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펭귄클래식 1
토머스 모어 지음, 류경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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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의 『인문 고전 강의』나 『역사 고전 강의』는 매우 재미있는 책이지만, 그가 ‘강의’에서 다루고 있는 ‘고전’들은 읽을 엄두를 내기가 어렵다.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나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는 물론이고 단테의 『신곡』, 벤담의 『파놉티콘』 등도 마음만 들썩일 뿐 집어 들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르네상스시기에 대한 역사 공부를 하면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꼭 읽으려 했다. 두 책 모두 강유원이 책과 라디오 방송을 통해 ‘강의’한 것들이다. 『군주론』은 몇 년 전에 읽기는 했는데, 그다지 큰 느낌은 없었다. 딱딱하고 너무 처세술적이어서 당대의 이탈리아에서 어떤 반향을 일으켰던,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던 상관없이, 내게는 그다지 교훈적이지도 흥미롭지도 않았다. 무장한 예언가 armed prophet 정도가 고개를 끄덕일 만 했다. 힘도 없고 비전도 없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지쳐가던 때였기, 지금은 더욱 그렇지만, 때문이다.

 

그렇게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읽게 되었다. 토마스 모어는 1478~1535, 에라스뮈스 1466(?)~1536, 마키아벨리 1469~1527 와 함께 15~6세기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사상가이다. 막 신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에 대한 탐구를 새롭게 하던 시대의, 500여 년 전의 인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책은 놀․ 랍․ 다.

 

펭귄 코리아 판의 서문을 쓴 폴 터너는 또 다른 면에서의 놀라움을 이렇게 쓰고 있다.

 

「진정한 어려움은 이런 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유토피아 사회의 여러 양상들 때문에 생겨난다. 독실한 가톨릭 저자였던 저자가 과연 안락사, 성직자의 결혼, 성격 불화가 원인인 부부의 협의이혼 같은 일들을 옹호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묘비명에 스스로를 ‘이단자들에게 눈엣가시 같았던 사람“으로 묘사했고, 이단자들을 비난하는 글 수백 페이지를 썼던 사람이 과연 종교적 관용을 권장할 수 있었겠는가? 엄청난 사유지 소유자였으며 나중에 부를 황금 알을 낳는 암탉에까지 비유했던 사람이 과연 최초의 공산주의자일 수 있었겠는가? p15」

 

위키백과 정도의 약력 소개를 보고 『유토피아』를 읽으면 정말로 폴 터너와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삶이 보여주는 궤적과 『유토피아』가 그리고 있는 이상향의 이런 괴리가 이 책에 대한 분분한 해석과 논쟁을 낳고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폴 터너는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토마스 모어가 살던 당대의 영국이 이런 나라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영국은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고 단지 음식을 훔쳤다는 죄목으로 교수형에 처해지고 있던 상황에서도, 한 사람이 막대한 부를 향유하는 일이 가능했던 나라였다. .. 개인의 자유에 대해 말한다면, 튜더 왕조 시대의 영국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었다. 모어 자신도 그가 실제로 말한 내용이나 행동한 내용 때문에 처형당한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결연하게 품고 있던 개인적 견해 때문에 처형된 것이다. 교회의 수장으로 놀랍게 변신한 헨리8세의 처신에 대해 아무런 코멘트도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했다. 그가 침묵했다는 사실 자체가 정치적 범죄였던 것이다. ... p23」

 

『유토피아』가 전해주는 유토피아는 우리에게 유토피아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요소가 많다. 집단적이고 획일화된 모습은 언뜻 우리가 그 실패를 지켜보았던 사회주의 국가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15~6세기의 영국 사회를 감안한다면, 왜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를 위해 이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만하다.

 

유토피아의 흥미로운 모습을 몇 가지 옮겨 적으려고 한다. 논자들이 그런 것처럼 이 책은 찬사를 바칠 부분도 비판을 할 부분도 많다. 하지만 새롭지도 재미도 없을 그런 말을 보태기보다는 토마스 모어의 놀라운 상상과 통찰을 새겨 둠으로써 기억의 쇠퇴에 대비하는 것이 유익할 듯하다.

