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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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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라는 것이 실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나의 틀로 한 세대 전체를 규정하려면, 그만큼 세대 구성원들이 균질적이어야 한다. 연봉 오천만원을 받는 대기업 정규직 신입사원과 시급 오천 오백 팔십 원을 받는 알바 청년이 동질적이라고 말 할 수 있을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극단적인 사회 환경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같은 세대로서의 공통점은 분명히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사회 환경 자체의 세대별 차이는 뚜렷하다고 할 수 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의 명제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 해도, 환경이 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힘들다. 각양각색의 세대론이라는 것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했던 세대론은 말할 것도 없이 우석훈과 박권일의 『88만원 세대』이다. 2007년 출간된 이 책은 주로 386세대, 즉 삼촌 세대의 눈으로 당시 20대인 조카세대를 분석했다. 이후 얼마나 많은 세대론 책들이 유행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로는 2013년에 두 권의 세대론 책을 인상 깊게 읽었다. 한윤형의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와 최태섭의 『잉여사회』다. 두 저자 모두 서른 즈음의 나이에 자신들의 세대에 관한 책을 썼다. 말하자면 ‘우리들은 누구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응답이다.

 

올해 서른이 된 일본 청년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2011년 스물여섯 살에,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라는 일본판 세대론으로 (홍보문구에 의하면)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린’ 후 작년 말에 한국에 상륙했다. 그의 충격파가 한국도 강타할까? 글쎄, 모를 일이다.

 

후루이치의 책은 마치 학위 논문 같은 느낌을 준다. 학위 논문이란 것을 별로 읽어보지 못했지만 어쩐지 박사 보다 석사 학위 논문에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매우 조심스럽고, 성실하다. 주제는 간단하다. 2010년 말경 <뉴욕 타임즈>의 도쿄 지국장이 일본의 세대 격차에 관한 기사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이처럼 불행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왜 저항하려고 하지 않는 겁니까?” 이 책은 후루이치의 대답으로, 그 이유는 “일본의 젊은이들은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이다. 그가 300쪽이 넘게 연구한 것은, 일본의 젊은이들은 불행한 환경에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로 줄여 말할 수 있다.

 

매우 매력적인 주제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의 명제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듯 보인다. 절망적 환경에도 행복하다? 불행해 보이지만 사실 행복하다? 어떻게?? 후루이치는 이 ‘어떻게?’를 찾아 차근차근 나아간다.

 

1장은 도대체 젊은이란 무엇인가? 라는 개념 규정과 그렇게 뭉뚱그려 하나의 세대를 특징지을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

 

2장은 일본의 젊은이들이 점점 내향적으로 변해간다는 매스컴의 비판에 맞서 작은 공동체 안에서 행복을 나누는 젊은이들의 연대와 외향성을 주장한다. 2005년부터 각종 미디어가 비정규직, 워킹푸어, 피시방 난민 등 불행한 젊은이들을 부각시켜 왔지만 정작 2010년 내각부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20대의 약 70%는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 결과는 과거 40년 사이 15%나 성장해 왔다는 것이다. 왜 이러는 걸까요?(개그맨 황현희 버전)

 

「전 교토 대학교 교수인 오사와 마사치는 조사에 화답한 사람들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인간은 어느 순간에 “지금 불행하다.”, “지금 생활에 불만족을 느낀다.” 라고 대답하는 것일까? 오사와 마사치에 따르면, 그것은 “지금은 불행하지만, 장차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할 때라고 한다. p133」

 

우리의 상식과 달리 통계에 따르면, 불황일 때 생활 만족도가 상승하고 오히려 고도 성장기에 생활 만족도가 낮게 나타난다. 저자 후루이치는 각종 표와 도표를 사용해서 이 언뜻 이해하기 힘든 결과를 뒷받침하는데, 마치 JTBC 뉴스룸의 <팩트체크> 코너 같다는 인상을 준다. 매스 미디어나 지식인들의 주장을 사실로 전제하고 분석이나 해석에 주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 자체를 하나하나 뒤져보는 끈기와 성실성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세대론을 쓴 젊은이들과 이런 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는데,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단정 짓기는 힘들 것 같다. 후루이치의 책은 많은 데이터들로 신뢰성을 확보하지만, 대신 뚜렷한 관점이 없고 따라서 독창적인 해석도 부족하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이라는 이 반어적이고 매력적인 주제가 없었다면, 사실 이 책은 매우 지루했을 것이다. 여하튼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불우한 환경에 만족한다는 것은 결국 미래의 행복에 대한 기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소박하게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질 것이다.”라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그저 ‘끝나지 않는 일상’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을 때 비로소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다. 135~6」

