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반양장) -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장하준의 책은 무엇을 봐도 시원시원하다. 한 호흡의 머뭇거림도 없이 성큼성큼 직진이다. 7월에 나온 신간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도 그렇다. 제목에 살짝 겁먹었지만, 내가 아는 장하준을 믿고 책을 신청했다, 일단은 도서관에. 그리고 1부를 읽다가 알다딘에 주문했다. 책갈피에 꽂아야 할 표지종이가 너무 많아졌고, 아무래도 밑줄이 필요할 것 같고, 무엇보다 두고두고 찾아보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책의 부제는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교과서>이다. 말하자면 대중들이 알아야 할 경제학의 ABC이다. 그런데 대중이 “경제학은 왜 알아야 할까?” 장하준이 프롤로그로 던진 질문 역시 이것이다. 답은, 경제학자들 또는 권력자들의 손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서다. 에필로그를 앞당겨 빌려오면, 장하준에게 “경제학은 정치적 논쟁이다.” 경제학에는 정답이 없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이 아무리 시장에 간섭하면 큰일 난다고 떠들어도, 그것은 정답도 과학도 진실도 아니다. 하나의 주장에 불과하다. 그리고 모든 주장에는 어떤 집단의 이익이 걸려있다.
「경제학은 정치적 논쟁이다. 과학이 아니고, 앞으로도 과학이 될 수 없다. 경제학에는 정치적, 도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확립될 수 있는 객관적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제학적 논쟁을 대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오래된 질문을 던져야 한다. “Cui bono 누가 이득을 보는가?” 로마의 정치인이자 유명한 웅변가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말이다. p435」
흔한 패러디 중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가 있다. 1992년 미국대통령 선거 당시의 빌 클린턴 측의 유명한 구호인 “It's the economy, stupid!”의 다양한 변주 중 하나이다. 경제가 장땡이란 말이다. 경제가 핵심, 토대인 것은 맞다. 그런데 그 경제를 결정짓는 것은 정치이다. 지젝은 정치와 경제가 시차적 관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가 주요 영역이며 그곳에서 전투의 승패가 결정될 것이며 우리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주문을 깨뜨려야만 한다. 그러나 개입은 경제학적인 것이 아니라 전격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 『시차적 관점』p627」
입만 열면 경제, 경제를 외치며 심지어 세월호라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재난마저 ‘경제 살리기’를 이유로 재갈을 물리는 박근혜 정부를 보면 이 난해한 소리가 무슨 의미인지 즉각 알 수 있다. 입으로는 서민경제인데 하는 짓은 부자경제다. 담뱃값, 주민세, 자동차세는 올리고 반대로 기업가가 자녀에게 사업을 승계할 때와 손자에게 1억 원 이하의 교육비를 대어줄 때 증여세는 내리겠다고 한다. 투기도 규제도 모두 풀었다. 기업이 부담할 세금도 줄였다. 경제가 살아나기는 할 텐데 서민경제가 아니라 부자경제가 만세를 부를 것이다. 서민경제는 이미 수난의 시대를 걷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결정의 근원은 우리 국민의 정치적 선택에 있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국민들에게 보내준 화답의 선물이다. 정치적 지지에 경제적 선물 보따리를 안긴 것이다. 둘은 뫼비우스의 띠 모양을 한 하나의 몸체이다. 우리가 원하는 경제는 정치적 선택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전문가들은 곧잘 거짓말을 한다. 부자들이 잘 사는 경제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이 모든 것들이 서민경제를 살리는 지름길이라고 강변한다. 그런데 더 우스운 건 그들도 자신의 말이 거짓말인지 모르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비극적인 예로 참여정부를 들 수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신자유주의와 국가개입 정책을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국가경제를 살리고 싶은데 신고전주의자들의 자유방임주의가 맞는지 그에 반하는 경제 정책들 일테면 케인즈주의 같은 것들이 올바른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은 신자유주의적 관료들의 손에 놀아났다는 것이다. 고 노무현대통령은 결국 한미 FTA가 서민을 살릴 것이라 거짓말을 했다.
세계적인 사례로는 레이건 정부의 경제 정책이 있다. 레이건은 대처 수상과 함께 전 세계의 경제정책을 신자유주의로 이끈 핵심 인물이다.