 

 

1. 사유재산이 없는 유토피아에서 외국과의 통상과 전쟁을 위해 필요한 금을 다루는 방식 p143~5

 

이런 상황에서 돈을 만드는 원재료인 금과 은은 유토피아 인 누구로부터도 그것들이 원래 받아야 할 본질적인 가치 이상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두 귀금속의 가치는 철의 가치보다도 훨씬 더 낮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철이 없다면 인간의 생활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불이나 물이 없을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금이나 은이 없어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희소성의 가치라는 바보 같은 개념만 빼놓는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머니와도 같은 자애로운 자연은 신중하게도 흙, 공기, 물처럼 가장 위대한 은총을 바로 우리의 눈앞에 배치해 놓으셨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게 몰래 감추어두셨습니다.

 

그러나 만약 유토피아 인들이 이런 귀금속들을 귀중품 보관실에 넣고 자물쇠로 잠가 놓는다면, 거리의 평범한 시민들은 시장이나 벤치이터들이 자기들을 속이고 있거나 그 귀금속들을 이용하여 사익을 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바보 같은 의심을 할지도 모릅니다. (평범한 시민들이 그런 의심을 하는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알고 계시겠지요.) 물론 귀금속을 장식용 접시나 예술 작품으로 환원해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우 그것들을 다시 녹여야 하거나 용병들에게 지불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그건 주인에게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 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유토피아 인들은 귀금속을 다루는 한 가지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그들의 다른 관습들과 완벽하게 일치하지만 우리의 관습과 정반대되는 방법입니다. 특히 금을 보관하는 우리의 관습과 반대입니다. 그러니 두 분께서 실제로 직접 보시기 전까지는 이런 일이 도저히 믿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방식에 의하면 접시나 음료 용기는 비록 아름다운 장식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유리나 흙 같은 매우 값싼 재료로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개별 가정이나 공동 식당에서 요강 같은 가정용 비품을 만들 때에 은이나 금도 보통의 재료로 사용됩니다. 그들은 또 단단한 금으로 만든 사슬과 족쇄를 이용하여 노예를 억류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불명예스러운 죄를 지은 자들은 귀와 손가락에 금반지를 달고, 목에 금목걸이를 차고, 머리에 금관을 강제로 쓰고 다녀야 합니다. 그들은 사실 금과 은, 두 귀금속을 경멸의 대상으로 만드는 일이라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합니다. 그 의미는 이렇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금은과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 갑자기 생기더라도 누구든 단 한마디도 애석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을 거라는 것입니다.

 

 

2. 치료가 불가능하고 극심한 통증을 일으키는 만성 질환을 앓는 환자에게 존엄사를 권장 p174

 

“현실을 직시합시다. 당신은 결코 정상적인 생활을 다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되고 당신 스스로에게도 짐이 될 뿐입니다. 사실상 당신은 실질적으로 사후 체험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당신의 삶이 이토록 비참한 마당에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당신은 고문실에 수감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걸 깨부수고 더 나은 세상으로 탈출하지 않습니까? 아니라면 지시만 하십시오. 우리가 당신의 탈출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온갖 손실에서 손을 떼는 일은 상식에 불과한 일입니다. 그리고 성직자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일은 신앙적으로 경건한 일이기도 합니다. 성직자는 하느님의 대변자이기 때문입니다.”

 

 

3. 전쟁을 싫어하지만 꼭 필요한 경우 비날리아 용병(스위스 용병으로 추정)을 고용하는 것에 대하여 p195

 

아시다시피 유토피아 인들은 고용 목적을 위해 착한 사람들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 것 못지않게 전쟁 목적을 위해 활용할 악한 사람들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그들은 넉넉하고도 후한 돈을 미끼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전쟁 사업에 뛰어들도록 비날리아 인들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비날리아 용병들은 좀처럼 무사히 살아 돌아와서 자신이 받아야 할 보상금을 요구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일단 무사히 살아 돌아오는 용병들은 늘 충분한 보상을 받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앞으로도 이 일이 똑같은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유토피아 인들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비날리아 인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지 괘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 지상에서 비날리아 인들처럼 더러운 인간쓰레기들을 청소하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이 인류에게 더없는 친절을 베푸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4. 종교적 관용 p205~7

