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리딩 - 생각을 키우는 힘
하시모토 다케시 지음, 장민주 옮김 / 조선북스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우연히 득템한 트렁크를 끌고 살인(?)의 흔적을 질질 흘리며 도망(?) 다니는 100세 노인은 정말 유쾌했다. 그렇지만 소설이나 영화가 아니고서야 100세 노인이 그렇게 기운넘치리라 믿기는 힘들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노인이 있다.  『슬로리딩』을 쓴 일본의 하시모토 다케시다.

 

2011년 백수(통상 99세에 치른다) 파티에 '순백색 슈트에 빨간 장미 코르사쥬' 를 달고 등장한 하시모토 할아버지의 첫 번째 목표는 120세 대환력까지 사는 것이다. 대환력에는 '붉은 정장에 흰 장미 코르사쥬'를 달고 나갈 계획도 세워 놓았다. 하시모토는 50년 동안 '나다'라는 학교의 교사로 근무했다. 그리고 100세를 눈앞에 둔 2011년, 27년 만에 다시 나다교의 교단에 섰다. 100세 할아버지가 교재를 들고 다시 학생들 앞에 선 것이다. 그 수업은 어땠을까?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시모토 할아버지가 유명해 진 것은 그의 독특한 수업때문이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교과서를 다시 써야할 상황에서 국어 교사인 하시모토는 과감히 교과서를 버리고 <은수저>라는 얇은 문고판 소설로 교재를 대신한다. 나다교의 특징은 한번 교과를 맡은 교사는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전학년을 지도하는데, 하시모토 교사는 3년 동안 《은수저》 한권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나카 간스케의 소설인 《은수저》. 이 200쪽짜리 얇은 문고판을 3년에 걸쳐 읽어 가는 사이 실로 다양한 공부를 했습니다. 국어 수업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에 연날리기 장면이 나오면 밖으로 나가 직접 연을 날리고, 막과자가 등장하면 교실에서 실제로 먹어 보는 겁니다. p44」 

 

《은수저》 한권으로 단어 공부, 문장 공부는 물론 책 속에 나오는 것들을 일일이 찾고 연구하고 실습까지 하면서 3년을 읽었다. 당시에도 기발한 수업이었지만 그렇다고 '슬로 리딩'이라는 개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마음에 평생 남을 수 있는 독서 중심의 수업을 하기 위해 시도한 것인데, 아이들의 호응과 교육 효과가 매우 좋았다.

 

하시모토 교사의 수업을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이 수업을 잊지 못한 제자들이었다.  책과 방송을 통해 이 수업법은 '슬로 리딩'으로 소개되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100세가 된 2012년, 하시모토 다케시는 자신의 《은수저》 수업법을 『슬로리딩』이란 책으로 직접 소개했다. 얇은 책이라 금방 후루룩 읽을 수 있는데, 《은수저》 수업이라는 독특한 수업법을 빼고는 평이한 교육 지침 혹은 교육 경험담이 쓰여있다. 어쨌든간에 100세 노인이 교단에 다시 서고, 책을 쓰고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작년에 동네 꼬마 세명이랑 동화책 몇권을 읽었다. 처음 계획은 겨울 방학 동안 『어린왕자』를 천천히 읽는 것이었다. 이 책처럼 나도 나름대로 슬로리딩 비슷한 것을 생각했던 셈이다. 그런데 잘 되지 않았다. 나는 『어린왕자』 속에는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너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별' 하나만 가지고도, '사막과 우물' 하나만 가지고도, '길들이기' 하나만으로도 한 시간 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은 별에도 사막에도 여우에도 장미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나는 세번 만에   『어린왕자』를 마쳤다. 나는 다만 아이들이 상상력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슬로리딩』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준비되지 않았었다는 것을.  하시모토 교사는 《은수저》 수업을 위해 1년 넘게 준비를 했다.  <은수저 연구 노트>를 만들어 매 시간 그 짧은 문장 속에서 어떤 공부와 어떤 놀이를 해야 하는지 꼼꼼이 계획했다. 나는 그저 말로 떼우려고 했던 것이다. 

 

이 책  『슬로리딩』에는 그렇게 자세한 수업법은 없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은수저》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궁금하다. 아마 그  <은수저 연구 노트>를 보게 되면 조금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차피 직접 해보는 것일 테다. 하시모토 다케시 역시 자신의 수업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틀을 깨고 상상의 힘으로 새로움을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 이 책의 가치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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