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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평점 :
『불편해도 괜찮아』, 반쯤 읽었는데도 재미가 없었다. 이걸 어떻게 다 읽나 한숨이 났다. 좋은 책이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사실 집중이 필요 없었다. 아무리 슬렁슬렁 살았다 해도, 중년으로 보일 정도가 되면, 이것저것 주워들은 것들이 꽤 되기 마련이라, 대부분 아는 내용들이었다. 예전 생각이 났다. 하숙촌에는 이름이 거창한 만화방들이 몇 군데 있었다. 또렷이 기억나는 이름은 집현전과 만화궁전. 24시간 만화방이었는데, 나는 가끔 등굣길에 기어들어가 해가져서 빠져나오곤 했다. 그때 ‘만화광장’ 이라는 월간 만화잡지가 굉장한 인기였다. ‘만화광장’의 꽃은 단연 허영만의 <오! 한강> 이었다. 들은 소문에 불과하지만, <오! 한강>은 안기부의 요청으로 그린 반공만화라고 했다. 일제강점 말기부터 80년 오월 광주까지, 주인공 강토의 파란만장 인생사의 끝을 놓고 보면 친공이랄 수는 없지만, 이런 것이 반공만화? 우리는 안기부의 뒤통수를 멋지게 후려갈긴 허영만에 환호하고, <오! 한강>에 열광했다. 그 후 ‘만화광장’이 폐간되었는데 (일시 정간이었는지, 폐간이었는지, 그 이후의 일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오! 한강>때문이라는 설이 분분했다. <오! 한강>은 안기부가 선전용으로 기획했지만, 그 기획 의도의 촌스러움과는 정반대로 80년대 정치만화의 명작을 탄생시켰다. 이념을 별개로 한다 해도, 작품 자체만으로도 엄청 재미있고 잘 만들어진 만화였다.
김두식의 『불편해도 괜찮아』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책이다. 안기부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지만, 이 책 역시 이를테면 계도 혹은 홍보의 목적으로 쓴 책이다. 아홉 가지 영역의 인권을 다루고 있는데, 쉽고 흥미 있게 다가가기 위해, 다양한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풀고 있다. 읽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렇다고 아주 재미있지는 않다.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이제 워낙 흔하기도 하다. 게다가 지은이의 독특한 시각이 아니라 일반적 독법으로 영화를 풀기 때문에 구미가 그다지 크게 당기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물론 좋은, 혹은 선한 책이다. 아쉬움이라면, 좋은 책이니 더욱, 탄탄하고 짜임새 있게, 긴장감 넘치게 쓰였다면 하는 것이다.
삼분의 이 정도 까지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8장과 9장은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9장 제노사이드 편은 더 그랬다. 중앙아프리카의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에 벌어진 인종청소에 관한 사실들은 내가 모르던 것들이다. 간혹 르완다에 관한 단신을 들었던 기억은 나지만, 너무 먼 나라들, 그리고 내가 갖고 있던 선입견, 후진국의 미개한 종족 간의 분쟁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아프리카 종족들 사이의 학살전이 맞지만, 거기에는 벨기에와 독일의 과거 식민통치가 그 배경원인이라는 진실이 덧붙여져야 한다. 이 비극의 배후에는 서방세계의 제국주의가 있다. 영화 <호텔 르완다>는 유엔군이라는 명목으로 르완다에 들어온 서방국가들이 자국 국민들만 구해 나가고, 현지인들은 학살의 현장에 그대로 버려둔 냉혹한 ‘인권’ 의식을 고발한다. 그들의 인권은 그들이 생각하는 인간, 즉 서방세계의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권리인 것이다. 동물들에게 인권이 없듯 아프리카 현지인들에게도 인권은 없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언제나 인권을 떠든다. 북한의 인권이 어떻고, 중국의 인권이 어떻고... 고맙게도 그들에게 동양인들은 그래도 사람이긴 한 건가.
