컨셉트로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가 정말 흥미진진했다. 물론 좀 어렵게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철학 용어만큼은 암기식 공부가 도움은 되었던지(?) 학창시절의 기억을 금세 소환해주었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조직, 사회의 심리를 읽을 수 있다면 개인이 삶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시간 속에 흘러가는 물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우리 앞에 있다. 흔히 지금을 살아라’, ‘현재를 살아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과거 속에 젖어서 살며 오지 미래를 걱정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속과 같은 세상이다.

 

 거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라는 앨런 케이(Alan Curtis Kay)의 말을 만나게 된다. 감동과 더불어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컴퓨터 과학자 앨런 케이가 1972년에 저술한 논문 모든 연령대 어린이들을 위한 컴퓨터(A Personal Computer for Children of All Ages)를 사례로 들어 미래의 예측실현을 이야기한다. 사실은 미래 예측을 의도했다기보다는 이런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원하는 것을 구상하는 과정에서의 간절함이 결국 실현으로 이어진 것이다. 막연히 불안해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보는 노력에 힘을 싣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철학의 영역을 넘어 사회심리학, 과학, 문화인류학 등 50명의 철학자, 사상가의 50개의 생각이 들어있다. 분명히 읽기 전보다는 생각을 키워 주었으며 교양이 듬뿍 쌓인 듯 느껴진다. 옳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 고정관념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씁쓸한 마음이 되기도 했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상기할 때 모든 것은 변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는 행복한 삶을 원한다. 즐겁고 나다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 1위 경영 · 인사 컨설팅 기업 콘페리헤이그룹의 시니어 파트너이자 히토쓰바시 대학교 경영관리 연구과 겸임 교수로 일하고 있는 저자의 내공이 담긴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한 치 앞을 헤아릴 수 없는 우리의 삶을 효율적인 삶으로 이끄는 철학적 소신을 안겨 줄 것이라 믿는다. 또 멀어졌던 철학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용기와 도전의 마음을 심어준 유익한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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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브런치 - 원전을 곁들인 맛있는 인문학 브런치 시리즈 4
정시몬 지음 / 부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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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음악 이야기에 관한 책을 접하고 보니 중학교 때 음악선생님이 떠오른다반짝이는 이마에 안경을 쓴 도통 음악선생님 분위기가 나지 않았던 선생님은 우리에게 노래와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서 항상 노란색 카세트를 가지고 다니셨다예를 들어 그날 교과서에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가 나왔다면 그 음악을 짧게라도 들려주시곤 했다아마도 그렇게 접했던 기억으로 띄엄띄엄이라도 클래식 음악 듣기를 계속해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르를 넘는 책 쓰기와 번역까지 한다는 저자의 이력이 정말 놀라웠다이 브런치’ 시리즈로 이미 철학세계사세계문학이 나와 있다얼마만큼의 책읽기와 그것을 어느 정도 좋아해야 이런 일이 가능할까 감탄스러울 뿐이다우리 귀에 익숙한 유명한 클래식 음악가들의 작품과 그들의 내밀한 삶당시의 역사적 상황이 곁들여진 이야기는 더욱 생생하고 친밀하게 느껴진다이 책 덕분에 저자의 다른 시리즈가 궁금해질 정도다.


1. 바로크 음악으로의 초대 2. 고전주의 조화균형품격의 음악 3. 낭만주의 음악 4. 전환기의 클래식또 그 너머 이렇게 네 개의 장으로 나누어 이야기하는 클래식의 향연에 우리를 초대한다책을 읽으면서 중요하게 언급하거나 궁금했던 음악을 들으면서 읽었는데 역시 이래서 고전음악이구나 싶었다암기식 공부의 기억도 없지 않았던 만큼 음악 작품의 제목이 새록새록 떠올랐다또 잘 몰랐던 작품의 배경에 얽힌 이야기를 자세히 알게 되어서 나중에 음악 감상을 하더라도 더 잘 이해되고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가로는 비발디와 바흐헨델을 이야기한다비발디의 사계는 우리에게 얼마나 익숙한 곡인가비발디가 이 곡을 작곡하게 된 것은 베네치아에서 활약하던 화가 마르코 리치의 풍경화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란다평생 작곡한 협주곡이 500여 곡이나 되며 이외에도 오페라칸타타에 더해 소나타합주곡종교 음악까지 엄청난 분량을 썼다그런 전성기를 누리다가 낡은 음악이라는 취급을 받으며 슬럼프를 겪기도 한다비발디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6세의 총애를 발판삼아 빈 음악계에서 도약의 야심을 품었지만 황제의 급서로 멘붕을 겪으며 급기야는 빈털터리로 객사하기에 이른다.


