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KBS 다큐멘터리 <문명의 기억, 지도>는 매우 유익하다. 세계사 공부를 일단락하고 덧붙여 세계지리를 간단히 훑어보고 있는데, 그 첫 부분이 동서고금의 다양한 세계지도들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프톨레마이오스 지도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총 4부로 되어 있는데 나는 <1부 달의 산>이 가장 재미있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혼자 보기는 아까워서 스터디 팀에 소개하고 아예 한 주를 잡아 토론을 하기로 했다. 스터디 준비를 하면서 다큐를 다시 보았고, 보는 김에 대강이라도 정리해 두기로 했다. 4부는 이것저것 끌어 모아 구성이 산만하고 별 깊이가 없어 생략하고 1,2,3부만 정리했다.

 

 

 

1부 달의 산

  

 

<1부 달의 산>은 1402년 조선에서 그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미스터리를 밝히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작은 단서를 실마리로 찾아가는 그 과정은 마치 추리극과 같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한국사 강의에서 처음 본 지도다. 중국과 우리나라만 커다랗게 그려놓은 것이 너무 우스워 사실 자세히 보지도 않고 무시했던 지도다. 물론 한국사 시험을 대비해 ‘현존하는 동양의 최고 오래된 세계지도’ 라는 것은 머릿속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세계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지도라고 한다. 아프리카 대륙이 온전한 형태로 그려진 세계 최초의 지도라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국 옆에 딱 붙어 잘 구분되지 않는 인도에 비해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는 매우 분명하게 형태를 드러내고 있다. 포르투갈이 희망봉을 발견하기 약 100년 전 무렵에 바다로 둘러싸인 아프리카 남단의 모습이 정확히 그려진 것이다. 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파로스 등대도 표기되어 있다. 중국 너머로 나아가 본 적이 없는 조선이 어떻게 아프리카를 이렇게 정확히 알고 있었을까? 그 비밀의 열쇠가 바로 “달의 산” 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아프리카 부분>

 

지도 오른편 부분에 긴 강줄기가 내려와 두 갈래로 갈라지고 그 아래로 몇 개의 산들이 그려져 있다. 캡춰 화면이 희미해 잘 보이지 않는데, 다음 확대된 화면을 보면 산의 모습이 분명하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아프리카 부분>

 

물론 “달의 산”이란 표기는 지도에서 보이지 않는다. 자막이다. 그렇다면 이 산이 달의 산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대명국지도의 아프리카 부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현재 일본에 있다. 일본 학자들이 십여 년에 걸쳐 복원 작업과 연구를 하고 있는데 현재 5000개 정도의 지명을 찾았다고 한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필사본이라 알려진 “대명국지도” 역시 조선에서 만든 것인데 현재 일본에 있다. 대명국지도에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복원하지 못한 뚜렷한 지명이 하나 보이는데 “저블로함마”라는 언뜻 뜻을 알기 힘든 단어이다.

  

  <대명국지도의 아프리카 부분>

 

저블로함마는 아라비아어 “자바랄까마르”의 음차라고 한다. 자바랄까마르가 아라비아어로 바로 달의 산이다. 조선의 지도에 어떻게 해서 아라비아어가 등장하는 것일까?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순전히 조선에서 그린 지도가 아니다. 중국 너머의 세상을 모르는 조선이 아프리카를 상상해서 그려 넣을 수는 없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중국 원나라의 “혼일강리도”에 우리나라와 일본의 지도를 합쳐서 만든 편찬본이라고 알려져 있다. 지도의 지명들도 모두 원나라 시절에 쓰던 이름이다. 그런데 중국의 혼일강리도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나라 지도에 아라비아어를 음차한 지명이 있는 것은 충분히 그럴 듯하다. 몽골이 세운 원나라는 이슬람인들 즉 색목인을 매우 우대했다. 색목인은 몽골이 유라시아를 정복하는데 적극 협력하여 길잡이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원나라의 관리로도 많은 활동을 했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해안선이 매우 정확하게 그려진 것을 보아도 이 지도에 이슬람의 영향이 컸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아랍은 7C부터 바닷길을 개척했고 8C에는 바다를 이용하여 동남아시아는 물론 중국과 우리나라까지 도착했다. 원나라 역시 바닷길을 중시했다.  유목민족이라 해상무역을 등한시 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원나라는 대운하를 정비하여 해상무역을 활발히 전개했다. 항저우, 취안저우, 광저우 등의 항구도시가 이때 번영하였다. 원은 대운하로 내륙의 물건을 실어 색목인의 도움을 받아 아랍인의 바닷길을 이용해 동서무역을 전개했을 것이다. 이런 활동들이 조선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정교한 해안선으로 나타난 것이다.

