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명 · 청 제국 그리고 동아시아

 

 

 

 

 

 

1. 명나라가 이끄는 동아시아

 

지난 주말 끝난 드라마 <정도전>의 배경인 여말선초는 중국의 원·명 교체기이다. 이인임을 필두로 하는 권문세가는 북원과의 화친을, 신진사대부들은 명과의 사대외교를 주장하며 서로 대립하였다. 명의 주원장은 북원을 몰아내고 다시 중국 땅에 한족의 통일왕국을 세웠다. 명은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이웃 나라에 조공·책봉 관계를 요구하며 세계의 중심으로 자처하였다. 고려도 명과 사대의 관계를 맺었는데, 사대의 전제조건은 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몽주가 밝힌 바와 같이 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주원장은 이인임을 견제하고 정몽주를 압박하는 등 고려 말, 조선 초의 한반도 내정에 간섭함으로써, 반발을 샀다. 그것은 여말선초에 몇 번이나 시도된 우리민족의 ‘요동정벌’ 에 대한 명나라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거대한 중국대륙의 한쪽 귀퉁이 작은 땅이지만, 우리민족은 끝까지 중국에 맞서 독립왕조를 이어올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우리민족은 중국 변방의 호족들과 연합하거나 때로는 대립하면서 국력을 강화했다. 정도전은 주원장이 죽고 명의 후계다툼이 시작되자, 요동을 차지할 절호의 기회로 삼고 요동정벌을 추진하였으나, 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함으로써, 요동정벌의 꿈은 사라졌다.

  

  <출처 :http://study.zum.com/book/15561>

 

조선 건국에 관해서는 어떤 책보다 드라마 <정도전>이 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을 너무 TV로부터 차단하는 경향이 있다. 아예 TV가 없는 집들도 꽤 많다. 그러나 EBS의 다큐들 예를 들면 <빛의 물리학>, <수학과 문명>, 네셔널 지오그래픽의 <코스모스> 등 훌륭한 프로그램들이 너무 많다. 나도 어릴 때 이런 프로그램을 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웠고, 요즘 아이들이 부러웠는데, 막상 부모들은 TV를 무조건 나쁜 것으로 치부하니, 유수의 학자들이 참여해 수백억을 들여 만든 프로그램 보다 더 잘 가르칠 선생님과 자료를 어디에서 찾을 수있을런지, 참 아쉽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 시절 푹 빠져 본 드라마, 영화, 만화에서 배운 것보다 더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또 있을까? 아이들이 유해한 것도 좀 보고, 시간도 낭비해가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제레미 벤담은 요즘 엄마들이 매우 좋아할 듯하게, “내 인생의 매 순간은 계획되어 있다.” 며 일분일초도 낭비하지 않고 살았지만, 그가 남긴 최대의 유산은 ‘판옵티콘’ 이다. 효율성과 유용성의 극단에서 탄생한 것이 숨 막히는 감시체계였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질식해 버릴지도 모른다. 한 시간 달달 외워 조선 -이성계ー1392년 따위나 기억하는 것이 물론 훨씬 효율적인 투자일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 <정도전>에 분노하고, 가슴벅차하고 또 함께 눈물을 흘렸던 일곱 달의 긴 시간들만이 결국 우리의 삶에 남아 우리와 함게 하는 역사가 될 것이다.

 

 

2. 임진년, 전쟁에 휩싸이고

 

1392년 조선이 건국 된지 딱 200년 만인 1592년에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쳐들어 왔다. ‘임진’년에 ‘왜’가 일으킨 ‘난’, 임진왜란이다. 7년 만에 끝난 이 전쟁의 결과로 일본은 정권이 바뀌어 에도막부 시대가 열렸고, 조선의 요청으로 군대를 보냈던 명나라는 더욱 쇠약해져 만주족(여진족)이 새운 청나라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일어난 조선에서는 큰 정치적 변화가 없었다.

 

 

3. 오늘날의 중국을 만든 청나라

 

중국은 한족의 나라라고 하지만, 중국 역사를 통해보면, 농경민족인 한족과 유목민족인 여러 호족들이 번갈아 가며 혹은 서로 대치하며, 왕조를 교체해 왔다. 현재 중국의 틀을 완성한 청나라는 만주족(여진족)이 세운 나라다. 그러나 청나라는 한족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고 유교가치관을 받아들였다. 한족과 유목민족을 하나로 통합하여, 중국문화의 옹호자를 자처했다. 그러나 변발과 만주복 착용을 강제하면서, 반청적인 인사를 철저히 탄압하였다.

 

 

현재 중국을 구성하는 수많은 소수민족들 중 상당부분이 청나라 때 와서 중국의 영역으로 입되었다. 티베트, 대만, 신강(신장), 서장(시짱) 등을 식민화하였다. 청나 

라는 새로이 편입한 영토에 먼저 한인 관료나 군인을 보내 중국식 체제로 바꾸고 한인들을 그 지역에 이주시켜 민족 융합 정책을 실시했다. 그 외 장족, 후이족, 조선족 등 50여 소수민족이 자의든 타의든 현재 중국이라는 한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다. 지금도 중국은 소수민족의 독립 움직임을 철저히 탄압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달라이 라마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은 티벳 독립 나아가 소수민족의 독립과 관련된 민감한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4. 일본과 청나라로 향한 조선

 

명〮〮· 청 교체기에 조선의 가장 유명한 인물은 광해군일 것이다. 기울어가는 명나라와 세력을 키워가는 청나라 사이에서 조선을 지키기 위해 어느 편에도 기울지 않는 등거리 외교정책을 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군대를 보낸 명에 대한 감사와 사대를 주장하는 세력에 의해 쫓겨났다. 그 결과 조선은 급격하게 명에 기울었지만, 중국의 운명은 이미 청나라에 들어갔고, 조선은 잘못된 선택으로 두 차례의 침략을 받게 되었다. ‘병자’년에 ‘오랑캐’에 의해 일어난 ‘난’, 병자호란이다. 이제 조선은 청나라에 사대의 예를 해야 했다.

 

조선은 일본과 청나라 양쪽과 다 전쟁을 치렀지만, 이후 200여 년 간은 평화로운 시기로, 청나라에는 연행사를, 일본에는 통신사를 보내 문물을 교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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