「레이건 정부는 고소득자들에 대한 세율을 공격적으로 깎으면서 이 조치로 부자들이 투자 이익 중 더 많은 부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투자 의욕을 촉진해서 부의 창출을 독려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자들이 부를 더 많이 축적하면 더 많이 소비할 것이고, 이로 인해 일자리가 더 늘어나 더 많은 사람들의 수입이 증가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것을 낙수 효과 이론 (trickle-down theory)이라고 부른다. 부자들의 세금을 깎는 동시에 레이건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하고 최소 임금을 동결하면서, 그것이 더 열심히 일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논리이다. 왜 일을 더 열심히 하도록 하기 위해 부자들은 더 부자로 만들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일까? 이해가 되든 안 되든 이 논리는 공급 경제학 supply-side economics이라고 불리며 향후 30년 동안, 아니 그 이후까지도 미국 경제 정책의 기본 신념으로 자리 잡았다. p96~7」
우리 서민들은 처마 밑의 낙숫물이라도 받아먹으려면 일단 부자들이 투자 할 마음이 생기도록 부자들의 배를 두둑이 불려주어야 한다는 소리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 소위 ‘초이노믹스’ 와 비슷한 점이 많아 보인다.
최근, 그러고 보니 마침 오늘 그가 방한하는 것 같다, ‘피케티 때리기’ 라는 기사로 타임라인을 떠들썩하게 만든 경제학 논쟁이 있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피케티가 그 주인공인데, 참고로 그는 71년생으로 쟁쟁한 한국 경제전문가들이 보기에 아들 뻘 정도의 햇병아리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햇병아리의 책 한권을 두고 이례적으로 전경련 부설의 한국경제연구원이 아시아금융학회와 공동으로 세미나를 개최해서, 한국에 맞지 않는 주장이라는 둥 열렬히 ‘피케티 때리기’를 했다. 왜 아버지 뻘 되는 경제전문가들께서 그런 야만적인 일을 하셨을까? 경향신문 기사에 의하면, 나는 아직 『21세기 자본』을 읽지 않았고 아마도 앞으로도 읽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의 방대한 분량의 책이 주장하는 내용은 명료하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아지면 자본 소유자인 최상위계층에 부가 집중되는 게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돈이 돈을 번다’는 의미다.” 현대 자본주의는 자본수익율의 비율이 점점 높아져 빈부격차가 심화된다는 것인데, 300여 년에 걸친 20여 개국의 방대한 자료를 모아 분석한 결과라고 한다. 그가 내놓은 해법은 “최고 소득세율 인상과 글로벌 부유세”로, 말하자면 부자들에게 세금을 왕창 매기자는 것이다. 그러니 피케티가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도 전에 노인네들이 모여 거품을 물었다는 것이 소위 ‘71년생 아들뻘 학자’ 망언의 전말이다. ‘피케티 민증 사건’이라고도 하는데, “ 피케티: 저는 ‘21세기 자본론’에서 이러이러한 주장을... 한국 학계/재계: 민증까 피케티: ?!?!?! ” 라는 트윗으로 풍자되기도 했다.
피케티 논쟁은 “Cui bono 누가 이득을 보는가?” 라는 질문이 왜 필요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경연의 두려움은 이론적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 파급력에 있다. 박근혜 정부가 콘크리트 지지층에 대한 넘치는 자신감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부자감세와 서민증세 정책에 제동이 걸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한경연의 논리적 근거는 레이건의 낙수 효과 이론과 같다. "고율의 누진소득세와 자본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피케티의 처방은 피케티가 의도하는 것과는 반대로 기업가의 투자환경을 악화시켜 그 결과 고용과 분배구조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늘 듣는 소리지만, 들을 때마다 협박받는 기분이다. 찍소리하면 떨어지는 물 한 방울도 못 먹을 줄 알라는 소리다.