 

다시 달의 산으로 돌아가자.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있는(추정되는) “저블로함마”는 이 지도가 이슬람의 영향을 받았음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보다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있을까?

 

 

 

알 이드리시 지도는 1154년에 만들어진 이슬람의 대표적인 지도이다. 세계지도 한 장과 지역도 70장으로 구성된 지도책인데, 심지어는 신라도 섬으로 그려져 있다. 남북을 뒤바꿔 그리는 이슬람 지도의 특성상 위쪽에 보이는 대륙이 아프리카이다. 아프리카에서 단연 눈에 뜨이는 것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보았던 두 줄기의 강과 그 끝에 있는 산이다. 언뜻 보면 낙하산처럼 보이는 저것이 물론 달의 산일 것이다. 확인해 보자. 

  

<알 이드리시 지도의 아프리카 부분>

 

산의 위쪽에는 아라비아어로 “자바랄까마르” 즉 “달의 산”이라는 표기가 선명히 남아있다. 하지만 비밀의 끝이 알 이드리시 지도는 아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지리학」의 아랍어 번역본의 아프리카 부분 >

 

이슬람세계는 또 하나의 유명한 세계지도를 가지고 있다. 820년에 아랍어로 번역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이다. 알 이드리시 지도의 “자바랄까마르”는 프톨레마이오스지도의 번역본에서 나온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이슬람은 중세 유럽이 무시했던 그리스 학문을 아랍어로 번역하여 꾸준히 발전·전파시켰다. 9C에 아랍인은 유클리드 기하학도 번역해 놓았다.

  

 

AD150 년 경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관장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가 그린 세계 지도이다. 그의 「지리학」에는 한 장의 세계지도와 26장의 지역도가 있다. 프톨레마이오스 지도는 2부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는데 한마디로 인류가 그린 최초의 가장 멋진 세계지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우리의 주제인 달의 산에 집중해 보자.

 

  <프톨레마이오스 지도의 아프리카 부분 >

 

프톨레마이오스 지도의 아프리카 지역도에 지금까지 계속 보아서 익숙해진 그림이 있다. 달의 산이다. 그리스어로 어떻게 읽는지는 모르겠는데 대강 “lune monf." 를 보면 lunar mount가 연상된다. 달의 산이다.

 

먼 길을 왔다. 1402년 조선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그려진 달의 산은 약 1250년 전인 AD 150년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있던 프톨레마이오스가 그린 바로 그 산이었다. 이 달의 산을 중세 암흑기에 보존하여 전파한 것은 이슬람이었고 조선은 원을 통해 획득한 정보들로 가만히 앉아서도 아프리카의 모습을 실제처럼 그려넣을 수 있었다.

 

달의 산은 현재 우간다에 있는 르웬조리산이라 추정된다. 르웬조리산은 지역민들에게 나일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다. 나일강은 달의 산에서 발원한 두 물줄기가 합쳐져 지중해로 흘러가는 길고 긴 강으로 고대 지도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집트 문명의 근원을 달의 산이라 해도 될 것 같다.

 

 

 

2부 프톨레마이오스

 

 

 

프톨레마이오스는 AD 90년 경 고대 이집트에서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며 AD 168년쯤 알렉산드리아에서 사망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이라고 할 때의 그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인데, 지리학에도 뛰어났다. 그런데 프톨레마이오스를 다큐에서는 그리스인이라고 불렀다. 왜 그를 그리스인이라고 할까?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는 기원전 수 천 년부터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지만 BC 6C에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에 병합된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여러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다. BC 4C에는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정복되었고 알렉산드로스 사후에는 그리스계(마케도니아계) 왕조가 세워졌다. 기원 시작 무렵에는 옥타비아누스에게 패배하면서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로마가 동서로 분열된 이후에는 동로마제국에 속했다. 7C부터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여러 이슬람 왕조들을 거쳐 지금까지도 이슬람세계에 속해 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지리학」을 쓴 AD 150년 경 이집트는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니 프톨레마이오스는 로마 시민이다. 그런데 보통은 그리스인이라고 한다. 당시 로마의 통치 방식과 로마 속주에 대한 명칭을 잘 몰라서 왜 그렇게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당시 이집트는 로마 통치 아래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상세한 삶에 대해서는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 사회 일원이라는 것 이외에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프톨레마이오스는 그리스인인데, 그가 속한 곳은 이집트였고, 시대는 로마제국 시기다. 우리가 고대 그리스하면 떠올리는 그 폴리스 국가들과는 상관없다는 것이 사실 중요하다. 헷갈릴 수 있으니까.

