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슬람 세계를 누빈 나라들

정통 칼리프 시대(642)에 사산왕조 페르시아를 무너뜨린 이슬람 세력은 20세기 초까지 서아시아 지역을 지배하였다. 다양한 민족의 여러 왕조가 명멸했으나, 신기하게도 이들은 모두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이슬람 세계를 이어갔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이슬람교를 세우고 정복활동을 시작한 무함마드와 그의 후계자들에 의한 정통 칼리프 시대, 우마이야 왕조, 아바스 왕조까지는 아랍인들이 이슬람세계의 주인이었다.

<EBS중학 필독중학세계사>
1055년 토그릴 베그가 바그다드를 점령하면서 이슬람 세계의 주인은 튀르크족으로 바뀌었다. 튀르크는 6세기에 중앙아시아에서 유목제국을 세운 돌궐족이다. 돌궐족은 7세기 동아시아 십자외교의 한축을 담당하기도 했다. 돌궐-고구려-백제-왜가 세로축을 수․당-신라가 가로축을 형성하며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나당연합군이 승리하자 돌궐은 당에 의해 서쪽으로 밀려났다. 11세기에 이 돌궐족의 한부족인 셀주크 튀르크가 이슬람 세계의 주인이 된 것이다. 셀주크 튀르크는 토그릴 베그의 할아버지인 셀주크 때에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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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8년 몽골이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이름뿐인 아바스 왕조를 멸망시켰다. 칭기즈 칸의 자손인 훌라구가 이슬람 세계를 재패하고 일한국을 세웠다. 일한국은 7대 칸인 마흐무드 가잔 시기에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P228>
몽골이 물러간 이후 이슬람 세계는 다양한 세력이 등장하였다. 13세기에는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가, 14세기에는 오스만 튀르크가, 15세기에는 티무르 제국이 지배하였다. 16세기에 일어난 사파비 왕조는 페르시아의 영광을 되살리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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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는 일한국이 무너진 후 옛 몽골의 터전을 누비며 15세기 중앙아시아의 강자로 떠올랐다, 몽골의 후손을 자처한 티무르는 몽골제국의 부흥을 꿈꾸며 대규모 정복활동에 나섰다. 티무르는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하나로 연결하여 페르시아-이슬람 문화를 발달시켰다.
15세기 말 티무르 제국이 무너지면서 이 지역이 튀르크인과 페르시아인 지역으로 나뉘자, 이스마일 1세가 이 틈을 비집고 사파비 왕조를 일으켰다.(1502) 이스마일 1세는 시아파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고 아케메네스 왕조와 파르티아, 사산왕조의 뒤를 이어 페르시아의 영광을 되살리려 하였다.
2. 세 대륙에 걸친 나라, 오스만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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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1세는 튀르크계 이슬람이다. 13세기 셀주크 튀르크가 몽골과의 싸움에서 패하면서 작은 나라들로 나누어질 때, 비잔티움 제국과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작은 나라를 이루었다. 발칸반도까지 세력을 확장하던 바예지드 1세는 14세기 이슬람 세계의 지도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티무르를 공격하다 앙카라 전투에서 패하고 포로로 잡혀가 죽었다.

잠시 주춤했던 오스만제국은 무함마드 2세 때인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고 비잔티움 제국을 멸망시켰다. 크리스트교의 천년제국을 무너뜨린 것이다.
셀림 1세는 페르시아의 사파비 왕조를 꺾고, 이집트를 지배하던 맘루크 왕조를 멸망시켰다. 이집트에 있던 칼리프로부터 칼리프를 물려받아 술탄-칼리프가 되었다. 셀주크 튀르크 이래 술탄과 칼리프가 분리되었던 체제에서 다시 정교일체의 체제를 갖추고 명실상부 이슬람의 종주권을 장악했다.
오스만제국의 전성기는 술레이만 대제 시절이다. 유럽을 공격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프레베자 해전을 통해 지중해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술레이만은 정복뿐만 아니라 법전을 만들고 체제를 정비하는 등 오스만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17세기에 오스만 제국의 영토는 절정에 달하였다. 지중해를 둘러싼 세 대륙이 오스만의 깃발 아래 놓였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하여 대부분의 비서구권 국가가 그러했듯 서양제국주의의 침탈 아래 찢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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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은 세 대륙, 20개 민족, 육천만 명의 인구를 거느리며, 이슬람의 정신으로 페르시아의 전통과 튀르크의 기질, 아라비아의 솜씨를 버무려 거대한 문화를 발달시켰다.
대제국이 대부분 그러하듯 관용의 정신으로 여러 민족을 아울렀다. 자치권과 종교적 자유를 허용하는 밀레트 제도가 대표적이다. 특징적인 군대조직으로는 예니체리가 있다.
동서무역로와 지중해를 장악하여 무역이 크게 발달하였다. 커피가 널리 퍼져 나간 것도 오스만제국 때이다. 그들이 커피를 즐겨 마시던 카웨가 유럽으로 전파되어 카페가 되었다. 서유럽의 카페는 자유로운 토론과 모임의 장소로 이후 시민 혁명에도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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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이 쇠퇴하며 각지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오스만 제국은 대부분의 영토를 잃고 1922년 멸망했다. 현재 터키 공화국이 튀르크족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3. 인도의 새로운 전통, 무굴 제국

