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의 사상 -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3
박가분 지음 / 오월의봄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지난주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일베를 취재했다. 모자이크된 화면과 낯 뜨거운 자막들이 중간 중간 보였다. 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을까 싶지만, 수 십 만이 넘는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재미삼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자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진중권은 <그것이 알고 싶다> 일베편을 조금 모자란 프로그램이라 평하면서, 속칭 ‘일부심’으로 통하는 일베의 자부심을 이렇게 규정했다. “‘자아’를 스스로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커뮤니티에 속한다는 사실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며, “정확히 말하면 ‘자’부심을 가질 건덕지가 없는 아이들이 가상으로 만들어 느끼는 ‘타’부심”이라는 것이다. 진중권이 일베를 대하는 방식은 한마디로 불쌍한 애들이 관심 쫌 끌어 보려는 짓거리니, 가볍게 웃어주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일베의 영향력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관심과 진지한 응대 방식이 일베에 영향력을 실어 준다고 진중권은 예전부터 주장했다. 그에게 일베는 한마디로, 무시해 버리면 자연히 사라질 불쌍한 집단이다. 그래서 진중권은 일베에 동정심을 표출한다. “거기에는 어떤 처절함이 있다. 일베 너무 미워하지 마라. 불쌍한 애들이다” 진중권은 가끔씩 일베를 불러들여 설전을 하며 놀아 주기도 했다. 진중권이 <그것이 알고 싶다>에 “일베의 공격성의 바탕에 깔린 열등의식을 정신분석으로 헤집어야 했다” 고 아쉬움을 표한 이유도 그들에게 적대감 보다는 동정심을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정신분석적 접근을 했다면 과연 어떤 분석이 나왔을까? 박가분의 『일베의 사상』은 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일 수 있다. 실제로 박가분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일베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일베의 사상』은 한국사회에 대한 사회과학적 탐색이지만, 그 바탕에는 라깡의 정신분석학이 깔려있는 것 같다. 박가분은 라깡이란 이름을 언급하지 않지만, 서문에 “일베는 본질적으로 진보와 좌파의 증상이다.” 고 명시적으로 선언하면서, 그의 이론이 정신분석적 틀에 기초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 외에도 전이, 전치와 응축, 무의식, 은폐와 봉합 등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사용하여 논증을 이끌어 가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은 분명히 적대 관계로 보이는 진보(혹은 좌파)와 일베가 실제로는 하나의 모태에서 태어난 쌍생아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진보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일베와 같은 증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주장하는 것에 있어 보인다.

 

일베는 본질적으로 좌파의 증상이다. 진보와 좌파의 존재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일베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일베는 과거 촛불시위라는 정치적 이벤트가 개방한 공간 속에서 탄생했다. 그것이 보여준 급진성, 욕망의 정치, 자족적인 언설의 공간, 스스로도 진지하게 믿지 않는 윤리적 이상주의라는 바로 그 ‘촛불정신’은 오늘날 일베에 반전된 형태로 계승되었다. 일베에 대한 비판은 진보좌파가 스스로의 정치적 상상력을 극복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베를 도덕적이고 당위적으로 비판하기 이전에 그들을 내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이 책을 일베 유저들에게 바친다. p19

 

물론 박가분의 분석은 진중권이 말하는 의미의 정신분석과는 달라 보인다. 진중권은 아마 진보의 쌍생아로서의 일베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진중권은 일베 유저들을 단순히 열등감을 가진 사회부적응아정도로 치부하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가분은 혐오적 언사와 욕설이 난무하는 ‘일일 베스트 저장소’에 몇 달을 죽치고 앉아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일베를 통해 진보의 일그러진 얼굴을 찾아내게 되었던 것일까? 박가분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비방과 악의에 가득 찬 일베식 글쓰기 방식의 원조는 강준만과, 진중권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논객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논객다운 글쓰기란 공격적이고 우상 파괴적인 스타일로, 감성과 논리 그리고 정치적/학문적 판단과 도덕적 판단을 뒤섞어가며, 상대의 허점을 명쾌하게 논파하는 글쓰기를 의미했다. p77」

 