 

  

 

각설하고 프톨레마이오스 지도는 그리스의 자연과학과 로마의 동방 바닷길 개척이 결합되어 탄생한 고대의 걸작이다.

 

피타고라스와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미 지구가 구형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식 때 지구의 그림자를 보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확인했다. 그리스의 천문학과 수학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곡선으로 표현했다. 경도와 위도처럼 위치를 나타내는 수치도 가로와 세로 선에 기입해 넣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에는 서로 아프리카부터 동으로 중국까지 그려져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인도양이 말레이반도에 의해 닫혀있다는 것이다. 믈라카 해협을 넘어 또 다른 바다가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왜 이렇게 그렸던 것일까? 그 답은 당시 로마가 개척한 동방 바닷길에 있다.

 

로마는 동양과의 교역에 주로 육로를 이용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듯 로마는 가는 곳마다 길을 닦았고 그 길은 유럽 서쪽 끝에서 인도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왕조의 후예인 페르시아 유목민들이 기세를 불리면서 육로가 불안해졌다. 로마는 동양으로 가는 새로운 길이 필요했다. 로마가 선택한 길은 지중해에서 홍해를 거쳐 인도의 남서 해안을 돌아가는 바닷길 이었다. 그 흔적으로 인도 남단 지역에는 로마 시대에 전해진 가톨릭이 계승되어 오고 있다.

 

인도양으로 나아간 로마는 말레이반도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당시 항해술과 바닷길의 상태는 로마가 믈라카 해협을 넘어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로마는 말레이 반도와 아시아 대륙을 잇는 크라 지협에서 배를 내려 코끼리를 타고 육로로 나아갔다. 베트남을 통과해 로마가 도착한 곳은 중국이었다. 당시 중국은 한나라 때였고 역사서 「후한서」에는 이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AD 166년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사신이 처음으로 베트남을 거쳐 중국에 왔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로마는 직접 바닷길을 개척하여 중국과 무역을 함으로써 동양의 끝에는 중국이라는 “비단의 나라”가 있다는 사실과 바다는 말레이반도에 의해 가로막혀 있다는 경험적 인식을 갖게 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는 이러한 로마의 경험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물론 프톨레마이오스 지도의 제작이 AD 150년 경으로 추정되는데 반해 「후한서」는 최초의 로마 사신이 AD 166년에 도착했다고 기록하고 있어, 로마의 중국 방문이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연대기적으로 조금 안 맞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다큐는 그냥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뭐 워낙 추정치이니까 하고 나도 은근슬쩍 의문을 누른다.

 

AD 150년 경이라는 고대에 프톨레마이오스가 과학과 항해 자료를 바탕으로 놀라운 지도를 만들었지만, 이 지도는 곧 유럽인의 머리에서 지워졌다. 중세 유럽의 세계지도는 모두 성경을 바탕으로 하느님이 창조했을 법한 세계를 상상으로 그렸다. TO 지도라고 하는데, 프톨레마이오스 지도와 비교해 보면 그 퇴보가 놀랍다.

 

프톨레마이오스 지도는 르네상스와 함께 말 그대로 부활했다. 비잔티움제국이 멸망하자 다른 많은 자료들과 함께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도 이탈리아로 탈출했다. 이렇게 유럽에 다시 등장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인쇄된 것이 프톨레마이오스 지도라고 할 정도다. 콜럼부스는 이 지도를 가지고 항해를 떠났으며 지구가 구형임을 입증하고자 했다.

