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를 기록하다 - 침몰·구조·출항·선원, 150일간의 세월호 재판 기록
오준호 지음 / 미지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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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들고 답답했던 것은

첫 째, 그 빌어먹을,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누가 왜 반복했냐는 것이고,

둘 째, 맹골수도에서 급변침한 이유는 무엇이며,

세 째, 왜 구조는 그따위로 엉망이었는지 이다.

 

그 방송만 아니었다면 훨씬 많은 생존자가 돌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명백해서 누구나 안타까움과 울분을 금하지 못했다. 급변침에 관해서는 당시 조타실을 맡았던 항해사와 조타수가 버젓이 살아 있는 상황에서 그런 기초적인 사실조차 확인하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구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을 지경이었다. 해경 그 누구도 선실 안으로 들어가지도, 탈출하라고 방송 한 번 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잊고 있었다. 유병언이 백골로 발견되자, 당시에는 진짜 유병언이 맞는가 말도 많았지만, 금방 그것은 기정사실이 되고, 언론도 사람들도 세월호에 대해 급격히 관심을 잃어갔다. 간간이 재판 소식이 들려오고, 1차 재판의 최종 선고가 내려지고, 그 많은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양형이 생각보다 적다는 생각을 잠깐 했을 뿐, 어떤 실체적 진실이 밝혀졌는지 자세히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세월호에 탔던 화물기사 김동수씨가 많은 아이들을 구조해 놓고도 스스로 살인지라고 생각하며 자살을 시도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리고 벌써 4월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주문하다가 우연히 『세월호를 기록하다』를 보았다. 발행일이 2015년 3월 20일이니 출판된 지 열흘 정도 된 책이다. ‘150일간의 세월호 재판 기록’ 이란 문구가 눈에 들어왔고, 세월호를 제대로 정리하려면 이 책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300여 쪽의 분량이지만 하루 만에 빨려들듯 읽었다. 잠깐 청소를 하려고 책갈피를 끼워놓았다가 다시 책을 펼치며 깜짝 놀라기도 했다. 책갈피를 잘못 꽂았다고 생각했다. 조금밖에 안 읽은 줄 알았는데 어느새 반이 넘어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에 근거한 가장 객관적인 글’ 이란 평처럼 재판 기록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한 책인데 어떤 픽션보다 더 몰입도가 높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희생자들이 참 운이 없었다는 생각을 했다. 세월호가 침몰하기까지 그 많은 과정들 속에서 누구 한사람, 어떤 과정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행동하고 지켜졌다면, 브레이크를 걸었다면, 그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어쩌면 한결 같이 이기적이고 무능하고 부패했는지, 이럴 수도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그런데 운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월호가 특별히 불운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 사고는 일탈이 아니라 정상이, 우리가 정상으로 믿고 있던 시스템이, 필연적으로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그런 결과였다.

 

「그런데 세월호 사고는 과연 국가의 정상적인 상태로부터 일탈한 사고인가? 어쩌면 이 사고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세월호 사고를 낳은 것은 우리가 ‘정상적인 상태’라고 여긴 바로 그 국가, 그 사회 시스템이란 사실이다. …… 상식을 초월하는 이 사고에는 당연히 상식을 초월하는 어떤 거대한 ‘일격’이 있었을 것 같지만, 나는 재판 과정을 통해 참사의 배경에 있는 것은 촘촘하게 결합된 비겁하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하고 무능한 행동들이란 사실을 알았다. p324」

 

“세월호를 무리하게 증축하지 않았다면, 화물적재 기준을 초과하지 않았다면, 고박을 잘 했다면, 운항 관리자가 규정을 지켰다면, 조타수가 조타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비상사태에 매뉴얼대로 했다면, 123정이 제대로 판단했다면...” 이렇게 무수히 상상해 본다. 그런데 너무너무 불행하게도 이 모든 것들이 딱 맞아 떨어졌다. 아마도 이렇게 많은 가정 아래 어떤 사건을 재구성한다면 대부분은 음모론이라 할 것이다. 어떤 특수한 상황이, 정상에서 벗어난 어떤 일탈적인 행위가 이렇게 연속적으로 일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들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그것들이 우리 사회를 움직인 정상적인 시스템이었다는 뜻이다.

 

「요컨대, 이렇게 무수한 요인의 동시다발적인 진행을 ‘소수의 일탈’로 볼 수 없다. 진실은, 우리 사회가 이런 행동들을 묵인했거나 심하면 대세로 보아 부추겼으며 그 위에서 성장과 발전을 이룩했다는 데 있다. 지붕이 무너진 것은 마지막에 떨어진 눈송이 때문만은 아니다. p325」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세월호 재판의 한계를 세 가지로 짚으며, 이렇게 평가한다. 객관적인 서술로 일관하던 저자가 그 자신의 판단과 사유를 직접 표출한 부분이다. 여기서 저자는 ‘하인리히 법칙’이란 것을 설명한다. 미국 보험사 직원인 하인리히가 직업상 연구한 산업재해 사례를 토대로 내놓은 법칙이라고 한다.

