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배운 60갑자.

모두들 갑자년을 서기년으로 환산해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여러 가지 방법이 나온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은 계산법도 있지만, 그만큼 학습방법으로 유행이란 말이겠다. 하긴 이 방법을 알면 연도순으로 나열하라는 문제는, 예전에는 이런 문제 많았다, 외우지 않고도 풀 수 있다. 가령 조선 말기에 연이어 터진 복잡한 사건들, ‘을미사변 갑오개혁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사조약’ 정도는 그냥 풀 수 있다. 역사가 아니라 수학문제가 되는 셈이다. 수학에도 반드시 외워야 할 공식이 있는 것처럼 갑자년에도 꼭 외워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천간(天干)과 지지(地支).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소위 ‘간지干支’라는 것을 외우고 있었다. 외웠다기보다는 저절로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매일 손가락을 짚어가며 운세를 살피셨던 덕분이다. 천간은 하늘의 기氣를, 지지는 땅의 (물)질質을 나타내며, 각각 10개와 12개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암기법으로는 10간과 12지가 조합하여 60갑자를 이루는 법칙만 알면 된다. 그런데 한걸음만 더 나가보면 사주팔자四柱八字라는 것의 의미도 조금 알 수 있다.

 

음양오행이란 말은 참 지겹도록 들었다. 이 지겨움 속에는 남자는 양, 여자는 음이라는 성차별 문화에 대한 반감이 숨겨져 있다. 그러나 음양오행은 음과 양의 차별이 아니라 음과 양의 끊임없는 변화를 성찰한다.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되고 음이 그 끝에 이르면 양이 된다. 양이 곧 음이고, 음이 곧 양이다. 오행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다섯 가지를 말한다. 이 다섯 가지는 상생과 상극의 관계에 있다.

 

사주 四柱는 말 그대로 네 개의 기둥이다. 보통 점을 본다고 하지만, 명리학 같은 동양철학은 점이 아니라 사주를 본다. 우리가 태어난 연월일시年月日時. 이 네 가지가 우리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사주가 진실로 운명을 좌우한다면 제왕절개야말로 부모가 줄 수 있는 최고의 탄생 선물이 될 것이다. 사주가 팔자를 바꾼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맞는 것도 같고 틀린 것도 같다. 사주가 곧 팔자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기둥은 각각 두 개의 글자를 갖는다. 4*2=8. 그래서 사주팔자四柱八字다. 이 여덟 개의 글자에는 내 삶의 음양과 오행이 들어있다.

 

여기서 다시 우리의 주관심사인 육십갑자로 돌아가야 한다. 천간과 지지를 보자.

 

 

 

 

 

해가 바뀔 때 마다 반짝 유행하는 것이 띠와 갑자년이다. 2015년은 을미년, 양의 해다. 갑자년 표기가 뭔지 몰라도 습관처럼 그렇게 한다. 임진왜란이니 병자호란이니 갑오농민혁명이니 하는 것들을 우리 때만해도 고유명사처럼 외웠지, 임진년에 왜구가 일으킨 난이라는 식의 풀이는 생각지도 않았다.

 

갑자년을 구성하는 방식은 천간의 한 글자와 지지의 한 글자를 결합하는 것이다. 그래서 맨 처음이 ‘갑자’가 된다. 두 번째는 갑축이 아니라 ‘을축’ 이다. 병인, 정묘... 이런 결합 방식이기 때문에 절대로 ‘갑축’이 나올 수 없다. 왜 그럴까? 천간이 10개, 지지가 12개이기 때문에 천간을 한 바퀴 돌면 지지는 두 글자가 남는다. 그래서 갑술, 을해, 병자... 로 연결된다. 홀수 천간은 홀수 지지와 짝수 천간은 짝수 지지와만 결합한다. 그 결과 60갑자가 된다. 만약 지지가 11개였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110갑자가 되지 않았을까?