장하준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가 필요한 것은 이때라고 한다. 경제학에는 매우 다양한 접근법이 있다. 어떤 이론도 ‘절대반지’가 될 수 없다. 다양한 이론들은 각각의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다. 레이건이 신봉한 신고전주의만이 현대경제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아니다. 4장 <백화제방>에서 장하준은 아홉 가지 경제학파를 소개하고 있다. 아담 스미스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학파부터 조금 생소한 행동주의 학파까지, 그 장단점을 설명하는데, 어느 것도 그 하나만으로 완벽하지 않다. 예를 들어 케인즈학파는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에 대한 탁월한 이론을 제시한 반면 지나치게 단기적 변수에만 초점을 맞춘 탓에 장기적 변화에 대해서는 상당히 취약하다. 여기서 장하준은 ‘지적 다양성과 경제학의 이종 교배’를 주장한다. 어느 한 가지 이론만 맹신하지 말고, 칵테일을 만들듯 여러 가지 이론을 섞어서 최적의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여하튼 다 좋은데 그래서 그걸 왜 내가, 경제의 문외한인 내가 알아야 한단 말인가?
「다른 사람이 내린 결정의 수동적인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 모두 경제학을 하는 다양한 접근법을 이해하고 있어야만 한다. 최저 임금, 아웃소싱, 사회 복지, 먹거리의 안전성, 연금 등등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경제 정책과 기업의 결정 뒤에는 어떤 경제학 이론이 있기 마련이다 - 그 결정에 영감을 제공하든지, 더 흔하게는 힘을 가진 자들이 어차피 하고 싶었던 행위를 정당화하든지 하면서 말이다.
다양한 경제 이론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힘 있는 사람들이 “대안은 없다.” 라고 할 때(마가릿 대처가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정책을 실행하면서 말했듯)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 일반 대중이 이런 문제에 관한 의식을 확실히 드러낼 때에야 비로소 전문 경제학자들이 과학적 진리의 수호자를 자청하면서 지적인 으름장을 놀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p166」
기업에 세금을 많이 매기면 일자리 없어져! 라고 협박을 할 때, 일자리는 기업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부와 협동조합이 일자리 창출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계와 논거를 가지고 설파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Cui bono 누가 이득을 보는가?”라 다그칠 수 있다. 적어도 부자 경제를 살리면서 서민경제 살리기라는 거짓말을 할 수 없도록, 그 이론들을 따져보고 대안적 이론들과 비교하여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물론 겨우 입문서 하나를 가지고 유창하게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학자라든가 전문가라든가 하는 권위에 위축되지 않고 따져볼 태도를 갖게 될 수는 있다.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1부, <경제학에 익숙해지기>의 역할이 바로 이런 것이다. 1장은 인생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경제학 이론들의 뻥에 대해서 저자가 바라보는 경제학이란 무엇인가를 짤막하게 소개하고 있다. 2장은 초기 자본주의에서부터 2014년의 자본주의까지, 자본주의의 변화 양태를 간단히 짚어준다. 자본주의는 300년 정도의 역사 속에서 모든 것이 변화해 왔다. 아담 스미스 시대와는 자본가도 노동자도 달라졌고, 시장도 금융시스템도 변화했다. 고전주의학파의 낡은 이론으로 현대의 자본주의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그리고 아마 경제학의 이론들이 앞으로도 계속 변화해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3장은 2장에 이어 자본주의의 역사를 시기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여명기인 1550~1820년, 산업혁명기인 1820~1870년, 하이눈 시기인 1870년~1913년, 파란의 시기인 1914~1945년, 자본주의의 황금기 1945~1973년, 오일 쇼크로 인한 과도기인 1973~1979년,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흥망을 고스란히 보고 있는 1980년~현재까지의 시기별로 구분되어 있다. 연도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예전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사건들이 떠오른다. 4장은 앞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아홉 가지의 경제학 학파들에 대한 설명이다. 5장은 경제 주체에 관한 내용이다. 신고전학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경제의 주인공이 개인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장하준은 진짜 주인공은 조직 즉 기업, 정부, 노동조합, 국제기구 등의 큰 조직들이라고 말한다.
제목만 보고는 1부의 내용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장하준의 책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읽기가 그다지 힘들지 않다. 경제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아니, 정치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조직하는지에 관심이 있어도, 1부는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2부는? 아직 읽지 않았다. 2부의 제목은 <경제학 사용하기>로 1부에서 경제에 익숙해졌다면, 2부에서는 진도를 한번 나가보겠다고 한다. 그러니 좀 더 어려울 수는 있겠다. 여하튼 총 일곱 장, 250 쪽 정도를 다 읽고 나면 뭐라고 말해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임 : 아홉 개 학파에 대한 한 문장 요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