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버지의 부재’ 가 언제 적 이야긴데, 아직도 아버지 애가哀歌? 사진만 얼핏 봤던 작가소개를 다시 보니, 1980년생이다. 큰조카랑 동갑이다. 그러고 보니 조카가, 우리가 IMF 직격탄 세대야, 이모, 하던 기억이 난다. 1997년에 조카는 아마도 고등학생이었겠다. 아버지의 권위와 역할이 눈앞에서 무너져 가는 모습을 가장 예민한 시기에 보아야 했을 것이다. 등록금이 버티고 있는 대학교는 생존의 현장이었을 것이고, 취업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자. 


 나는 1997년에 대한 좀 색다른 기억을 갖고 있다. 나라가 폭삭 망할 것이라 아무도 짐작조차 못했던 그 해 추석, 나는 버스투어 팀에 끼여 십 여일 가량 유럽 관광을 했다. 스무 명 남짓한 관광 팀의 대부분은 정년퇴직을 전후한 연배였는데, 같은 버스에 여러 날을 부대끼다 보니, 하기 싫은 자기소개도 해야 되고, 물 사오기 같은 소소한 심부름도 했다. 다양한 이력을 가진 그 분들 중에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분이 있다. 아들은 학원 강사고 본인은 주식으로  많은 수익을 냈다고 했다. 힘들게 회사는 뭐 하러 다니느냐고, 학원을 해야 돈을 번다는 조언도 하셨는데, 그 분이 흔들리던 버스에서 마이크를 쥐고 주식 예찬론을 펴던 것이, 연이어 터졌던 IMF 때문에 더욱 인상 깊게 남았다. 가진 돈을 모두 주식에 넣었던 그 분은 IMF 이후 어떻게 되셨을지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성실히 일만하다, 돈이 돈을 버는 신천지를 발견한 생초짜의 열변에,  슬몃 혀를 차는 분들도 계셨지만, 첫 인사에서 ‘나, 이대 나왔어요.’ 하던 사모님 보다는 훨씬 좋았다.  1997년의 가을은 그랬다. 너도나도 돈만 있으면 주식투자를 하고, 흥청거렸다. 그래서 그해 겨울은 더욱 더 혹독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비들에게도 그리고 그 당당했던 아비를 기억하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2003년, 갓 스무 서넛이 되었을 김애란 작가가 더듬고 있는 아비가 IMF 이전의 든든했던 아비인지, IMF 따위와 아무 상관이 없는 아비인지, 나는 모르겠지만, 포레스트 검프처럼 세계 곳곳을 달리고 있을 아비를 상상하며 떠난 아비를 기다리는 그녀의 책에서 나는 IMF를 통과하며 보아야 했던 수많은 아비들의 몰락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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