 

물론 많은 유토피아 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것을 막으려고 하지도 않고 개종자들을 공격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곳에 있던 동안 우리 신도들 중 한 명이 어려움에 빠진 적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우리가 그러지 말라고 만류했는데도 불구하고 세례를 받자마자 즉시 기독교 신앙에 대한 대중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설교를 하며 그는 신중한 분별력보다는 다소 과한 신앙적 열정을 내보였습니다. 결국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는 우리 종교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다른 모든 종교들을 비난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는 최고조로 목소리를 높여 다른 종교들은 모두 타락한 미신들이며, 그런 것들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불경스러운 괴물들이고 영원히 지옥 불에 빠져 벌 받는 운명에 처하게 될 거라고 외쳐댔습니다. 얼마 동안 이런 식으로 설교를 계속하고 다닌 끝에, 결국 그는 체포되고 기소되었습니다. 신성모독죄가 아니라 안녕질서 교란죄로 말입니다. 그들 나라의 헌법 내용 중 가장 오래된 원칙 하나가 바로 종교적 관용이었기 때문에 이런 형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런 종교적 관용의 원칙은 그 기원이 정복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정복 전까지만 해도 이 섬나라에서는 끊임없이 종교 분쟁들이 일어나고 있었고, 다양한 적대적 종파들이 심지어 나라를 지키는 일에도 협력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그런 행태를 들은 정복자 유토포스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자신이 그들 모두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승리를 거두자마자 즉시 그는 한 가지 법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종교 행위를 할 수 있고, 합리적인 설득에 의하여 조용히 예의바르게 하기만 한다면 자유롭게 다른 사람들을 자기 종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혹 다른 사람들을 개종시키는데 실패한다 하더라도 다른 종교들에 대해 적대적인 공격을 가한다거나 폭력이나 개인적인 학대를 행사하는 일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종교 논쟁에서 지나치게 공격적인 태도를 지니는 데 대한 보통의 징벌은 추방이나 노역 형에 처하는 것입니다.

 

유토포스가 이 법을 만든 이유는 사회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바로 이런 법이 종교 자체에도 최선의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떤 신조가 올바른 것인지 주제넘게 나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그는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숭배를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신조들을 믿게 만드셨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다른 신조를 믿고 있는 사람들을 겁주어서 자신의 특정한 신조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일은 어리석고 오만한 일이라는 점을 명백하고 확실하게 확신했습니다. 설령 진정한 종교는 오직 하나밖에 없고 그 밖의 다른 종교들은 모두 말이 안 되는 거짓 종교들이라 하더라도 이 문제가 조용히 합리적으로 논의되기만 한다면 궁극적으로 언젠가는 참된 진리가 저절로 우세를 점하게 될 거라는 사실이 그에게는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처럼 생각됐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만약 무력의 힘으로 결정된다면 가장 훌륭하고 가장 영적인 형태의 종교가 가장 어리석은 형태의 미신들 앞에서 굴복을 해버리는 결과가 초래될 것입니다. 마치 가시나무나 들장미 넝쿨들이 밀이나 옥수수보다 더 잘 자라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가장 못된 사람들이 항상 가장 집요한 법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는 신앙을 선택하는 일을 자신의 생각에 따라 개인이 결정하는, 자유로운 의사 결정의 문제로 맡겨 놓았습니다.

 

 

 

특히 종교에 관한 부분은, 토마스 모어 자신이 가톨릭의 수호자로서 여섯 명의 루터파를 화형대에 올리고 마흔 명을 교도소에 보냈던 사실에 비추어 보면, 믿어지지 않는 서술이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 어떻게 이토록 다른 두 사상이 공존할 수 있었을까? 이 간극에 맞닥뜨린 토마스 모어는 “여기가 바로 로도스다!”고 외치는 대신 유토피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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