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동양의 지혜>를 끝으로  총 7부로 구성된 한스 요하힘 슈퇴리히의 『세계 철학사』를 다 읽었다.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단계인  4부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시대>를 시작으로 7부 <20세기 철학사상의 주요 방향>까지 주욱  읽었다. 그리고 돌아가 2부 <희랍철학>과 3부 <중세철학>을 읽고, 마지막으로 1부를 읽었다. 왜 이렇게 정신없이 왔다갔다 읽었냐하면 그것이 내겐 가장 흥미롭고 편안했기 때문이다.

 

15~16세기부터 서구 사회는 근대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 근대가 현대까지도 (modern은 근현대를 아우른다) 여전히 서구 사회의 토대가 되고 있다. 불행인지 불행이 아닌지, 서구의 근대는 지금 우리 사회의 근간이기도 하다.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은 공맹의 도에서 비롯된 것들도 있지만 더욱 많이는 서구 근대 사상에 뿌리박고 있다. 그러니 희랍이나 중세 보다는 서구 근대 사회가 더욱 친밀하고 이해하기 쉬울 수밖에 없다.

 

전문가가 아닌 바에야 희랍철학과 중세철학은 알면 좋지만 그다지 긴요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서양 근대 사상의 뿌리라는 면에서 무시할 수는 없지만, 끌어 당기는 힘으로서의 매력은 좀 떨어진다.

 

가장 문제적인 것은 <동양의 지혜>로 퉁쳐지는 동양철학이다. 1200 쪽 가까이 되는 이 책의 1/6도 안되는 분량이 1부 <동양의 지혜> 에 허용된 지면이다.  인도와 중국만 해도 영토와 사상 모든 면에서 유럽보다 훨씬 넓고 깊을텐데 고작 1/6일 뿐이다. 사실 이 책은 세계철학사가 아니라 서양철학사라 해야 맞다. 그럼에도 굳이 <동양의 지혜>를 집어넣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싶다.  철학도 아니고 그것도 '지혜'라고 하면서.

 

예상대로 1부 <동양의 지혜>는 그다지 읽을 것이 없었다. 아마 작가 자신도  잘 알지 못하면서 썼을 수도 있다. 서양의 독자들에게는 흥미가 있을지 몰라도 동양의 독자들에게는 어떤 면에서는 쓴웃음을 짓게 한다. 그가 애써 설명하려 하는 어떤 개념들을 우리는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듣고 익혀왔다. 개념적으로, 학문적으로는 작가가 더 많이 알고 있을지 몰라도, 그것의 본래적 의미를 우리는 어쩌면 생득했기 때문이다.  

 

외국의 문학작품을 읽을 때면 늘 아쉬운 것이 있다. 그 작품이 모국 독자들에게 주는 깊이와 감동을 우리는 아마 반 너머 놓치기 일쑤일 것이다. 거꾸로 영어로 번역된 『토지』를 생각해 보면 너무 확연하다. 영미인들이 어떻게 그 감칠맛나는 사투리를 느낄 수 있을까. 동학혁명의 의미도, 일제강점기의 아픔도 모르면서 어떻게 김환과 이동진과 최치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도 그렇다. 문학이 그렇지만 아마 철학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더욱 꼼꼼이 읽어야 하고, 더 많이 읽어야 한다. 우리가 그래야 하듯 서구인들이 동양을 대할 때도 그래야 할 것이다.

 

1부 <동양의 지혜> 따위는 없는 편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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