 

참 슬픈 행복이다. 그럼에도 행복이라 말 할 수 있는 것은 상대적 박탈감이 없기 때문이다. 모두들 불행한데 나만 특별히 불행할 이유가 없다. 불행이 일상이면 불행은 불행이 아니게 된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그들만의 작은 공동체 안에서 상대적 박탈감 없이 슬프도록 행복하게 산다.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의 저자 한윤형은 자신들의 세대를 ‘내려가는 세대’ 라 표현하며, 부모 세대의 ‘올라가는 세대’와 대비시켰다. 민족성의 차이인지 개인적인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경제적 차이가 더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비슷한 환경에서 일본 젊은이들은 행복을 느끼는데 반해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불행을 느끼는 것 같다. 아직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일본 젊은이들처럼 불행을 달관했다는 소문은 들리지 않는다. 다만 불행을 희화화시켜, 개그의 소재로 삼거나 ‘병맛’이라 부르며 자학적으로 즐기는 경지(?)에는 이르렀다. 어느 쪽에 희망이 있다고 해야 할까? 나는 분노가 남아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고 본다.

 

일본의 젊은이들도 작은 공동체 안에서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다. 미래가 없는 소소한 일상은 그만큼 나른하고 답답하고 때때로 불안하다. 불끈거리는 마음은 월드컵의 열기로, 넷우익으로, 축제같은 시위로, 후쿠시마 원전 사태의 자원봉사로 그 출구를 찾아 나선다. 이 책의 3,4,5장은 이런 현장 속에서 젊은이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대의 없는 사회에서 “어쨌든 무슨 일이든 하고 싶다” 는 욕망이 어떻게 분출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방향성 없이 불끈거리는 욕망은 매우 위험하다. 뭔가 꽂히는 것이 있으면 앞뒤 없이 달려간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도 이런 징후가 드러나고 있다. IS를 찾아 시리아 국경을 넘은 10대 김군, 신은미 콘서트에 도시락 폭탄을 던진 고등학생, 수많은 일베의 자칭 투사들. SNS는 네그리가 말하는 집단지성을 이루기보다 파시즘적 선동과 광기의 장으로 더욱 빠르게 변질되고 있는 것 같다. 대중이 원하는 것은 사유와 토론이 아니라 즉각적 행위를 촉구하는 ‘단 하나의 진실’이 주어지는 것이다.

 

6장은 프롤로그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간다. 물론 모든 장이 일본 젊은이들이 불행한 환경 속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비밀을 파헤쳐 왔다. 특히 6장에서는 결론을 대신하여 이 비밀의 경제적 토대와 이 비밀의 지속 가능성 여부를 탐색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일본 젊은이들은 실제로는 빈곤하지 않기 때문에, 절망적 환경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 젊은이의 빈곤문제는 지금, 당장, 현재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의 문제이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일본의 젊은이들은 정규직이든 아르바이트이든 격차가 크게 심하지 않다. 아르바이트를 열심히만 하면 정사원 이상의 수입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소위 ‘가족 복지’가 있다. 부모님 밑에서 살면 아르바이트만으로도 만족할 만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면에서는 비슷하다. 용돈만 벌면 의식주는 부모가 해결해 준다.

