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6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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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언제 또 다시 읽을까 싶어, 독서회 책으로『댈러웨이 부인』이 정해진 김에『등대로』까지 읽었다. 울프의 글에 조금 익숙해 진 탓인지, 읽기가 한결 수월했다. 

 

이렇게 섬세한 의식의 흐름을 펼쳐내려면, 역시 작가 자신의 경험과 환경에 바탕해야 할 것이다.  귓결로 들은『자기만의 방』에 대한 선입견 탓에 울프가 대단한 페미니스트나 박해받은 여성이 아닌가 싶었지만, 울프는 요즘 식으로 하자면 상위 1%의 문화적 환경에서 자라났다.

 

작가연보의 첫머리에 이렇게 적혀있다.

 

1882년 

1월 25일 런던 출생. 본명은 애들린 버지니아 스티븐.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은 『영국 인명사전』을 편찬하고, 명망 있는 《콘힐 매거진》을 편집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작가였으며, 어머니 줄리아 스티븐은 귀족 혈통의 뛰어난 미인이었음. 당대의 유명한 문인들과 친분이 두텁고 교양이 높은 집안에서 성장함

 

『댈러웨이 부인』과 『등대로』모두 딱 이런 상류층의 50대 귀부인의 의식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댈러웨이 부인』이 1925년, 『등대로』가 1927년 출간 되었으니, 비록 미인이었던 엄마를 모델 삼았다 해도, 버지니아 울프 그녀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것 같다.

 

댈러웨이 부인과 램지 부인 모두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존중받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이지만, 그녀들 자신의 내면은 버지니아 울프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 기력을 다해 무의미를 의미로, 균열을 평화로 바꾸어 나가지만, 불쑥불쑥 찾아오는 하나의 질문 앞에 그녀들은 망연하다.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은 아마도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일 것이다. 그녀는 과연 답을 찾았던 걸까? 『등대로』에서 램지부인을 회상하던 릴리 (버지니아 울프 자신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일상적 경험의 차원에서 이건 의자고 저건 식탁일 뿐이라고 느끼는 동시에 이건 기적이고 저건 희열이라고 느끼는 거야. p328 」

 

그래서 댈러웨이 부인은 파티를 열고, 램지 부인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걸까?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가져다 주는 기적과 희열이 삶의 균열을 메워주고 심연과도 같은 저 무시무시한 질문,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도록? 그러나... 그녀는 일상에서 안식을 얻지 못했다...

 

 

추기:

이 예민한 여성도 무심코 어떤 독자들에게는 상처를 준다.

 

「실로 그녀는 모든 남성을 보호하고 있었다. 스스로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이유 때문에, 어쩌면 그들의 기사도 정신과 용기 때문에, 그들이 조약을 협상하고 인도를 통치하고 재정을 관리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자신을 대하는 태도 때문에 그리했다. p13 」

 

유럽의 독자들은 이런 문장에서 아무런 껄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걸까? 『등대로』의 1부 배경은 1909년이다. 영국이 '해가지지 않는 나라'를 자랑질하며 세계 각지로 총독을 보내고 있던 때, 인도에서도 팔레스타인에서도 독립을 외치며 열사들이 죽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남성들의 존경을 받는 램지부인은 '인도를 통치하고' 라는 말을 아주 우아하고 무심하게 말한다. 버지니아 울프, 그 섬약한 여인도 실로 그렇다. 그 짧은 말 속의 피와 눈물과 고통을 그녀는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백년쯤 뒤의 어느 3세계 독자에게 그것이 목구멍의 가시로 남았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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