 

「산업재해 중상자가 1명 발생했다면, 그 전에 이미 경상자가 29명 발생했고,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의 수는 300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1:29:300의 하인리히 법칙은 하나의 대형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반드시 그보다 작은 규모의 사고들이 ‘징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p318」

 

세월호 참사 이전에도 우리사회에는 무수한 징후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여전히 무수한 징후들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세월호 참사가 가장 큰 사고가 아니라 무수한 징후들 중의 하나가 될 만큼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당장 잠실 롯데 제2월드는 공포의 대상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책이 기록한 세월호 재판은 단지 법적 책임을 묻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징역 36년의 가장 무거운 형량을 받은 이준석 세월호 선장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걸까?

 

저자에 의하면 미국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영은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을 구분한다. 법적 책임은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사람에게 제한적으로 물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죽 읽어보면 느끼겠지만 이준석 선장 같은 사람을 만들어 낸 배후의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만든 권력이야말로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아이리스 영은 “책임을 져야 할 결과에 기여한 이들이 법적 책임이 없다고 하여 정치적 책임마저 면제되는 건 아니다. p323” 고 했다. 우리는 아직 그 누구에게도 정치적 책임을 묻지 못했다. 누구도 정치적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세월호 관련자들에게 그만하라고 다그치는 실정이다.

 

 

『세월호를 기록하다』에는 어떤 거대한 음모 같은 것이 발견되지 않는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세 가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는 있지만, 오히려 허탈하다. 어떤 악한 의도나 숨겨진 비밀 때문이 아니다. 어린 학생들보다 더 공포에 질려 넋을 놓고 있는 선장과 울고 있는 항해사, 아무 생각 없이 와서 갈팡질팡하는 123정장, 조타실의 지시를 기다리다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 방송을 되풀이한 가엾은 승무원이 있을 뿐이었다.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무능하거나 무책임하고,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권력 또한 무능하면서 뻔뻔했다.

 

세월호 재판과 그 재판을 기록한 이 책은 세월호의 진실을 모두 밝히지 못했다. “세월호 재판에서 ‘확정된’ 사실관계는 최선의 경우에도 확률적 가능성을 가질 뿐 다른 가능성이 절대로 없다고 할 수는 없다. p321” 세월호는 여전히 바다 아래 있고, 그 속에는 진실의 또 다른 부분이 묻혀있을지도 모른다. 세월호 인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인양에 대해 토의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권력이 책임을 회피하고 있고, 여론은 세월호 진실을 두고서가 아니라, 정치적 추종세력에 따라 묻지마 적대를 형성하고 있다. 사실 세월호 참사에서 가장 답답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어린 학생들의 무수한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수꼴과 좌좀으로 나뉘어 사건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를 기록하다』로 조금 객관적인 시선을 가져 보자고 한다면, 통할까?

 

 

 

추기 1 : 재판부의 세월호 사고 원인

 

첫 째 세월호는 증개축으로 복원성이 약해진 선박이었고, 둘째 해운사가 화물 최대 적재량 기준을 어기고 과적하여 복원성을 더 악화시켰으며, 셋 째 화물을 제대로 고박하지 않은 상태로 출항했고, 넷째 이런 세월호를 주의하여 운항해야 할 당직 항해사와 조타수가 4월 16일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바다에서 우현으로 대각도 조타를 하는 운항 과실을 범하여 8시 48분경부터 배가 우현으로 급선회하며 원심력으로 좌현으로 기울었으며, 다섯째 과적된 채 부실하게 고박된 화물이 좌현으로 쏠리면서 복원력이 상실되어 배가 30도 이상 전도되었다. 이후 침수가 시작되어 점점 크게 기울어지다가 10시 17분경 전복되었고, 10시 30분경 완전히 침몰했다. p18

 

 

 

추기 2 : 선원 재판 , 법정 외 증인 신문, 단원고 유소은 학생 (가명)

 

저희는 수학여행을 가다가 단순히 사고가 난 것이 아니라 사고 후 대처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이 죽은 건데, 이런 것을 교통사고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p107

 

 

 

추기 3 : 추천사 <사실에 근거한 가장 객관적인 글>  중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시스템이 확립된 나라였다면 세월호 유가족들은 절대로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국가 기관의 엄정한 수사 결과를 믿고, 법원의 객관적인 판단을 믿으면서, 먼저 간 아이를 추억하고 명복을 빌며, 힘들겠지만 일상으로 돌아가서 건강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 되었을 것이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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