인도 왕조를 특징짓는 핵심어는 종교이다. 철기시대 아리아인들은 다수의 원주민을 지배하기 위해 카스트제도에 바탕을 둔 브라만교를 신봉하였다. 인도를 처음으로 통일한 마우리아 왕조는 BC6세기 석가모니가 만든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쿠샨 왕조 때는 마우리아 왕조 시기의 상좌부 불교 보다는 중생 구원을 주장한 대승 불교가 성행하였다. 인도 고대국가를 완성한 굽타 왕조 때는 마침내 힌두교가 탄생하였다. 힌두는 신드라는 지역 이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신드가 힌두로, 힌두가 인도로 전해지며, 힌두교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즉 힌두교는 인도의 종교라는 뜻이 된다.
인도의 중세는 이슬람교가 들어온 시기이다. 10세기 말부터 이슬람 세력의 침입이 본격화되고, 1206년에 인도 최초의 이슬람 왕조가 탄생하였다.
인도의 마지막 왕조인 무굴 제국은 또 하나의 이슬람 왕조이지만 독특한 문화를 창조하였다. 종교 뿐 아니라 언어, 예술 등에서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융합한 힌두-이슬람 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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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몽골제국이 유라시아를 휩쓸 때도 델리술탄 왕조는 살아남았다. 히말라야 산맥이라는 천연 요새 덕분인지 몽골로서는 별 가치가 없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몽골제국이 거의 궤멸 된 16세기가 되어서 인도 땅에 새로운 ‘몽골 제국’이 수립되었다. 바부르의 ‘무굴 제국’이다. 무굴은 페르시아어로 몽골을 의미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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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부르는 부계로는 티무르의 5대손, 모계로는 칭기즈 칸의 15대손이라고 한다. 어쨌거나 스스로 몽골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바부르가 인도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인도는 몽골인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인데, 이 몽골인은 이슬람교를 믿었다.
무굴제국의 전성기는 바부르의 손자 악바르 때이다. 영토를 확장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였을 뿐 아니라, 힌두교를 관용하는 한편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융합하는 정책을 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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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제국을 특징짓는 요소는 힌두-이슬람 융합 문화이다. 현재도 파키스탄의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우르두어는 이슬람 지배자들이 인도 용병을 부리기 위해 만든 언어이다.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장점을 통합하여 만든 시크교도 지금까지 인도 인구의 2~3%가 믿고 있는 종교이다. 어디 있는지, 어느 시대인지는 몰라도 누구나 한번은 들어보고 사진으로 보았을 타지마할 역시 무굴제국이 만든 힌두-이슬람 문화의 결정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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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아우랑제브는 무굴제국의 영토를 최대로 확장하였으나 이슬람 제일주의를 지향하면서 무굴제국의 쇠퇴를 촉발하였다. 힌두교도와 시크교도 등 비이슬람교도의 반란이 일어났다. 1707년 아우랑제브가 죽자 지방 세력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제국은 델리와 그 주변을 다스리는 작은 왕국으로 축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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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제국은 1858년 명목상의 마지막 황제가 폐위되고, 영국국왕이 인도 황제를 겸하면서 공식 멸망했다. 영국의 식민지가 된 것이다.
하지만 서구열강들이 인도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15~6세기부터이다. 1498년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서남 해안의 캘리컷에 도착한 이후 포르투갈이 인도양 향료무역에 끼어들었다. 무굴제국의 아우랑제브 사후 영국과 프랑스가 해안으로 침투하여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영국은 프랑스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인도의 지방 정권을 하나씩 격파하였다. 인도는 이렇게 ‘영국의 젖소’가 되어갔다.

<EBS중학 필독중학세계사>
바닷길의 동서무역로를 따라가면 믈라카 해협이라는 지름길이 나타난다. 무역풍까지 불어 해상무역에는 더없는 요충지이다. 믈라카는 원래 인도 출신 이주민들이 사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이슬람 상인들과 손을 잡고 동남아시아 최초의 이슬람국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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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포르투갈이 인도양 항로를 개척하면서,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네덜란드의 식민지로 다시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과정을 겪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