 오늘 날 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즐겨듣는 사계나 화성의 영감이 비발디 타계 후 이백 년 가까이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기만 하다. 1948년 미국에서 사계≫ 전곡이 음반으로 제작되고, 1950년 프랑스에서 최우수 클래식 음반상을 받으면서 유럽과 미국에서 비발디 붐을 일으켰다고 한다음악이라는 창작물도 문명의 발전과 그것을 듣고 즐기는 사람들이 있어야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모든 것이 그렇지 않을까책이 읽혀져야 팔리듯이 음악은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영원히 울려 퍼지는 것.


 흔히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 헨델은 음악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고 그렇게 배워왔다여기서 바흐를 음악의 장인에 헨델을 음악의 기업가’ 혹은 벤처 사업가로 보는 비유가 흥미를 끈다바흐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보수와 조건이 나은 곳을 찾아 고용주를 갈아타기도 했다는데 20명이나 되는 자녀를 먹여 살리기 위한 생존전략일 수도 있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가장의 입장이란천재적인 음악가의 삶도 근본적인 모습은 보통 사람들과 똑같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헨델은 당대 음악 양식의 가장 뛰어난 사용자이자 최고의 수혜자였음을 알게 된다비발디가 화성의 영감을 헌정했던 메디치 가문의 후광을 업고 오페라 아그리피나Agrippina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탈리아 활동의 절정을 맞이하고 다시 런던으로 건너가 영국 왕실의 총애를 받으며 음악가로서 돈과 명성대중적 인기를 거머쥔 행운의 사나이였다이렇게 걸출한 당 대의 음악가들이 서로 만나서 음악적 교류를 했을까 궁금해진다바흐쪽에서 헨델을 만나려고 관심을 기울였지만 헨델의 거절로 만나지 못했단다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 음악가들도 라이벌 의식을 느꼈을까어쩌면 더욱 풍성한 역사의 한 장면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고전주의 음악에서는 모차르트하이든베토벤의 음악과 삶 이야기가 펼쳐진다모차르트 음악만큼 우리 생활에 친숙한 음악이 또 있을까흔히 많은 예비 엄마들이 태교를 할 때도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이 모차르트의 음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바흐베토벤그리고 바그너의 음악에서 우리는 주로 그 속에 깃들인 인간 정신의 깊이와 힘에 감탄한다모차르트의 음악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신성한 본성이다앞서 언급한 거장들과는 달리그가 그의 재료를 빚은 형식에서는 어떤 고뇌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모차르트는 마치 놀이를 하듯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천진난만한행복한알라딘과 같은 본성을 지녔다.’(P114)


 이것은 19세기 말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Edvard Grieg)가 모차르트에 대한 평가다다른 것은 몰라도 천진난만함과 행복함을 느끼는 정서는 금세 수긍할 수 있지 않을까겨우 35세의 이른 나이의 죽음에 관해서는 살리에리에 의한 독살 설 등 의견이 분분했지만 문헌이나 정황의 증거로 볼 때 과로사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부분은 마음이 짠해진다이것이 서양 음악 사상 최고의 천재이자 고전주의 시대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평가받는 음악가의 뒷모습이라니.


 낭만주의 음악가로는 가곡의 왕’ 슈베르트를 비롯하여 멘델스존, ‘피아노의 시인’ 쇼팽 등 많은 음악가들을 이야기한다무엇보다 낭만주의 오페라의 양대 산맥인 베르디와 바그너를 비교 분석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1813년 동갑내기이며 두 사람 모두 생전에 조국의 통일을 목격한 점대기만성 형 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저자는 이 두 사람의 예술의 성향을 어떻게 구분 지을까서구 문명이 내놓은 가장 뛰어난 예술 양식이라는 오페라그 속에 담긴 음악이 얼마나 아름답고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지 알고 싶다면 베르디의 음악을현실을 초월한 환상의 세계를 엿보는 기회세계의 비밀을 파악할 수 있는 하나의 상징 부호그 속에 담긴 음악을 비밀의 문을 여는 주문으로 여긴다면 바그너의 음악을 들어보라고 조언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세기말 유럽 음악의 풍경과 러시아 음악미국의 클래식 음악과 역사를 이야기한다위대한 음악가와 그 작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당대의 문화역사문학심지어 철학적인 접근과 사유로 더욱 풍성한 이야기로 클래식 음악을 공부할 수 있었다클래식 음악은 특정한 시대를 결정짓는 흐름이었을까석유 고갈을 걱정했던 20세기 후반의 에너지 전문가들처럼 영국의 철학자 스튜어트 밀은 음악적 조합의 유한성(exhaustibility of musical combinations)’을 들어 음악적 자원의 고갈을 걱정했다고 한다. 5개의 온음과 2개의 반음으로 구성된 옥타브한정된 방식의 조합이기에 오직 소수만이 아름답다는.