일베는 팩트 제일주의를 지향한다. 이때의 팩트는 맥락이 제거된 거두절미식 팩트이다. 귀신같은 신상 털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 어떤 단어를 썼는지 단박에 찾아내어 너 그때 이렇게 말했잖아 식이다. 그런데 이런 공격방식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의 진보 논객들이 즐겨 사용하던 수법이다. 우리에게 풍자적 통쾌함을 주었던 쥐박이, 닭그네, 좃선, 똥아, 딴나라당 등이나 노알라, 핵대중, 박원숭, 씹선비 따위가 다르다고 할 수 없다.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을 보면 상대를 ‘파시스트’, ‘소아병자’, ‘토론의 규칙을 모르는’ 수준 이하의 인간이라 부르며 비아냥거리고 모욕하는 방식을 즐겼다. 일베는 도를 지나치고 있지만, 진보논객들의 방식을 이어받고 있음을 부정할 수도 없다. 또한 일베는 평등을 추구한다. 어떤 성역도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는 존댓말도 허락하지 않는다. 일베에서는 누구나 ‘병신’이라는 점에서, 누구나 혐오할 수 있고 혐오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진보가 주창한 평등의 원리가 뒤틀린 채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베와 진보의 쌍생성은 형식적 측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2002년 촛불정국과 노무현에 대한 지지는 뚜렷한 이념이나 가치에 기반 한 것이 아니라 기성 정치에 대한 반동정서, 혐오와 환멸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인터넷의 정치적 분위기를 잘 표현하는 것은 진보나 좌파라기보다는 오히려 내셔럴리즘과 결합한 반한나라당 정서에 더 가까웠다. 노무현에 대한 지지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환멸과 혐오에 대한 반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거대 보수정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수구꼴통’, 친일독재 정당쯤으로 인식되고 비난당했다. 그리고 오늘날 인터넷 문화와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어떤 명확한 가치나 이념보다는 무언가에 대한 혐오와 안티정서가 사람들을 결속시켰다. p98 」

 

현재의 일베를 움직이는 힘 역시 환멸과 혐오이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는 둘 다 긍정적인 가치나 이념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좌파적 꿈의 부재와 우파적 비전의 실종은 사람들에게 현실에서 벗어난 상상적 국가를 열망하게 만든다. 더불어 이상적 국가를 단번에 실현해 줄 위대한 지도자를 갈망하게 한다. 2002년의 노사모를 홍위병으로, 현재의 일베를 파시스트로 경계하는 시각은 그것이 좌파든 우파든 이런 위험성을 일별했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넷의 정치적 풍경은 2002년이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단지 감정적인 전이 대상이 옮겨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바라는 정상국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줄 국가란 (미국이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 당당하게 말을 하는 대한민국이다. 그 반대급부로 (과거에 딴나라당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면) 지금은 ‘노완용’, ‘핵대중’ ‘촛불좀비’가 유행하고 있다. 정상국가의 실현을 방해하는 존재에 대한 안티정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인터넷을 관통하는 문화적/정치적 코드이다. 국가와 인터넷과의 이러한 상상적 관계(정상국가에 대한 열망)는 인터넷의 정치문화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

 

2002년 진보와 네티즌들은 자신의 상상을 실현해 줄 대상을 찾았다. 하지만 노무현이란 현실 정치인에게 투사한 상상적 국가의 모습은 저마다 달랐고, 당연하게도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실현할 수 없었다. 현실이 아니라 상상에 의해 구성된 지지 세력은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전향자들이 속출했다. 일본의 평론가 요시모토 다카아키에 따르면 전향은 현실과 유리된 사상에 집착한 것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그는 전향이란 자신의 사상적 논리가 지닌 모순이 현실에 비춰 선명하게 드러날 때, 정당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사상적 논리로 단순히 ‘갈아타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촛불이 전향하여 일베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 촛불의 사상이 일베의 사상으로 굴절된 것 이면에는 촛불시위에서 표출된 대중의 열망이 현실정치에서 좌절된 사정이 있다. 자신의 이상에 의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역으로 그러한 이상을 과격하게 조롱하고 비웃는 것이다. 일베 유저들은 촛불시위 이후에야 나타날 수 있는 유형의 군중이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촛불시위의 쌍생아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시위에서 제기된 문제와 쟁점들을 해결하지 않는 한 일베와 같은 존재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p234」

