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여름처럼 뜨거운 늦봄입니다.

저희의 철학 공부도 열기를 더해 ... ;; 가고 있는지 ^^

오늘은 열 한명이 참석했고요. (8개월 우리 가헌이까지 하면 열 둘이군요. )

칸트의 도덕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칸트는 정리해보려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워낙 방대하고 또 섬세한 설명도 필요해서 대충 보다는 안하는 것이 낫다 싶습니다. (덥고 기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ㅎ,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쏟아지는 뉴스도 보아야 하고 ^^)

 

어쨌거나 두 주에 걸쳐 칸트의 <이론 이성 비판>과 <실천 이성 비판> 그리고 <판단력 비판> 까지, 그 개요를 살펴보았습니다. 

 

칸트에 의하면 '두 세계의 시민'인 인간은 자연적 법칙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절대적 자발성을 갖고 그에 반하는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인간 이성은 이론의 영역에서도 실천의 영역에서도 입법자입니다. 특히 실천의 영역에서 이성은 자기 입법을 통해 자율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책임과 의무를 지게됩니다.

 

도덕이란 달리 말하면 책임을 지는 태도 즉 귀책성을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이 이끄는 사회가 얼마나 부도덕한 사회인지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통해 생생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도덕적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적 원칙에 대한 구성원들의 합의 즉 공감이 필수 요소입니다. 칸트에게 도덕은 절대적으로 자율적이기 때문입니다. 합의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타율적 법칙은 인간의 자유를 말살합니다. 그러므로 공감 즉 공통감각 Sensus Communis을 통해 합의된 법칙들을 준수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시민들이 만드는 사회가 도덕적 사회일 것입니다.

 

공통감각은 영국에서 독일로 들어오며 '판단력 Urteilskraft'으로 번역됩니다. 실천 영역에서의 판단력은 '특수들을 비교하여 그것들을 포섭하는 보편을 상정하고 연결시키는 힘'으로서의 반성적 판단력입니다.  자유의 영역 즉 실천 영역에서는 자연의 영역에서와 같은 보편법칙이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양한 특수들에 대해 논의와 합의를 거쳐 보편법칙을 상정 즉 만들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능력이 바로 반성적 판단력입니다.

 

판단력을 기르는 힘은 상상력입니다. 어릴때부터 상상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단순히 현실에 없는 무엇을 생각하는 힘 정도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진정한 상상력은 공감의 능력입니다. 아담 스미스는 상상력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상상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다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놓고 우리 자신이 그 사람과 같은 고통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인식하는 방식은 우리가 그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 어느 정도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사람의 감각에 대한 어떤 관념을 형성하며 그 정도는 약하더라도 그 사람의 것과 유사한 감각까지 느끼는 것과 같다. (....)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동류의식을 느끼는 원천은 바로 이것이다. 상상을 통해 고통을 받는 자와 입장을 바꿔봄으로써 우리는 고통을 받는 사람이 느끼는 것을 느낄 수있거나 그가 느끼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어릴 때부터 상상력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탄탄한 초석이 될 것입니다. 유니콘이나 외계인을 생각하는 그런 상상력을 넘어서는 상상력 말입니다.  

 

칸트는 서로 분리된 자연의 영역과 자유의 영역을 매개하기 위해 판단력을 탐구했습니다. 판단력은 실천 이성이 만든 형식적 도덕 법칙을 자연의 영역에서 구현할 때 필요한 '실천적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천이성이 행위의 측면에서는 아무 내용이 없다고 비판받기도 한다지만, 칸트의 정언명령은 실천적 실천 원리의 절대적 기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 자신이 만든 법칙 즉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도록 행위하라는 정언명령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쉽게 말해 내가 남한테 하는 것을 남이 그대로 나에게 해도 된다고 생각할 때에만 그 행위를 하라는 것입니다. 칸트의 정언명령이라고 하면 허공에 붕 뜬 이상적 생각으로 치부되기 쉽지만, 현실의 곳곳에서 순간순간 우리 행위를 반성하고 이끄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오늘 샤르릉님이 사례를 주신 문제도 정언명령이 행위의 원칙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위에 개개의 특수들에 대해 '요리조리 따져보는' 반성 능력이 필요합니다만. ^^

 

 

다음주는 형이상학의 최고봉 (?), 헤겔입니다. 피히테와 셸링은 읽어 보는 정도로 넘어가겠습니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

p499 ~ 533

 

<2012 서양 철학사>

파일 39와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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