 이러한 우려에도 미국의 진화 생물학자 루이스 토마스는 진화의 관점으로 보는 고작’ 100만 년의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인류라는 종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근거로 바흐의 음악을 예로 들어 인류의 미래를 낙관했다고 한다이 정도라면 충분하지 않을까클래식 공백의 시대라고는 해도 바로크 시대부터 고전주의낭만주의현대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진 음악만으로도 풍요로우며 저변확대까지는 아니라고 생각된다저자의 말처럼 클래식 음악을 접하는데 특별한 문턱이 존재하거나 훈련이 필요한 것도 아닐 것이다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가끔은 걸음을 멈추고 기꺼이 들어 가보자평범한 일상에 활력소를 주고 조금은 특별한 삶의 멋을 주는 클래식 음악은 먼 데 있지 않다이 책은 우리가 그런 멋을 느낄 수 있도록 친절하게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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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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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기 전에 오랜만에 일드를 보게 되었는데(어떤 내용인지 모르고) 법의학자들의 활약을 다룬 드라마였다. 젊은 여성 법의학자가 주인공이어서 더 신기했었다. 참으로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를 다루는 일드의 세계는 접할 때마다 놀랍다. 대충 이런 내용을 다루고 있겠구나 싶어서 이 책이 기대가 되었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는 서울대학교 2013년도 교양 강의 개설로 시작되어 지금은 대형 강의로 발전하였고 더 많은 사람들과 죽음에 관해 고민해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 책이 나왔다. 제목이 좀 섬뜩한 느낌이지만 법의학자가 하는 일을 이만큼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 있을까 싶다. 법의학자는 무슨 일을 하는지, 사회에서 일어나는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일지 고민한 내용을 전달하고자 했다는 저자의 의도처럼 이해하기 쉽고 잘 읽힌다.


 저자는 의사, 과학자, ‘부검을 하는 법의학자로서 마주한 여러 죽음들의 사례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1부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는 법의학자로 일하게 된 동기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죽음의 사례를 통해 개인적 불행을 감지하기도 하고 그것을 넘어 사회적 비극을 읽어내기도 한다. 개인적인 죽음이나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사건의 사례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맨 얼굴, 우리 삶의 민낯을 이야기한다. 얘기치 못한 갑작스런 죽음에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 그리하여 그 원인을 밝히고 가해자는 죗값을 받도록 밝혀내는 것이 법의학자가 하는 주 임무인 셈이다. 이렇게 사망 판정을 하고 확정이 되면 대법원과 통계청으로 보내져 가족관계를 정리하고 사망 원인은 건강 정책이나 사회제도 등의 자료로 반영되는 일련의 흐름을 알 수 있었다. 죽음 중에 특히 자살은 개인의 내밀한 결정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흐름과 무관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임을 말하기도 한다. 타인의 죽음을 마주하여 신원을 확인하고 사망 원인을 밝혀내는 법의학자는 우리나라에 정확히 40명이라고 했다. 등록된 의사가 12만 명이 넘는 것에 비하면 정말 희소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주검을 통해서 의문사나 갑작스런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는 법의학자란 자신의 소명이 있기에 가능하겠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2부 우리는 왜 죽는가생명의 시작을 어디서부터 보아야 할까 하는 논쟁으로 시작하여 죽음의 변천사죽음의 시점’, 뇌사에 관한 논쟁과 다툼, 연명의료에 대한 분분한 논쟁을 이야기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일드에서 자주 나왔던 말이 생각났다. 그들 스스로 7D업종이라고 말하는데, 법의학자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대답이다. “미래를 위해서라고. 아무런 말도 없이 갑자기 떠난 사람의 메시지를 가족 등 지인에게 전해주는 것. 의문을 품었던 죽음에 대해 확실하게 원인을 밝혀주는 것이다. 그 메시지를 통해서 남은 사람들은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우쳐 주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미래를 위해서라는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3부 죽음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서는 죽음은 실패가 아닌 자연스러운 질서라는 것을 깨닫고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 좋은 죽음을 위한 방법 등 2045, 영생의 시대의 이슈를 이야기한다. 영생을 꿈꾸었던 진시황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여 영생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측도 하는 모양이지만 그것 또한 두려운 일이다. 삶이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발명품은 죽음이라고 했던가. 유한하기에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 고민도 하고 쓸데없는 욕망을 내려놓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떠나는 죽음보다는 미리 공부해서 준비하자고 한다. 일본에서 시작된 종활의 사례와 임종 노트를 쓰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I see it now. This world is swiftly passing!

이제야 깨달았도다. 생이 이렇게 짧은 줄을!

-(p209)(마하바라타의 악역 주인공 카르나의 말.)-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경쟁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 나름 열심히 살아 가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죽음 따위는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라는 듯이 쉽게 이야기하는 일도 잘 없다. 다행인지 요즘 책에서 자주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등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종종 만난다. ‘서가명강시리즈의 하나인 이 책은 20년간 일해 온 법의학자의 시선과 통찰이 담겨있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죽음이란 나와 별게가 아닌 누구나 맞이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을 인식할 때 두려움은 없어지지 않을까. 죽음을 공부한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갈까 연구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앞으로의 삶의 자세와 어떻게 하면 지금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스스로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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