그런데 인권이 인간의 타고난 권리로만 규정되는 건 문제가 있다. 그렇게 접근하면 인간 개개인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다. 인간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식의 휴머니즘이 해법으로 제시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권이란 사회구조와 결부되어 있다. 식민통치가 있는 한 식민지 원주민의 인권은 없다. 독재가 있는 한 그 국민들의 인권은 없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에 종속되어 있는 한 저개발국의 기아는 해결될 수 없다. 김두식의 한계도 여기에 있다. 독일과 벨기에의 식민지 통치는 잘 설명해 놓고도 결론은 이런 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먹을 것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매달 약간의 기부를 하면 충분합니까? 먹을 것을 줄여서라도 그들을 도와야 하는 게 아닙니까?” ‘약간의 기부’와 ‘먹을 것을 줄여서 도우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아무리 많은 도움도 그저 ‘도움’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도움이기도 하지만, 잔혹한 전쟁의 진정한 원인을 깨닫고 서로에 대한 맹목적인 분노를 그 구조를 향한 진정한 분노로 바꾸어 내는 것이다. 선진국들이, 자본가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뒤에서 부추기는 갈등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것들을 중단시키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지젝이 말하듯 지구상 최고의 자선가 빌 게이츠는 한 편으로 그 어마어마한 빈부격차를 유발하는 장본인이다. 소로스 역시 그렇다. 그는 업무 시간의 반은 인도주의적 활동에 할애하지만 나머지 반은 금융투기를 함으로써 (바로 그 인도주의가 필요하도록) 빈곤을 만들어낸다. “자선은 경제적 착취라는 얼굴을 감추고 있는 인도주의적 가면이다. 선진국들은 원조와 차관 등을 통해 미개발 국가들을 ‘도움’으로써, 그들 스스로가 후진국의 빈곤에 연루돼 있으며, 공동책임이 있다는 핵심적 쟁점을 회피한다. 이는 초자아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거대한 기만이다. p52 <폭력이란 무엇인가?>”
김두식의 이런 시각은 5장 노동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를 설명한 후 비정규직으로 불안정성을 높이면 잘리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자본의 생각이 다음의 이유로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불안정성이 외형적인 생산성을 높일지는 몰라도, 불안한 영혼들이 만들어내는 상품에는 혼이 빠져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혼이 빠진 상품이 고객에게 감동을 줄 리도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경제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면이 너무 많습니다.....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날로 행복해져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삶의 질은 갈수록 떨어지고 양극화만 심화됩니다. p188” 날이 갈수록 경제가 악화되는 것은 상품에 혼이 들어있지 않아 사람들이 사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살 돈이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이 늘어가고, 임금이 낮아지는데, 혼이 들었건 넋이 빠졌건 어떤 상품이건 구매할 능력이 있을 리가 없다. 시장경제는 기본적으로 순환이 가장 중요하다. 노동자는 곧 소비자이다. 그런데 노동자의 임금이 낮아지면, 단기간 자본의 이익은 증대하겠지만, 노동자 즉 소비자의 구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판매량 자체가 감소한다. 사고파는 흐름이 막히면 경제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노름판과 마찬가지다. 큰 손이 싹쓸이를 하면 판은 끝난다. 고스톱을 칠 때도 개평이라며 딴 돈을 떼어주는 이유는 딴 놈이 착해서가 아니다. 고스톱 판이 돌아가려면 참가자 모두에게 일정액의 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파산은 곧 소비자의 파산이다. 그것은 곧 자본가의 파산으로 이어진다. 물론 여전히 착취할 후진국이 존재하는 한, 원료는 싸게 사고, 생산품은 비싸게 팔 그런 나라들이 존재하는 한, 자본이 쉽게 파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나라들이 하나, 둘 손을 털면 자본도 끝장이다. 당장 눈앞에,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이 아니라고 모른 척 하지만, 계산은 간단하다. 출산율 저하 운운하면서,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하느니 경제가 후퇴하느니 난리를 칠 때, 나는 참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 일자리는 적고 일할 사람은 많아서 이 난리인데,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하면 사람이 필요한 일이 더 적어질 텐데, 평균수명도 늘어나 일할 수 있는 연령도 훨씬 높아질 텐데, 왜들 문제라고만 할까? 사실 우리나라는 국토면적에 비해 인구수가 많은 편이지 않은가? 그런데 요즘 와서 알게 되었다.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활동인구가 준다는 말의 진실은 일할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이 아니라 소비할 사람이 줄어든다는 말이다. 생산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매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로봇이, 아무리 높은 기술이 저 비용으로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면 무엇할 것인가? 그걸 사 줄 사람이 없는데. 혹시 미래에는 로봇이 구매자가 될까?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의 소비자들의 목을 이렇게 옥죄이는 것일까?
여하튼.... 나도 훈훈하게 마무리 ;;
착한 책이고, 필요한 책이다. 특히 청소년들이 읽으면 세상에 대한 관심을 좀 더 폭넓게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인권감수성의 핵심은 ‘불편’이라고 한다. 불편해도 인권을 위해서라면 괜찮아. 좀 지루해도 인권을 위한, 괜찮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