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 처음 읽는 철학
철학아카데미 지음 / 동녘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부가 직업인 지인들은 이런 책을 읽지 말라고 했다. 개설서나 입문서 백번 읽느니 철학자가 직접 쓴 책 한권을 읽는 것이 진짜 공부라고 말이다. 어려워도 그렇게 해야 제대로 된 시작이란다. 그런데도 나는 이런 책들이 보이면 눈이 반짝 거린다. 옳은 말하는 지인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있다. 그들이 이삼십년 전에 훌륭하신 교수님들로부터 배워 익힌 그 기초라는 것이 이과 출신인 내게는 전혀 없다는 것을. 칸트가, 헤겔이 어떤 맥락 속에 있는지, 현상학이 무언지 해석학이 무언지 관념론이 무언지, 심지어는 형이상학과 철학이 어떻게 다른지도 모른다. 내게 『순수 이성 비판』은 ABC만 겨우 익히고 셰익스피어 원서를 집어 드는 것과 같다. 뭐 사전 들고 햄릿을 읽지 못하란 법은 없다. 영화 <더 리더>에는 문맹인 한나가 감옥에서 녹음된 책을 들으며 글자를 익히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나는 자유인 아닌가. 일반 시민의 철학적 교양을 위해 특별히 쉽게 만든 이런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눈앞의 밥상을 걷어차는 것과 같이 미련한 일일 것이다.

 

 

『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은 철학 아카데미의 ‘처음 읽는 철학’ 시리즈 두 번째 권이다. 첫 번째는 프랑스 현대철학이었다. 작년에 읽었는데, 꽤 재미있었다. 현대철학하면 보통 포스트모더니즘을 떠올리고, 포스트모던하면 아무래도 프랑스 철학이다. 모두 포스트모던 철학자는 아니지만 하여튼 샤르트르, 알튀세르, 라캉, 푸코, 데리다, 들뢰즈, 바디우 등등 짱짱한 철학자들이 출연한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먼저 철학아카데미에서 강의한 내용을 묶었다는 것이고, 저자들은 각각의 철학자들을 전공한 학자들이다. 한 사람이 현대 프랑스 철학을 죽 개괄한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개별 강의를 모아 놓은 것이라 현대철학사라고 보기에는 통일성이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전공자들이라 각 철학자들의 핵심 개념을 잘 짚어주고 있다. 전체 철학사의 맥락 속에 개별 철학자들의 위치를 알고 싶었던 나는 살짝 아쉬웠지만, 그만하면 나쁘지는 않았다.

 

『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은 프랑스 편 보다는 대체로 쉬웠다. 프랑스 사람들 보다 독일 사람들이 생각과 말을 더 똑 부러지게 하는 편인지, 저자들이 더 쉽게 강의를 풀어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독일이 주는 그 딱딱한 느낌 때문에 더 어렵고 지루하리라 예상했는데, 의외였다. 프랑스 편은 12명의 철학자 모두가 20세기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1901년 라캉부터 대부분 20세기 초반에 태어나, 20세기의 사상을 이끌었던 인물들이다. 그래서 현대철학하면 20세기부터 쳐주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독일편에는 19세기 출생자가 반이 넘는다. 그것도 1818년에 태어난 마르크스는 아예 19세기의 사상가이고, 니체 1844년, 프로이트 1856년, 후설 1859년, 로자 룩셈부르크 1871년, 하이데거 1889년, 벤야민 1892년생이다. 근대와 현대를 가르는 기준이 뭔지 다시 한번 궁금해진다. 잘 모르지만 아마도 데카르트를 시작으로 하는 주체중심, 이성중심의 근대 관념론 철학이 헤겔에게서 완성된 이후, 이 관념론 철학에 대항하는 새로운 사상들을 현대철학으로 분류한 것이 아닐까 싶다. 마르크스의 유물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후설의 현상학 등이 그런 사상들로,『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의 앞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 아닐까, 혼자 생각했다.

 

 

‘처음 읽는 철학’ 시리즈의 목차는 거의 생년을 기준으로 순서가 정해진다. 그러다 보면 맥락상으로는 좀 왔다 갔다 한다. 예를 들어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세 명 나오는데 떨어져 있어, 죽 연결해서 읽는 것 보다는 산만하다. 리뷰를 하나하나 써 볼까 하다가 작년 여름에 프랑스편을 쓸 때, 고생한 것이 기억나 포기했다. 덥기도 했거니와 사실 스무 여 쪽 정도의 분량에 한 철학자의 사상을 압축해 놓은 것을 다시 줄여 리뷰하는 것이 무리기 때문이다. 내가 잘 아는 철학도 아니고, 생판 처음 읽는 철학자도 많은데, 이 짧은 글을 읽고 내가 알면 무엇을 얼마나 알았다 할 수 있겠나. 여하튼 그래서, 12명의 철학자들을 곰곰이 들여다 보다 몇 개의 묶음을 지어보았다. 일관된 기준은 아니고 그냥 쉽게 연상되고 연관되는 대로 묶은 것이다.

 

먼저 마르크스와 로자 룩셈부르크. 둘 다 꽤 알려진 인물이라 쓸 것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혁명가로 묶어 놓았다. 그 다음, 이 책은 ‘독일’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연관되는 철학자들이 있다. 니체, 하이데거, 벤야민, 아렌트. 이들을 묶는 연관어는 ‘나치’ 다. 하이데거는 나치에 직접 가담한 전력으로 유명한 철학자이고,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제자이자 연인이었지만, 유태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태인 철학자다. 나치와 유태인이라는 비극적 한 쌍. 벤야민 역시 유태인으로 나치를 피해 망명하던 도중 자살한 비운의 사상가이다. 니체는 ‘힘에의 의지’ 라는 그 유명한 사상 때문에 나치의 이론적 근거로 은근히 이용당했다는 소문이 있다. 그 다음으로는 현대 독일철학의 대표주자인 프랑크푸르트학파 3인방이다. 1세대의 아도르노, 2세대의 하버마스, 3세대 호네트가 해당 되신다. 마지막으로 딱히 철학적 공통점은 없지만, 새로운 사상의 대표로서의 공통점을 가진다고 할 수 있는 3인의 철학자가 있다. 정신분석의 아버지 프로이트, 현상학의 창시자 후설, 현대 해석학하면 떠오르는 인물 가다머 이다. 현상학과 해석학, 제일 개념이 안 잡히는 까다로운 철학이지만, 뭐 어쨌든 이 책의 내용을 한번 따라가 볼 생각이다. 이제 틈틈이 가능하면 짧게, 그러나 네 묶음이나 되어버린 『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의 본격적인 리뷰를 마음먹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