 

문제는 미래다. 부모가 더 이상 부양해 주지 못할 때, 부모를 부양해야 될 때가 오면, 빈곤 문제가 눈앞의 재앙이 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할 때에 가능한 상황이다. 당장 결혼을 예정한다면 빈곤은 눈앞의 현실이 된다. 출산율이 저하하고,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것은 일본의 젊은이든 우리나라의 젊은이든 가장 현명하고 경제적인 선택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개인이 아니라 세대 차원이 되면, 경제활동 인구가 줄어들고, 노인 세대를 부양할 젊은이 세대의 부담이 늘어나면서, 국가 경제 전체가 흔들리게 될 것이다. 출산율이 문제가 되는 것은 절대적인 인구수가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다. 우리나라도 전체 인구가 오천만이 아니라 이천만이 되면 살기에는 훨씬 좋은 환경이 될 것이다. 문제는 인구수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평균수명 연장으로 고령인구는 폭증하는데 경제활동이 가능한 인구가 줄어들면, 다시 균형이 맞춰질 때까지 고령인구를 부양할 수 없게 된다. 저자 후루이치는 “원인불명의 고령자 대량 실종 사건이라도 발생하지 않으면 p276" 이라고 표현했는데, 웃기면서도 음울하다. 노인네들 먹여 살리려고 빈곤의 늪 속으로 빠질 것이 번한데도 애만 퍼질러 낳으라고 할 수도 없고, 노인네들이 집단으로 증발하길 바랄 수도 없다. 100세 시대가 축복인지 저주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시 그들이 행복한 이유로 돌아가, 첫 째는 당장은 빈곤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보살이라도 절대 빈곤에서 행복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역사상의 수많은 민란과 혁명이 왜 일어났겠는가. 일본의 젊은이들은 대를 끊을 결심을 했든, 부모에게 기생하든, 아르바이트를 하든, 지금 당장은 그다지 빈곤하지 않다. 두 번째는 나름대로 인정받고 살기 때문이다. SNS를 생각해 보면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다. ‘좋아요’, ‘공감’, ‘추천’ 들이 널리고 널렸다. 이런 소소한 인정이 당장의 삶을 행복하게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회가 바뀌기는 더 어렵다고 저자는 말한다.  

 

「마찬가지로 트위터나 소셜 미디어가 ‘사회를 바꾸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러한 것들이 개인의 승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쉬운 매체라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 기능은 ‘사회 변혁’과 반대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트위터에 마치 사회의식이 있는 것처럼 적당히 글을 올려 팔로워들의 칭찬을 유도하고, 많은 수의 리트윗에 만족한다. 사람들은 바로 그런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결국 트위터가 제공하는 ‘공동성’에 ‘사회를 바꾼다’라는 목적이 흡수되어 버릴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298~9」

 

일본의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각은 매우 비판적이다. 그들은 “일본은 끝났다”고 탄식한다. 그런데 젊은이 저자 후루이치는 당당하다. “그래서 뭐?” 라고 되묻는다. 일본이 끝장난들, 일본이라는 국가가 사라진들, 일본인이라는 의식이 없어진들 그게 뭐가 대수냐는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일본이라고 불렸던 땅에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갈 것인데! 물론 일본의 종말이 눈앞의 현실은 아니니, 아직은 생각할 시간이 있다고 덧붙인다. 그래서 당분간은 기묘하고 뒤틀린 행복이 지속되리라 말한다.

 

이 책이 석사 논문 같다는 인상을 받은 이유는 꼼꼼하고 성실한 자료수집과 인터뷰 따위 때문만은 아니다. 저자의 가치관은 도대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섣불리 결론내리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 미덕일 수도 있지만, 가치관의 부재일 수도 있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이런 행복 속에 살아도 좋다는 것인지, 이것은 행복이 아니라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하다못해 모든 논문이 형식상으로나마 제시하는 어떤 방향성도 대안도 없다. 일본의 현상의 한 단면을 세세히 풀어놓았다는 면에서 저자의 역할은 끝났다. 판단은 전적으로 독자에게 열려있다.

 

 

추기 : 겉표지에 쓰인 ‘사토리 세대’라는 말은 저자의 글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대충 감만 잡고 있는 이 개념을 확실히 알아볼 좋은 기회라 생각했는데, 한 번 언급도 되지 않다니! ㅠㅠ.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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