 

'촛불시위에서 제기된 문제와 쟁점들’은 경험상 단순하다. 상식과 원칙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는 아무것도 담지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사실 텅 비어 있었다. 그 텅 빈 이름에 어떤 내용을 채워 넣을 것인지 사고하지도 토론하지도 투쟁하지도 않았다. 그 이름이, 강력한 지도자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이루어 줄 것이라 믿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노무현은 스스로 ‘강력함’을 거부함으로써, 독재자의 길은 피했지만, 아무것도 해낼 수 없는 불구가 되었다. 영웅적 지도자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그를 통해 무엇을 이루어낼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이, 가치관의 공유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반대, 반동정서만으로 열정을 소진해야 하고, 상상적 국가를 그리며 적과의 키배틀에 나서야 한다. 넷 상의 이 적들만 섬멸되면 마침내 상상적 국가가 현실에 세워질 것이라는 환영 속에서 말이다.

 

박가분의 대안은 무엇일까?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의해 촉발된 촛불시위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시위는 애초에 좌파와 우파 모두 재전유하는 데 실패한 대중의 정념(사회 경제적 불안, 공포, 분노) 에 기초해 있었다.” 그것은 비단 2008년뿐 아니라 2002년의 촛불과 지금의 일베 역시 마찬가지다. 이 정념을 촉발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 사회를 극단으로 갈라놓고 있는 빈부 격차의 심화이다. 촛불시위나 원칙과 상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정치 경제적 적대가 있는 것이다. 일베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적당히 봉합하고 있는 이 적대를 비틀린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세상을 다 바꾼 듯 요란 떨던 너희는 살만하냐? 우리는 다 같이 병맛이다.

 

「일베는 대한민국의 문화적, 정치적 동질성과 집단주의적 문화 속에서 표출될 수 없었던 사회적인 갈등과 적대들이 특유의 ‘혐오 문화’라는 전치되고 응축된 형식으로 표출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일베의 혐오 문화는 합의지반이 존재하지 않는 실재의 정치적 적대에 뿌리내리고 있다. 일베는 지역 간의 경제적 격차, 일상에서 남성과 여성이 겪는 성적 갈등 등 진보나 좌파들이 직면하길 꺼려하거나 혹은 적절한 방식으로 동원하지 못했던 적대의 에너지를 자양분으로 삼는 존재이다.p123 」

 

박가분은 여기서 ‘사회’ 공동체를 제안한다. 개인이 국가에 불가능한 이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함께 현실화할 수 있는 사회 공동체를 조직하여 국가를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의 국가를 변화시키지 않고서 어떤 정치적 이상을 궁극적으로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가는 여전히 중요한 정치적 장소이다. 하지만 현실의 국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로부터 자립한 ‘사회’가 필요하다. 굳이 국가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이상을 타인과 소통하고 또한 그것을 작게나마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국가에 대한 상상을 둘러싸고 인터넷에서 싸우는 의미는 사라질 것이다. 한국의 진보진영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이상을 유기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사회 없이 이상을 국가에 의해 곧바로 실현시키려는 기획에 그동안 과도하게 의존했다는 점이다. 즉 사회를 변화시키지 않은 채 국가를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p241~2」

 

갑자기(?) 등장한 ‘사회’가 조금 뜬금없이 들리기도 한다. 사회란 학생회라든가 노동조합, 협동조합, 지역사회의 자치조직 등을 말하는 것 같다. 이런 사회 조직들이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튼튼히 뿌리내리지 못한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런데 나는 조직도 조직이려니와 국가를 향해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는 커다란 정치적 비전이 이들 조직에 선행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는 다양한 자치 활동의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는 공유된 정치적 비전이 전무하다. 좌파의 꿈의 부재가 대중의 정념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낼 수 없었고 그 때문에, 들끓는 정념이 극우적 이상주의를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일베는 좌파의 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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