 

천간이 10개라는 것은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횡재라고 할 수 있다. 서기가 10진법이니 서기년의 끝자리와 갑자년의 앞 글자는 일대일 대응한다. 아마도 옛 문서를 대조해서 찾아낸 것이겠지만, 천간의 갑은 연도 끝자리 4에 해당한다. 1894년은 갑오년, 1904년은 갑진년, 1914년은 갑인년, 1924년은 갑자년, 1934년은 갑술년, 1944년은 갑신년, 1954년은 다시 갑오년. 갑오농민혁명이 일어난 해를 묻는 4지선다형이라면, 정확한 연대는 몰라도 일단 끝자리 4가 붙은 것이 정답 후보가 된다. 그런 행운을 허용하지 않는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할까? 4개 모두 4로 끝난다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인터넷에는 갑자년의 뒷 글자 즉 지지와 숫자를 대응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나온다. 그런데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 방식은 이런 거다.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들 중 하나만 외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05년 을사늑약만은 확실히 외운다. 그렇다면 1904년은? 갑진년이다. 천간의 ‘을’ 앞이 ‘갑’. 지지의 ‘사’ 앞이 ‘진’. 그렇다면 갑오년은 몇 년일까? 갑진년의 전후로 10년 단위씩만 찾아보면 된다. 이걸 어떻게 하냐고? 해답은 천간이 10개, 지지가 12개라는 것에 있다. 천간 한 바퀴에 지지는 두 자씩 남는다. 그러면 두 바퀴에는 네 자, 세 바퀴에는 6자, 네 바퀴에 8자, 5바퀴에 10자, 6바퀴에 12자! 즉 6바퀴 다시 말해 60년이 돌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환갑이다.

 

  

 

 

 

 

올해는 을미년이다. 작년은 갑오년이었다. 1894년에서 120년, 즉 60년이 두 번 지나서, 2014년이고, 당연히 갑오년이다. 올해는 1895년 즉 을미사변이 일어난 지 120년 되는 해, 2015년의 을미년이다.

 

차라리 그냥 연도를 외우고 말겠다고? 이것이 더 복잡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사주 이야기 조금 보태서 머리를 더 어지럽게 만들어 보자.

 

60갑자는 연도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황제시대라고 하는데, 날짜에 쓰다가, 나중에, 한나라 때부터, 연도에도 60갑자를 사용했다고 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것이라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2000년 이상 사용된 것으로, 60갑자는 연도뿐만 아니라 월, 일, 시에도 사용했다. 즉 사주를 모두 60갑자로 표기했다. 그래서 사주가 곧 팔자가 된다. 어떤 사람의 사주가 갑자年 을축月 병인日 정묘時라면, 이 사람은 ‘갑자을축병인정묘’ 라는 8개의 글자를 갖게 된다. 사주팔자. 그런데 이게 뭐? 운명과 이 여덟 글자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걸 파고들면 그때부터 명리학이라든지 뭐 사주팔자를 보는 학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명리학에서 들은 풍월을 조금만 예로 들자면 이렇다. 10개의 천간과 12개의 지지는 각각 오행을 갖고 있다. 갑과 을은 木. 병정은 火. 무기는 土. 경신은 金. 임계는 水. 인묘는 木. 사오는 火. 신유는 金. 해자는 水. 축진미술은 土.

 

나의 기본 성질은 무 토다. 무신일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일간 즉 태어난 날의 천간이 내 본성이라는 말이다. ‘무’는 土이므로, 나는 말하자면 산과 같다. 그런데 여덟 개의 글자, 팔자 중 나는 4개의 金을 갖고 있다. 나의 기본은 토이지만 환경은 금이 세다. 토와 금의 관계는 土生金 즉 내가 생산하는 것이 많다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명리학에서 사주를 보는 방법이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일단 받아들이고 나면 매우 과학적이다. 차라리 매우 수학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 틀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수학의 공리처럼 사주라는 것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을 가정해야 한다. 물론 증명할 방법은 없다. 공리는 증명하지 않고 자명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쨌거나 단지 사주의 여덟 글자만으로 인간과 우주의 원리를 풀고자 하는 그 뜻은 매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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