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덞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개항기 정치 부분을 끝냈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독도는 우리땅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무슨 근거로 독도에 대한 야심을 부리기 시작한 걸까요? 독도를 울릉도와 구분하여 표기한 최초의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라고 합니다. 중종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15세기~1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팔도총도라는 지도가 실려있습니다. 팔도총도는 울릉도와 독도가 표기된 최초의 지도입니다. 17세기말 숙종 때는 민간인 안용복이 직접 일본에 가서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확인하고 돌아왔습니다. 이후 일본은 일본인들이 울릉도에 가지 못하도록 도해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1900년 10월 중앙 관보에 게재된 대한 제국 칙령 제 41호는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승격하고 독도를 관할하게 한다고 명기하였습니다. 칙령 제 41호에 의해 국제법 체계에서도 독도가 대한 제국 영토임이 확인되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일본도 오래전부터 여러 문헌을 통해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영토임을 확인해왔습니다. 1785년에 일본이 편찬한 삼국접양지도에 분명히 독도를 조선땅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1870년 일본 외무성 고관들이 조선 정세를 몰래 살펴보고 돌아가 작성한 <조선국 교제시말 내탐서>에도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땅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일본이 정밀 지도와 지적도를 작성하기 위해 자국 관리들에게 내려보낸 지령문(1877년 태정관 지령)에도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는 조선 영토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 남아 있는 많은 사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1905년 2월 러·일전쟁 중에  시네마 현 고시를 통해 독도를 자국 영토로 일방 편입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1년 뒤 시네마 현의 사무관이 독도 조사를 마치고 울릉도 군수에게 통고하면서 우리나라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상실된 상태에서 우리 정부는 항의할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연합군 최고 사령관은 각서에서 일본의 영토가 4개 섬과 인근 작은 섬들로 제한 될 것이며, 독도 (리앙쿠르 락)가 일본 영토에서 제외됨을 명시하였습니다.  1951년 맺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연합군 사령부의 지령이 유효함'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명문 규정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는 강화조약에 우리나라 모든 섬을 열거할 수 없으며, 일본이 강화 조약 직후 독도가 일본의 관할 구역에서 제외되었음을 확인하였다고 반박하였습니다.

 

 

 <전한길 한국사 2.0 All in one>

 

다음주는 개항기 경제, 사회, 문화를 공부합니다.

 

<전한길 한국사 합격생 필기노트>

 p 95 ~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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