 

 

 

3부  프레스터 존

  

 

 

세계사 공부를 하면서 유럽의 신항로 개척의 동기 중 하나로 프레스터 존 전설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 신항로 개척의 가장 큰 이유는 동방의 향신료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시덥 잖은 전설로 생각하고 말았다. 그냥 사람들 사이에서 떠돈 소문 정도로. 그런데 3부 <프레스터 존>은 그 전설의 실체를 파헤치며 그것이 당시 유럽을 얼마나 떠들썩하게 했는지를 보여주었다.

 

유럽에는 두 번의 시대에 프레스터 존을 찾아 나선 역사가 있다. 둘 다 이슬람과 관련이 있다. 첫 번째가 1144년 이슬람의 침입 때이다. 아브라함의 탄생지인 샤르우르파가 함락되자 유럽은 충격에 빠졌다. 그 직후인 1145년에 동방에 기독교 왕국을 세운 프레스터 존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프레스터 존이 예루살렘을 도우기 위해 왔다가 티그리스 강에 막혀 돌아갔다는 주교의 보고가 교황청에 올라왔다. 프레스터 존이 쓴 편지라는 것도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교황청은 프레스터 존을 찾아 나서기로 했는데 그때가 마침 몽골이 유라시아를 휩쓸기 시작할 때였다. 유럽은 몽골이 프레스터 존의 왕국이 아닐까 하고 사신을 파견했지만 몽골의 칸으로부터 모욕적인 취급을 받았을 뿐이다.  원나라에서 활동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프레스터 존에 대한 언급이 있다.  

 

유럽에 또 다시 프레스터 존의 전설이 부활한 것은 오스만제국이 비잔티움을 멸망시키면서 부터다. 오스만제국을 물리치기 위해 유럽은 또다시 프레스터 존을 찾아 나섰다. 이 다큐에 의하면 그것이 포르투갈이 신항로 개척을 하게 된 동기이다. 하지만 보통은 다르게 설명한다. 물론 오스만제국 때문이긴 하다. 오스만제국이 지중해를 장악하자 동방 무역이 어렵게 되었고,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동방의 향신료를 얻기 위해 유럽은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했다. 이것이 신항로개척의 이유라는 것이 교과서적인 설명이다.

 

  

 

포르투갈이 프레스터 존을 찾아 나서기 위해 만든 프라마우로 지도이다. 1459년에 만든 이 지도에는 프레스터 존 왕국의 위치가 그려져 있다. 에티오피아이다.

  

 

<프라마우로 지도의 에티오피아 부분>

 

에티오피아에는 프레스터 존이 세운 금은이 가득한 왕국이 있었을까? 포르투갈의 인도항로를 개척한 바스쿠 다 가마도 프레스터 존을 찾아서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에티오피아로 항해했다고 한다. 그의 일지 곳곳에는 프레스터 존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바스쿠 다 가마의 항해 일지>

 

당연히 에티오피아에는 프레스터 존의 왕국은 없었다. 유럽은 끝내 프레스터 존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프레스터 존의 전설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프레스터 존은 네스토리우스파라고 알려졌다. 네스토리우스는 콘스탄티노플 교회의 주교로 431년 3차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몰려 파문당했다. 네스토리우스는 마리아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네스토리우스를 따르던 일파는 로마제국을 떠나 동방으로 건너갔다. 네스토리우스파는 한때 동방에서 번성하기도 했는데 그곳이 당나라이다. 네스토리우스파는 635년에 당나라에 유입되었고 경교라는 이름으로 곳곳에 교회가 세워질 만큼 성행했다. 781년에 세워진 "대진경교유행중국비"에는 중국에 전래된 경교의 역사와 활동이 적혀있다. 그러나 경교는 당말기에 탄압을 받아 쇠퇴하였다.

 

당나라의 장안에서 한때 꽃피운 네스토리우스파가 아마도, 동방에 기독교 왕국을 세웠다는 프레스터 존의 전설을 만들어냈던 것 같다. 7C 장안 곳곳에 세워졌던 경교의 교회가 수 백 년이 지나 유럽에서 신화로 부활했던 것이다. 이슬람세력으로부터 유럽을 구원해 줄 부유하고 강력한 기독교 국가에 대한 믿음으로서. 

 

* 모든 캡춰 화면은 다큐에서 따온 것이다. 단 도표는 직접 그린 것이다. 

 

*지도에 관련된 좋은 글이 있어 링크해 둔다.

http://ppss.kr/archives/17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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